다음의 믿음 [이하윤]
천천히 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지는 묻지 않았다
교차로가 다 내려다보이는 창가
차는 차가운 상태로 천천히 우러나고
비 오는 날 우산을 기다리는 아이의 기분으로
눈앞에 보이지 않는 너의 걸음을 짚어본다
네가 지름길을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불현듯 만난 우리의 대화가
온통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있었던 일들이라면 좋겠어
티백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말라가는 동안
나는 계속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모든 멈춤을 뚫고
저녁이 오는 일에 대해
젖은 냅킨 위에 지도를 그려본다
깜빡거리며 점등되는 가로등처럼 자꾸만
하나의 지점으로 고이는 모양
네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빈 찻잔은 빈 찻잔들이
모인 곳에 가져다두고
기다린다
일정한 시간마다 사람들이 멈추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간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음의 약속들이 무수하고
나는 이미 너를 만난 것도 같지만
- 창작과 비평 2023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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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믿음 [이하윤]
joo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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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7
24.05.11 08:0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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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대 때의 한 장면 같기도 하네요.
누군가를 기다리며 불안한 미래를 골똘히 생각하던......
황지우 시인의 시가 떠오르네요.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