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론 (淸談論) 1
「벗과의 하룻밤 청담(淸談)은 10년간의 독서보다 낫다」이것은 고대 어떤 중국의 한 학자가 벗과 청담을 즐긴 후에 한 감회(感懷)이다. 이 말에는 많은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
오늘 날에는 야담(夜談)이라는 말이 벗과의 유쾌한 밤 이야기를 뜻하는 유행어로 되어 있다. 영국의 'Weekend omnibus'총서(叢書)비슷한 책으로 야담이니 산중야담수록이니 하는 표제의 책도 두서너 권 나와 있다. 벗과 흉금을 털어놓고 청담으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인생무상(人生無上)의 기쁨은 일생동안 늘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니다.
이립옹도 말하고 있듯이 현명한 사람으로 구변이 좋은 이는 좀처럼 없으며, 동시에 화술도 이해하고 있는 인물을 산간의 절같은 데서 우연히 만난다는 것은 천문학자가 새로운 유성을 발견하고, 또 식물학자가 신종을 발견하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생 최대의 기쁨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사업계의 급변하는 템포 때문에 벽난로를 둘러싸고 크레커통에 걸터 앉아서 청담으로 밤을 새우는 화술이 쇠망일로에 있다고 현대인은 한탄하고 있다.
소위 템포라고 하는 거세도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나로서는 이렇게도 믿고 있다. -즉 가정이라는 것이 왜곡(歪曲)되어 그만 통나무를 때는 벽난로가 없는 아파트 신세로 떠어지게 된 것이 화술 파괴의 시초가 되고, 자동차의 영향이 그 파괴를 완성시킨 것이 아닐까? 도대체 템포라는 것부터가 돼먹지 않은 소리다.
참된 청담이라는 것은 여유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거기서 발하는 안도감, 유머, 가벼운 뉘앙스를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그저 이야기만을 한다는 거과 소위 청담을 한다는 것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중국어로는 설화(說話)-speaking라는 말과 담화(談話)- comver-sation라는 말로 그 차이를 구별하고 있지만, 담화는 설화보다는 마음이 가볍고 느긋한 맛이 있고, 화제도 비교적 세세한 일로 되어 있으며, 사무적인 데가 적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동일한 차이는 사무용의 통신과 문우의 서한 사이에도 있을지 모른다. 사무에 관한 이야기라면 거의 상대 여하를 가릴 것 없이 아무하고도 할 수 있지만, 밤을 세워 가며 청담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참된 의미의 담화가를 발견하였을 때의 기쁨은 재미난 작가의 작품을 읽는 이상이라고는 할 수 없더라도 그것에 필적할 만한 것이 있다. 더구나 담화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육성을 듣고, 동작을 보는 기쁨이 있다.
어떤 때는 친구들과의 유쾌한 재회 석상에서, 어떤 때는 회고담을 하는 지기지우 사이에서 어떤 때는 밤 기차의 끽연실에서 어떤 때는 먼 나그넷길의 객차에서 우리는 그러한 기쁨을 발견한다. 여러 가지 재미난 이야기나 독재자나 반역자를 타매하는 통렬한 변설ㅇ레 섞여 도깨비 이야기, 여웨 홀렸다는 이야기 등도 나올 것이 아니겠는가.
또 개중에는 이제 어떤 나라에서는 이러한 사태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점점 절박한 정권의 전복이나 정변의 전주곡이라고도 말하여, 우리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고식형안(高識炯眼)의 좌담가도 있다. 이러한 청담은 일평생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는다.
청담에 가장 알맞은 때는 밤이다. 밝을 때의 담화는 어쩐지 매력이 부족하다. 그 장소는 어떤 곳이라도 무방하다. 문학이나 철학에 관한 유쾌한 이야기를 즐기려면 18세기식의 살롱에서도 할 수 있고, 또 오후의 햇볕을 쬐면서 그 어떤 농원의 빈 술통 위에 걸터 앉아서도 할 수 있다. 혹은 또한 이러한 일도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밤이나 비 내리는 밤에 배를 타고 강을 건너거나 맞은편 기슭의 선등(船燈)이 반짝 반짝 수면에 비치는 그러한 정취 가운데서 사공들은 여인의 공주 시절 이야기를 들려 준다.
사실 청담의 묘미란 그 환경, 즉 장소나 시간이나 말하는 상대자가 가끔 달라지는 데에 있다. 어떤 때는 강남자(江南茶)가 꽃필 무렵, 산들바람이 부는 달 밝은 밤에 그 이야기를 회고하고, 어떤 때는 벽난로의 통나무를 때던 캄캄한 폭풍우의 밤의 기억과 함께 연상한다.
혹은 또 어느 누각의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서 강 위를 둥실둥실 떠내려오는 몇 척의 조그마한 배를 바라보고 있던 일을 회상한다. 그중 한 척은 급류에 밀려서 전복됐겠다. 그리고 또 아침의 한때를 정거장 대합실에서 지나던 때의 기억도 머리에 떠오른다. 이러한 정경은 그때그때 청담의 기억에 깊이 뿌리를 박은 채 언제까지나 잊혀지지 않는 광경들이다. 그 때 방안에 있던 사람들은 아마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었을 게고, 아니 어쩌면 대여섯 사람쯤 있었을지도 모른다.
진군(陳君)은 그날 밤 다소 취기가 있었고, 김군(金君)은 감기가 들어 다소 콧소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도리어 그날 밤의 흥취를 한층 더 돋구어 주는 것 같았다. - 「달에 영허(盈虛)가 있고, 꽃에 성쇠(盛衰)가 있고, 붕우(朋友)는 자주 만나기 어렵다」라는 것이 인생이니까. 우리가 이러한 단순한 즐거움에 잠겨 있을 땐 신명도 인간을 질투하지 않으리라.
- 임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