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새 방을 보여주지 못했다. 한 번은 합정동까지 오셨다. 역에서 집까지 가는 길 내내 왜 또 반지하냐 재킷은 왜 그리 짧냐 아이고 잔소리 잔소리. 기어이 짜증을 부렸다. 엄마가 뭘 해줬다고! 불쌍한 엄마는 발길을 돌렸다. 참 못난 입이고 말이다. 가족은 가족에게 폭력적이다. 객관화해야 한다고 입으로 말했는데 정작 내 입은 그러지 못한다. 밉다. 스스로에 되게 실망했다. 그 길 위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먼저 연락하지 못했다. 일이 바쁘고 삶이 피곤하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문자가 왔다. 한 밤 중이었다. 엄마였다. ‘음력 10월 14일 양력 11월 11일은 지웅이 엄마의 생일.. 받고 싶은 생일선물: 예쁜 숄처럼 생긴 목도리. 가격 4만원.’ 화장실에서 물 틀어놓고, 나는 소리 내 엉엉 울었다.
비싼 걸 사주고 싶었다. 백화점에 가야겠다. 회사 후배에게 나 효도좀 하려는데 뭘 사면 좋겠니 이것저것 물어봤다. 에르메스가 비싸고 버버리가 그나마 조금 싼데 몇 십만원 생각해야 한단다. 그것 참 되게 비싸네.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있으나 마나한 아버지에게 평생 그런 선물 받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바보같이. 압구정역에서 엄마를 만났다. 볕이 좋은 날에 엄마는 유난히 예뻤다. 미용실에 가서 장미희 머리로 잘라달라고 했단다. 정말 장미희보다 예뻤다. 백화점에 들어갔다. 그러나 천하의 고집쟁이 엄마는 결코 내가 원하는 샵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엄마는 백화점 1층에서 기어이 4만 9천원 짜리 목도리를 골랐다. 나랑 내 동생이 신이 내린 자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예쁜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엄마와 커피를 마시고 가로수길을 걷고 다시 커피를 마시고 <아내가 결혼했다>를 봤다. 극장을 나서 모계사회 자바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연애하듯 좋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의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괜찮니. 물었더니 오히려 명확해졌단다. 뼈가 삭도록 일해서 가족 먹여 살리겠단다. 전화를 끊고 한강을 바라보았다. 어둡다.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밉살맞고 장미희보다 예쁜 엄마가 자꾸 보고 싶었다. 엄마는 나를 자꾸 울게 만든다. 그렇다면 엄마 무릎에서 울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엄마 앞에서 울지 못한다.
내가 그동안 느꼈던 기분을 콕 집어서 글로 표현하다니... 나도 엄마를 볼 때 마다 항상 짜증이 났던 이유가 바보같은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엄마 앞에서 울 수 없다는 심정이 뭔지 잘 알겠다. 아, 이런 게 글을 잘 쓰는 거구나. 싶다.
첫댓글 이거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 나오는 내용이네... 이책에 엄마내용보고 눈물남
@찬열아 뽀뽀 응 한번 읽어봐 허지웅 개인에 대한 이야기나 정치,사회적 이야기엮어놓은 수필?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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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어렸을때 어려운 시절 이야기 쓴 글 읽었었는데 그런 일 겪고 온유한 성격 가지는게 이상하다 싶은 정도더라 마냥 싫어하진 못하겠다는거 정말 공감이야
맞아...어머니 뺨맞을때 그냥 인사하고 나왔다고.....그게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하는데 먹먹
3ㄹㅇ광주 관련 글 우리는 아직 유죄다 였나 그것도 존잘...허지웅은 방송에서 언뜻 비춰지는 가정사나 개인사 들어보면 존나 짠함ㅠㅜㅜㅜㅠㅠㅠㅜㅠㅠ
아.. 진짜 공감....마음은 있는데 표현도 못하고
와... 공부하다 통수맞은 기분... 나도 엄마한테 비싼거 사줘야지 공부하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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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예전에 허지웅이 텀블러에 올렸었던 글이야! 그런 글들 모아서 책낸 거라 아무상관없을것같아서!
@Oikawa Tooru 아냐아냐 괜찮아!
아 먹먹해..
우와..
아눈물나
내가 그동안 느꼈던 기분을 콕 집어서 글로 표현하다니... 나도 엄마를 볼 때 마다 항상 짜증이 났던 이유가 바보같은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엄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데 엄마 앞에서 울 수 없다는 심정이 뭔지 잘 알겠다. 아, 이런 게 글을 잘 쓰는 거구나. 싶다.
예전에이거보고울었었는데ㅠㅠ글진짜덤덤하게잘쓰는거같음
헐......ㅠㅠㅠ 슬퍼
ㅠㅠ슬프다
저 생일선물 진짜 공감...엄마 비싼거 사주고 싶어서 백화점데려가면 꼭 싼거 고르고 밥 비싼거 사주고싶어도 싼거먹자고 그럴때 진짜 먹먹...함....ㅜㅜ글진짜잘쓴다 찡하네
엄마한테 문자보내야지ㅜㅜ
글...잘쓴다....ㅠㅠㅠ아....
맞어 엄마는 늘 싼거 고르고 딸 첫알바비로 밥 한번 쏴 해놓고 그래 가자 해서 가면은 계산은 자기가 한다..
눈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