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존재하는데는 다아
이유가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또한 그러합니다
한때 관세음보살님은 외진곳 한쪽 스님 주변에서
거적대기 씌워진채 장장 10년을 누워있었는데 이유는 바로
스님주머니에 돈도 없고 모셔질 장소도 딱히 없었기 때문이지요
물도 전기도 차가 올라올 길도 없었고
돼지풀들과 가시낭구들 그리고 쓰레기밖에 없었던 이 야산으로
그때 왜 제가 올라왔을까요
스님들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고 말씀하시지 마셔요
스님들도 아프면 아프다 하고 힘들면 힘들다 하고
자기한테 잘하는 신도한테는
당연히 더 잘하게 되어있습니다
거북이처럼 제등에 따악 엎드러져 있던 중풍든 노인네
이것 저것 불나방처럼 파닥 파닥거리는 제 모습이
발심도 못하고 수행도 못하는 무능한 제 자신이 한편으로는
너무나 불쌍하고 측은해서
홀로 울다 울다 지쳐서
이걸 마셔? 말어..?
별들만 바라보이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소주병에 농약들고 도량 큰 바위에 걸터않아
적막강산 빈 허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던 때도 있었구요
이렇게
빈 공간을 드디어
재능이 있었던 신도님들 몇분들의 재능보시로 스님 쉴수있는 요사체를 지어준다꼬..
에궁..그래도 돈 많이 들어갔지만요
가끔씩 오시는 스님들
"무심정사 스님은 행복한줄 아셔..무심정사 신도들은 스님 닮아서 다들 순박하니께....."
그런..가요? 아닌..것도.. 같은데요..스님...ㅎㅎ
처음엔 도량에 무대가 없어서 얼마나 고생을 하였던지...
흥과 열정이 가득했던 저희 신도님들이
무대는 만들었는데..어라? 지붕이 없지요?
그래도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던지요
모두들 행사땐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날씨에 귀를 쫑굿 쫑긋
그때 열정과 신도님들의 봉사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습니다
말들이요?
물론 참 많았었지만 휴머니즘..불법은 잘 몰라도 서로 아끼고 타독 타독
인정들이 참 많았드랬습니다
왼쪽 아들래미가 야성님 외아들인데
벌써 군대에 가서 전역할때가 되었다네요?
여여행 법우님 사업일 하시면서도 거의 날마다 절에서 살다시피 하셨는데
지금도 한결같으시지만 무량공덕 참 많이 지으셨지요...
뒷 단도리 설거지 하시다가 우다다다 다들 나가서 한바탕 뒤풀이 막춤
벌써 10여년 세월이 훌쩍 흘러갔습니다
보세요
사방이 돌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나름 가지런하지요?
신도 한명도 없고 불공도 없어서
날마다 쭈그려않아서 가시풀 뽑고 아카시어 가시낭구 자르고 돼지풀들 뽑고 뽑아도
그 다음해는 늘 마찬가지
그래도 날마다 속으로 염불하며 쌓았던 돌탑들...
거창하게 보현보살행 하겠노라며 군포교 초코파이 기금마련 솔잎축제를 하겠노라고 ...
에궁 관세음보살
보기좋게 해마다 고스란히 천만원 적자^^
신도회들이 투덜거리며 다 떠나가도
그래서 그 다음해엔 절대 안할것 같지요?
스님은 계속 하였습니다
초롱 초롱한 내 자식같은 아이들
5사단 신병수계법당은 후아..간식을 조금 챙겨드렸더니
그 다음주는 따블
그 다다음주는 따 따블..
인원이요
한번 할때마다 간식비가 수십만원..,..한달되면 백만원을 훌쩍 뛰어넘고요
그땐 정말 어떻게 하였는지 신통방통
신도회에서 가끔씩은 함께 공연도 해주고요
그래도 지금은 저 시절이 마냥 그리운걸요
저출산과 인권자유주의로 요즘 군법당도 많은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신도회에서 방생갈때 이왕이면 후원 안되는 열악한 군법당을 가자고...**
저때 신도회장님 정말로 열정적이어서 스님과 많이 부딪혔더랬습니다
사전답사는 물론 꼼꼼히 인원체크에 준비물까지...
더 잘할려고요 그리고...각자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때문에요
참으로 낱낱이 부처님같이 고마운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천진 난만한 토끼 이빨을 가진 우리 삼천포 무진의 보살님...
저처럼 눈감고 귀막고 입막고..
어디를 가던 절 시집살이
스님이던 신도들이던 모질게 넘어트리고 이간질 시켜도
오뚜기처럼
발딱 발딱 일어나는 정말로 야무지고 똑소리나는 불심깊으신 불자님이십니다
요즘 삼성각 새로 낙성하고서는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늘 독송하는데..
무진의야...하고 세존께서 부르면서 제도하시는 귀절들이 나올때마다
무진의보살님과의 인연을 다시한번 조심스레 복기해봅니다
오래동안 누워계신 관세음보살님을 이곳에 모셔 와서
모든 사람들의 참배를 받으실때마다
인연의 오묘함을 다시한번 스스로 깨닫게 되구요
가족들 모두
노랑 풍선을 하나씩 들고
두둥실 마차산 넘어로
연천 비무장지대 판문점을 넘어
그 이상의 세계로
가자 가자 어서가자
우리모두 손잡고
열반의 언덕으로...관세음보살_()_
무섭다며 다들 기겁을 했던건
이곳 분위기가 산자락이라 인적도 드물고
밤이 되면 가로등도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죽음 체험 과 다도명상...교리공부와 명상 템플스테이 하던 그때
스님이 손수 염해주고 입관시켜드리고
저승사자와 딸랑 딸랑 요령소리
아이고 아이고 통곡소리 무대효과 하면서
미리 울면서 유서도 쓰고요
이세상 존재에 대하여
나에 대하여
죽음과 무상에 대하여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었지요
설날 스님께 세배드리고..으라차차차
팔씨름대회와 윷놀이..선물추첨과 단합대회
연말엔
불꽃축제와 탑돌이
타종하면서 108배로 각자의 소원 빌기
젊고 목소리가 유명 연예인 빰쳐서 늘 사회를 구성지게 보아주셨던 훈남 노을과 이별거사님
재능이 많아서 신도님들 난타도 가르쳐주시고요
그리고 지금은 우리곁에 없는 조용한 일법거사님
그땐 지저분한 법당 새로 도배하느라 앞치마 두르시고 거사님들 스님과 날밤을 세웠었지요
무심카페에 늘 본인특유의 음악을 올려주셨던 그리운 큐릭스 거사님도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무대가 있으면 음악 단장님이 있어야겠지요?
밤세워 생업하시었는데도 법회때마다 무심정사 찬불가 함께 재능기부해주시고요
어느날
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셔서 결혼식을 못 올리셨다 하시기에
그리여..?
지장재일인가 법회때 신도회장님과 간부들 그리고 불자님들이 모여서
짜짜잔!
깜짝 서포라이즈!
절에서 부처님께 서원을 하셨으니 아마 검은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사실것 같습니다
저희 카페 솔향기 그윽한...할때부터 아마 기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도 잊지 않고
부처님 초기불교 가르침을 카페에서 늘 전법해주시는 고마우신 법우님과의 인연
그러게 왜 닉네임을 솔향이라고 하셨읍니까요 은행이나 단풍으로 하시지요 ㅎㅎ
삼천대천세계 칠보를 보시하더라도 금강경 사구게를 설해주는 공덕이 가장 으뜸이시라고
경전에 나와있듯이 맞습니다...
재물은 언젠간 없어지지만 진리의 말씀
부처님 가르침은 세세생생 우리들 삶속에서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절에 가서 보살행하고 봉사하고 개개인 수행하는것도 소중하지만
이땅에 부처님 가르침을 SNSN로 전법하고
인연카페를 사랑하고 늘 관심가져주는것이 물질보시보다 더 소중합니다
늘 보이지 않는 신중님
글과 감성 그리고 인품이 탁월하신 선생님이시지요
저희 카페 랭킹이 올라가니 가끔씩 한소식 깨우쳤다는 스님이나
자기 수행이 오직 최고라며 말씨름으로 카페를 들었다 놨다 하며 카페 분위기 흐리고 시시비비 하실때
장자님처럼 조용히 단 몇마디로 단박에 깨우침 주시는
소중한 도반이신 남희 법우님이십니다
글쎄요...^^
더 많은 고마우신 분들도 많지만 오늘은 이쯤에서 생략할까 합니다
전 그옛날 쌀이 귀했던 가난했던 무심정사도 사랑하고요
지금의 무심정사도 사랑하는건 아마..도
존재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있기 때문일겁니다
무정물이건 살아 움직이는 축생이건 꽃이건...
그리고 사람이건
언젠가 이 세상에 없을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지요
오고 가시는 인연들이 부디 참좋은 인연으로 앞으로도
모두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진합니다 관세음보살_()_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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