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에서도 수차례 언급했던 제 2022년 영화, 헤어질 결심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4k hdr, dolby atmos로!) 그 기념으로 한번 더 보고, 예전부터 한번 써보고 싶었던 헤어질 결심 리뷰를 한번 작성해 봅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감독, 각본의 의도를 파헤치는 방식의 리뷰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그런 쪽으로 훈련된 비평가도 아니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영화 무지렁이 라는 점, 작품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관객 개개인에게 달려있는 일이라는 점을 깔고, 저는 헤어질 결심을 어떻게 보았는지 이야기 하는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모든 움짤은 한 블로그(https://europast.tistory.com/) 에서 가져왔습니다.
* 지자요수 인자요산
영화 초반에 언급되는 논어의 한 구절이죠. 완전한 문구는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 입니다. 이 문구가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두 캐릭터, 해준과 서래를 설명해주는 문구라고 봤습니다. 해준은 인자요산 인자정 인자수라는 문구의 산을 닮은 캐릭터 입니다. 반대로 서래는 지자요수 지자동 지자락 에서 물을 닮은 캐릭터가 되겠죠.
이 문구를 바탕으로 해준을 이미지화 해봅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산..
강력계 형사라서 편한 신발을 신더라도 항상 정장을 챙겨 입는 사람
이딴 짓을 왜 해야하냐고 묻자, 죽은 사람이 간 길이고 우리는 경찰이니까. 라고 답하는 사람
정리강박
너무나 규칙적인 벽지, 정리강박2
언제나 단정히 묶여 있어야 하는 신발끈
사상 최연소 경감, 품위 있는 현대인, 그리고 자부심 있는 경찰.
꼭 한 단어로 해준을 정의하자면, 전 보수 인 것 같습니다. 정치적 의미가 아니라 사람 성향적인 의미의 보수,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길 바라고, 변화보단 안정을 추구하는.
물론, 이는 단편적인 해석입니다. 해준은 바다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주먹이 부서져라 피의자를 열네 번 때리고, 살인도 폭력도 있어야 행복한 남자이기도 합니다.
서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자요수 지자동 지자락이란 문구로 서래의 캐릭터를 물로 이해한다고 했지만, 사람이라는게 그렇게 단편적이지가 않죠.
산 같기도, 바다 같기도 한 모양의 벽지.
녹색으로 보였다 파랑으로 보였다 하는 드레스 처럼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해준과 서래의 캐릭터에 대한 모든 해석이 아니라, 대표적인 이미지로만 봅시다.
*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
해준은 언제부터 서래를 사랑하기 시작했을까요.
아마 만난 그 순간부터 일겁니다. 반대로 서래는 언제부터 일까요.
역시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일겁니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건 언제일까요. 해준은 형사이고, 서래는 해준이 담당하는 사건의 피의자 입니다. 해준이 서래를 사랑한다고, 서래가 해준을 사랑한다고 둘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끊임없이 둘은 서로를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해준은 서래가 본인을 이용하지 않을까, 서래는 자신의 범행이 해준에게 들키지 않을까.
사건이 종결되면서 이루어지는 것 처럼 보였던 둘의 사랑은 모래성과 다르지 않습니다. 서래는 여전히 자신의 범행이 들키지 않을까 내심 마음을 졸여야 했고, 해준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본인이 이용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의 싹이 남아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위태위태하던 둘의 사랑은, 서래의 범행을 해준이 알게되면서 깨어집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괴롭히던 의심이 확신이 되고, 둘의 사이는 완전히 붕괴하죠.
아직, 둘의 사랑은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 첫번째 헤어질 결심
산과 같은 해준은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친 본인을 용서 할 수 없습니다. 본인을 이용한 것 같은 서래를 더 이상 믿을 수 없습니다. 의심은 확신이 되고, 둘의 사랑은 완전히 붕괴했습니다. 이게 첫번째. 해준의 헤어질 결심입니다.
하지만 해준의 헤어질 결심은 역설적이게도 서래에 대한 사랑의 증거입니다. 산 같은 남자가 자신을 붕괴시켜가면서까지, 여자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있거든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그때 비로소 서래는 알 수 있었습니다. 해준이 본인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또 본인이 해준을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해준이 헤어질 결심을 할때야, 모든 의심은 걷히고 서래의 사랑은 완성되었습니다.
* 두번째 헤어질 결심
호미산에서 보여지는 구소산과 똑같은 구도, 절벽 앞에 선 남자, 뒤에서 다가서는 서래. 해준은 끝내 서래에 대한 의심을 놓지 못합니다.
하지만 서래는 해준을 안았고, 구소산 사건의 결정적인 증거, 바다에 버리라고 했던 폰을 꺼내서 줍니다.
"이걸로 재수사 해요. 붕괴 이전으로 돌아가요"
이건 두번째. 서래의 헤어질 결심이고, 해준에게는 귀가 떨어질 듯 크게 들리는 강렬한 사랑 고백입니다. 해준이 스스로를 붕괴시키면서 본인의 사랑을 증거했듯, 서래는 본인의 모든 것을 버려 해준을 지키고자 합니다.
이로서 해준은 서래를, 서래의 사랑을 100% 확신할 수 있을까요. 비로소 그들의 사랑은 완성된걸까요?
* 사랑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결국 헤어질 결심의 이야기는, 그 옛날 석기시대 부터 내려오던 꽃잎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궁예가 아니고, 관심법 따위는 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항상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어하고, 확인하고 싶습니다.
확인받지 못한 사랑이라는건, 눈을 가린채 절벽가를 달리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언제 떨어질지 몰라 불안하고, 내가 내딛는 걸음이 올바른 것인지 항상 의심할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위태롭고 너무 위험합니다. 상대방 뿐 아니라, 나조차도 완전히 망가져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야 하는거죠.
산-유부남-한국인-형사인 해준과 물-유부녀-중국인-살인자인 서래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를 신뢰하기 위해 두 번의 헤어질 결심이 필요했고, 그렇게 드디어 사랑은 이루어졌습. 니.. 다?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던 둘의 색은, 본인 스스로 본인을 버린 이후에야 비로소
희미한 경계로 허물어져가고,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갑니다.
하지만 둘이 서로를 버리고 마침내 이루어진 완전한 사랑은
이토록 완벽하게 섞여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물거품 밖에 남질 않았군요.
어떤 결론이나 가르침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스스로 물어보는거죠.
"나는 그를, 그는 나를 사랑했(하)는가"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증거될 수 있는가"
... 블라블라 블라..
이런 질문들을 일으키는 이 영화가 있어 제 2022년은 조금 더 풍요로웠습니다.
제 2022년 최고의 영화, 헤어질 결심 이였습니다.
첫댓글 와. 영화만큼 멋진 리뷰 잘 봤습니다. 2022년 가장 좋았던 한국 영화, 박찬욱 감독 영화 중 NO.1이 헤어질 결심으로 바뀌었네요.
재밌게 잘 쓰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엄청 흥미롭게 봤습니다.
리뷰 잘 보았습니다. 영화관에서 보고~ 저도 넷플에서 두번보았네요. 참 보는맛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박해일은 연기 참 담백하게 잘하는게~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네요.
생각날때마다 꺼내보고싶은 영화
리뷰 잘 봤습니다 많이 써주세여
저 진짜 궁금한데... 둘이 했을까요?? 이정현 이주임은 이주임이 여잔줄 알았는데 남자였고 둘이 알고 보니 그런 사이였나요? 감독은 아니라고 했다는데... 그리고 너무 극적인게 남자 하나 죽고 나서 뜬금 또 나쁜 남자랑 결혼을 했다?? 전 좀 이해가 안가더라구요 ㅋㅋㅋ
박찬욱 감독이 서래와 해준 간의 육체적 관계는 없었을 거라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정안과 이 주임의 관계는 내연 관계가 아닌, 해준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였다고 하더군요.
서래의 두번째 결혼은, 대본집을 읽어보면 그녀가 돌보던 다른 요일 할머니 장례식에서 상주인 아들이 접근을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는 이정현이 석류랑 자라 챙겨서 짐싸는거 보고
이주임과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건가 라고 생각했어요 ㅋㅋ
@개뿔 저도... 그래서 챙겨가는건가 했어요... 섹스리스 이야기 나오고 해서 ㅋㅋㅋ
@ShowStopper 감사합니다
@개뿔 저도 관람 당시에는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후에 이어지는 GV와 인터뷰들을 보니 정안이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더군요.
@호나섹 장 별말씀을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보고 싶네요…!
제 취향은 아닌 영화였습니다. 어제 반쯤 보다가 지루해서 껐네요.
재주가 없어 말로 표현 못하던 몽글몽글한 감정을 이렇게 멋진 글로 풀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theo 님의 글은 언제 어떤식의 글이어도 참 따뜻한 느낌이어서 좋아요 ㅎㅎ
서래가 중간중간 K-드라마들의 신파들을 보면서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들도 의미가 있었다고 봐요. 저는 그 장면들 때문에 서래가 진짜 박해일을 사랑했다기 보다는 자신의 내면에는 없는 진정한 사랑 자체를 사랑하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자신을 절대로 잊을 수 없게 만들기위해 해변가에 파묻힌 장면 때문에 지금까지 본 영화 속 여주인공들 중 가장 광기 넘치는 여주인공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결말만 빼고 정말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서래의 마지막 선택에 별로 설득이 안되더라구요.
리뷰 잘봤습니다. 저도 꼭 볼게요
이번 주말에 다시 봐야겠습니다. 사실 영화관에선 대사를 많이 놓쳐가지고 휴
술술 잘 읽히는 리뷰네요~ 참 생각이 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