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비오는여름날
이봉창 1901.8.10. ~ 1932.10.10.
1932년 1월 8일, 91년전 이봉창 의사는 일왕에서 수류탄을 던졌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꿈꾸며 우리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
“나는 적성(赤誠)으로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1932년 9월 30일 오전 9시 350명의 경찰이 겹겹이 둘러싼 가운데 일본 도쿄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0월 10일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
광복 후 귀국한 백범은 이봉창 의사의 유해를 돌려받아 1946년 서울 효창공원에 윤봉길 백정기와 함께 안장.
의거 이후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자들은 조선의 친일파. 재일 친일파의 대표격인 박춘금은 1월 8일 궁내성을 비롯하여 여러 일본 고위층 인사들을 방문해 불경범인이 조선인인 것에 대해 송구스럽다며 사죄, 9일에는 친일단체 120명을 소집해 궁성 입구에서 또 직접 사죄를 했고 국내의 친일 세력들은 1월 9일 서울의 요정 식도원에 모여 이봉창 의거에 대해 사죄함.
(매일신보 1932년 1월 10일자)
첫댓글 감사합니다 잊지 않을게요
일본도 일본이지만 친일파 진짜 역겹다
오늘이 그날이네 1월 9일
저런 선택을 하실 수 있다는 게 너무 대단하시고...감사하고....ㅠㅠ
감사합니다..
저런 강렬한 의지와 담대한 용기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야.. 독립투사분들 하신 말씀들 하나하나 읽을때마다 느끼지만 모든 말씀들이 사무치듯이 읽히네.. 친일파의 비굴한 사죄랑 너무 대조된다
저 말 한마디 한마디와 활짝 웃는 사진들에서 얼마나 호방한 인물이었는지 느껴져서 더 슬퍼.. 이시대에 뵈었으면 진짜 쾌남이라고 생각했을텐데 저시대에 태어나 너무 일찍 가셨네 거기선 아름다운 생을 즐기고 계셨으면
에고… 지금을 보여드리기가 그렇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ㅠㅠㅠ…. 칭일파는 진짜 청산했어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