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엉망이야 그렇지만 너는 사랑의 마법을 사랑했지 나는 돌멩이의 일종이었는데 네가 건드리자 가장 연한 싹이 돋아났어
사랑의 전문가 / 진은영
밤을 겉돈다 꿈에서 마주치는 것들은 왜 하나같이 내 것이 아닐까
반복 재생 / 이훤
때때로 서있을 수 없는 우리가
그림자로 나란해지는 저녁
어둠을 찢으려는 꼭짓점으로부터
나와 너의 전개도가 눈금도 없이
촘촘해진다
지긋지긋 지그재그
원뿔의 행진 / 서윤후
마찰하는 것에는 보풀이 일었다 자주 스위치를 껐다 켰고 비누에는 균열이 생겼다 비나 내렸으면 그러나 햇빛이 부서져 내렸다 파이프는 계속 삐 소리를 내고 하늘에는 버짐이 피어나고 있었다 너는 비틀어진 선로였다 그러니 이탈할 것 여러번 다짐을 했고 면벽했다 여분의 무게로 나무는 흔들리고 있었다 무언가 자주 간섭했고 그러나 그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출구가 전환되고 있었다 청과점 앞에는 아지랑이가 오래 정체했다 네 동공은 우주 같았고 그러나 빈 우주에서 나는 독백하는 배역을 맡았다 또 한편의 여름이 재생되었다 나는 일상을 적지 않았다
피서 / 안태윤
활자도 나도 찢을 수 없는 밤이 있다
주머니에 오래 보관된 영수증처럼 한껏 구겨진 마음이
해묵은 나보다 아침이 먼저 펴지는 날이 허다했다
쉽게 구겨진다 해서 쉽게 펴지는 건 아니고 / 이훤
전화기를 놓고 숨을 참는다. 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 뿐이다.
수몰지구 / 전윤호
제게 입김을 불어넣지 마십시오 당신의 옷깃만 스쳐도 저는 피어날까 두렵습니다
어떤 나무의 말 / 나희덕
내게는 사랑에 대한 첫 독서가 당신이란 책이었고, 행복하고 열렬했어요. 어느 페이지는 다 외워 버렸고, 어느 페이지는 찢어 없앴고,
어느 페이지는 슬퍼서 두 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즐거웠습니다. 소란 / 박연준
농구공이 공중에 머물렀을 때 나는 너의 시점을 잃기 시작한다 담쟁이 잎이 공중에 원을 그렸을 때 나는 너의 인칭을 잃기 시작한다 빗방울이 2분 9초의 그림자에 닿았을 때 나는 너의 시제를 살기 시작한다
첫댓글 여러 문구 중에서 제목이 젤 맘에 든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쓰는지ㅠ 작가들은 대단해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 같은 감정을 느끼고도 어쩜 저리 다른 글을 쓰는지..
나는 개좋아밖에 못합니다ㅎ
너무 좋다 정말....어떻게 다 아는 단어를 조합해서 전혀 새로운 감상을 느끼게 할까
우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