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새해가 밝았다. 나이는 50대 중반을 향해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하는 것이 수순이고 바라던 바였으나 항상 부족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의 부피가 커 가는 것 같아 괴롭다. 달리 생각하면,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족하는 것'에 오히려 함정이 있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번민하고 투쟁하며 사는 것이 실존이지 않는가.
작년에는 교회의 기조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어 성경이 읽어지네' 프로그램에 맞춰 성경일독을 했었다. 배속의 빠른 음성을 그저 오가는 차 안에서 기계적으로 ON 해 놓은 것을 일독했다고 하다보니 더 할 것은 못된다 싶었다. 그래서 올해는 내가 더욱 진솔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목적이 이끄는 삶'을 다시 묵상하기로 마음 먹었다. 더 깊은 영성을 누리려면 '주님은 나의 최고봉'등이 좋지만 본질에 충실하되 좀 무게가 가벼운 것이 지금 필요하겠다 싶어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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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장에서는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은 하나님만이 다룰 수 있는 영역임을 강조한다.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은 목적이 부여된 피조물의 창조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창조한 존재가 어떤 이유를 가지고 피조물에 생명을 불어 넣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문장이 처음에는 아주 조금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어디서 많이 듣고 피곤함을 유발시켰던 그 문장. 기독교 기득권자들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영역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인생의 목표 부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온전한 뜻과 의도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 외의 행복, 성취, 평화 등 무엇이든 피조물이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겠지만 '인생의 목적'만큼은 그렇게 다뤄서는 안된다. 그래서 각자 인생의 목적을 탐구하는데에는 처음 시작점부터가 인간 중심이어서는 제대로 사실접근을 할 수 없다.
인생의 목적은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분야이다. 그러다보니 가장 깊은 사고능력을 가진 철학자들도 여러가지 현상에 대한 것은 매우 효능 있는 분석을 해낼지라도 '인생의 목표' 부분에 있어서는 그저 '추측'과 '예측' 수준에서 멈추는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인생의 목적'은 우리에게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다. 나는 누구이지? 나는 여기 왜 있지? 무엇을 위해 있지?, 내가 고통 속에 있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등을 요약하면, 모두 인생의 목적에 대한 물음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니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대해 답을 갖지 못한 삶이라면 사실 유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 답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리라는 믿음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종의 신비로움이나 기대감으로 이제 그 대답을 듣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