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거문고에 남은 작품
글. 남진원
꽃은 예부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상징되었다.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는 지금도 가을이 오면 잊혀지지 않고 떠오르는 명작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하는 국화 옆에서의 작품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에서 절정을 이룬다.
국화꽃의 여인상은 삶의 희비애락을 겪고 난 여인의 모습이다. 거울 앞에선 여인의 모습은 젊은 날의 아름답고 싱싱하던 모습이 아니라, 아픔과 멍에가 깃든 삶의 회한을 가슴에 간직한 여인이다. 슬픔과 설움이 배어있다. 한이 응어리져 있다. 속절없는 삶의 고갯마루를 넘으면서 자신을 돌아보던 삶이다. 이러한 한과 설움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조 작품이 있다.
임춘자 시인의 시조 ‘낙화’이다.
피는 꽃 곱다고야 누군들 말 못할까
한 시절 내 청춘도 속절없이 흘렀구나
분분히 날리는 꽃잎 두 손으로 받아보네
- 낙 화 -
쉽고도 평범한 언어로 한과 슬픔을 절묘하게 담았다. 이 시조 작품은 강호시조문학회(강릉평생정보관과 강릉여성문화센터에서 시 공부를 한 시조시인들의 문학회)에서 매월 여는 시조 시회에서 발표한 작품이다. 좌중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이 시조를 들으며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기승전결의 흐름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을 흐름을 뽑아 올리는 기법이 일품이다. 쉬우면서도, 크고 감동적인 내용을 짧은 단시조의 시형에 담아낸 묘미를 느낀다.
꽃이 피는 것도 한 시절이요, 내 인생이 흘러가는 것도 한 시절이라, 꽃 피는 아름다움이야 누구에게나 있는 법. 그러나 꽃잎이 흩날리듯 내 청춘 속절없이 흘렀음을 되돌아볼 때 인생의 완미(完美) 보다는 미완(未完)의 아픔에 더욱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그 아픔, 설움이야 그야말로 일구지난설(一口之難說)이다.
중장은 가히, 기가 막힌 내용이다. 누구나 인생을 되돌아보면 한 시절 내 청춘이 속절없이 흘렀다는 기구한 삶의 탄식 아닌 탄식이 절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꽃이 필 때에는 누군들 예쁜지 않은 꽃이 없고 즐거움에 취해 금세 지리라는 생각을 어찌 할 수 있으랴. 그러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는 법. 그 화려한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모습을 보고 어찌 인생의 감회가 새롭지 않으랴. 시인은 분분히 날리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 본다. 인고의 세월이 묻어나는 꽃잎을 손에 담아 느끼는 그 모습은 인생의 연륜을 헤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리게 한다. 평범한 언어들로 비범한 삶의 무게를 그려낸 작품 ‘낙화’는 우리네 마음 거문고에 남아있는 작품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