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얻은 우울증이 다시 도진다. 한국사회의 슬픈 참상을 알려주는 바로미터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한국사회를 치킨공화국에 비유한다. 그 많던 멘토들의 긍정과 힐링의 목소리는 모두 헛소리로 된지 오래다.
미치도록 노력해도 결국은 치킨을 시킬 것이냐, 튀길 것이냐, 배달할 것이냐로 구분되는 인생일 뿐이라는 것이다. SKY대학과 '지잡대'(지방 잡스러운 대학)의 차별을 넘어 이제는 학내에서조차 그들끼리 골품을 나눈다.
오직 성장과 경쟁만능의 세태에서 젊은이들은 연애조차 사치다.
이 나라 정부와 정치인들은 적폐척결과 국가개조를 외치지만 국민들은 코웃음만 칠뿐이다. 그들 자신이 적폐이고 개조대상인 것을 그들만이 모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현실이 교육과는 무관할까? "수능 1~3 등급은 치킨을 시키고, 4~6 등급은 치킨을 튀기고, 7~9 등급은 치킨을 배달한다."는 어느 고 3생의 명언(?)은 우리 교육현실이 만들어낸 것이고, 한국사회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척도이다. 학교에서 한 번 등급이 정해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인생으로 흘러간다는 진단이 많은 이들의 수긍을 얻고 있다. 이 짓을 우리 학교와 교육이 하고 있다. 제주교육도 예외가 아닐 뿐더러 더 일찍 그 서열이 매겨진다.
고입에서 말이다. 이 점에서 고교체제 개편을 제일과제로 들로 나온 이석문 교육감을 비롯하여 이른바 진보성향(?) 교육감들의 등장은 일말의 희망이다.
그들의 등장 자체가 국민들이 보는 교육현실을 대변한다. 그들은 공히 지방교육의 정상화를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경쟁과 차별대신 배려와 협동의 교육을 약속하였다. 이것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냥 학교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겠다는 선언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념적으로 편 가르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아이들의 지적 성장과 인격적 성숙을 도우는 데 있다. 이러한 교육본질을 실현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실천하면 그만이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이번에 취임한 교육감들은 공통으로 이를 위해 노력해주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지방교육을 넘어 이 정부의 표현대로 적폐가 되고 있는 한국교육까지 근본적으로 개조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한 출발로 덧셈이 아니라 뺄셈의 교육전략부터 강구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치열한 경쟁과 서열화를 조장하는 구조적인 시스템부터 완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잦은 줄세우기식 평가시스템을 없애서 학생과 교사가 서로 배우는 교학놀이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 교육과정에 더하기만 해온 특별한(?) 교육프로그램과 사업들도 경중을 가려 대폭 축소하는 대신 정규 교육과정의 정상화와 교실수업의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사들의 잡무를 덜어주고 그들을 교실과 학생 곁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비우고 떨어내야 새로 채울 공간도 생기는 법이다. 학생들의 육체적 질병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낮추고, 학부모들의 과중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없애는 방안도 뺄셈의 교육전략을 통한 정규 교육과정의 정상화에 달렸다. 그것만이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를 비롯한 모두가 행복한 교육의 길이다. 제주가 먼저 그러한 지방 교육자치 모델로 혁신되기를 바란다.<강봉수 제주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