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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5년전 그이를 처음 만났다. 특출난 외모도 아니었고, 엄청난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알수 없는 무언가에 빨려들듯 그렇게 사랑이 시작되었다. 2년이란 연애기간동안 우리둘은 서로 사랑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듯 매일매일을 꿀떨어지게 사랑했다. 2년후 서로는 결혼을 생각하게 되었고, 2013년 5월 봄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날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해 둘의 사랑을 확인시켜주듯 사랑스러운 아이가 찾아왔다.
"뭐 먹고싶은거 없어? 뭐든 말해봐. 이 서방님이 다 사줄게!"
"뱃속에 겸둥이가 아빠 목소리 알아 듣나봐. 움직인다!"
"어? 어디, 어디?!!"
그이는 설렌표정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내 배에 손을 얹고, 귀를 갖다댄더니 이내 세상 부러울것 없는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겸둥이 '민하준' 이 세상에 태어났다. 두 해가 지났을 무렵.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말로만 듣던 난폭운전의 피해자로 그이가 세상을 떠났다.
'하늘아래 남겨진 당신의 가족. 아내 진이슬, 아들 민하준을 꼭 기억해줘요 여보...'
* * * * *
2016년 3월 25일. 추적추적 꽤나 굵은 빗줄기가 마른 땅을 적셔내고 있는 늦은 밤.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검은색 상복을 입은 이슬과 그의 아들 하준이 앉아있다. 슬픔에 젖어 누가 누군지 구분하고 알아볼 정신도 없이 의례적인 몸짓으로 목례를 하는 이슬. 조문객들을 위해 음식대접을 하고 있던 주방한켠에서 접시에 음식을 담아내며 이슬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큰시누이.
'슬픈척 연기 한번 잘하네. 지금 보험금때문에 자리지키고 있는거 누가 모를줄 알고? 서방잡아먹은 나쁜년.'
* * * * *
세련된 정장차림의 차가워보이는 인상을 가진 우진. 옆에 사람하나 달고 이리저리 누비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칼을 내던지듯 뱉어내는 말들. 다들 얼어붙어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라는 문장만 반복해서 뱉으며 우진에게 굽신거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자가 멈춰 선 곳은 문앞. '이사님실' 문구를 슥 스캔하듯 보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철푸덕' 소리와 함께 책상 앞에 놓여있는 의자가 아니고 접견용으로 놓아진 쇼파에 신고있던 구두를 불편하다는 듯 '휙' 벗어던지고 재킷 단추를 풀어헤치더니 그대로 누워버린다. 뒤 따라 들어온 비서인듯 보이는 남자가 안절부절 못하고 열린 문을 살그머니 닫고 서서 쭈뼛거린다.
"나 오늘 완벽하지 않았어?"
"이사님..."
"뭐야, 그 반응은? 별루였어? 티 다나?"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뭐?!"
"바지 터지셨습니다."
"뭐?! 뭐, 뭐?"
당황한듯 허둥지둥 가릴것을 찾는것 같더니 이내 쩍벌자세로 쇼파에 앉아서 손가락을 까닥이면서 남자를 부른다. 우진의 행동에 몸을 살짝 낮춰 말을 듣고자 귀를 가까이 한다. 우진은 귓속말을 할듯 하더니 이내 적지않은 목소리로 외친다.
'벗어.'
'뭐, 네?!'
'공비서랑 나랑 사이즈 같잖아. 일단 공비서꺼로 입고 나가서 내가 공비서는 최신트렌드로 하나 사줄게. 응? 응? 빨리이!'
'그래도 이사님 이건 좀...'
'그럼? 나 막 이렇게 팬티보이는데! 그냥 막 나가? 막 사람들이랑 미팅해? 어?!'
'알겠습니다. 벗으라면 벗어야지요 제가 뭔 힘이 있나요.'
"지금 나 디스하는거야?"
"아압! 아닙니다!"
"그럼 얼른 벗어봐!"
직원들을 대할때는 칼바람이 분다해도 무색할만큼 냉정하던 우진이 유일하게 회사에서 풀어진 모습을 보이는 상대. 그는 바로 우진의 전담비서 공지철. 할머니, 부모님 모두가 정식절차를 거쳐 실력있는 인재를 채용해야한다는 의견을 모두 무시하고, 본인 의지대로 대학시절부터 스스럼없이 지내온 후배를 비서로 붙인 것이다. 우진은 곁에서 가장 오랜시간 붙어있을 사람을 처음보는 낯선 사람으로 둘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 * * *
6개월 후. 2016년 9월 가을바람이라기엔 조금은 찬듯한 느낌이 들정도의 날씨. 남편을 보내고 혼자서 어린 아들을 건사하기위해 어떤일이든 마다하지않고 덤벼들고 있는 이슬. 퇴근한 어느날엔가 하준이 칭얼대며 외식을 원했고, 이슬은 한달에 쉬는날 딱 하루를 이용해 하준을 데리고 고급레스토랑을 방문했다. 남들에겐 남편잃고, 무슨 호화로운짓이냐고 욕을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입방아보다 이슬에겐 하준이 더 중요한 그저 한 아이의 평범한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 나 응가매료워여."
"아이고, 우리 하준이 화장실 급해여? 가자, 어서."
자그마한 세살배기 아들의 손을 잡고 화장실이 표시된 곳으로 향하는 이슬. 아들과 아이컨텍하며 화장실로 들어가기에만 급급했던 이슬은 남자화장실에서 나오는 우진과 부딪히고 만다. '퍽' 소리와 함께 들고있던 가방이 공중으로 떴다가 바닥으로 나뒹굴고, 하준은 여전히 응가가 급하다며 이슬을 보채고 있는 상황. 다급하게 떨어진 가방을 챙겨 '죄송합니다.' 라는 형식적인 말을 뱉고 여자화장실로 들어간다.
자신을 부딪히고도 정식으로 사과하지않고 사라졌다고 생각한 우진은 나오던길 그대로 발걸음을 멈추고 서서 이슬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잠시후 이슬은 물기가 뭍은 손으로 하준을 안고 화장실로 나오던 순간 자신을 따갑게 쏘아보고 있는 우진의 시선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갈길을 간다. 우진은 자신의 존재를 못알아봤냐는 표정으로 이슬의 앞을 막아선다. 동그란 눈을 치켜뜨며 우진을 보는 이슬.
"사과 안합니까?"
"했잖아요!"
"그게 사괍니까?!"
"그럼 뭔데요?!"
"뭐? 이 아줌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