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중국을 한참 돌아다닐데 검각이 있는 검문현을 거쳐서,
삼국지 유비 촉나라 마지막이라 할수있는 검문관을 갔었는데,
그 당시에는 교통도 불편했지만
장비의 랑중고성+소하고성도 돌아` 돌아` 갔었습니다.
촉한은 소하에서 일어나고 검문에서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말대로 되었나,.~ㅎ)
대암산과 소암산사이를 칼로 자른듯해서 협곡 정상에 위치한 검각
당나라 수도장안에서 검문각까지 가는길을 촉도라고 하고,
촉나라 가는길이 얼마나 힘든지 촉도난이라고 했습니다.
촉도난은 당나라때 이태백이 촉나라 검문관을 지나면서 지은 시로
촉나라 가는길은 하늘 오르기보다 어렵다` 에서 유래된 말 입니다.
제가 소시적이라서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천하웅관 검각을 올랐을때`
그 뿌듯함은 제가 마치 강유심정으로 아래로 바라 보았고 감개 무량 이었습니다.
위나라 대장군 등애가 올라간 산맥쪽으로 트레킹 코스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등산은 회사 야유회때 가는 개념이라서
역사적인곳을 그냥 지나친게 그때는 갈생각도 없었지만 후에 후회가 됩니다.
이제 돌아다닐 만큼 다니었고, 그때는 시간등 제한이 있었지만,
나이들어 시간도 많고,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제갈량은 탁월한 인재였기에 춘추시대 에도 있었지만,
지형을 더 분석해서 대검산 협곡에 천하제일 검문각을 만들었고,
죽어서도 촉나라가 어느정도 버티게 만들었습니다.`
위나라 등애와 종회가 20만대군으로 공격했으나
지형적 유리함으로 촉나라 대장군 강유가 약1~2만으로 간단히 막아 냅니다.
사마의가 인재보는 눈이 밝아서 발탁한 말단둔전 농부출신 대장군 등애는 공략하다가````
난공불락의 검문각을 종회에게 앞 에서 공략 속임수로 묶어놓고,
등애는 경장비 주력군 삼만으로 우회로 산맥을 넘어 광원방향으로
촉나라로 번개같이 진격해 나가 성도 앞에 이르러 촉황제 유선의 항복을 받습니다.
이때 일 가지고 유선이 병신하는데,````
유선 입장에서는 군사.참모.특히 장군등 인재자원이 다 소진 되었기에
시간의 문제 였지`` 바람앞에 촛불로 어쩔수 없었다고 생각 됩니다.
(광원은 측천무후 고향으로 둘러라도 봄,)
방통이 전사한 낙봉파. 장비의 북문하고 연결된 장비의 취운랑등.
한중에서 서쪽 면현으로 30분가면 제갈공명의 무덤이 있는 정군산은 들려봐야 할곳 입니다.
정군산은 황충이 적벽대전 이후 한중 쟁탈전에서 조조의 맹장 하후연의 목을베어 버린곳 입니다.
검문각 주변만 주마간산으로 봐도 3일이 소요 될듯 합니다.
취운랑은 진시황의 진나라 전부터 심은 가로수 측백나무로 약 삼만리에 걸처있고,
수령이 2,000~2,500년도 있는 고목으로 푸름이 짙게 펼쳐 있어서 옥이 띠처럼 펼쳐있다 해서 취운랑.
약 10만구루가 장비가 길 찾기 위해서 의도하에 추가로 심었다고도 합니다.(트레킹으로 최고)
그 중 제일 아름다운 취운랑 옛길의 대백수만 으로 가봐야 할곳 입니다.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는 조조의 친필. 곤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인은 산악왕 으로 등애를 꼽습니다.(마케팅인가.ㅎ)
등애는 전쟁에서는 날고 기었지만, 정치적 역량과 감이 낮아서 끝이 좋치를 않습니다.
종회도 촉나라 멸망의 최고 공신이었지만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등애는 사마의가 발탁한 성실근면의 대명사 입니다.
미천한 둔전병 출신으로 농사의 귀재였고 식량을 늘리고 그 바탕으로 촉을 멸망 시킨것 입니다.
종회에게 정면에서 싸우게 하고, 산맥을 3만으로 넘었는데,
마천령을 넘어 마지막 진군에서 남은 병력이 3만명 출발해서 약2,000명 이었다고 하니,
너무 가파르고 험해서 많은사상자 발생과 함께 그 난관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고 합니다.
불굴의 의지로 사마의, 위나라 장군중 아무도 못한 검문각을 돌파 한것입니다.
혹시나 해서 제갈공명이 마천량 고개에도 수비 군사를 주둔시키었는데,
제갈공명이 죽고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하는 안일한 판단으로 폐관하였고,
텅 비어서 2,000명이 무혈로 통과 했고, 촉나라는 멸망의 길에 들어선것 입니다.
촉이 멸망하면서 삼국지는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입니다.
성도, 서안에서 고속철도 검문역이 개통되어서 가기도 수월하고,
전에는 수박 겉 핣기로 검문관만 보고 왔지만.
다시 가보기 위해서 산행과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삼국지 읽은분 이라면 촉나라 대장군 강유, 종회, 위나라 대장군 등애,
서로 각자의 신념을 위해서 싸운 검문관을 오르고 싶으실것 입니다.
성도or 서안으로 들어가서 진시황릉과 병마용, 무측천의 무자비.
서안을 자연 방어한던 진령산맥에서 오악中 서악인 화산 트레킹,
삼국지에서 귀 따갑게 나오는 한중을 지나서 소하고성, 장비의 랑중고성을
거쳐 검문관을 트레킹한다면 약6일.
제갈공명이 죽은지 약1,000년후에,
명나라 주원장의 책사 유기가 천하통일후 방문해서 자기는 뜻을 이루었지만,
제갈공명은 주군을 잘못 선택 했다고 자기의 우월함을(?) 은근히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국역사에서 제갈공명은 청백함,지조,정치등 으로
주공 단, 관중, 제갈공명, 중국 삼대 명 재상에 들어가지만 유기는 어림도 없고,
말년도 주원장에게 안 좋게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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