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침구학의 현대적 계승을 위한 남북한 협력
북한에서는 보건의료 전체 가운데 침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전체 환자 중 대략 60% 이상을 침이나 뜸으로 진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에서 한약을 포함한 한방의료 전체의 이용비중이 6% 정도라는 점과 비교하면, 북한에서의 침구활용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3년 필자가 일본의 조선신보 김지영 기자를 통해 북한의 고려의학과학원 침구연구소 허익근 소장을 인터뷰 한 내용을 보면 북에서 침뜸의 활용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 어느 정도의 환자를 침뜸으로 치료합니까?
"제일 말단은 진료소인데 매 마을에 진료소가 다 있습니다. 진료소에서는 고려의학이 한 80% 차지합니다. 그러니까 진료소나 이런 데서는 갑자기 우황을 걸망에 넣고 가는 것도 아니고 좋은 것이 침·뜸입니다. 약이라는 것이 어디 가서 얻어 와야 되고 상당히 불편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도 제일 무난한 것이 즉석에서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침·뜸입니다. 지금 큰 병원들도 고려의학을 많이 씁니다. 그리고 사람들 자체가 대부분 고려치료 봉사를 요구합니다. 차 사고가 나서 부러졌다 하면 수술을 해야 되겠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대체로 고려치료를 합니다.
전통의학을 전공한 의사들을 북한에서는 동의사라고 부르다가 93년부터는 고려의사라고 명칭을 바꾸며 그 주체적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북한에서 동의사 또는 고려의사라고 하면 침뜸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이다. 북한에서는 70년대 말부터는 각 진료소에도 동의사를 두기로 했다. 진료소에서는 침·뜸으로 진료하는 비중이 환자의 80% 이상이라고 한다. 고려약 처방은 100명 환자 중 한두명에 불과하다는 것. 거의 모든 고려의사들은 왕진을 나갈 때 침통 하나 몸에 지니고 갈 뿐 다른 것을 가지고 가는 의사가 없다는 것. 또 북한에서는 환자들도 99%가 침을 맞고 뜸을 뜨러 고려의사를 찾지 고려약을 찾는 이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북에서는 의술의 경계가 없다. 고려의사만 침뜸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사들의 임상의학부 과정 안에도 고려의학을 배우고, 진료현장에서도 침뜸치료를 한다. 신의사가 쓴 의학서적에도 치료부문에는 고려의학적 치료가 다 들어가 있다.
의사 자격은 대학을 졸업할 때 신의사와 고려의사로 정해져 나오지만 이것이 임상에서 전공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고려의사 자격을 가지고 병원에 배치됐지만 현대의학이 부족하여 현대의학 신경과에서 근무를 하면서 재교육 1년 받으면 신의사 수준으로 올라간다. 이는 또 고려의학부를 졸업한 사람만 고려의사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학부를 졸업했더라도 고려의학에 대하여 능숙해지면 고려의사로서 얼마든지 활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북에서는 신의사(양의사)들도 침을 놓는다. 침을 배우지 못한 신의사들도 시간을 내어 배우고 있으며, 의사가 침을 시술할 줄 모르면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신망을 잃게 된다고 한다. 사람들을 가장 많이 치료하는 리·군·도(시)급의 의사들이 침을 놓을 줄 모르면 큰 수치로 여긴다는 것.
북한에서도 정규 교육을 받지 않는 이른바 '무자격증 침구인'들이 대단히 많다. 그들은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자기만의 특기를 가지고 비록 자격증은 없지만 병원 의사들을 능가하는 의술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고 많은 병을 치료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민간 침구인들에 대해 ‘당일군, 안전일군, 보위일군 등 영도계급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치료를 선호하니 자연히 민간치료가 활기를 띠게 된 것이다. 국가에서도 민간에서 이름을 날리면서 치료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 제도권으로 끌어들인다. 이들 민간 침구인들을 제도권으로 진입시킨 역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다.
해방 직후에는 북한에도 남한과 마찬가지로 침쟁이라 불리는 침구인과 약방이 거의 마을마다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 이들을 개인 업을 못하게 하면서 6개월∼1년짜리 공부를 시켜, 병원에 근무하게 했다. 지금의 고려의학 교육은 이들을 재교육하는데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국영 고려병원이 생긴 것도 이 때쯤이었다.
북한에서는 민간의 침구인들에게 제도권 진입의 기회가 널리 보장되었고, 동의학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한 이들 침구인들의 활약은 오늘날 북한 보건의료 전체에서 침뜸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러한 민간 침구인들의 제도권 진입은 90년대 들어서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보건성에서는 95년 정규 교육기관을 나오지 않아서 동의치료의 자격은 없지만 침술과 뜸치료에 능한 사람들을 신청을 받아 따로 일정한 재교육을 하여 중등보건의 자격을 주고, 보건의료 인적 자원으로 널리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북에서는 필요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을 두고 있는데 중등보건의는 3년제 학교를 나온 준의사나 4년제를 나온 부의사, 조산원, 보철기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인증자격 받은 중등보건의는 침술 등 해당 인증자격을 받은 범위 내에서 의료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 분야나 또는 몇 개 분야에 대한 특기를 인정하여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제도는 민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전통의술을 제도권으로 흡수하여 활용하려는 노력이었다.
북한의 관계당국자는 95년 이후부터는 침시술은 이러한 중등보건의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까지만 허용을 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민간 침술사들의 활동은 여전하다는 것이 북한에서 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특히 뜸요법은 민간요법으로 널리 활용할 것을 당국에서도 적극 권장한다. 민간요법서적에는 뜸요법이 대단히 많이 소개되어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이 침구를 많이 활용하고 있는 만큼 전통 침구술의 계승 발전이 상당히 이루어져 있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하지만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다. 2004년 2월 26일 제1회 통일침뜸학술토론회가 평양 고려의학과학원에서 남북의 전통의학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바 있고, 제2회는 그해 9월 금강산에서 ‘고구려 유적 남북공동전시회’와 함께 열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남북의 침뜸교류는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의 침뜸교류는 침구학의 현대적 계승과 발전을 위해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이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다.
***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www.heoim.net) 대표이사 손중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