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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보고서
쌍뜨뻬쪠르부르크 풀코버 공항에 도착해서 먼저 느낀 건 무섭기도 하고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다보니깐 겁도 나고 어떻게 지내야할지 걱정되기도 하고 힘들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차갑고 다가가기 어렵게 보였다. 날씨는 쌀쌀했고 택시로 숙소에 이동을 했다.
숙소에 가서 하룻밤을 지내고 음악학교에 가서 나타샤 선생님을 만나서 얘기도 나눠보고 상담 및 구경을 했다. 나타샤 선생님은 한국어를 조금 하실 줄 아셨다. 딱히 불편하지 않았고 음악학교 다보니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적성에 맞춰서 잘 가르쳐준다고 해서 마음에 와 닿았고 꼭 다니고 싶었다. 학교연습실과 기숙사를 구경하고 마린스키극장에 가서 거의1년만에 큰오빠를 만났는데 많은 변화가 보였었고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인사도 나누고 대화도 나누고 오빠랑 엄마랑 에스토니아에 가기로 결정했다.
참 신기했던 것이 다른 나라에도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ECOLINE 이라는 버스를 타고 오랜 시간을 달려서 국경을 넘기 위해 여권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국경검문소 분위기가 매우 엄숙했고 검문원이 여자인데도 엄청 무서우면서 카리스마 넘쳤다. 여권검사를 끝내고 국경을 넘고 에스토니아 탈린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오빠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에서 1년 정도 공부를 해서 언어구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호스텔을 찾아다녔다.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어찌 됐든 택시기사 분들이 친절하시고 끝까지 잘 도와주셔서 덕분에 호스텔을 찾아서 묵기로 했다.
에스토니아는 평범한 길가도 영화에 나올 것 같이 아름다웠다. 있을 건 다 있었고 가게들도 반짝거리고 화려한 느낌이 많았다. 처음으로 과일 가게에 가서 체리와 블루베리를 사먹었는데 한국에서는 수입을 하니까 비싸서 먹기 힘들었는데
이곳에서는 값도 훨씬 쌌고, 신선하고 맛도 훨씬 좋았다. 맛있게 먹으면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길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자를 봤는데 정말 멋있었다. 바이올린 가방과 스피커를 들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연주하는 사람인 것 같았는데 연주하는 모습이 정말 빛났다. 나도 미래에 그렇게 열정 적으로 연주하고 싶었기 때문에 바이올린가방에 직접 돈을 넣고 눈인사를 했다. 뿌듯하기도 하고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에스토니아나 여러 나라들은 신도시와 구도시가 구별되어 있었는데 구도시를 구경한 다음 신도시에 있는 백화점을 구경했다. 오빠가 책을 좋아해서 백화점안에 있는 서점에 갔는데 책 종류도 엄청 많았고 언어를 아직 잘 몰라서 알아보진 못했지만 꼭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햄도 사고 치즈도 사고 빵도 사고 먹을거리를 샀다. 마트 안에 한국과 일본 음식 코너도 조그맣게 있었는데 신기했다. 러시아나 에스토니아 등등 나라들은 유제품과 햄, 빵이 주식이라서 종류도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잘돼있었다
달달한 치즈에 초콜릿이 씌여진 것을 여행하면서 많이 먹었는데 정말정말 맛있었다. 한국에서 수입한다면 정말 잘팔릴텐데! 라는 생각을 했고 친구들에게 이 맛을 공유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그리고 마트에서 어떤 할머니를 만났는데 러시아어를 구사할 줄 아셔서 오빠랑 대화를 하셨다. 포근한 인상이셔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셨던 것 같았다. 언제 뼤쩨르에 가면 만나자고 해서 다음에 꼭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어가 안통하고 생김새도 다르지만 눈빛으로도 통할 수 있다고 느꼈다. 에스토니아는 나의 시야를 넓혀준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배를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도 가봤었지만
나에겐 에스토니아가 정말 외국이라고, 다르다고 느끼게 해준 곳이었다.
그다음은 라트비아 리가에 가기위해 버스를 타러 갔다. 정말 버스에 장시간동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게 여행하는 것 중 제일 힘겨웠다. 마치 엉덩이가 녹아서 사라지는 줄 알았다.
라트비아 리가는 다른 곳보다 빈부격차가 심해보였다.
에스토니아와 똑같은 방법으로 숙소를 찾아서 묵게 되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서 힘들었다. 라트비아 리가는 호박악세사리가 유명한데 길가에 정말 많은 상점에서 호박악세사리를 팔고 있었다.
목걸이, 열쇠고리, 팔찌, 자석 등등 다양한 종류의 악세사리가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많은 동상들이 세워져 있었는데 자유기념비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광장에는 음식점들과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많았고 날씨가 좋아서 나무와 꽃이 반짝거렸다. 기분이 매우 좋았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갔는데
메뉴를 고르는데 처음 보는 음식들이 참 많았다. 엄마는 토마토치즈샐러드를 시켰고 나는 돼지족발요리를 시켰고 오빠는 생선요리를 시켰다. 향신료를 써서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리가에는 돌 작품도 팔고 수제인형, 수제악세사리 등등 한국에서 보기 어려운 것들과 너무 예뻐서 갖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마음 같아선 모두 사오고 싶었다. 우리 숙소는 구도시에 있어서 신도시까지 가려면 많이 걸어야 했었다. 덕분에 많은 경험도 하고 빈부격차가 이렇게 심할 수도 있구나 라고 느꼈다. 리가에서는 2박3일정도 지냈다.
그다음! 리투아니아 빌니우스로 떠났다.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는 유료화를 쓰기 시작했는데 리투아니아는 아직 리투아니아 화폐를 쓰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는 대학교 기숙사겸 호스텔에서 묵었는데 직원이 엄청 미인이었다. 숙소는 깔끔하고 잠자기 편하게 돼있어서 맘 놓고 쉬었다. 리투아니아 빌니우스는 날씨가 흐리고 비가 많이 내렸었는데 다른 나라보다 우울한감이 있었다. 리투아니아에 갔을 때 몸 상태도 좀 안 좋은 날이 있었는데 그때 중국 요리집에 가서 따뜻한 면 요리를 먹었는데 아픈 게 가시는 느낌이었다.
리투아니아에서 비 맞으면서 돌아다녔는데 정말....힘들었었다. 길가에 기념품 파는 곳에서 도자기피리를 샀다. 수제품처럼 보였는데 귀여웠다. 리투아니아에서도 엄청 많이 걸어다녔는데 리투아니아 거리를 걸을 때 골목길 걷는 느낌이 들었다 넓은 길도 있었지만 왠지 골목길 걷는 느낌이 났었다. 이곳은 비가와도 우산을 안 쓰는 사람들이 많았다.
게디미나스 성에도 가봤는데 리투아니아의 수도를 빌니우스로 천도한 게디미나스가 처음으로 지은 성이라고 한다. 대성당과 대성당광장에서는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무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악기를 부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거리를 걷다보면 음식도 팔고 기념품도 팔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분식점처럼 즉석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도 있었고 조그만 동상이나 나무를 깎아 만든 작품들 그리고 천들을 팔고 있었다. 거기서 양배추와 소세지, 돼지고기로 요리한 음식을 먹어봤는데 신기하게 양배추에서 김치맛이 살짝 느껴졌었다. 보기보다 맛있어서 맛있게 먹었다.
지금까지 갔다 온 곳은 성당이 정말 크고 한국보다 훨씬 잘 돼있었고 사람들이 기도를 할 때 정말 진실된 마음으로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모형을 만들어서 교회의 십자가처럼 달아놓은 것들이 있었는데 할머니나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예수님의 발에 가벼운 키스를 하고 예배를 하러 가셨는데 정말 다르구나.. 라고 느껴졌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보존을 하고 건물들도 철거하지 않고 옛날 그 모습을 유지하면서 맥도날드나 여러음식점 프렌차이즈점 서점 등등 으리으리한 건물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들이 있으니 신기하고 멋졌다.
우리나라는 성당이나 어느 특정한 곳에 가야 그런 건물을 볼 수 있는데 그 곳은 거의 모든 건물이 으리으리했고 보존도 잘 돼있었다. 역사적인 위인들의 동상들도 광장이나 길가에 많이 세워져 있었는데 세종대왕동상이나 이순신장군 동상만큼 크기도 컸다. 보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나라에도 발전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역사를 보존하는 것에 더 힘 써야될 것 같다고
생각했고 동상이 많이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리투아니아에서 폴란드로 갈 때도 버스를 타고 갔는데 정말...정말..엉덩이가 사라지는 줄 알았다. 폴란드는 알고 있던 나라이긴 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없었는데
다녀온 뒤로는 머릿속에 다 떠오른다. 사람들은 러시아를 떠오르면 춥기만한 나라인 줄 아는데 러시아도 사계절이 있고 습기가 높지는 않지만 더울 땐 덥고 추울 땐 엄청 추운 곳이다.
폴란드는 크라쿠프와 바르샤바를 갔었는데 바르샤바는 생각보다 시끄러웠다. 숙소를 찾아다닐 때 밤이었는데도 사람들이 참 많았다. 대학로처럼 사람도 많았고 시끄럽기도 참 시끄러웠다. 폴란드의 수도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금요일이나 휴일마다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았다. 오키도키라는 호스텔을 찾아서 묵었는데 인기많은 호스텔이라서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고 밤에도 노래를 부르거나 소란스러웠었다. 그래도 좋은 경험 이었던 것이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쓰는 방을 쓰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기 때문이다.
바르샤바는 길도 넓고 도로도 넓어서 사람들끼리 부딪히는 일도 없었고 날씨도 좋아서 많은 곳을 가봤다. 코페로니쿠스의 동상도 봤었고, 쇼팽박물관, 과학문화궁전에도 가봤다.
쇼팽박물관은 쇼팽대학교 바로 뒤쪽에 있는데 휴일에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돼 있어서 무료로 관람했다. 사실 쇼팽의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박물관에 가서 쇼팽이 어떤 곡을 썼고, 어떤 식으로 작곡을 했고, 어떤 가정에서 살았고,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쇼팽은 그림그리기도 좋아했었는데 자기 자신을 캐리커쳐처럼 그린 것을 보았는데
참 귀여웠다. 쇼팽의 곡을 들어보는 곳이 있어서 앉아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데
언어도 안통하고 오빠랑 엄마랑 여행하면서 평탄하지만은 않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음악과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눈물이 날 뻔 했다. 나는 쇼팽의 곡 중 혁명 이라는 곡을 제일 좋아한다. 여행하면서 제일 감동받은 곳이 쇼팽 박물관 이었다.
바르샤바에서 폴란드의 옛날수도 크라쿠프로 가게 되었는데 크라쿠프에 새벽에 도착해서 숙소를 어떻게 찾아야하나 싶었는데 크라쿠프는 폴란드의 옛날 수도였기 때문에 기차역, 버스역 주변에 호스텔이 많았다. 기차역 주변 호스텔에 묵었는데 아파트형식처럼 되있는 호스텔이었는데 값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시설이 참 좋았다. 크라쿠프는 바르샤바보다 조용했고 살기도 편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물가도 싸고 호스텔에 부엌도 있어서 요리도 해먹었다.
크라쿠프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넓은광장이 있는데 그 곳에서 시각장애인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잘 불러서 오빠가 서점에서 책 구경하는 동안 엄마와 계속 듣고 있었다.
그리고 빌니우스에서 여행을 하는 도중에 핸드폰이 고장나서 난감했었다.. 그래서 폴란드는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다ㅜㅜ 크라크푸는 살아보고 싶은 곳이였던 것 같다.
여행하면서 제일 편하게 지냈던 곳이었고 사람이 살기 편한 곳으로 딱인 것 같다.
인구도 약 76만명밖에 안되고 기차역도 버스역도 백화점도 주위에 다있고 정말 살아볼 수 있다면 살아보고 싶은 곳이었다. 크라쿠프에서 버스를 타고 아우슈비츠로 갔는데 아우슈비츠는 폴란드가 나치독일에 점령당했을 때 만들어진 곳이다. 한국의 서대문형무소와 조금 유사한데 아우슈비츠는 유대인학살이 일어났던 곳이고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던 곳이다.
유대인말고도 독일인들이나 러시아인 집시 루마니아인 오스트리아인 등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 곳이다.
얼마나 끔찍한가 하면 문 앞부터 “노동을 하면 자유를 얻으리라.” 라고 적혀있었다.
사람들을 강제수용소에 가둬놓고 먹지도 씻지도 못하게 하면서 강제로 많은 일을 시켰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고 하는데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쥐랑 벌레를 먹었다고도 한다. 아우슈비츠에서는 한국어로 된 안내서를 팔고 있어서 신기했다. 안내서를 사서 보면
상세하게 내용이 적혀있는데 이 곳에 수용됐던 사람들은 감금, 굶주림, 중노동, 의학실험, 사형집행 등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살당했다고 돼있다. 1942년부터 유럽 최대의 유태인 학살지가 되었고 죽음을 선고받은 유태인들 대부분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가스실로 보내져 명부에 등록되지도 않고 죽음을 당했다. 그래서 현재까지도 정확한 희생자의 수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아우슈비츠에 갔을 때 많은 사람이 죽었던 가스실에 들어가봤는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과 오한과 소름이 돋았다. 들어가자마자 숨이 탁 막혔고 너무 무서웠다. 희생자들이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상상조차 힘들었다.
아우슈비츠를 다 돌고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가면서 안내서를 읽고 또 읽었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면서 적응하기 힘들어서 얼굴에 포진도 나고 중이염도 걸렸었는데 정말 힘들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살면서 제일 기억에 남을 경험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폴란드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다시 러시아 쌍뜨뻬떼르부르크로 가게 되었는데
오는 것보다 가는 것이 훨씬 큰 문제였다. 비행기로 가기엔 값이 너무 비싸서 버스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폴란드에서 쌍뜨뻬쩨르부르크로 가는데 거의 30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정말..말도 못하게... 매우..힘들었다 버스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줄은 몰랐는데...엄청 오랜 시간을 지냈다.. 국경을 다시 넘고 러시아에 도착했을 땐 고향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러시아는 제2의 고향처럼 느껴졌다. 러시아에서는 두루지아라는 호스텔에서 묵었다.
서점에 가서 악보도 보고, 책도 찾아보고 에르미따쉬에도 가보고 광장도 가봤는데 에르미따쉬는 정말 아름다웠다. 사진을 아무렇게 찍어도 예쁘게 나올 것 같이 생겼었다.
샤베르마라는 음식을 오빠가 친구랑 식사를 하고 싸왔는데 난에 고기와 야채가 싸여져있는 음식이었는데 참 맛있었다. 내 입맛에도 맞았다. 러시아에서 한국음식이 팔까 궁금했었는데 도시락이라는 회사에서 파는 컵라면과 짜장라면을 팔고 있어서 놀랐다. 러시아를 오기전에 사실 내가 러시아를 가야되나 고민을 했었다. 시험을 앞두고 해외를 간다는 것이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였는데 이제 나는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해외에 나갔다오면 시야가 넓어진다는 말이 진짜인 것 같다. 배우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도 아무 곳에서나 못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마 한국에 남아서 시험을 봤더라면 이런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한 용기도 못 냈을지도 모른다. 아직 부족한 점도 많이 있지만 요번 경험으로 한 칸 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구들이나 내 또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지금은 우리가 학생이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지금 밖에 할 수 없는 경험들이 매우 많은데 공부만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솔직히 지금 꿈이 뭔지도 모르는 애들이 많을 텐데 공부하기 전에 꼭 내가 뭐가 하고 싶은지 뭐가 되고 싶은지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