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아마추어무선봉사회 낙도봉사 다녀와서
CQ CQ CQ 봉사일지
정 숙(HL4CKJ)
토요일 오후 사도의 선착장에는 모처럼 뭍에서 부는 인정에 생동감에 일었다.
아마추어무선 봉사원이 Red Cross가 그려진 적십자기를 펄럭이며 들어선 때문이었다.
7년전 어느 아마추어 무선사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
마이크만 잡고 입으로만 품을 팔 일이 아니라 뭍에서 멀리 떨어진 섬마을의 고장 난 가전제품을
수리해주는 일은 어떻느냐고, 물론 그 뜻은 모든 햄(HAM)동료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그들 대부분은 납땜을 할 수 있고 안테나(ANT)를 설치할 수 있으며, 어느 공구로든 고장 난 전기제품을
고칠 수 있는 능력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능력들을 모아 대한적십자사 광주 .전남 여수아마추어무선 봉사원 들은 1년에 한 번씩 낙도로 가서
가전제품을 수리해 주고 있다.
화양면 낭도리, 고흥군 동래도, 남면 두라리, 화양면 상화리, 화양면 월호리에 이어 오늘은 화정면 사도리에
이르렀다.(1997년현재)
긴 사이렌을 울리는 선봉대는 작년부터 이 행사에 협조하고 있는 여천군청(현여수시)에서 내어준 행정선이다.
25톤에 시속 23노트의 빠른 쾌속선의 속도에 세찬 흰거품이 배를 헤집고 차고 올랐다.
그러나 목적에 다다랐음을 아는지 배는 이제 여릿여릿 바닷물에 몸을 풀고 느긋느긋 휴식에 들어갔다.
전남 여천군 화정면 위치한 사도의 5월 햇살은 푸른 바다에 잘게 부서져 은빛으로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음역 2월 영등 시에는 모세의 기적 같은 바닷길이 열리는 곳이다.
건너방같이 떨어진 아기섬이 추도인데 그곳을 있는 바닷길이 영등시가 아니어도 물이 빠진 탓에 거의 드러나 보였다.
사도와 추도를 합하여도 스무 여덟 가구 밖에 되지 않아 섬마을 학교는 이미 문을 닫았고 군데군데 빈집도 보였다.
평균 연령이 오십오육세,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그립기는 어느 시골과 마찬가지였다.
이따금씩 빈집 지키는 닭 울음소리만 담장 밖으로 넘나들고 담벼락에서 졸고 있는 누렁이는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끔쩍도
하진 않았다.
마을회관에서 이장님이 계속 방송을 냈다 .
봉사단이 도착했으니 인근 갯가로 나간 주민들은 어서 돌아와 가전제품을 고칠 준비를 하라는 안내였다.
우리 봉사단들은 우선 마을회관에 그럴듯한 거설 미용실과 보건소를 차렸다 가전제품 수리에서 출발한 봉사원은 이제는
여러 뜻있는 사람들이 동참하여 치과와 미용까지 그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방송을 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의외로 보람미용봉사회의 미용실이 번잡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머리를 자르거나 파마를 할라치면 그들은 여수까지 배를 타고 나가야 했다.
가끔 여수로 나가는 날도 찬거리며 생활용품을 사고 이것저것 봐야할 일을 하고 나면 뱃시간이 빠듯해 늘 뒤로 미뤄지는
게 머리 손질 이었다.
파마셑트로 머리는 말면 적어도 몇시간은 미용실에 앉아있어야 하니 그게 여간해서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말끔하게 이발을 마친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이빨도 치료하고 가세요.”
“난 말이여, 치과는 필요가 없다니께, 다 틀니거든.”
설핏 웃음이 나왔다.
틀니 노인이 많은 까닭에 충치 노인이 적은 것이다.
고동 따는 아주머니의 손도 바쁘게 놀려졌다.
갯벌에 묻혀 있는 바위를 하나씩 들어 올려 바위 밑에 묻혀 있는 바위를 하나씩 들어 올려 바위 밑에 붙어있는 고동을
떼내는 그녀의 손놀림은 민첩했다.
내가 다가서자 아주머니는 어디서 왔느냐고 얼굴도 들지 않고 고마운 표정을 소리에 담았다. 멀리서 이장님의 방송은
계속 반복되었다.
“남자가 없는 살림인디, 손봐야 할 가전제품이 어디 하나둘인가? 그런데 말이지 바닷물이 빠진 지금이 아니면 고동도
딸 수 가 없는 거여, 돈을 살 일이라곤 섬에서 이것 밖에 없으니 바삐 고동도 따야 하고 어서 들어가 고장 난 냉장고도
고쳐야하고......”아주머니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닷물은 촤르르륵 밀려 들어왔다.
이장님이 내준 사전을 타고 장수에서 출발한 봉사단2진이 도착했다.
거의가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선착장에 닿은 봉사단들은 리어카로 세 대분이나 되는 짐을 옮겼다.
전선, 장비, 형광등, 부속품들이 박스 박스로 옮겨졌고 그 틈새로 식품과 식판과 대형 솥단지와 장작용 화로도 보였다.
그 곳주민들에게 젓가락 한 짝도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철저한 봉사정신을 읽을 수가 있었다.
전원 각자 자기 부서로 들어가 맡은 바 일들을 해나갔다.
우선 아마무선의 심장부인 무전기가 설치되었다.
마을회관지붕 위로 올라가 안테나를 치고 기계를 설치하였으나 정작 애를 먹이는 것을 불량한 전파 상태였다.
가전부 팀도 수집된 제품들을 고치느라 바빴다.
고장 난 텔레비전, 냉장고, 라디오, 밥솥과 밥통, 그리고 세탁기 믹서기까지,
고장 난 가전제품들을 배에 실어 뭍으로 나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감해졌다.
또한 부속품/까지 무료로 바꿔낄 수 가 있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가전제품 수가 줄어들어드는 것이 점점 쇠약해지는 섬마을 형편을 보는 것 같아 가전제품 수리부들의
마음은 아타깝기만 했다.
전기부 팀들은 몇 년 전에 어느 섬의 가로등 전부를 교체해 주느라 혼쭐이 났었다.
그러니 집안의 형광등 바꾸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인 것이다.
가스부 팀들이야 말로 책임이 막중했다.
둥그렇게 말은 검정색 호스를 들고 다니면서 불량품을 교체해 주었다 전문가가 아니면서 가스가 새는지 어찌 알 수가 있으며
설령 가스관에 이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스호스를 배에 싣고나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재난 재해시 무선으로 봉사하기 위해 적십자 봉사단(원)이 아마추어무선사 들이다.
이제 그들은 무선뿐만 아니라 땀을 흘리며 공구를 잡고 직접 몸으로 부대끼는 일품까지를 자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땀 흘리는 자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팀이 운영부(취사담당)! 요리 솜씨가 없는 사람은 감히 들어 올 수도 없는 부서다.
그러나 밥 짓고 국 끊이는 일보다 더 힘들 일은 며칠 전부터 챙겨야 하는 가기가지 식품과 재료와 도구들이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에 비릿한 내음이 실려 왔다.
사도에는 시루떡처럼 한 켜 한 켜 지층을 이룬 거대한 바위가 웅기종기 모여 있다.
바위 위에 패인 공룡의 발자국에는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다.
갯벌 바위에는 파래와 지심들이 흐느적 엉겨 붙어 있었고 인적 없는 길가로는 까만 청각과 미역들이물기를 말리느라 즐비
하게 널려져 있었다.
사도는 바라보는 풍경만으로도 한가롭고 여유로웠다.
찌들리지도 않고 긴장되지도 않는 도심 밖의 멋이었다.
제3진 고무보트가 도착했다.
바닥만 있고 지붕도 없는 타이어 같은 고무보트는 해병대 출신세 사람이 타고 들어왔다. 이번 봉사지를 사도로 추천한
그들이다.
점점 노령화 되는 이 곳 실정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들 업무는 섬전역의 방역이었다.
등에 은빛 나는 소독통을 걸머지고 마스크를 한 채 골목골목 빠진 곳 없이 약을 품어댔다. 마을 사람들은 뿌연 소독연기
속에서도 친숙한 그들에게 컬컬한 반가움을 건네주었다.
용바위며 기암절경과 거북바위와 낚시터로 유명한 신비의 모래섬 사도에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간다.
수 만년의 거대한 공룡의 전설도 어스름한 석양에 함께 잠긴다.
그런데 아까부터 여수의 맥가이버라 불려지는 동료가 보이질 않는다.
그는 어느 선주에게 붙들려 고깃배 안에서 무전기를 고치고 있었다.
고기잡이배에 햄 무선기가 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CQ, CQ, ----." 듣고 계신 스테이션 계시면 응답바랍니다.-----.”
주변은 조용하다.
여린 꽃대궁에 달린 앉은뱅이 풀꽃들만 하늘거린다.
바람 묻은 풀꽃들은 속삭이는 언어로 아마무선봉사원에게 흐뭇한 인사를 전하고 있다.
여천군 화정면 사도리 1997년 5월 24~25일
여수출신 수필가 정 숙(HL4CKJ)님의 “갯벌은 바라만봐도 좋다.”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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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 감동이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감동은 똑 같네요. 우리가 힘닿는 그날까지 봉사는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