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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한복을 중국꺼라고 버젓이 주장하는 이유 https://youtu.be/WccoqO-0s0M <===!!!
“한반도 유사시 중국군 평양 남쪽까지 진입할 수도”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21/0002337141
"배구는 여전히 수 왕조에서 문제를 보좌하는 참모로 활약했다. 특히 그는 다방면에 박학한 지식과 뛰어난 기획력, 논리적인 지략의 소유자로 문제의 총애를 받았다. 문제는 당시 돌궐과의 외교관계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돌궐은 중국의 북쪽인 만주일대부터 서쪽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집단이었다. 이들은 훗날 투르크족이라는 이름으로 중동지역에서 힘을 떨쳤다. 비록 수나라가 한나라 이후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웠지만 위로는 황궁에서, 아래로는 지방의 말단 현까지, 국가의 틀과 황제의 권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기병을 주축으로 하는 돌궐의 약 40만 명의 군대는 수나라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다. 실제로 수 문제 때는 돌궐의 대대적인 공격 앞에 수나라는 수도까지 함락 당할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배구는 돌궐의 역사와 현재의 정세에 대해서도 전문가였다. 배구는 “힘이 강한 돌궐을 정면에서 공격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힘을 양분하여 힘을 약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합니다”라는 계책을 문제에게 올려 돌궐 지배세력에 대한 분열을 시도했다. 두 세력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던 돌궐은 배구의 이간질에 당했다. 당시 돌궐은 크게 동돌궐과 서돌궐로 양분되어 있었다. 이들은 전쟁 시에는 단합했지만 서로 어느 한 쪽이 돌궐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것을 경계했다. 배구는 이를 이용했다. 서돌궐에게 지원을 비밀리에 약속하고 동돌궐에 대한 공격을 부추겼다. 그리고 서돌궐 내에서도 여러 부족의 수장들에게 서로를 시기하고 믿지 못하게 하는 이간정책을 시행했다. 이를 위해 수나라 황실과의 혼인정책을 교묘하게 이용했고 그 결과 돌궐의 수많은 부족은 서로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화살 하나 날리지 않고 돌궐문제를 해결한 배구에 대한 수 문제의 신임은 더욱 깊어졌다."
연남생 연남건 이간질! 배구의 이이제이! 진개나 위만의 뒷통수! 이게 현재 중국공산당의 기본수법과 같다.
역사 사실 찾기 1편.
고죽국 위치는 황하굴곡지점!
황하 이북 지역까지 우리 조상들의 역사강역이다.
현재의 북경 동북쪽 노룡현은 중국공산당의 여름휴양지로 유명한 진황도시가 있다.
그런데, 그 노룡현은 명나라 영락제가 조직적으로 지명이동시킨 결과라고한다.
명태조 주원장의 4째 아들이었던 '주체'는, 황하이북 유주지역을 관할하는 봉지를 받아 북원의 재침입을 방어하는 최전선에서 크게 활약을 하였다고한다https://namu.wiki/w/%EC%98%81%EB%9D%BD%EC%A0%9C. 이 때문에 그 지역의 내력과 역사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다보니, 지명이동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짐작된다. 남경에서 북경으로 천도하고 대대적 지명이동을 하여, 과거 역사를 왜곡 둔갑시키지 않을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추측되는데, 바로 노룡현은 역사적으로 고조선과 고구려의 뜨거운감자 한사군과 안동대도호부 설치됐던 지역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 소개합니다.
http://pluskorea.net/12343 ===>
[노룡현은 명나라 영락제가 역사 왜곡을 위해 지명을 조작한 도시라는 것이 중국 기록에 엄연히 나와 있다...//청나라 때 작성된 대청광여도에도 산서성 최남단 황하 굴곡 지점에 백이.숙제의 묘와 수양산이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
노룡현이 중요한 이유가, 북위시대(386년~534년)때 장수왕이 도읍한 평양이 위치한 곳이고,
고당전쟁후 안동대도호부가 설치된 곳이기 때문이고,
백이숙제 고죽국의 고죽성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다. <===https://blog.naver.com/gnbone/220577225776
그럼 고죽국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냐? 그걸 빠삭하게 학술적으로 연구해놓은 분이 이미 있습니다. 고죽국의 왕자들인 백이와 숙제가 굶어죽은 수양산(首陽山)을 찾으면 고죽국이 나오겠죠?
<사기 집해/사마천 사기 3대주석서 중 가장 이른시기 AD5세기 배인이 저술>에, “마융이 말하기를 수양산은 하동지방의 포판에 있는데, 그곳은 화산의 북쪽이자, 황하가 꺽여흐르는 지점이다(集解馬融曰 首陽山在河東蒲阪, 華山之北 河曲之中)”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의 하동(河東)은 황하의 동쪽으로 지금의 산서성을 말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 황하가 꺾이는 지점..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2487&keyWord=%BC%BA%C7%E5%BD%C4%C0%C7+%A1%AE%B4%EB%B0%ED%B1%B8%B8%AE%A1%AF
당시 기주(冀州)이고 유주이자 요서인 산서성 남서부에 있던 노룡(새), 수양산, 유수(난하), 고죽국, 포판, 창려 등이 오늘날의 하북성으로 옮겨진 의혹과 개연성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백이숙제의 나라 고죽국의 상징적인 자연지형인 수양산(首陽山)이 오늘날의 중조산(中條山)이라는 사실을 당나라 지리서인 <원화군현도지>를 통하여 명확히 밝혔다. 함께 살펴본 바와 같이 유주와 영주는 황하강 주변의 지역이라는 중요한 사실의 확인이다.
http://ichn.co.kr/chamhanbook/238
사기에도 고죽국 기록이 나오고, 그 위치를 대강 알수 있는 기록도 있고..<====고죽국은 어떤 나라인가?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bchung&logNo=50188118709&proxyReferer=http%3A%2F%2Fwww.google.com%2F
[ <사기>의 기록에 제나라 환공은 여러 나라들의 회맹(會盟)을 주도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미 남으로 소능(召陵)까지 원정하여 웅산(熊山)을 보았고, 북으로는 산융(山戎)과 이지(離枝)와 고죽(孤竹)까지 토벌했다. 서쪽으로는 대하(大夏)를 토벌코자 사막을 넘어간 일도 있었다” 즉, 제나라의 북쪽 경계가 고죽이란 말이다. 제나라가 남쪽까지 원정한 소능은 지금의 하남성 정주 밑에 있는 탑하(漯河)시이며, 북쪽인 고죽은 지금의 산서성 남부 운성(運城)시의 서쪽인 영제(永濟)시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24554 http://www.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1974이다. 따라서 제나라는 황하변 하남성 주변에 있던 나라였던 것이다. 이런 제나라가 산동성에 있었다는 중국의 주장은 명백한 역사왜곡인 것이다.]
[분명한 것은 진황도시와 진시황 불로초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백이·숙제와 기자, 진시황 장성과 관계있는 맹강녀와 갈석산도 역사적으로 현재의 진황도시와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는 명나라 영락제 때부터 20세기 민국에 이르기까지 한족(漢族)들이 줄기차게 역사왜곡을 위해 인위적으로 고대사의 모든 지명을 산서성 남부와 황하북부 하남성에서 현재의 진황도시 지역으로 옮긴 것으로 모두 가짜 유적인 것이다]
고죽국이 또 중요한 이유가,
'한4군'의 위치가 바로 고죽국 자리라는 결정적 사료나 유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윤용섭의 신삼국유사] 고죽국과 조선-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 -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8649#_enliple
[수서]<배구전>“고구려 땅은 본래 고죽국이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nbone&logNo=220578180879&referrerCode=0&searchKeyword=%EB%B0%B0%EA%B5%AC%EC%A0%84
(고구려가 중국 지방정권이라는 논리 개박살나는 내용)
두로공신도비(남북조시대 유명한 문인의 개인 문집에도 비문내용 남아있고, 실제 비석도 남아있음)와 고조선의 위치 문제 : 네이버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nbone&logNo=220856978553&proxyReferer=http%3A%2F%2Fwww.google.com%2F
(고죽국 지역이 고조선 땅이자, 한4군 설치지역이라는 내용)
통일신라국경 고죽국
최치원의 대당 국서 양위표(讓位表)
臣以當國。雖鬱壘之蟠桃接境。不尙威臨。且夷齊之孤竹連疆。本資廉退。矧假九疇之餘範。早襲八條之敎源。言必畏天。行皆讓路。盖稟仁賢之化。得符君子之名。故籩豆饁田。鍦矛寄戶。俗雖崇於帶劒。武誠貴於止戈。爰從建國而來。罕致反城之釁。嚮化則南閭是絶。安仁則東戶何慙。
신의 본국은 비록 (<풍속통(風俗通)>에 기록된 상상 속 동해상) 울루(鬱壘)의 반도(蟠桃: 큰 복숭아나무)와 접경이오나, 위력으로 대함을 숭상치 않고, 또 백이숙제의 고죽국(孤竹國)과 강토를 연하여 본래 청렴하고 겸양함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물며,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정치 이념인) 홍범구주(洪範九疇)와 (주(周)나라 무왕(武王)시대 기자(箕子)가 조선(朝鮮)에 베푼) 팔조지교(八條之敎)를 이어받으니 말은 반드시 하늘을 경외하고(言必畏天)
길을 가다 마주치면 서로 길을 양보하는(讓路) 등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기록된 바,) ‘어진 이들의 교화(仁賢之化)’를 이어받아, (<산해경(山海經)>에 기록된 바,) ‘군자국(君子國)’라는 이름에 부합할 수 있었습니다.
패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lcosung&logNo=183806932&targetKeyword=&targetRecommendationCod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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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연구 총요약한 글 및 강연영상
<====성헌식의 [고구려 강역]: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bchung&logNo=50188118709&proxyReferer=http%3A%2F%2Fwww.google.com%2F
https://www.youtube.com/watch?v=Iu6H1kF1JgU&feature=youtu.be
https://youtu.be/ihuwHa-vEPE
https://www.youtube.com/watch?v=_RECSznh4xk&feature=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AFvIxrBa_zc&feature=youtu.be
역사 사실 찾기 2편.
은나라 주나라는, 최 전성기에도 남한면적 사이즈의 나라. 혹은, 경기도면적 사이즈의 나라.
동서남북사방1천리면, 가로세로 각각 400km = 남한크기 땅.
원방1천리면, 직경 127km 경기도 크기 땅.
근거?
- http://blog.daum.net/ky1002027/6583098 맹자, 공손추장 구(公孫丑章 句)
하·은·주의 전성기에도 나라의 땅이 천리를 넘지 않았다 제(齊)나라도 그만한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닭 우는 소리 개 우는 소리가 서로 들릴 정도의 사방의 국경을 맞대고 있다.
(夏后殷周之盛 地未有過千里者也 而齊有其地矣 鷄鳴狗吠相聞而達乎四境)
"당시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통일하기 전에 살던 맹자(孟子)의 어록에서 당시 상황을 유추해서 살펴 봅니다.
맹자(孟子)는 BC 300년 경의 사람이니 시간 차이는 나지만 당시 진시황제의 통일 이전의 중국 상황에 대해선 비슷하게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대 상고사의 중국 지도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 4) 고자장구 하(告子章句下) : 천자의 땅은 사방 천리로 천리가 되지 아니하면 그것으로는 제후를 대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후의 땅은 사방 백리이니, 백리가 되지 아니하면 그것으로는 종묘의 문서와 서적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주공이 노나라에 봉해질 때에 사방 백리의 땅을 가졌으니 땅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백리의 땅에 비해 검소하였으며, 태공이 제나라에 봉해질 때에 또한 사방 백리의 땅을 가졌으니 땅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지만 백리의 땅에 비해 검소하였다. (天子之地方千里 不千里不足以待諸侯 諸侯之地方白里 不白里不足以守宗廟之典籍 周公之封於魯爲方白里也 地非不足而儉於百里 太公之封於齊也亦爲方百里也 地非不足也 而儉於百里)
(해설) 예를 들어 주 무왕의 통치강역은 사방 천리 뿐이고, 제후였던 노나라와 강태공의 제나라도 사방 백리 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나라와 제나라가 산동성을 차지하고 있었고, 연나라가 하북성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다.]
9개국연방 단군조선은 망한뒤 그 유민이 사방백리의 70개 소국을 세웠다 https://youtu.be/HJGid6QE7fw
고조선 강역 서쪽 국경
https://www.youtube.com/watch?v=e3_NYZMcy1g&t=1s
우선참고사항, 다음 2가지,먼저 염두하시고
1.동이족 원주지( 중국의 서북부) 및 이동 분포도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F%99%EC%9D%B4%EC%A1%B1&ridx=0&tot=2602.
그러니, 전국시대말기인 공자7대 후손 공빈이 살때도, 단군의 나라 동이는, 대국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거 알수있어요. http://cris.joongbu.ac.kr/download/%ED%9B%84%ED%95%9C%EC%84%9C%EB%8F%99%EC%9D%B4%EC%97%B4%EC%A0%84-%EA%B3%B5%EB%B9%88.pdf
전국시대말기에도 대국
https://m.blog.naver.com/thyoon123/220572571263
역사 사실 찾기 3편.
갑골문은 중국 화하족과 전혀 무관하다!
갑골문이 한자의 원천기술인데. 은나라가 북방에서 내려온 동이족의 나라였고 패망후 다시 원나라처럼 북방으로 돌아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https://youtu.be/xyF_iWhmvS4 https://youtu.be/0MttIfKAK2s( 46:24~ 1:03:41. 중국백과사전 바이두 왈, "원래 고죽국이 상나라와 조상이 같은데, 상나라가 중원으로 내려갔다가 망하자 고죽국과 함께 고조선으로 이주했다.")
중세, 고대로 올라갈수록 중국문화의 원조는 한국과 연관이 깊다. 왜냐면, 오리지날 중국인은 상나라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니까. https://youtu.be/MH2KvdD9e_M
(요서나 한반도에 갑골문 유물이 없는 이유?
조선도공을 잡아간 후 조선은 도자기산업이 몰락하고, 도쿠가와 막부정권은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한것처럼.
은왕실에 존재했던 특수집단인 소수의 갑골문 제작전문가 집단(정인(貞人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803071746405)도 비슷한 포로운명이라 짐작하면 이상할 게 없음)
.)
화하족은 남방계 https://blog.daum.net/dosu92/17452763 [중국(中國) 란저우(蘭州) 대학 생명 과학원의 셰샤오둥(謝小東) 교수는 “한족(漢族)과 소수 민족의 유전자(DNA)를 몇 년에 걸쳐 조사했는데, 13억 중국인 가운데 92%를 차지하고 있다는 한족(漢族)은 실제 조사 결과 유전학적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라고 2007년 02월 13일 발표했다. 한족(漢族)이라고 부를 만한 순수한 혈통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화하족이 만들지도 않았는데, 왜 갑골문을 쓰고,
화하족의 조상이 황제(동이족)라면, 알타이계 언어를 써야지,
왜 남방계 언어를 쓰고 있을까?
갑골문도 도용하고, 사마천이 족보도 도용해서 일어난 일. 수수께끼가 다 풀림.
역사사실 찾기 4편.
한국은 고대로부터 중국의 일부였다???
고대한국의 건국이념과 사상은, 홍익인간 재세이화 성통광명.
고대중국은 건국이념이 없음. 단지 중화사상만 있을뿐. 그럼, 누가 일부였을까?
그리고, 중국이라는 용어의 의미 변천.
1.동이족의 은나라가 중국 http://blog.daum.net/judicare/52 은,주 전성기 사방1천리(100km 경기도 면적사이즈).
2. 전국시대말기 공빈; "동이는 그 나라가 비록 크지만 남의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았고, 그
나라의 군대는 비록 강했지만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았다.""동이의 사절단이 온 것을 보니 대국인다운 모습이었다."
3. 당나라 시기 '중국' 의미 ==> "화산華山 및 황하黃河 이남지역" https://m.cafe.daum.net/chosunsa/Oc51/66
역사사실 찾기 1편과 일맥상통 부합하는 내용.
4.발해 http://m.egloos.zum.com/z666666/v/5229184
이런데도, 고구려 백제가 중국 지방정권 역사라고? 고구려 멸망후 발해 거란 금나라 원나라 이어지면서, 황하이북을 진출하지 못하다가 원나라 물러나면서 어부지리로 현재 북경지역을 차지한게 명나라때이다.
더욱이 청나라 멸망후 어부지리로 만주지역까지 차지한건 1910년 신해혁명이후이다.
현재 중국은 청나라를 계승한 나라라고 내세우고 있는데. 청나라 이전의 중국 내륙의 역사는 한국사인가 중국사인가? 현재 중국 논리대로면, 청나라 황실 조상은 신라에서 왔고 신라계승의식이 있으니, 한국사이다. 따라서, 현재 중국은 한국에 속한 자치정부의 땅.https://youtu.be/oLTERfbw2Gg
역사사실 찾기 5편.
삼국지연의처럼 환단고기도 역사사실 포함한 소설.
환국과 배달국 천손사상, 개천사상, 개천철학을 포함하고 있는 소설.
이에 대해 입장 갈리는데,
위서이고 이유립의 허구소설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역사사실 1%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고,
내륙조선 내륙고구려에 대한 상당한 역사사실 포함하고 있다는 사람들도 있고.https://youtu.be/PSZPt8_UpzQ https://youtu.be/FYkQpq1sKY8 https://www.youtube.com/watch?v=YdEfst-LHaU&feature=youtu.be
그럼, 객관 근거를 바탕으로 서로 주장하면 될 일..
그리고, 중요한 건, 상고시기 환국의 남쪽 삼위산으로 간 반고의 조상도 환국의 같은 일원이었다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는 거..
즉,
오환(吾桓)건국이 최고(잴 오래됐다)라고,, 환단고기에 기록돼 있는데,
우리나라가 환국(桓國)의 역사를 기록한 서적이 있다는건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왜냐면, 중국 탐원공정보다 더 스케일이 크고 오래됐고 역사 헤게모니를 장악할수있으니까..
역사사실 찾기 6편.
고구려 국경 고죽국
송사(宋史) 외국열전(外國列傳) 고려(高麗)
[고려高麗는 본래 이름이 고구려이다. 고려는 우禹 임금이 천하를 '9주(九州)'로 나눌 적에 기주 땅에 속했고, 주나라 때에는 기자의 나라가 되었고 한나라 때엔 현토군이다. 고려는 요동에 있는데. 부여의 별종으로 평양성을 도읍지로 삼았다. 한나라, 위나라 이래로 항상 직공 職工하면서도 자주 변방을 침략하기도 하였다. 수양제는 두번이나 출병하였고 당태종은 친히 고려를 정벌하였으나 모두 이기지 못하였다. 그후 당 고종이 이적 장군에게 고려 정벌을 명하여 마침내 그 성을 함락시키고 그 땅을 나누어 군,현으로 삼았다. 당나라 말엽 중국이 어지러워지자 고려가 마침내 스스로 군장을 세웠다]
宋史
外國列傳 高麗
宋史註 卷四百八十七 列傳第二百四十六外國註 三
高麗, 本曰高句驪. 禹別九州, 屬冀州之地, 周為箕子之國, 漢之玄菟郡也. 在遼東, 蓋扶餘之別種, 以平壤城為國邑. 漢·魏以來, 常通職貢, 亦屢為邊寇. 隋煬帝再舉兵, 唐太宗親駕伐之, 皆不克. 高宗命李勣征之, 遂拔其城, 分其地為郡縣. 唐末, 中原多事, 遂自立君長.
사해지내에 구주가 있고, 천자는 중주(中州)에서 팔방을 제어하는 것이니, 양하지간(兩河之間)이 기주가 된다.
四海之內有九州 天子處中州而制八方耳 兩河間曰冀州
說苑·辨物
양하지간(兩河之間)은 황하굴곡지점 사이 U자 구간땅. 여러 문헌에 나옴. 즉, 산서성과 황하북부 하남성 지역에 해당함. 거기에 기자조선과 한사군이 있었다는 뜻임. 한사군지역이 고죽국지역.
http://www.newsroh.com/plugin/mobile/board.php?bo_table=cpk&wr_id=231
통일신라국경 고죽국
통일신라 최치원의 대당 국서 양위표(讓位表)
臣以當國。雖鬱壘之蟠桃接境。不尙威臨。且夷齊之孤竹連疆。本資廉退。矧假九疇之餘範。早襲八條之敎源。言必畏天。行皆讓路。盖稟仁賢之化。得符君子之名。故籩豆饁田。鍦矛寄戶。俗雖崇於帶劒。武誠貴於止戈。爰從建國而來。罕致反城之釁。嚮化則南閭是絶。安仁則東戶何慙。 신의 본국은 비록 (<풍속통(風俗通)>에 기록된 상상 속 동해상) 울루(鬱壘)의 반도(蟠桃: 큰 복숭아나무)와 접경이오나, 위력으로 대함을 숭상치 않고, 또 백이숙제의 고죽국(孤竹國)과 강토를 연하여 본래 청렴하고 겸양함을 바탕으로 합니다. 하물며,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정치 이념인) 홍범구주(洪範九疇)와 (주(周)나라 무왕(武王)시대 기자(箕子)가 조선(朝鮮)에 베푼) 팔조지교(八條之敎)를 이어받으니 말은 반드시 하늘을 경외하고(言必畏天) 길을 가다 마주치면 서로 길을 양보하는(讓路) 등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기록된 바,) ‘어진 이들의 교화(仁賢之化)’를 이어받아, (<산해경(山海經)>에 기록된 바,) ‘군자국(君子國)’라는 이름에 부합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국경 (철령-공험진 이남 )
https://www.youtube.com/watch?v=C5Q1gUuVqwU&t=802s
조선국경(철령-공험진 이남)
https://www.youtube.com/watch?v=7QiX-P289oI
https://youtu.be/twrS3N53WSQ 29:35~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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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해설 https://www.youtube.com/watch?v=rMPjIG8LuwM
상세해설 https://youtu.be/VlWNRrE5tbM ( 09:00 ~ 21:00 )
간도땅 회복해야하는 이유 03:40~
https://youtu.be/FfQYw2piIjo
간도는 왜 우리땅인가? https://aridasom.tistory.com/1135
역사사실 찾기 7편.
(스카핀 677-1호)
'"독도는 한국 땅" 일본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증거
https://news.v.daum.net/v/20200407161501992
역사사실 찾기 8편.
대마도 우리땅임을 일본이 인정한 증거.
https://youtu.be/gpqCueO9tEQ (04:40 ~ )
https://youtu.be/jpRDgDnmRaI
https://youtu.be/q-H9d0PleoA (01:1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346907
역사사실 찾기 9편.
김치가 중국 것이라는 논리와 속뜻.
https://youtu.be/w1EN3SIgcKc ( 38:40~49:11 )
남한이나 미국이 북한을 점령하기 전에 먼저 북한을 점령하여 승전국으로서의 지분을 요구할 것이다. 이 경우 북한 전역 내지는 최소한 북한의 평안남북도 함경남북도 등 북위 39~40도 이상을 완충지대로 삼는 것을 목표로 할 가능성이 크다.[2] 속칭 병아리(小鷄 : 샤오지) 계획이라고 불리우는 계획이 바로 이 핵심사항이다. https://thewiki.kr/w/%EB%B6%81%ED%95%9C%EB%B6%84%ED%95%A0
역사사실찾기10편
콩
https://youtu.be/TsaMN6534Z4?si=iYt8WisEnKBBNkMe
첫댓글 중국국명,갑골문, 제천문화, 제사문화 모두, 동이에서 비롯된거라는 사실..
중국이 땅뺏는 수법
https://youtu.be/B9KfN9r29IE 제1도련선, 제2도련선//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와 우리의 선택
https://youtu.be/MeRZNXT8duU 살라미전술; 인해전술, 왕서방식 사업, 땡깡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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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q-H9d0PleoA 대마도는 1870년 일본이 불법으로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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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9x4gxnOyZA 국사교과서는 조선총독부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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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k8HYCOr9fAg 모택동 왈, "당신들의 경계는 요하 동쪽인데, 봉건주의가 조선사람들을 압록강변으로 내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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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s4gqzomH8U 명도전 분포지역과 고조선 영역과 갈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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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것들(미국워싱턴 왕벚꽃나무, 쌀의 기원, 콩, 크리스마스트리 구상나무) https://youtu.be/C2fR-qVURh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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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lUaNwaVTi3M 영토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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