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시인의바다, 어부의 바다
이생진시인의 시집 - 그리운섬 우도에 가면
이 적 시인의 시집-바다가 된 그대에게
평론 : 전 기 철 <문학평론가/숭의여자대학교 문창과 교수>
한번 바다를 발견한 시인은 절대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그것은 풍장 떄문도 아니고 돌아오지못하는 선원의 넋 떄문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바다가 그들을 부르기 때문이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든지, 아니면 바다를 푸른 원초적인 색채의 향연으로 그리워하든지, 혹은 먼 이국을 그리는 노스텔자의 이미지때문이든지...
바다는 우리들을 부른다. 그렇다면 왜 바다는 우리들을 부를까? 바다는 소리와 색채의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근원이다. 다시 말하면 이 지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원시적 공간이다. 그러므로 바다는 우리들을 언제든지 삼켜 버릴 수도 있고 우리의 영혼을 끌어당길 수도 있다, 저 백경이나 만선의 광란을 보지 못했는가.
바다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남은 상징이다. 바다는 우리들에게 마지막남은 상징이다. 바다는 우리들의 본능과
근원이 살아숨쉬는 사원이다. 그러므로 한번 바다를 발견한 시인은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그들은 바다에서 자신의 영혼을 시험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바다를 발견한 시인들은 바다에서 자신의 영혼의 깊이와 색채와
음향을 시험해 보고 싶어한다. 바다에는 원초적인 영혼이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시인은 바다의 교태와 색채의 음향에 매료되어 바다에 이끌리기고 하고, 어떤 시인은 먼 과거 원초적인 시간에 자신이 살았다는 기억 떄문에 바다에 이끌린다. 전자가 이생진 시인이라면 후자가 이 적 시인이다.
그러나 둘 다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해 이끌린 것은 한가지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둘 다 바다에의 그리움을 억제하지 못하고 바다로 떠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떄문이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바다만큼 의 거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한쪽이 혼을찾아 바다로 갔다면,다른 한쪽은 어머니의 땅을 찾아 바다로갔기 떄문이다.
그리로 가면 만난다
그렇지만 너도 넋으로 가야한다
이생진의 그리로 가면 만난다 일절
밤바다의 희망이
파도같은 맥박으로
쿵덕거리며 휘몰아쳐오는
그 처절한 그리움을
만선의 기쁨으로 나의고향 부둣가에
살아 헐떡거려다오
이적의 남해바다3-어부의노래 일절
위 두 시를 비교하여 보면 두 시인의 거리와 그리움의 차이를 변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바다와 어부의 바다가 두 시인의 거리이다. 그 러나 그 거리는 바다의 부름이라는 커다란 테우리 안에서는 한낱 티끌 정도에 불과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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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 시인은 바다라기보다는 섬에 관심이 있는지 모른다. 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은 그 동안 꾸준히 작업해 온 섬에 관한 혼의 보고서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섬은 반드시 바다의 생명력으로 솟아 있기 때문에 순전히 육지와 같은 땅의 개념이 아니다. 그 섬은 유치환의 시처럼 육지를 그리워하는 섬이 아니라 육지에서 그리워 하는 섬이다.그렇다면 이생진 시인 은 왜 섬을 찾는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섬에 가면 자신의 원초족인 넋을 만나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들의 혼을 만나기 떄문이다. 섬은 그냥 섬이 아니다. 외딴, 서글픈 시적 영상으로서가 아니라 "비로서 버려진 것이 자유롭다는 것을"(야생화) 알기 떄문이다. 다시 말하면 느낌이 있는섬,곧 자신의 혼의 감각이 눈뜨는 공간이이다.
그리하여 그 자유로운 혼의 나라, 섬에서 시인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꽃이 언제 묻고 대답하더냐
공연히 사람들만 묻고 대답하다가
말다툼했지
꽃같이 살려면 일절
스님 방은 따뜻한데
부처님 방은 썰렁하다
그리고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신다
어느절간 일절
저녁놀은 색이되고
색은 감이 되어
어디서 꿩이 음으로 색칠한다
산호 백사와 저녁놀 일절
위와 같은 낭만적 시혼은 그의 시집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구절이다. 이생진 시인은 바다에서 낭만과 사랑과 순수를 발견하고 시를 찾는다. 다시말하면 그에게 있어서 섬은 시이다. 그러므로 그가 시인일 수 있는것은 섬이 있기때문이다. 섬이란 그에게는 원초적인 상상의 세계이며, 근원으로서의 시이다. 그의 산문집 걸어 다니는 물고기 에서 보듯 그는 물고기로서 섬의 기슭에서 떠나지 못한다. 그곳에서만 그는 시인으로 살아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낭만적 바다와 섬에는 생활의 끈끈함이 없다. 먼 도시에서 혼에 이끌려 섬으로 왔기떄문에 바다에 배 한번 띄어보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가야하고, 또한 시퍼런 물에 발 한번 담가 보지 못하고 나비처럼 더 섬 주위에 떠 있다가 날아가 버린다.
우도로 가는 길은
숨겨둔 꽃을 찾아가는 나비처럼
날아갈 것만 같다
배 타면 마음이 설렌다 일절
그러므로 그가 바다에서 발견한 삶이란 고작 이난영이나 김진사,4.3의 설화 정도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의 삶도 그 인물들의 삶도 아닌 그의 혼이 만난 또 다른 혼에 다름 아니다. 그 혼은 그의 그릇을 비우게 할지 는
모르지만 삶이 없어 허망하기만 하다. 그만큼 그의 섬은 병적이기까지는 않지만 바보처럼 순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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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에 비하여 이 적에게 있어서 바다는 곧 삶이다. 그러므로 그의 바다는 젊음의 바다이며 어머니의 바다이며, 친구,혹은 누이동생의 바다 이다. 다시 말하면 어부의 바다는 낭만도 혼도 없다.
오직 삶의 끈끈함이 살아 있고, 죽음과 생명이 교차하는 어둠의 바다, 싸움터의 바다이다. 즉 바다는 그의 인생이다. 이 시집 이 바다를 주제로 하면서도 그의 인생 역정을 담고 있는 자서전과 같은 것도 이런 이유 떄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집 바다가 된 그대에게 는 싸움 ,멸치잡이,작부집,원양어선, 돈 등으로 처절하게 삭아져가는
한 젊음 을 그리고 있다. 어부가 꿈이고, 그 꿈을 통해서 허물벗기를 하려던 그에게 바다는 아픔만을 안겨주는 한의 공간이 뿐이다.
더 이상 조양호를 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물을 던지고 아무리 그물을 끌어올려도
조양호에선 더 이상의 희망을 찾을 수 없었어
늦가을 햇살이 하얗게 까무라치는 오후
선원 셋을 거느리고 무일푼 주머니로
멸치배 선원은 꿈조차 꿀 수 없는 니나노 작부집을 찾았어
- 어부기행11-구룡포 해남집 일절
브릿지 고올을 내려칠 때 배는 밑바닥에서
쩌엉 저승사자 울음소리를 토하며 20대 젊음인 나는
도다리 새끼마냥 갑판 위에 납작하게 내동댕이쳐지고
어부기행16-그 해 겨울의 기억 일절
이런 고통으로서의 바다를 체험한 현장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그 바다에서 도망쳐 나온다. 그는
"떠나도 아무도 잡아줄 사람없던/그 쪽빛바다"(귀어도2 일절)를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러나 그는 떠나는 순간
"돌아가야 한다는 물음/내 생의 화두였음을"(귀어도3일절)꺠닫고 그 의 고향 바다 주위을 맴돈다. 그는 도시에서 근근히 살아가며 고향을 그 리워하며 바다의 환영에 사로잡힌다. 숭어잡이 떠나 돌아오지 않은 친구에의 그리움에 아파하고(귀어도12일절) 그리하여 급기야는 고향 바다에의 환청과 환각에 빠져 방황한다.
바다로 가고 있다네
(중략)
그 바다로 가지 않으면
세상이 쓰러질 것처럼
세상이 비틀거리고 있다네
-귀어도15 일절
어디에선가
바다 새 소리 들리는지
어디에선가
파도소리 뗴지어 몰려오는지
당신의 바닷길을 찾는가보네
-귀어도17일절
그러다가 결국 남해바다 연작에서는 고향 바다에의 추억 속에서 살아가다 "남해바다를 지키는/지킴이가 되리라/희망이 되리라"(남해바다12일절) 다짐한다. 이는 "바람아 너는 아느냐/ 너의 가슴팍에 안겨/흘러온 오십년 세월"(남해바다21일절) 떄문이다.
이 적 시인의 바다는 결국 어부의 바다이며,삶의 바다이다. 어부의 바다 이기 떄문에 그는 바다로의 귀향을 꿈꾼다. 그리하여 그는 바다를 도시 속으로까지 넓혀 왔다. 그러나 그 바다는 너무 귀향에 초점이 맞혀져 안타깝다.그러므로 시는 떄로 산문으로 향한 길위에 놓여 있는 위태로움 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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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시인을 부른다. 그 바다는 원초적인 혼과 삶을 담고 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다를 그리는 시인은 삶의 근원을 찾아 떠나나다. 그러므로 그들의 혼은 불안하다. 도시에서 그들은 처절한 방황 속에서 좌절할것이기 때문이다. 방화 속의 좌절로 인해 그들은 다시 바다를 찾을 것이다. 한 시인은 시집을 한 권씩 묶으며
바다로 돌아가고, 또 한 시인 은 동박새 처럼 바다로 가야 자신의 인생이 있는 듯 돌아가리라 를 화두처럼
되뇌인다.
바다는 아직도 미지의 공간이다. 인간의 마지막 남은 원초적 헛간이다. 그 헛간에서 우리들은 마음의 양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바다는 보다 과감히 탐구 되어야 한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바다는 너무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장자에 보면 바다는 아무리 물을 흘려보내도 홍수지지 않은 어머니라고 했다. 그 바다의 시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2000년 계간 <해양문학> 가을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