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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소설, 그리고 연극 <동백꽃 부인>
대본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초연 1853년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
배경 1700년대 경 파리와 그 근교
<2004.11.18.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 초연 버전 / 146분 / 한글자막>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로린 마젤 지휘 / 로버트 카슨 연출
비올레타 발레리.....파리의 고급매춘부................파트리차 초피(소프라노)
알프레도 제르몽.....시골 출신의 부르주아 청년.....로베르토 사카(테너)
조르주 제르몽........알프레도의 아버지................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바리톤)
플로라 베르부아.....비올레타의 친구...................외페미아 투파노(메조소프라노)
안니나..................비올레타의 하녀...................엘리자베타 마르토라나(소프라노)
뒤폴 남작..............비올레타의 후견인................안드레아 포르타(바리톤)
가스통 자작...........알프레도의 친구...................살바토레 코르델라(테너)
그랑빌 박사...........비올레타의 주치의................페데리코 사치(베이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라 트라비아타>는
안나 네트렙코라는 21세기 HD급에 걸맞는 프리마 돈나 를 배출하면서
라 트라비아타 영상물의 절대 강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박종호와 함께하는 유럽오페라하우스 명연시리즈' 2차분으로 발매된 라 페니체 극장의 이 공연은
가장 먼저 보아야 할 영상물 수준, 즉 텍스트급 수준의 평가를 받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되는, 한번은 보고 가야할 레퍼런스급 수준은 되어 보입니다.
사실적인 바탕위에 현대적인 느낌을 부분부분 가미한 무대미술만큼은
오페라 초심자가 이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서는 잘츠부르크 버전보다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특히 퇴폐.타락을 강조하고자 시종일관 노골적으로 지폐다발을 소품으로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로린 마젤의 오케스트라와 출연 가수들 모두 안정된 연주와 연기를 보여주는 가운데
특히 3막에서 소프라노 파트리차 초피가 보여준 비올레타의 창백함, 비통, 안타까움은
여타의 공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비장미'를 연출하였습니다.
아울러 실패한 초연 당시의 악보를 그대로 사용한 공연이라는 점에서 희소가치까지!
30년도 더 된 오래전, 서면에 있었던 개성중학교에서는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10분 동안 '명상의 시간'이라는 게 있었는데,
클래식 명곡 선율에 바위, 생명의 서, 승무, 국화옆에서 등 시를 낭송한 음반을 틀어주곤 했습니다.
물론 당시의 우리에게는 명상의 시간이 아니라 낮잠 시간이었습니다만...ㅎㅎㅎ
그때 들었던 음악 가운데 <라 트라비아타>의 전주곡, 특히 '사랑의 동기' 선율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그 선율을 제가 알았을 리는 만무하고...몇십년 뒤인 삼십대 중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최소한 일 주일에 한번을, 그것도 3년 동안 인이 박이도록 들었으니...
오랜 시간이 흘러 오페라 하이라이트 음반에서 그 선율을 듣는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 참고로...
뒤마 피스의 소설 제목은 La Dame aux Camelias...말 그대로 동백꽃부인, 혹은 동백아가씨 정도인데,
태평양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오면서 '춘희椿姬'라고 번역된 모양입니다.
옥편에 춘椿은 참죽나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어떻게 동백나무가 되었는지는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항상 동백꽃을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소설의 제목은 자연스럽게 동백꽃 부인이 되었을 겁니다.
뒤마 피스의 소설 <동백꽃 부인>을 원작으로 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La Traviata>는
traviata가 '타락하다'라는 뜻이니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타락한 여인'이 되는 셈입니다.
감각적인 표현을 즐기는 일본의 번역과, 그대로 수입할 수 밖에 없었던 우리의 시대적 한계때문에
원작의 제목과 오페라의 제목이 오래도록 혼재해 온 상황이다 보니,
동백꽃이고 머고 간에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는 '라 트라비아타=춘희'가 어느덧 정착되어버린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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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오페라 에센스 55, 박종호> 159 ~ 160쪽
오페라의 여주인공 비올레타는 파리 사교계의 인기 있는 코르티잔으로 화려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몇몇 귀족의 애인 역할만 했을 뿐, 참된 사랑을 맛보지 못했다. 대신 건강을 돌보지 않는 생활로 인해 젊은 나이에 이미 폐결핵을 깊이 앓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모한다고 자처하는 청년 알프레도를 만난다. 처음에 그녀는 철없는 청년의 사랑을 외면하지만, 알프레도의 구애는 열렬하기만 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마지막 사랑과 인생을 모두 그에게 걸어 본다. 그리하여 그녀는 파리에서의 부귀와 환락을 청산하고, 두 사람은 시골로 가서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민다.
하지만 꿈같은 행복은 겨우 세 달이었다. 아들의 소문을 듣고 지방에서 올라온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비올레타에게 그녀의 과거를 이유로 헤어질 것을 종용한다. 결국 자신의 고집만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비올레타는 다시 사교계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떠나는 이유를 알프레도에게 말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삼킬 뿐이다. 그리하여 알프레도는 그녀를 배신자로 오해한다. 파리로 올라온 알프레도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나와 3개월을 살아 주었는데, 미처 화대花代를 내지 못했소. 이제 그것을 갚겠소"라며, 그녀의 면전에 돈을 던진다. 그녀는 쓰러지고 영원히 사교계를 떠난다.
낙심한 비올레타는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는데, 그녀에게 남은 것은 빈곤과 결핵뿐이다. 마지막에 그녀는 다시 돌아온 알프레도의 품에 안기지만, 늘 그렇듯이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다만 그의 품에서 숨을 거두는 것이 그녀에게 허용된 유일한 위안이었다.
=== 프로덕션 노트 === <영상물 내지 해설, 박종호>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우리나라에서 인기도 좋고, 어쩌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작품이라는 것이 결코 장점이 될 수만은 없다. 이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나 감상 없이, 잘못된 정보나 그릇된 선입관 같은 것들이 감상자들의 머릿속을 이미 채우고 있을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주변의 <라 트라비아타>라는 것이 어쩌면 노란 가발을 늘어뜨리고 레이스가 들어간 드레스에 장갑과 부채를 든 채 노래하는 것이라는 선입관이 적지 않게 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이제 <라 트라비아타>는 사랑에 버림받은 여성을 그린 것이 아니라, 체제와 관습으로부터 배척받는 소수 계층을 그린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미 유럽의 극장들은 <라 트라비아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많은 경우를 무대에 실현하여, 뒤마 피스 시대의 파리뿐만이 아니라 베르디 시대의 사회상 그리고 우리의 현실도 보여주려고 애써왔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20여종의 <라 트라비아타> 영상물들 중에서 단연 이 라 페니체 극장의 프로덕션은 우리가 봐야할 최우선 순위에 있는 중요한 연출이다. 베로나의 아레나 디 베로나 야외무대의 그레이엄 비크, 베를린 코미쉐 오페라 극장의 한스 노이엔펠스, 뮌헨 국립 오페라극장의 귄터 그래머 등의 프로덕션 등이 DVD로 나와 있지 않은 지금, 이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의 영상물은 최고의 프로덕션이며 가장 문제적 연출이라고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베네치아에서 올려지자마자 그 해 일본의 도쿄에서 수입하여 특별 공연을 할 정도로 당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프로덕션의 가장 큰 특징은 연출 이전에 음악일 것이다. 이것은 흔히 우리가 듣는 악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잊혀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세계 초연되었던 당시의 초연판을 사용하고 있다. 이 극장에서 올려졌을 때 그 결과가 실패로 끝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였지만, 사실 음악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초연을 한 라 페니체 극장은 자신의 자존심을 걸고 초연판을 올린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판본과는 몇 군데 다른데, 특히 2막 1장의 생소함은 도리어 신선하게 다가온다.
우리 시대 최고의 연출가 로버트 카슨은 이 연출에서 주인공 비올레타가 코르티잔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강조한다. 물론 코르티잔이 지금의 창녀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들도 돈을 대가로 하여 사랑을 하였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 앞에서는 동일하다고 연출가는 바라본다. 그러므로 무대에서 현대 창녀의 여러 모습을 적나라하게 펼친다. 카슨은 비올레타의 원죄를 강조하기 위해서 무대 위에 내내 돈을 보여준다. 2막 1장의 돈 밭에서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은 돈을 받은 과거의 행위에서 결코 그녀가 벗어날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 외에도 2막 2장의 현대적 카바레의 모습이나 3막의 극장 뒤에서 벌어지는 그녀의 죽음의 장면 등은 카슨이 범상한 연출가들과는 왜 차별화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게다가 음악적으로는 노대가 로린 마젤의 승리다. 그의 극적인 지휘와 뚜렷한 명암의 대비는 비극성을 더욱 강조한다. 파트리차 초피는 아마도 2000년대 초반 10년 동안 이탈리아에서는 최고의 비올레타임에 분명하다. 그녀의 탁월한 가창과 연기는 시종 극을 이끌어간다. 테너 로베르토 사카와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 역시 젊지만 노련하고 빈틈없는 실력의 가창을 보여준다.
=== 작품해설 === <영상물 내지 해설, 박종호>
라 트라비아타
우리 모두가 버린 여인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오페라가 <라 트라비아타>일 것이다.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도 이 작품이며, 베르디의 작품들 중에서 <리골레토>와 함께 국내에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진 것도 이것이다. 여전히 많은 관객들이 <라 트라비아타>를 좋아하고 있는 것을 보며, 또한 이 점은 제작자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하지만 <라 트라비아타>처럼 그 초점이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에만 집중적으로 맞추어져 있는 것은 어쩌면 베르디 오페라들 중에서 도리어 독특하고 흔치 않은 경우에 해당된다. 즉 베르디 초기의 작풍은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경향이 짙다. 다시 말하면 이태리인들의 애국심과 단합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간의 베르디가 가장 강조했던 미덕이란 정의, 우정, 신념, 애국 이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베르디가 갑자기 그답지 않게 사랑이라는 주제에 매달린 것이다. 이것에는 분명 그의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베르디는 첫 부인이었던 마르게리타 바레치와 일찍 사별한 이후 오랫동안 독신생활을 해 왔지만, 그의 마음에는 유명 소프라노 출신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가 큰 의지가 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진정 사랑했지만, 계속 이어지는 전 장인 바레치와 베르디의 깊은 신의관계나 주위의 시선과 사회의 관습 등으로 둘의 사랑은 여전히 힘겹게 이어오고 있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그녀와 함께 하기도 쉽지 않았고 결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베르디는 스트레포니와 함께 잠시 파리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처럼 사람들을 피해 두 사람만이 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파리에서 그들은 유행하던 연극을 보러 갔는데, 그것이 뒤마 피스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쓴 <동백꽃 부인>이었다. 그 연극의 '사랑했음에도 주변의 상황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이야기'에 베르디는 감동하였다. 스트레포니의 회고에 의하면 그는 호텔방에 돌아와서도 잠을 이루지 못햇다고 한다. 베르디가 연극의 내용이 자신들의 처지와 무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태리로 돌아온 베르디는 다음 해에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올릴 오페라를 그 연극으로 정하고,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로 하여금 뒤마 피스의 원작을 각색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 오페라는 베르디의 최초의 연애 드라마이기도 했지만, 사실 그 시대의 사회의 모순과 편견을 비판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그려 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그러므로 어쩌면 이 작품은 약 40년 후에 불같이 일어나게 되는 베리스모 오페라의 효시와도 같은, 현실 정신으로 충만한 실험적인 오페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자신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 베르디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자극을 주길 원했다. 즉 그는 드물게 동시대, 다시 말하면 1850년대를 배경으로 한 당시의 현대 오페라를 만든 것인데, 이 점이 공연 실패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잘 알려진 재미있는 이야기는 주역 여가수가 너무 뚱뚱하여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원작의 주인공의 이미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것도 틀린 이유는 아니지만, 이것이 실패한 원인의 모든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대신 당시의 현대를 무대로 하여 일어나는 현실참여적인 주제가 오페라하우스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낯설었으며, 관객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초연은 대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 후 베르디는 하는 수 없이 시대를 1700년대로 바꾸고 가수진도 교체하고 곡도 약간 수정하였는데, 결국 같은 베네치아의 지금은 없어진 다른 극장인 산 베네데토 극장에서 올려진 재공연은 크게 성공하였다.
<라 트라비아타>는 그동안 국내에서 흔히 <춘희(椿嬉)>라는 제목으로 불리어져 왔었는데, 뒤마 피스의 원작 <동백꽃 부인 La Dame aux Camelias>을 일본 사람들이 그들식으로 번안한 것이다. 하지만 베르디는 이태리어로 '버려진 여자' 또는 '정도(正道)를 벗어난 여자'란 뜻인 현재의 제목으로 고쳐서 오레라를 올렸다. 그러니 <춘희>란 제명은 원작의 번안으로는 참신하지만, 베르디의 오페라의 제목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이다. <춘희>가 일본색이 짙어 싫다는 분들도 있지만, 원작을 번역한 것으로 본다면 틀린 제목도 아니며 도리어 원작자의 향취가 느껴지고 부르기도 쉬워서 나는 애용한다.
어쨌거나 원작은 프랑스의 문호 알렉상드르 뒤마의 서자(庶子)였던 뒤마 피스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파리 사교계의 고급 매춘부 마리 뒤플레시스와의 씁쓸한 추억을 되살려 쓴 자전적인 소설이었다. 원작 소설에 보면 여주인공 마르그르트 고티에는 자신의 가슴에 동백꽃을 꼽는 것으로 유명하여, 별명이 '동백꽃 부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뒤마 피스 역시 단순히 실연의 아픔만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당시 파리 사교계의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향락 문화와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황금만능주의, 가족이기주의, 그리고 진실성이 결여된 인격들을 한꺼번에 고발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페라의 대사 중에 비올레타가 "이 버려진 여자의 묘지에는 한 송이의 꽃도 뿌려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통렬하게 탄식하는 대목이 있다. 실제 파리의 공동묘지에는 뒤플레시스의 묘가 있는데, 그 대사에 감동한 세계의 오페라 팬들로부터 그 묘비에는 항상 꽃다발이 끊이는 법이 없다고 한다. 바로 <라 트라비아타>의 감동을 웅변해주는 예일 것이다.
이 오페라를 공연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여주인공 단 한 사람의 역량이다. 이렇게 여가수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경우는 베르디의 전 오페라들을 통틀어도 드문 경우로서(하지만 베르디 이전과 이후의 작곡가들에게서는 많이 발견된다). 베르디 오페라중의 거의 유일한 '프리마 돈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대에서 프리마 돈나는 오페라의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시종 무대를 떠나지 않고 노래해야 하는데, 화려한 분위기에서부터 시작하여 강인한 부분을 거쳐 처절한 비탄의 흐느낌까지를 모두 연기해야 한다. 실로 책임과 영광이 한 소프라노에게 모두 주어지는 '꿈의 대역(大役)'인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가 그녀의 활동기 종반 큰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녀는 꼭 <라 트라비아타>나 <노르마>로만 재기하겠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아무나 부를 수 없는 역을 부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만큼 <라 트라비아타>는 소프라노의 오페라이고, 성공의 여부는 그녀의 양어깨에 달려있다. 그 때문에 그것이 도리어 <라 트라비아타>를 고집하던 칼라스가 결국 재기하지 못했던 원인이기도 했던 것이다.
칼라스가 스칼라 극장에서 부른 <라 트라비아타> 실황은 지금도 음반의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스칼라의 비올레타는 그녀의 것이었다. 그때까지의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3막에서야 관객들이 우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칼라스의 공연 때는 그녀의 연기에 이미 2막 1장에서 객석이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칼라스가 은퇴한 이후 스칼라에서는 다시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칼라스의 공연을 기억하는 이들이 아직도 밀라노에 살아있는 한, 아무도 감히 그 무대에서 비올레타를 부를 수 없었다. 몇몇 소프라노가 그것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하지 않은 것만 못했다. 그후 스칼라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리카르도 무티가 베르디의 전 작품을 새 프로덕션으로 올리겠다는 장기계획을 구상했고, 그 일환으로 1992년 드디어 무디는 티치아나 파브리치니라는 신인을 내세워 <라 트라비아타>를 성공시켰다. 칼라스 이후 스칼라에서 <라 트라비아타>가 사라진 지 37년 만에 레퍼토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럼으로 <라 트라비아타> 감상은 공연이든 음반이든 소프라노가 선택과 판단의 초점이 된다. 이 역은 기교와 파워, 카리스마와 가냘픔을 모두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실로 프리마 돈나의 선정이 힘든 작품이다. 많은 소프라노들이 언젠가 비올레타를 부르고 싶어 하지만, 좋은 실연은 흔치 않다. 아직까지도 이 역의 평가에 50년 전의 가수 칼라스가 기준이 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콜로라투라에서부터 드라마틱 가수까지 모두 이 역에 욕심을 내지만, 소리가 너무 가벼운 경우보다는 역시 중간 정도인 리릭에서 스핀토 쯤에 이르는 목소리가 가장 어울린다. 그러므로 신인들에게는 무리일 수 있는데, 원래 마르그리트 고티에가 20세 초반의 여성을 그린 것이므로 외모와 이미지도 간과할 수 없다는 딜레마가 있다. 20대의 미모와 파워를 동시에 갖춘 리릭 스핀토......오페라 극장의 영원한 숙제이다. 그래도 다행히도 최근에는 세계의 여러 극장에서 적지 않은 소프라노들이 이 역을 부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1995년 런던 코벤트 가든에서 안젤라 게오르규가 29세에 이 역을 성공하여 스타덤에 올랐으며, 노장중에는 마리엘라 데비아, 에디타 그루베로바, 보다 젊은 가수 중에는 루스 앤 스웬슨, 주지 데비누, 실비 발레이르, 크리스티나 갈라르도 도마, 안나 네트렙코, 스테파니아 본파델리, 파트리차 초피 정도라면 마음 놓고 극에 몰입할 만한 현역의 일류 비올레타들이다.
=== 작품 해설 === <다음 클래식 백과 / 이진경 글>
라 트라비아타
주세페 베르디
베르디의 다른 오페라와 달리 남녀의 순수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 〈라 트라비아타〉는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된 오페라이다.
초연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오페라 전체를 모르더라도 스토리나 몇 개의 아리아를 알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오페라이다. 그런데 〈라 트라비아타〉의 초연은 흥행 실패였다. 실패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비올레타 역을 맡은 살비니 도나텔리가 비운의 폐결핵을 앓는 여자주인공 역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담은 〈라 트라비아타〉의 배경이 당시 관객들에게 낯설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주인공의 신분이 당시의 도덕에 위배된다는 점도 대중의 반감의 원인이었다.
초연의 실패로 베르디는 무대의 배경을 1700년대로 바꾸고 가수진을 교체하며, 곡을 약간 수정하였다. 이후 베니스의 산 베네데토 극장에서 수정된 작품으로 재공연을 하였고, 〈라 트라비아타〉는 비로소 흥행에 성공한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 뒷면에는 ‘부도덕’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로 〈라 트라비아타〉의 원작 《동백꽃 아가씨》는 영국에서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거부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라 트라비아타〉는 1856년 영국에서 초연을 가졌지만, 비평가들의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전 유럽의 관객들은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베르디의 오페라에 열광했으며,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베르디의 중기 오페라 3대작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담은 아리아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버림받은 여자’란 뜻이다. 원작인 뒤마의 《동백꽃 아가씨》는 뒤마가 당시 파리의 고급 매춘부인 마리 뒤플레시스를 모델로 쓴 소설이다. 소설의 성공 이후 뒤마는 5막짜리 희곡을 완성시켰으며, 1852년 첫 공연을 가졌다. 베르디는 2년 정도 파리에 머문 적이 있는데, 이 때 뒤마의 《동백꽃 아가씨》를 보고 난 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오페라 작업에 착수하였다. 당시 베르디는 마르게리타 바레치를 일찍이 여의고 소프라노 가수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장인과의 신뢰와 당대의 관습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인정받지 못했다. 주위의 상황으로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뒤마의 《동백꽃 아가씨》를 본 베르디는 본인이 처한 현실을 극에 투영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비올레타라는 인물이 과거 화려한 가수였던 스트레포니의 모습에 투영되어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
소프라노 가수의 꿈 비올레타
〈라 트라비아타〉의 성공은 비올레타의 역을 맡은 가수의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비올레타가 전막에 걸쳐 등장하며, 각 막에 따라 요구되는 성악 기량과 연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방에서 연기되는 장면이 주를 이루는 이 오페라는 오로지 비올레타의 가수로서의 역량과 연기력으로 극을 이끌어 가야 한다. 거기에 비올레타는 복잡한 감정을 연기해야 하는 인물이다. 알프레도에 대한 혼란스런 마음과 사랑의 떨림,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비운의 여주인공까지 다채로운 성격을 연기해야 하는 것으로 어려운 역할이다. 특히 알프레도에 대한 사랑을 깨닫는 ‘아, 그인가’와 이어지는 곡 ‘언제나 자유롭게’는 오페라에서 비올레타의 흔들리는 마음이 가장 잘 표현된 중요한 장면으로 가수의 연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장면이다. 여기에 더해 10분가량 연속으로 아리아-레치타티보-카발레타를 노래해야 하는 부분은 가수가 기교와 파워까지 겸비해야만 가능한 장면이다. 디가에타니는 그의 저서 《오페라의 초대》에서 비올레타 역에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스핀토 소프라노, 드라마틱 소프라노가 모두 요구된다고 하였다. 그 만큼 비올레타 역은 어려운 역이면서도, 소프라노 가수에게 자기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역인 것이다.
버림받은 여자의 헌신과 사랑
파리 고급 매춘부 비올레타는 파티에서 순진한 청년 알프레도를 소개받는다. 1년 후, 알프레도는 1년 전부터 그녀를 마음에 담았다며 구애를 하지만, 비올레타는 이를 거절한다. 한편, 비올레타는 홀로 있던 중 알프레도에 대한 혼란스런 본인의 마음을 깨닫는다. 결국 비올레타는 파리의 생활을 청산하고 알프레도와 동거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알프레도의 부재 중 찾아온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은 아들의 결혼을 이유로 알프레도를 떠나라고 비올레타를 설득한다. 제르몽에게 설득된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떠나지만, 알프레도는 이에 배신감을 느낀다. 파리의 파티장에서 비올레타를 만난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심한 모욕을 준다. 충격을 받은 비올레타는 쓰러지며, 사람들은 모두 알프레도를 비난한다. 시간이 흘러 홀로 남은 비올레타는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고 제르몽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는다. 모든 사실을 알프레도에게 밝혔다는 제르몽의 편지에 비올레타는 이미 늦었음을 알고 슬피 운다. 뒤 늦게 찾아온 알프레도, 두 사람은 서로의 사랑을 노래하지만, 비올레타는 곧 알프레도의 품에 쓰러져 생을 마감한다.
1막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2중창, ‘축배의 노래(Libiamo ne' lieti calici)’
파티 참석자들은 파티의 흥을 돋우기 위해 알프레도에게 노래를 청하고 이에 알프레도는 〈축배의 노래〉를 부른다. “마시자, 마시자”로 시작하는 흥겨운 리듬의 〈축배의 노래〉는 1절은 알프레도, 2절은 비올레타가 부른다. 그런데 동일한 선율의 1절과 2절의 가사 내용은 전혀 다르다. 알프레도는 진실한 사랑을 찬양하지만, 비올레타는 사랑은 덧없으니 지금 순간을 즐기자고 상반된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1막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2중창,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Un dì, felice, eterea)’
몸이 좋지 않아 홀로 휴식을 취하는 비올레타의 근처에서 알프레도는 서성인다. 알프레도는 감미로운 선율로 비올레타에게 1년 동안 연모했다며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사랑의 감정이 낯선 비올레타는 자신은 사랑을 모르니 잊어달라며 알프레도의 구애를 거절한다. 그러나 2중창에서는 알프레도에게 흔들리는 비올레타의 마음이 장식적으로 오르내리는 선율로 표현되고 있다.
1막 비올레타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 ‘아, 그인가...언제나 자유롭게(Ah, fors'è lui... Sempre libera)’
알프레도에 대한 비올레타의 혼란스러운 마음과 사랑의 감정과 사랑의 몽환에서 현실로 돌아와 부르는 두 개의 노래이다. 카바티나 ‘아, 그인가’는 “이상해”라는 가사로 시작하면서 비올레타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기쁨에 떨리는 마음을 노래하면서 끝난다. 비올레타의 수심에 찬 아리아에 간간히 흘러나오는 목관의 선율이 혼란스럽지만 사랑을 깨닫는 떨리는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어 비올레타는 갑자기 현실로 돌아와 이 감정이 모두 쓸데없다며 전처럼 즐겁게 살아갈 것을 노래하는 카발레타 ‘언제나 자유롭게’를 부른다. ‘아, 그인가’의 서정적인 선율과 달리 발랄하고 기교적인 선율로 자유롭게 즐기겠다고 노래한다. 자유를 노래하는 발랄한 선율 중간에 사랑의 감미로움을 찬양하는 알프레도의 노래가 들려와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대립되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카바티나 ‘아, 그인가’와 높은 고음과 화려한 기교가 요구되는 ‘언제나 자유롭게’의 대조는 소프라노의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아리아이다.
2막 제르몽 아리아,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Di Provenza il mar, il suol chi dal cor ti cancellò?)’
알프레도와 헤어지라는 제르몽의 설득에 비올레타는 알프레도를 떠나면서 그에게 편지를 남긴다. 편지의 내용은 뒤폴 남작에게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이 편지를 보고 좌절하는 알프레도에게 제르몽은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를 부르며, 프로방스를 기억하며 예전으로 돌아가자고 알프레도를 설득한다. 부드러운 선율로 알프레도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는 이 아리아는 바리톤 아리아의 대표격으로 꼽힌다.
3막 비올레타의 아리아, ‘지난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 bei sogni ridenti)’
죽음을 기다리는 비올레타가 제르몽에게서 온 편지를 읽은 후, 알프레도가 진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녀에게 돌아올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병에 걸린 비올레타는 이미 늦었음을 비통한 심정으로 노래한다. 가사는 사랑도 없고 자신의 무덤에는 꽃이 피지 않을 것이라는, 쓸쓸함과 비운의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래는 끊어질 듯하면서 이어지는 선율로, 오보에 선율과 어우러져 죽음에 임박한 비올레타와 비극적 운명이 잘 표현되어 있다.
3막 비올레타와 알프레도의 2중창, ‘파리를 떠나서...영원한 이별이여(Parigi, o cara, noi lasceremo... Gran Dio!)’
두 사람이 재회를 기뻐하며 부르는 2중창의 ‘파리를 떠나서’는 왈츠풍의 선율로 파리를 떠나서 함께 살자는 희망찬 내용을 담고 있다. 알프레도의 선창에 이어 비올레타도 행복한 미래를 노래한다. 그러나 이 행복한 2중창은 비올레타의 고통에 찬 비명으로 끝난다. 비올레타의 죽음을 눈앞에 둔 현실에 절망하는, 두 연인의 비탄에 빠진 감정이 표현된 2중창이 이어진다. 절망에 빠진 비올레타는 격렬하게 일어나 하느님께 자신의 꿈이 헛되었음을 절망스럽게 노래하며, 알프레도는 비올레타에게 절망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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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09년 12월 7일자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3막 4장. 뒤마의 소설 [동백 아가씨](1848)를 소재로 한 오페라
1853년 작곡, 동년 3월 6일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연된 유럽 오페라는 어떤 작품이었을까요? 오늘날까지 전 세계 관객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였답니다. 1948년에 명동 시공관에서 [춘희 (椿姬 : 동백 아가씨)]라는 제목으로 초연되었습니다. ‘트라비아타’란 ‘길을 잘못 든 여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 비올레타 발레리를 칭하는 표현인데요, 비올레타의 극중 직업이 코르티잔(courtesan, 특정 상류사회 남성의 사교계 모임에 동반하며 그의 공인된 정부(情婦) 역할을 하던 여성으로 기생이나 게이샤처럼 시작(詩作)과 가무(歌舞)에 능해야 했고, 시사적 지식과 교양을 갖춰 상류사회 남성들의 대화 상대로도 손색이 없어야 했다)이기 때문에 이런 별칭이 붙었습니다.
사회적 약자, 상류사회의 위선을 소재로 삼은 당대의 문제 오페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소설 [동백 아가씨]를 토대로 한 것인데요, 뒤마의 원작소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실제로 한때 뒤마의 연인이었던 파리 사교계의 코르티잔 마리 뒤플레시(1824-1847)를 모델로 삼은 인물입니다. 한동안 열렬히 숭배하며 사귀던 마리와 헤어진 2년 뒤에 뒤마는 나이 스물셋의 마리가 폐결핵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녀를 생각하며 [동백 아가씨]를 썼습니다. 죽은 마리가 동백꽃을 각별히 좋아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지요. 베르디 오페라의 남자주인공 알프레도는 결국 바로 뒤마 자신인 셈입니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1막 초반에 나오는 ‘축배의 노래(Brindisi)’입니다. 비올레타와 그녀를 남몰래 흠모해온 청년 알프레도가 파티에서 처음 만나 함께 부르는 이중창이죠. 국가 경축행사나 TV음악회에 자주 등장하는 노래지만, 사실 내용은 좀 퇴폐적입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의 이탈리아어 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청춘의 피가 끓어오르는 동안 삶의 쾌락을 즐기자는 내용이거든요. 그도 그럴 것이, 이 파티는 정상적인 파티가 아니라 파리 상류사회 남자들이 모여 밤새 노는 일종의 ‘기생 파티’니까요.
그러니까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당대 사회의 이중윤리를 비판하는 작품인 셈입니다. 1853년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했을 때 이 오페라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 년이나 오백 년 전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동시대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상당히 충격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베르디는 어쩔 수 없이 이 이야기의 배경을 백 년 전으로 바꿔놓아야 했답니다.
사교계 여성과 평범한 청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매일 밤 파티와 술로 시간을 보내다 폐결핵이 깊어져 건강이 악화된 비올레타를 1년 동안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사랑해온 알프레도는 드디어 이 파티에 나타나 비올레타에게 ‘언젠가 그 아름답던 날 Un di felice eterea’이라는 아리아로 사랑을 고백합니다. 처음에는 웃어넘기며 거절하지만 곧 알프레도의 진심을 알고 그의 사랑에 응하는 비올레타. 처음으로 찾아온 진실한 사랑에 맘이 설레면서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삶에 절망하며 이대로 살겠다고 외칩니다(‘이상해라... 언제까지나 자유롭게 E strano!...Sempre libera’) 어려운 고음과 고난도의 기교를 요구하는 소프라노 주인공의 대표곡입니다. 그러나 다시 만난 두 사람은 파리 교외에 살림을 차리고, 비올레타는 사교계 생활을 미련 없이 청산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평온한 행복도 잠시뿐. 2막에서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비올레타를 찾아와,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오빠인 알프레도가 매춘부와 함께 산다는 소문 때문에 난처하니 알프레도와 헤어지라고 요구합니다. 비올레타는 비통한 심정으로 알프레도를 떠나고, 아버지 제르몽은 ‘프로방스의 바다와 대지 Di Provenza il mar, il suol’라는 간절한 바리톤 아리아로 아들을 설득해 고향으로 데려가려 합니다. 그러나 비올레타가 배신했다고 오해해 분노한 알프레도는 다른 파티에 달려가 사교계로 돌아간 비올레타를 만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도박판에서 딴 돈을 비올레타의 얼굴에 뿌리며 손님들 앞에서 심한 모욕을 줍니다.
비올레타를 후원하는 귀족과 결투를 벌여 그에게 상해를 입힌 알프레도는 아버지의 명령대로 한동안 외국에 가 지냅니다. 그 사이에 비올레타는 병이 깊어져 죽어가죠. 밖에서 즐거운 사육제가 한창일 때 마침내 오해가 풀린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찾아와 두 사람은 다시 파리를 떠나 함께 살자는 이중창을 부릅니다(‘파리를 떠나서 Parigi, o cara’). 제르몽까지 나타나 비올레타에게 용서를 구하지만, 비올레타는 알프레도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주며 착한 여자와 결혼하라는 유언을 남긴 채 숨을 거두고 맙니다(‘이 초상화를 받아요 Prendi, quest'e l'immagine’).
사회의 이중윤리, 인습에 대한 저항을 담은 베르디의 걸작
베르디 오페라 중 중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 트라비아타]는 그 이전까지의 베르디 오페라들과는 여러 면에서 다른 획기적인 작품입니다. 우선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했던 격동의 무대들과는 전혀 다른, ‘주관성’이 강조된 오페라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주인공들은 소박한 개인적 행복을 얻고자 했지만 인습적인 사회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여주인공에게 모든 것이 집중된 ‘프리마 돈나(prima donna) 오페라’라는 점도 중요한 특징입니다. 비올레타 역의 소프라노는 다양한 창법과 음색을 구사하며 기존의 가창 규범을 뛰어넘게 됩니다. 소프라노 리리코, 스핀토, 드라마티코, 콜로라투라의 특성을 모두 발휘해야 하는 배역이 바로 비올레타 역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르디의 음악은 비올레타를 고귀한 품성을 지닌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매춘여성에게 기품을 부여했다는 것 자체가 오페라 극장에 별 생각 없이 즐기러 오는 관객들에게는 충격이 되었습니다.
관객은 우선 1막 ‘축배의 노래’, 2막 2장 ‘집시들의 노래’와 ‘마드리드의 투우사’ 등 다채롭고 화려한 파티 장면과 춤에 시선을 빼앗기기 쉽지만, 이 작품의 참된 묘미는 2막 1장에서 비올레타와 제르몽이 나누는 대화 장면에 있습니다. 노회한 장사꾼 제르몽이 사회적 신분이 낮은 젊은 여인을 교묘하게 설득해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사회의 안전을 지켜내는 대목으로,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잃은 뒤 여가수 스트레포니와 동거하며 주변의 비난과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던 작곡가 베르디의 ‘인습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이 장면의 긴 이중창은 아리아 위주였던 오랜 오페라 형식의 전통을 극복하려는 베르디의 참신한 시도였습니다. 음악적 모티프들이 때로는 선율적으로 때로는 레치타티보식으로 함께 자라나 유기적으로 하나의 예술적 총체를 이루는 획기적인 예가 된 것입니다. 맨 처음에 연주되는 이 오페라의 전주곡 역시 경쾌한 ‘축배의 노래’ 주제로 시작하지 않고, 비올레타가 병으로 죽어가는 3막 전주곡의 어둡고 처연한 현악기 선율로 시작합니다. 베르디가 ‘모두에게 버림 받은 사회적 약자의 비참한 죽음’을 이 오페라의 주제로 삼았음을 확연히 알게 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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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1월 7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축배의 노래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는 길을 잃은 여인, 거리의 여인이라는 뜻이며,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작품이다. 원작은 알렉산드르 뒤마(알락상드르 뒤마, Alexandre Dumas)의 소설 [동백꽃 부인]이고 대본은 피아베가 쓴, 전 3막의 오페라이다. 시골 청년 알후레도(알프레도, Alfredo)와 창녀 비올레타(Violetta)의 사랑이 신분의 차이로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는 이야기이다.
비극으로 끝나는 시골 청년과 고급 창녀와의 사랑
19세기의 빠리. 순진한 시골 부유한 집안 출신의 청년 알후레도가 파티에서 고급 창녀 비올레타를 소개 받고 첫 눈에 반한다. 가슴을 앓는 그녀도 그의 순정에 감동하여 환락의 세계를 떠나 교외(郊外)에서 동거한다. 여기에 알후레도의 아버지 죠르지오 제르몽이 찾아와 그녀에게 동정은 하면서도, 딸의 혼사를 앞두고 있으니 아들과의 관계를 끊어달라고 부탁한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이 요청을 받아들이고 환락의 옛 거처로 돌아간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알후레도는 빠리로 쫓아가 파티 석상에서 그녀의 후원자인 두폴 남작과 카드놀이를 하여 거금을 따고, 그 돈을그녀에게 뿌리며 심한 모욕을 가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산다. 세월이 흘러 병석에 누운 그녀에게, 오해를 푼 제르몽 부자가 찾아와 후회하며 옛날 같은 생활로 돌아가기를 간절히빈다. 그러나이미 시간은 늦어 비올레타는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다.
흥청거리는 파티장에서 알후레도를 만나 참된 사랑을 깨닫기 시작하는 비올레타
와인 잔을 손에 들고 한창 흐드러지게 흥청거리는 속에 부르는 [축배의 노래]는 향락적인 생활을 찬양하고 화려한 잔치를 북돋우는 분위기가 넘쳐흐른다. 돈에 몸을 맡기는 비올레타와 순진한 알후레도가 처음 만나 이 노래를 주고받는 속에 사랑의 불꽃은 차츰 타오른다.
'축배의 노래'
알후레도:
마시자, 마시자, 이 밤에
꽃으로 장식된 잔을 들고
잠시 동안
환락에 취하도록.
마시자, 사랑을 북돋우는
흥겨운 전율 속에,
그 눈이 내 마음에 대해
전능의 힘을 휘두르니까.
마시자, 사랑은 입맞춤을
좀 더 뜨거운 잔에서 얻으리라.
일동:
마시자, 사랑은 입맞춤을
좀 더 뜨거운 잔에서 얻으리라.
비올레타:
여기 모인 여러분들 속에서라면
흥겹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는 자는
모두 어리석은 바보짓을 할 뿐입니다.
즐깁시다, 순식간에
꺼지기 쉬운 것은 사랑의 기쁨,
피었다 덧없이 지는 한 송이 꽃,
두 번 다시 즐기는 일은 없어요.
즐깁시다, 뜨겁게
흥겨운 음악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일동:
아,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비올레타:
살아 있는 동안은 마냥 즐겁게.
알후레도:
아직 사랑해 본 적이 없어서겠죠.
비올레타:
사랑과 인연이 없는 자에겐 쓸데없는 소리에요.
알후레도:
이렇게 되는 것도 내 숙명이죠.
일동:
아,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알후레도의 사랑의 뜨거운 호소에 차츰 변해가는 비올레타
'피었다 지는 한송이 꽃', '살아있는 동안은 마냥 즐겁게' 등 인생을 쾌락적인 것으로만 믿고 있던 비올레타에게, 알후레도의 말은 그녀를 향한 진실을전하며, 꾸밈없는 감정을 토로하여 비로소 그녀의 가슴에 단단히 못을 박는다. 알후레도의 그녀의 눈이 “전능의 힘을 휘두르니까”(onnipotente va)라는 표현은 창녀에게는 전지전능한 신성의 뜻을 가진 말이다. 자기를 그렇게 봐줌으로써 비올레타는 깊은 감동 속에 마음이 흔들린다.
추천할 만한 음반과 DVD
[CD] 토스카니니 지휘, NBC 교향악단(RCA) 알바네제(S), 피어스(T), RCA/SONY, 1946
오래 되었지만 잊을 수 없는 녹음(1946년)이다. 오페라에서 지휘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처럼 여실하게 보여준 예는 드물다. 오케스트라, 독창자, 합창이 혼연 일체가 되어 지휘자를 따라가는 연주는 요즘 악단에서는 들어 볼 수가 없다.
[CD] 쥴리니 지휘,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 칼라스(S) 디 스테화노(디 스테파노, T) Cetra/EMI, 1955
이 곡을 말할 때 반드시 들어야하는 역사적 명반이다. 특히 칼라스와 디 스테화노(Giuseppe Di Stefano)가 펼치는 호탕하고 변화무쌍한 2중창은 쥴리니(Carlo Maria Giulini)의 절묘한 관현악의 뒷받침을 받아 한결 더 화려한 환락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또 바스티아니니(Ettore Bastianini)의 죠르지오(조르지오) 역은 간절한 아버지의 정을 쏟아 붓는 호소력을 발산한다.
[CD] 클라이버 지휘, 바이에른 국립 관현악단?합창단, 코르투바스(S), 도밍고(Domingo, T) DG, 1976~7
출연진의 열기 띈 노래가 빛난다. 특히 코트루바스(Ileana Cotrubas)의 비올레타는 슬픔으로 가득찬 어두운 음색과 섬세하며 부드러운 정감으로 넘친다. 활달한 클라이버의 지휘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말 밖에 알맞는 표현을 찾을 수 없다.
[DVD] 마젤 지휘, 밀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발레단, 게오르규(S), 바르가스(T) ARTHAUS/AULOS, 2007
호화찬란한 무대장면은 현란하기 그지없다. 게오르규(Angela Gheorghiu)의 능숙한 연기와 노래 그리고 바르가스(Ramon Vargas)의 열의에 찬 열연은 감동적이다. 마젤 지휘의 다이내미즘도 베르디 오페라가 요구하는 점이다. 스칼라 극장 공연 실황 무대이다.
[DVD] 카를로 리찌 지휘, 빈 휠하모니, 네트레브코(네트렙코, S), 비아존(T), DG, 2005
두 무명 가수(Anna Netrebko, Rolando Villazon)가 잘쯔부르크 축제 때 공연하여 유럽의 음악계를 휩쓴 화제작이다. 마젤 판과는 달리 간소하고 상징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펼치는 열기 가득한 연기와 감동적인 노래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이다. 여기에 미국 출신의 아버지역인 햄프슨(Thomas Hampson)의 구수한 목소리는 눈물이 날 정도이다. 기타 무명의 출연 가수들도 고르게 열연을 펼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축배의 노래 -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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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7월 14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이 오페라를 쓸 무렵, 베르디는 7년 뒤에는 정식으로 결혼하여 두 번째 아내가 된 쥬제삐나 스트레뽀니(주세피나 스트레포니, Giusep pina Strepponi)와, 주변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리에서 동거하게 되었다. 이 여성은 지난 날 베르디의 최초의 오페라를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 소개해준 은인이며 당시 인기있는 프리마돈나였으나, 오페라 계의 거물 흥행주(興行主)의 연인이었고 테너 가수와의 사이에 2명의 사생아를 둔 과거도 있었다. 이미 죽은 베르디의 첫째 아내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그녀와의 재혼을 반대했던 것이다. 원작자인 뒤마(소 뒤마, Alexandre Dumas, fils) 자신이 연극으로 각색하고 결말을 오페라와 거의 같을 정도로 고친 [동백 부인 La dame aux camélias]이 1852년 2월에 파리에서 초연 무대를 베르디와 쥬제삐나가 함께 보고 남 달리 큰 감동을 받고 이 명작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상처한 베르디가 연인과 연극을 보고 감동하여 제작한 오페라
가에타니(John Louis DiGaetani)는 그의 저서 [오페라의 초대An Invitation to the Opera]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얼마나 어려운 역할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비올레타의 파트는 3 종류의 다른 소프라노 목소리가 요구된다. 제1막에는 콜로라투라의의 유연(柔軟)함과 쾌함을 갖춘 목소리여야 하는 것이 최소한 필요하다. 오페라가 제2막이 되면 스핀토 소프라노(spinto soprano=서정적인 소프라노)를, 그리고 마지막 막의 임종(臨終) 장면에서는 드라마틱 소프라노(dramatic soprano=극적인 소프라노)도 요구된다. 이 모두를 듣는 이가 납득하도록 제대로 노래할 수 있는 소프라노 가수가 흔히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 트라비아타]를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느끼려면 이 역할을 노래하는 가수가 전막을 통해 이 어려운 오페라의 주역을 어떻게 소화하고 있느냐 하는 평가를 내리는 일도 포함된다. 그 가수는 과연 비올레타의 변화와 그녀의 인내력 있는 개성을 충분히 살려 마음의 갈등의 변화와 복잡한 성격을 잘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식으로 말이다. 알후레도(알프레도, Alfredo)에게도 빅토리아 조 풍의 기질을 그대로 지닌 그의 엄격한 아버지 제르몽 역도 매우 높은 노래 솜씨가 요구된다. 이 파트에는 주역 같은 복잡한 요소는 없지만 알후레도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특색 있는 노래와 격렬한 감정의 기복(起伏)이다. 즉 소년과 같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시작하여 그 사랑이 붕괴하자 그만 절망하고 증오로 가득한 복수를 맹세하여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녀를 용서하며 비올레타의 죽음에 직면하여 비탄에 잠긴다는 변화이다."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를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버렸느냐?
누가 네 마음에서 지워버렸느냐,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를?
고향의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太陽)을
어떤 운명이 빼앗았느냐?
어떤 운명이 빼앗았느냐,
고향의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오, 생각해내 다오,
거기서 너는 기쁨으로 빛나 있던 것을;
거기서라면 네게 평화가
다시 한 번 빛나리라는 것을.
하느님은 반듯이 인도(引導)해 주시리라!
아! 나이 먹은 이 아비에게
어떤 고통이었는지를 알 리 없지만.
어떤 고통이었는지를 알 리 없지만,
나이 먹은 이 아비에게.
네가 멀리 가서
그 집은 쓸쓸한 꼴이 되었지만.
그 집은 쓸쓸한 꼴이,
쓸쓸한 꼴이 되었지만,
드디어 다시 한 번 너를 만나
소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명예의 목소리가 네 속에서
아예 입을 다물지 않았다면,
하느님은 반드시 들어 주시리라!
비올레타의 절연장(絶緣狀)을 보고 분노하며 괴로워하는 알후레도의 모습을 살피다가 방 안으로 들어 온 아버지 제르몽이 고향과 가족 이야기를 하며 위로한다. 아버지의 자애(慈愛)가 가득 넘치는 바리톤 아리아의 대표적인 명곡이다. 이 아이라 후반의 카발레타(cabaletta=오페라 속의 짧은 노래 형식의 하나. 빠른 템포로 긴장감을 높이는 아리아의 종결 부분)는 노래하지 않는 것이 관습처럼 되어 있었으나 근래의 오페라 공연에서는 곧잘 노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콘서트에서는 거의 부르지 않는다.
아버지의 자애가 넘치는 바리톤 아리아의 명곡
[라 트라비아타] 중에서 제르몽은 베르디가 만든 숱한 아버지 상 중에서 가장 다면적(多面的)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제르몽은 아들을 보기 전에 비올레타를 만나서 제발 아들로부터 물러나 달라고 호소한다. 그때 그가 발견한 것은 그녀가 아들에게 순애(純愛와 헌신(獻身)을 바치고 있으며 생활의 부담을 전적으로 그녀에게 맡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비올레타에게 동정하여 이해를 하는 것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아 알후레도의 인생을 자신이 버렸다고 생각하고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한다. 여성의 심리를 잘 알고 있어서 그녀를 스스로 희생하게 한 제르몽은 가족에 대한 사랑에 성실하고 체제에 대한 옹호자로 행세하면서, 막상 알후레도로부터 물러난 비올레타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알후레도에게 모욕을 당하니까 맨 먼저 그녀의 명예를 위해 아들을 비난한다. 그리고 죽음의 자리에 누운 그녀를 찾아가 둘의 관계를 용서하지만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는 그러한 사나이의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가사 중 프로벤짜(Provenza)는 '프로방스‘의 이탈리아식 표기이다.
들을 만한 음반과 DVD
[CD] 레시뇨 지휘,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 칼라스, 발레티, 자나시 외, SONY
[CD] 후랑코 기오네 지휘, 산 카를로스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 칼라스, 크라우스, 세레니, 자니니, 카스트로 외, EMI
20세기 최고의 비올레타인 칼라스가 남긴 8종류의 녹음 중 3가지는 어느 것이 제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 역사작 명연이다. 칼라스 자신의 노래가 특히 뛰어난 음반은 1958년의 코벤트 가든에서 녹음한 왕립 오페라의 공연 실황과 같은 해 리스본의 산 카를로스 극장에서의 실황 녹음이다. 뒤의 음반은 알후레도를 노래하는 크라우스(Alfredo Kraus 1927-99)가 매력적이나 음악 이외의 잡음이 많고 세레니의 제르몽과 레시뇨의 지휘가 약한 점이 흠이다. 그러나 코벤트 가든의 실황은 바레티의 알후레도도 착실하게 뒷받침하고 있고 자나시의 제르몽은 빈 틈 없는 노래에서 품격(品格)이 배어나온다. 칼라스는 비올레타의 심리의 움직임의 자락을 세밀하게 누비고 살려 ‘축배의 노래’에서 화려한 속에서도 앞날을 예감시키는 덧없는 분위기를 은근히 풍긴다. 역시 음이 튀거나 낮은 웅얼거리는 소리가 나지만 리스본 반 보다는 훨씬 듣기 편하다.
[CD] 쥴리니 지휘,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 칼라스, 디 스테화노, 바스티아니니 외, EMI
또 하나의 칼라스 주목반. ‘축배의 노래’ 항목에서 간단히 소개했지만 칼라스 목소리 자체는 이 무렵이 전성기였다. 쥴리니는 템포를 떨어트려 신중히 곡을 노래하게 하며 드라마의 핵심을 파헤친 깊은 표현을 쫓아 간다. 음의 상태는 코벤트 가든과 오십보 백보이며 디 스테화노의 알후레도가 뛰어나고 바스티아니니의 제르몽이 인상 깊다.
[CD] 클라이버 지휘, 바이에른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 일레아나 코 투르바스, 도밍고, 밀른즈 외, DG
스테레오 녹음으로는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코투르바스, 도밍고, 밀른즈 같은 칼라스 이후 80년대 걸쳐 최고의 배역으로 이 오페라를 근대극으로 다루어 날카로운 개성적인 표현을 감행하고 있다.
[DVD] 숄티 지휘,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장/합창단(1994), 험후리 버튼 연출, 안젤라 게오르규, 후랑코 로빠르도, 레오 누찌 외, Decca
당시 82세였던 숄티가 이 오페라에 처음 도전했다. 루마니아 출신의 화제의 신예 안젤라 게오르규를 여주인공으로 하여 악보에 가장 충실하게 연주하여 신선하고 하고 스케일 큰, 비극적 감정을 이끌어 낸 1994년 코벤트 가든에서의 실황 녹화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방스의 바다와 육지 -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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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8월 4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안녕, 지난날이여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이 오페라의 초연은 베니스의 훼니체 극장(페니체, La Fenice)에서 거행되었으나 그때까지 인기 절정의 기세로 오페라 작곡가의 지위를 확고히 지키고 있던 그가 여기서 그 위치를 잃고 말았다. 그 까닭은 이 작품의 틀이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정가극[正歌劇], 주로 역사나 신회의 비극을 소재로 함)임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의 화제 거리를 다룬 점, 그리고 신성해야할 무대 위에 창녀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또 이야기 줄거리에서는 비올레타라는 이름의 여주인공이 폐병으로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때 이 역을 노래한 소프라노가 그 병을 앓는다고는 믿을 수 없이 뚱뚱했다는 사실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베르디는 이 초연 실패에 기가 죽기는커녕, “이 오페라는 이제 머지않아 세계를 휩쓸게 될 거야”하고 자신 만만하게 장담했다고 한다.
비올레타는 인간의 존엄성을 걸고 싸우는 용감한 여성
남성의 거친 세계를 그린 [일 트로바토레] 다음에 작곡한 [라 트라비아타]는 대조되는 여성적인 오페라라고 한다. 분명 화려한 무도회며 온화한 생활을 그리고 있고 주인공 비올레타의 여자다운 정신을 감성이 유려(流麗)한 멜로디로 엮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만 정신을 팔면 이야기의 본질을 놓지게 된다. 얼핏 보기에 여성적으로 보이는 비올레타도 실은 다른 베르디 오페라 주인공처럼 인간의 존엄성을 걸고 사회와 싸우는 용감한 여성이다. 창녀 비올레타는 순진한 젊은이 알후레도(알프레도, Alfredo)와 만나 비로소 참된 사랑을 알았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고 있던 여성이 이번에는 자기 재산을 팔아서라도 알후레도와의 사랑을 이루려 한다. 사회 질서를 파괴하려는 이 위험한 짓을 아버지 제르몽은 막으려고 한다. 여기서 여성이 과감히 싸운다면 이야기는 쉽다. 그러나 비올레타는 자기의 소망이 남을 불행하게 한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가 바라는 것을 체념하는 또 하나의 고독한 싸움을 택하는 것이다.
'안녕, 지난날이여'
안녕, 지난날의 아름답고 즐거웠던 꿈이여,
장미 빛 얼굴도 아주 창백해지고,
알후레도의 사랑조차 지금 내게는 없다.
지쳐 빠진 영혼을 뒷받침하고 격려해 줄 터인데;
아, 윤락녀의 소원에 미소를 보여 주세요;
이 여자를 용서하고, 받아 주십시오, 하느님,
이제 모든 것은 끝입니다.
기쁨도 괴로움도 곧 마지막을 알리고,
무덤은 인간에게 모든 것의 경계(境界)이건만!
내 무덤구덩이는 눈물도 꽃도 갖지 못했다!
내 죽음을 덮을 이름이 새겨진 묘비도 없을 테지요!
아, 윤락녀의 소원에 미소를 보여 주세요;
이 여자를 용서하고, 받아 주십시오, 하느님.
이제 모든 것은 끝입니다!
빠리(파리, Paris)의 사육제(謝肉祭) 날, 폐병으로 자리에 누운 비올레타는 제르몽에게서 온 편지를 읽고 되읽으며, 진상(眞相)을 안 알후레도가 급히 오고 있다는 내용에 “늦었다!”고 비통한 소리를 내뱉고 “모든 것은 끝났다!” 고 외치며 자기의 죽음이 임박(臨迫)했음을 깨닫는 절망적인 노래를 부른다. 낮은 목소리로 가슴 벅찬 눈물어린 편지를 읽는 장면은 프리마돈나의 역량을 과시하는 부분이다. 아리아는 A단조로 천천히 슬픔을 누르고 눌러도 터져 나오듯이 부른다. 슬픔은 간결하고 보편적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하는 숙명적인 것이다. 희망도 없이 죽어야 하는 상황은 세나(scena=아리아 같은 영탄조도 레치타티보 식의 서술조도 아닌 극적이며 박력 있는 독창) 중에서 충분히 표시되었으며 “안녕, 지난날이여”는 그 요소이다. 후반부는 전적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며, ‘길을 잘못 든 여인’(traviata)의 무덤 앞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함이 놓여 있으리라는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에 얽힌 에피소드
여백이 있어 명 테너 디 스테화노(디 스테파노, Di Stefano)가 알후레도를 노래했을 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제2막에서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로 옛날에 살던 사교계로 돌아간 비올레타에게 배반했다고 생각한 알후레도가 그 쪽으로 뒤쫓아 간다. 거기서 카드놀이로 돈을 잔뜩 딴 그는 비올레타에게 지금까지 잘해준 호의에 대한 앙갚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딴 돈을 그녀 면전에 뿌려주는 심하게 모욕적인 장면에 이르렀다.
이때 알후레도 역인 디 스테화노는 윗도리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없다. 이번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짓누르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역시 없다. 계속 의상 담당이 곧잘 넣을 만한 곳을 다 뒤졌으나 어디에도 돈은 없었다. 이쯤 되면 하는 수 없이 그 순간을 모면하는 길은 비올레타에게 몰래 도망간 분풀이로 귀뺨을 한 대 갈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뜻 밖에 봉변을 당한 비올레타 역의 아가씨는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고 한다.
들을 만한 CD와 DVD
[CD] 쥴리니(줄리니, Carlo Maria Giulini) 지휘, 스킬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5) 칼라스(S) EMI
역시 ‘안녕, 지난날이여’는 칼라스를 능가할 사람은 없다. 편지를 읽는 장면의 여실함에는 가슴이 뻐근해 진다. 기교와 기술적 표현의 융합이 완벽하며 휘오리투라(fioritura=작고 가벼운 장식적인 노래) 기법이 정신성의 반영(反映)으로 표현된 점 등은 숨이 막힐 정도이다. 벨칸토 오페라를 보다 여실하게 살리려 한 베르디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DVD] 레바인 지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81) 테레사 스트라타스(S) 제휘렐리 감독 Elektra
제휘렐리가 감독한 영화라는 특색이 있다. 제1막의 막이 오른 뒤부터 번화한 파티가 열리는 살롱 장면까지를, 죽어가는 병상(病床)에 누운 비올레타의 회상 장면으로 다루고 그 전후의 현실을 첨가하여 구성한 연출이 영화수법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곡의 배열이나 구성을 거의 건드리지 않고 줄거리를 원작대로 살려서 사회비판성을 강화한 점도 특이하다.
비올레타가 속해 있던 19세기 빠리 특유의 화류계(花柳界)가 겉보기에만 화려함을 폭로하는 카메라의 눈의 철저한 관찰도 놓질 수 없는 부분이다. 주연은 역할에 꼭 들어맞는 모습으로 연기를 전개하는 스트라타스(Teresa Stratas), 노래도 연기도 최고의 경지에 있던 도밍고, 그리고 겉보기에 고집쟁이 시골 신사 같은 맥네일(Cornell MacNeil) 등이 열연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녕, 지난날이여 -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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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8월 19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김성현 기자>
문학과 클래식
소설 <동백꽃 여인>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후일담
파리 북부 18구의 몽마르트르 묘지에는 19세기의 프랑스 예술계가 그대로 잠들어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수많은 명사의 무덤이 있다. 소설가 에밀 졸라와 스탕달, 작곡가 베를리오즈와 시인 하이네 등 미로처럼 어지럽게 펼쳐진 무덤들을 따라서 걷다 보면, 당대의 예술가와 부호들의 애인이자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였던 한 여인의 묘지와 만난다.
아름답게 피었다 쓸쓸하게 저버린 여인
마리 뒤플레시(Marie Duplessis, 1824~46). 파리 사교계의 꽃으로 화려하게 피었다가, 스물셋의 나이로 쓸쓸하게 지고 말았던 여인이다. 만인의 연인이었지만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고, 사회적 관습과 규율에 속박 받았지만 거기서 끝내 자유롭고자 했던 이름이다. 밤마다 샹젤리제 거리와 파리 시내의 극장에서 귀족과 부호의 마음과 재력을 빼앗아갔던 그녀를 흔히 사람들은 ‘정부(femme entretenue)’나 ‘창부(courtisane)’라고 불렀다.
“그녀의 옷 치장은 호리호리하고 젊은 자태와도 무척 잘 어울린다. 갸름하면서도 아름다운 얼굴과 창백한 안색으로 그녀는 묘사할 수 없는 향기와 같은 우아함을 주변에 흩뿌린다.”
프랑스의 문학 평론가였던 쥘 자냉의 묘사처럼, 이 여인이 발산하는 매력에는 강한 휘발성이 깃들어 있었다. 자냉은 그녀에 대해 “고개 숙인, 아름다운 얼굴과 꽃다발을 구분하기 위해선 청년의 눈과 어린아이의 상상력이 필요할 정도”라고 격찬하기도 했다.
군중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뒤플레시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예술가 가운데 하나가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리스트였다. 당대 파리 사교계의 스타였던 리스트는 그녀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인”이라고 고백했다. 훗날 뒤플레시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에는 “가련한 마리 뒤플레시를 생각할 적마다, 오랜 애가(哀歌)가 마음속에 떠오른다”는 조사(弔詞)를 남겼다.
문학으로 남은 짧은 사랑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아들이자 소설가인 뒤마 피스(Alexandres Dumas fils, 1824~95)가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것도, 작가가 불과 스무 살 때였다. 둘은 1년간 동거했지만, 이듬해 뒤플레시는 페레고 백작과 결혼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났다. 하지만 백작 집안의 반대로 이 결혼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이듬해 폐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짧았던 사랑은 긴 잔영(殘影)을 뒤마 피스에게 남겼다. 작가의 추억 속에 오랫동안 살아 있던 뒤플레시는 소설 『동백꽃 여인』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로 되살아난 것이었다. 뒤플레시가 세상을 떠난 뒤 1년 만에 출간된, 뒤마 피스의 자전적 소설이 『동백꽃 여인』이다. ‘동백꽃 여인’의 한자식 표현이 ‘춘희(椿姬)’다.
이 작품에는 소설가 아버지와 재단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혼외 자식으로 태어나 사회의 냉대에 시달렸던 작가 자신의 불우한 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야기를 창작할 만한 나이에는 아직 이르지 못했기에,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 드리도록 하겠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흡사 작가 자신의 고백과도 같았다. 작가 자신의 후일담에 해당하는 이 작품에서 뒤마 피스는 남자 주인공 아르망 뒤발이 되었다. 훗날 작가가 묻히기를 소망했던 곳도 파리 북부 빌레 코트레의 가족 묘지가 아니라, 뒤플레시가 묻혀 있는 몽마르트르 묘지였다.
“마르그리트는 공연이나 무도회에서 매일 밤을 보냈고, 첫날 공연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새로운 작품을 공연할 때마다 그의 곁에는 세 가지가 빠지는 법이 없었다. 1층의 관람석 앞에는 언제나 오페라글라스와 봉봉 상자, 그리고 동백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한 달의 25일은 흰 동백꽃이었고, 닷새는 붉은 동백꽃이었다. 이렇게 색깔이 바뀌는 이유에 대해선 누구도 알지 못했다. 마르그리트가 동백꽃 말고 다른 꽃을 지니고 있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바르종 꽃집 아주머니는 그녀에게 '동백꽃 여인'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결국 그녀의 별명이 됐다.”
- 뒤마 피스, 『동백꽃 여인』
작품의 제목이 ‘동백꽃 여인’인 것도 마르그리트가 앉았던 극장 풍경을 묘사한 이 대목 때문이다. 주인공 아르망 뒤발이 마르그리트에게 사랑에 빠졌던 공간 역시 공연장이다. 당시 여인을 데리고 공연장에 가는 것은, 교제 중인 여인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연인 관계를 공표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당시 공연장은 유혹과 구애의 시선이 부지런히 교차하는 ‘사교계의 정치 공간’이었던 것이다.
언뜻 화려한 사치와 환락을 모두 누리는 것 같지만, 이 여인이 가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었다면, 바로 진정한 사랑이었다. 만인의 연인이지만 온전히 한 사람의 사랑일 수는 없는 역설로 인해 작품의 비극성도 짙어진다.
“매일 똑같은 것만 요구하고, 돈만 지불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남자들에 질리고 말았어. 만약 우리처럼 천한 일을 시작하려는 여인들이 이런 내막을 안다면, 차라리 가정부가 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거야. 그렇지만 화려한 옷과 마차, 다이아몬드에 대한 허영심이 우리를 짓누르고 말지. 육신도 마음도 아름다움도 점점 닳아 없어지고, 상대를 파멸시키는 동시에 우리 자신도 망가지고 마는 거야.”
- 뒤마 피스, 『동백꽃 여인』
이 직업여성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탈출구가 ‘사랑의 세계’라면, 그들의 발목을 단단히 붙잡은 것은 ‘허영의 세계’다. 소설은 사랑을 묘사할 때에는 낭만적 시선을 거두지 못하지만, 허영을 그릴 때만큼은 짙은 비극성과 뚜렷한 현실성을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이 소설과 연극, 오페라뿐 아니라 발레와 영화까지 다양한 ‘파생 상품’을 낳으면서 사랑받는 것도 이 같은 매력 덕분이다.
오페라가 된 소설
작품은 청년 뒤마 피스에게 출세작이 됐다. 작가는 여세를 몰아 1852년에는 희곡으로 직접 각색하기에 이르렀다. 작품의 인기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간 것도 이즈음이다.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이탈리아의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도 “이것은 우리 시대의 이야기”라며 슬픈 연애담 속에 숨어 있는 비극적 현실성을 꿰뚫어보았다. 연극을 관람한 작곡가는 이 희곡을 바탕으로 새로운 오페라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에는 첫 아내를 뇌염으로 잃은 뒤, 소프라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와 비밀리에 교제하고 있던 작곡가 자신의 상황도 적잖이 반영되어 있었다. 1842년 작곡가의 출세작인 오페라 [나부코]에 스트레포니가 출연한 이후, 이들은 교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당대 이탈리아 음악계에서 이들의 염문은 곧장 스캔들로 이어졌다.
하지만 베르디는 1852년 “더는 숨길 것이 없습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인과 제 집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의 행동을 판단하거나 비난할 권리가 있겠습니까?”라는 편지를 장인에게 보냈다. 마침내 둘은 1859년 뒤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뒤마 피스의 『동백꽃 여인』도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다시 태어났다. 소설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오페라에서 비올레타 발레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 오페라는 185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초연됐다. 하지만 38세의 뚱뚱한 소프라노를 여주인공으로 기용한 ‘캐스팅 실패’ 때문에 초연 당시 오페라는 관객들에게 연민 대신 공분을 일으키며 참패로 끝났다. 하지만 작곡가는 “어젯밤 [라 트라비아타]는 실패였다. 내 잘못이었을까, 성악가 때문이었을까. 시간이 답해줄 것”이라는 자신감 넘치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 결국 오페라는 개작을 거쳐, 이듬해 베네치아에서 재공연됐다. 오스트리아 빈과 영국 런던, 미국 뉴욕에서도 공연되면서 실패를 만회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화려한 기교로 표현되는 비극
오페라는 노래에 압축적인 이야기를 담아서 무대에서 전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비올레타도 환락에 젖어서 살다가 순수한 사랑에 감동받지만,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마는 비극적 운명을 한 무대에서 모두 보여줘야 한다. 비올레타를 부르는 소프라노 역시 화려한 콜로라투라(coloratura)와 서정적인 리릭(lyric)의 음색까지 소화해야 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배역으로 꼽힌다.
비올레타의 복합적인 성격이 응축된 장면이 1막이다. 「축배의 노래」에서 순간적 향락이 주는 즐거움을 찬양하던 비올레타는 남자 주인공 알프레도의 순수한 고백에 마음이 흔들리면서 아리아 「아 그이였던가」를 부른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다시 절망하면서, 비올레타의 노래는 「언제나 자유롭게」로 바뀐다. 새롭게 찾아온 사랑에 가슴 설레지만, 정작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냉엄한 현실에 비극을 예감하는 것이다.
“크나큰 사랑의 파도가 밀려왔네. 하지만 이상하고도 신비한 건, 내 마음에 고통과 기쁨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는 것.” -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가운데 아리아 「아 그이였던가」
“그건 미친 일이야! 허무한 망상일 뿐. 파리라고 불리는 사막에서 이 가련하고 외로운 여인에게는. 무얼 바라겠는가, 무얼 해야 하는가. 차라리 쾌락의 소용돌이에 몸을 던져서 죽고 말리라. 언제나 자유롭게 꽃에서 꽃으로 펄럭이고 스치며. 새로운 날이 뜨고 질 때마다, 새로운 쾌락을 찾아 떠나리.”
-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 가운데 아리아 「언제나 자유롭게」
어려운 고음과 고난도의 기교가 쉼 없이 펼쳐지는데다, 주인공의 복잡한 처지와 고뇌까지 담아내야 하기에 1막의 이 장면은 언제나 소프라노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어왔다. 1950년대의 마리아 칼라스, 1990년대의 안젤라 게오르규와 2000년대의 안나 네트렙코가 모두 이 오페라를 통해 당대 최고의 소프라노로 발판을 다진 것도 이 때문이다.
뒤마 피스는 1874년 프랑스의 한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출됐다. 1894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하면서 톡톡히 보상을 받았다. 베르디의 오페라 역시 초연의 실패를 딛고 [리골레토]와 [일 트로바토레]와 더불어 작곡가 중기의 대표작으로 꼽히면서 오페라 극장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뒤마 피스와 베르디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그녀들은 지금도 여전히 현실의 차가운 밤거리를 걷고 있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밤거리의 네온사인을 볼 적마다, 문득 뒤플레시와 마르그리트 고티에, 비올레타를 떠올린다. 그들은 밤마다 거짓 웃음을 팔겠지만, 한편으로는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면서 눈물 흘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르디의 오페라 전주곡에 흐르던 구슬픈 단조 선율처럼, 한없이 깨어지기 쉽고 연약해서 덧없는 사랑 때문에.
[네이버 지식백과] 소설 『동백꽃 여인』과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후일담 (문학과 클래식)
첫댓글 <불멸의 오페라 1 / 박종호> ★★
카슨이 만든 최근의 화제작이다. 현대적인 파티뿐만 아니라 비올레타가 주사를 맞는 장면이나 무대 전체에 지폐를 뿌려 놓은 2막 등은 충격적으로, 그동안 주로 아름다운 무대를 보여준 카슨은 이 무대는 퇴폐적으로 묘사했다. 현란한 연출과 아름다운 무대는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초피(비올레타 역) 역시 카슨의 의도에 부합하는 연기를 보이며, 특히 흐보로스토프스키의 제르몽은 노련하고 무척 뛰어나다. 반면 사카(알프레도 역)는 평범함을 넘지 못한다.
<오페라 에센스 55 / 박종호>
카슨이 만든 화제작이다. 현대적인 파티뿐 아니라 주사를 맞는 비올레타, 지폐를 뿌려 놓은 무대, 카바레를 재현한 장면 등 현란한 연출과 아름다운 무대는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압권은 제3막 피날레의 연출이다. 초피의 열연과 흐보로스톱스키의 가창은 대단하다. 마젤의 효과적인 지휘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곳에서 초연했다 실패한 경험이 담긴 라 페니체 초연판을 악보로 쓰고 있어 기념비적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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