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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냉천마을의 위치
① 행정동-울산광역시 북구 농소2동 5통1반~9반
② 지명동-울산광역시 북구 신천동 냉천마을
♣마을표지석-이 표지석은 2000년5월 마을출신 최해언 초대 울산교육위원의 넷째 사위이신 조각가 정기홍선생이 제작하여 마을에 기증하였으며 처음에는 찬샘1길 입구(연동댁 집 앞)에 놓였으나 도로확장으로 2008년12월에 완공한 신천사거리의 농협하나로마트의 후문쪽 솔밭 밑으로 옮겨 한라신천지 아파트와 갈밭 입구를 마주보고 있다.
자연마을인 참새미와 갈밭으로 구성된 마을로 예로부터 융화와 단합으로 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그러나 같은 지역 내에 있는 아파트는 마을과 통,반을 달리하므로 마을에서는 제외된다. 참고로 아래 항공사진은 2006년에 촬영되었음을 공지합니다.
3. 냉천마을은 이런 곳 ('농소농협30년사'의 기록에서 갈재)
냉천마을이 속한 신천동은 예종 때 농소리에 딸린 마을이었다.
경상도 속찬지리지에 의하면 예종1년(1469)에 영청(令廳)으로 나타났는데 영조 5년(1729)에 냉천방과 제내리로 분동되었고 영조41년(1765)부터는 계속 냉천리와 제내리로 불리어왔다.
원래 이 마을은 찬물이 쏟는 우물이 마을 이름으로 되어 참새미, 한천, 냉천, 한샘으로 불러져 왔으며 지금도 청구아파트 옆 구 국도 건너편 버스승강장 뒤쪽에 이 샘의 흔적이 있으나 불행하게도 지하수 개발의 여파로 물은 말라버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냉천, 제내, 약수동 일부를 합하여 신천리라 하였고 냉천과 제내의 두 행정마을이 있었으며 이 중 냉천마을은 농소면에서는 유일하게 산이 없는 마을이기도 하다.
1950년 이전까지 신천천(돌거랑)은 자갈을 채취하여 토목, 건축공사장에 공급하였으며 이를 운반하기 위한 기차가 드나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 범람하여 수해를 겪어 오던 중 1973년 이장 이경락의 노력과 당국의 지원으로 하천의 제방을 정리하고 1974년부터 오운목장 진입 군도가 개통됨에 따라 이 지역 일대가 농공단지로 발전하게 되었고, 또 1979년부터는 새마을지도자 이석영을 중심으로하여 마을 주민들의 협동과 노력으로 1980, 1981년 추진한 취락구조개선사업을 성공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1년 새마을지도자 이석영이 새마을 훈장 근면장을 친수하였으며, 1984년에는 냉천마을이 경상남도의 홍보마을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후 1992년도에 갈밭마을에 신동아파트와 한라신천지 아파트가 세워졌고 1996년도에는 찬새미 끝자락에 청구아파트 그리고 2001년5월 농소2동 주민센터와 마을회관 및 경로당이 신축되고 2007년에는 뒷골과 공동산 일대에 극동스타클레스 아파트가 세워졌다. 이어서 뒷등 일대에도 신규아파트 부지로 편입되어 2008년 현재 문화재조사가 이루어진 상태이며 12월에는 마을제당이 신축되고 농소농협의 하나로마트도 완공되었다. 2009년 현재 마을은 도시계획상 중심상업지역과 주거지역 그리고 아파트부지로 계획이 되어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개발이 완료된다면 냉천마을이 전통마을로서 보존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우리는 마을제당인 망월당과 애향비를 문화재급으로 건립하고 그 맥과 혼은 길이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 항공사진은 2006년도에 촬영한 것임♣
①뒷골과 산골-참새미 마을 뒤의 골짜기와 그 다음 골짜기.
②큰산골과 찬물내기-약수와 경계에 있는 골짜기와 그 밑의 골짜기
③오림이들과 갈밭들-도로 건너편 천곡동 진입로 위의 들과 갈밭마을 뒤쪽의 들. 오림이들은 일명 오렴들이라고도 함.
④주우불-구 국도와 철도 사이로 옛날 농소면사무소가 있던 곳이다. 동천강 서쪽 건너 맞은 편 돌충듬이가 마치 고양이가 쥐를 노리는 형상이고 동편은 쥐가 고양이에게 쫒기어 숨어드는 형상이라 쥐이불 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⑤찬샘솔끝-마을이름이 된 찬물이 풍부한 우물
⑥섬배기(섬배미)-갈밭들 넘어 동천강 가운데 천곡과 경계지점으로 버드나무 숲이 있었으나 지금은 제방축조로 없어짐.
⑦장승배기-7번 국도 경주쪽 마을 입구, 장승이 섰던 자리.
⑧방천미기-냉천과 신기의 경계지점, 옛날 신흥사의 절답이 이곳에 있어 물막이 방천을 했다고 한다.
⑨은행나무-마을 한가운데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당이 있고, 이곳에는 제당과 함께 당산목인 은행나무 암,수 두그루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1850년경 이정발(李貞發)과 엄성철(嚴星哲)이 식수 했으며 지금도 이들의 4대손 이구락과 엄형섭이 냉천마을에 거주 하고 있다. 수고는 약25미터, 둘레는 암목 2.2미터, 숫목 3.7미터 이다. 이 당산목은 마을 주민들의 정신적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올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약수마을에서 남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동대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나온 낮으막한 산줄기가 있으니 이곳 사람들은 이 산을 “큰갓”이라 부르고 한자로 표기해서는 대기산(大技山)이라고 했다. 대기(大技)란 훈을 빌려 “큰가지”인데 “가지”를 줄이면 “갖(갓)”이 된다. 그래서 “큰갓”이란 곧 “큰숲”을 뜻하는 것으로 예부터 이 산줄기에는 숲이 짙었다고 한다. 이 큰갓의 아래쪽 서편에 편편하고 넓은 등때가 있으니 속칭 “속등”이라고 하였다.
처음엔 산등성이로서 묘도 쓰고 했지만 워낙 넓은 땅이라 논과 밭으로 개간한 것인데 바로 그 아래 자리한 마을이 참새미이다. 한자로 한천(寒泉) 또는 냉천(冷泉)이라 한다. 마을의 호수는 왜정시대 때 이미 80여호로 동서로 길개 나열해 남향을 하고 있는 큰 마을인데, 마을 뒤는 죽림이 우거져 마을을 감사고 있는 형국이다. 대밭에 감싸인 마을에는 거의 학성이씨(鶴城李氏)가 살고 있는 마을이었는데 어떤 가정에 대사가 있으면 그 중 먼데서 온 손님은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몇 사람씩 데리고 가서 자기 집에서 대접해서 재워 보내던 인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학(漢學)을 하는 선비들이 많아 예부터 학문을 이어 받아 왔으며 외지 선비들의 출입 또한 끊이지 않았다.
이 마을 이름이 찬샘 또는 참새미라 불리게 된 것은 마을 앞 경주로 가는 옛 국도 옆에 땅속에서 자연히 솟아나는 샘에서 유래가 되었다. 그 샘물이 유별나게 차가웠기 때문에 그 이름이 찬새미(冷泉)가 되었다. 이 찬새미가 먼저 있고 후에 마을이 이룩되었는데 이 찬새미가 마을 앞에 자리를 잡아 자연스레 마을 이름도 참새미가 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 찬샘의 물은 워낙 차가워서 물속에 손을 넣고 한참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겨울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 데운 듯이 물이 따뜻했다고 한다.
한때 울산시교육장을 지낸 이마을 출신 이병직씨의 말에 의하면 “내 고향이 바로 참샘마을인데 신천의 푸른 물줄기와 흰 모래밭은 아직도 눈에 선하며 여름철이면 국도변에 있는 참샘 곁에서 떡장수 할머니가 밥수건으로 천막처럼 햇볕을 가리고 호박떡을 구워 파는데 아이들은 그 떡을 많이 사먹었으며 입이 짜면 참새미의 물을 바가지로 마구 퍼마시기도 하고 샘물에 손을 담궈 오래 견디기 시합도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옛날에 과거보러 가는 사람이 이 찬샘물을 마시면 낙방한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고 읍지(邑誌)에서도 관리가 이 물을 마시면 반드시 파직된다고도 했다. 봄, 여름, 가을까지 행인들의 타는 목을 시원하게 적셔주던 참샘, 그러나 밀양의 얼음골은 산골 속인데도 일부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 가지만 길목에 있는 이 참샘은 여름이면 어름이나 진배없는 찬물인데도 고맙고 기이하다고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오히려 마시기를 기피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어찌 보면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란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낙방을 했다고 해서 마신 참샘물을 이유로 삼는 것은 자기의 학문이 부족한 것을 다른 곳에 전가시키려는 당치 않은 트집과 핑계가 아닐까?
려말선초(麗末鮮初)의 학자 이담(李澹)은 냉천(冷泉)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옆집에 작은 샘이 있는데 그 근원이 거칠어 이웃 사람들이 더러운 땅에서 나왔다 하여 먹지 않았다. 내가 근원을 치우고 물이 흐르도록 하여 벽돌을 쌓아 놓으니 냉천이라는 샘과 맥도 같고 맛도 같으니 한 근원에서 갈려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투어 와서 축하하고 쓰고 또 써도 마르지 않았다”고 했으니 지방이야 서로 다르지만 물이 차고 물맛이 좋아 냉천이란 이름을 붙여 사람들이 귀히 여기고 즐겨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마을 에서는 길가는 행인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추겨주는 이른바 갈자득냉천(渴者得冷泉)하니 일국(一鞠)이 치천금(値千金)이랄 수 있는 냉천이 아니던가? 한때 미신의 전설을 안고 꺼려하던 유습이 끝내 따라 다니더니 보배로운 대자연의 선물 냉천의 물줄기는 인근 아파트 단지의 지하수 개발로 마침내 그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다음은 동천강에 대한 이야기다. 예부터 농동과 농서 사이를 흐르는 강물을 동천이라 불렀는데 이 말은 한자조어일 뿐이고 그 이전에 불렀던 순수 우리말 이름은 “어름거랑”이었다. 한자로 표기해서 어련천(語連川)으로 글자의 뜻대로라면 “말이 이어진다”는 文式造語같이 보인다. 그러나 본 뜻은 “얼음”이란 뜻을 음만 빌려온 이두식 조어이다. 그런데 이 “얼음거랑”이란 이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우리 냉천마을과 이웃마을 에서는 따로 “냉(冷)거랑”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이 “냉거랑”은 실재로 얼음같은 찬물이 우리의 참새미에서 흘러나와 거랑의 물이 하루 종일 한랭한데서 온 이름임은 이곳 노인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마을제당(望月堂)♣♣♣
마을 한가운데(신천동 477-8) 200여년 전에 심어진 은행나무(노거수6호) 아래 있으며 최초에 돌담구조에서 1970년대 초 시멘트 블록 구조로 재건축 되었다가 2008년12월 목재 5포7포구조로 신축되어 망월당으로 명명 되었으며 매년 정월대보름에 제관을 선정하여 동제가 봉행되고 마을주민들이 모두 모여 음복을 하며 마을의 1년을 결산하고 새로운 계획을 새우는 망월동회가 열린다.
◀제당추진 경과▶
◈1. 작년 9/23일 은행나무 표지석 제막식장에서 낡고 비가 새는 제당을 신축하자는 발의가 있어 참석 동민들의 동의로 신축이 결의되었고 이어서 마을 개발위원을 중심으로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추진위원장 이재락, 간사 이동수, 총무 이무락, 기획 이구락, 재무 이동호, 위원 이수환, 박기환, 강용한, 류경열)
◈2. 10/15일 제당개축 및 노거수정비에 관한 민원을 북구청에 접수. 이에 대한 결과로 제당신축에 관한 지원은 근거부족으로 불가하나 은행나무 정비와 제당터 축대신축 건은 구청예산으로 실시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3. 따라서 실시설계와 업자선정을 거쳐 금년 1월초순에 은행나무정비와 제당터 축대공사가 실시되었습니다.
◈4. 2월21일 대보름날 그동안 해묵은 숙제였던 제당터를 마을에서 구입하기로 의결했다.
◈5. 3월초순에 제당터를 2000만원에 구입하고 3월말까지 이전등기와 제반 행정절차 및 경계측량을 마쳤다.
◈6. 4월5일부터 제당신축에 관한 마을민들의 정성을 모으는 성금모금운동을 시작하여 약180여명의 주민들과 출향인들이 약4700여만원의 성금을 해주셨다.
◈7. 7월초에 제당추진위원들이 하동의 목수 안태수씨의 안내로 통영시 상림면의 무이사를 방문. 목수가 직접 건축한 법당건물을 답사했다.
◈8. 7월20일 목수 안태수씨의 현장 방문과 신축제당의 견적을 설명하고 견적금액을 제출받아 이를 조정하여 건축비 3100만원에 계약을 채결했다.
◈9.7월30일 마을민들의 소원성취 축원문을 담은 타임캡슐 봉안이 결정되어 안내문이 배포되었다.
◈10. 8월15일 마을청년단합대회와 주민 만남 한마당 행사장에서 기공식과 함께 개기제를 올렸다.
◈11. 11월1일 추진위원, 향리수호회 이사, 한천회 이사, 오륙회대표, 한길회대표 등 18명이 하동 목수 안태수를 만나 구례의 제재소를 방문하여 제당신축용 나무를 점검하고 작업자를 격려하였다. 참가자(이수환,이재락,이정표,최화수,신주연,이안수,이상길,이동수,이무락,이영우,이규팔,박복동,이구락,이동호,이상락,박휘동,이동건,강성일)
◈12. 11월17일 상량고유제가 거행되었다.
◈13. 12월10일 낙성제와 낙성식이 농소 유지들과 지역 기관장, 마을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으며 타임캡슐이 봉안 되었다. 12월20일 추진위원회 결산 및 해산.
◈14. 2009년 정월대보름(2월9일) 망월당 당호편액이 게양되고 애향비가 제막되었다.
◈15. 3월29일 마을 개발위원들과 경로회 회원 일동 19명이 하동의 단청사 김봉기선생을 방문 단청공사를 1350만원에 계약했다.
◈16. 4월25일 단청공사가 완료되고 망월당 당호 편액이 다시 게양되었으며 5월1일 고유제를 올렸다.
◀제당 개기제 축문▶
維歲次戊子七月癸酉朔十五日丁亥
冷泉마을住民一同은 靈明하신 堂山地神께
酒果脯를 陳設하고 삼가 告하옵니다.
長久한 歲月동안 壽福綱領과 時和豊年으로
福祉歲月 점지하시고
疾病退治와 運數大通으로
마을安寧과 繁榮을 보살펴 오신
全能하신 神의 靈堂 마을祭堂이
모진 風雨에 氣盡하여 壽命을 다하였기에
이제 다시 全洞民이 뜻을모아
古堂을 撤去하고 새 神堂을 新築코저
헌집을 헐어내고 堂山木을 整備하여
새로이 터를 닦아 주춧돌을 놓으려 하오니
神께서 保佑하사 아무 뒷탈이 없게 하옵시고
順調롭고 安全하게 建築이 이루어져
永世토록 굳건하고 榮華로운
神靈한 祭堂이 세워지기를 업드려 비옵니다.
이에 吾等은 삼가는 마음으로
맑은 술 한잔을 올리오니
伏惟 尊靈이시어 부디 歆饗하옵소서.
◀제당 상량문▶
冷泉祭堂 上樑文
旗朴嶺 묻은 구름 驟雨로 내달아서
방천미기 쉰마지기 뒷등 산골 훑어내려
검푸름 넘실거리는 오림이들 갈밭들
솔 끝에 솟은 샘물 차갑기가 얼음 같고
綠野靑靑 갈대밭은 기름진 門前沃畓
數百年 찬새미 갈밭 代를 이은 冷泉마을
東大山 天馬山이 左靑龍 右白虎라
돌거랑 냉거랑 물길 안아 굽이치고
竹林이 바람 막으니 天下明堂 따로 없네.
陽地 向해 주추 놓고 넓은 들 땅을 갈아
마음 섞고 情 나누며 千年歲月 쌓은 이곳
到處에 가득한 和風 由緖 깊은 人情마을
堂山木 神靈한 精氣 代代로 서린 곳에
뜻 모우고 情性모아 新築祭堂 터 고루니
戊子年 菊秋之節에 대들보가 올라가네.
어영차 대들보를 東쪽으로 던져보니
東大山 우람한 氣像 千萬年 빛이 나고
어영차 대들보를 西쪽으로 던져보니
黃雲의 山城落陽이 玲瓏하게 아름답고
어영차 대들보를 南쪽으로 던져보니
舞龍山 滔滔한 日出 새아침이 燦爛하고
어영차 대들보를 北쪽으로 던져보니
?述嶺 發源한 淸水 東川江물 맑게 하고
어영차 대들보를 위쪽으로 던져보니
白鶴이 날개짓하여 그 色이 더욱 희고
어영차 대들보를 아래쪽으로 던져보니
온 마을 崇高한 精誠 봇물을 이루었네
應天上之五光이요 備地上之五福이라
燦然한 氣運들이 天地四方 가득하니
降臨한 土地天龍이 物物이 喜色이네.
엎드려 바라오니 이 上樑 올라간 뒤
堂山地神 蔭德으로 온갖 難題 一掃하여
萬代에 우러를 祭堂 굳건하게 하옵소서.
이곳에 銀杏나무를 심고 城隍堂을 造成한지 어언 二百餘年, 그동안 마을에서 洞祭를 奉祀해온 이 祭堂은 처음 돌담으로 지어진 것을 나중에 시멘트블록으로 改築을 하였으나 歲月이 감에 따라 낡고 초라하여 보기에 凶하였다. 그러던 중 마침 丁亥年 한가위에 堂山木 標識石을 세우면서 木材祭堂新築案을 마을民들이 決議하고 推進委員會를 構成하여 戊子年 二月二十九日 해묵은 宿題였던 祭堂터 所有權問題를 마을에서 買入登記함으로서 解決하고 六月二日에는 建築許可申告를 畢하였다. 아울러 積極的으로 同參해주신 마을民들의 精誠어린 誠金으로 新築資金을 마련하고 河東木手 安泰洙를 都片手로 定하여 光復節에 起工式과 함께 開基祭를 올려 터를 고루고 마침내 今日 上樑을 올리게 되었다. 이에 그 기쁨을 讚하는 詩 한首와 함께 간단히 그 來歷을 記錄으로 남기는 바이다.
建築主: 冷泉새마을會(代表者 李同洙)
祭堂新築推進委員會: 李壽煥 李再洛(委員長) 朴基煥
李同洙(幹事) 姜龍漢 李武洛(總務) 柳敬烈
李玖洛(企劃) 李東鎬(財務)
都片手: 安泰洙
上樑日時:2008年11月22日午時(戊子年陰曆10月25日午時)
李玖洛 謹撰
朴輝東 謹書
◀제당 낙성제문▶
維歲次戊子十一月壬申朔十三日甲申
冷泉마을住民一同은 靈明하신 堂山地神께
酒果脯를 陳設하고 삼가 告하옵니다.
神의 靈堂이 新築을 完了하고
마침내 今日 落成을 告하오니
伏惟尊靈께서는 부디 新黨으로 枉臨하시어
永世토록 神靈하고 無窮토록 굳건하게
保存하여 주시옵고 所願函을 奉安하니
洞民들의 所願成就 家家戶戶 살펴주옵시며
壽福綱領과 時和豊年으로
마을安寧과 福祉繁榮을 점지해 주시옵기를
엎드려 비옵니다.
이에 吾等은 삼가는 마음으로
謹以淸酌 올리오니 부디 歆饗하옵소서.
♣♣♣마을 동제♣♣♣
마을의 동제는 정월대보름에 봉행하며 통상 子시에 봉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관은 걸림이 없는 사람으로 한달 전에 미리 마을 개발위원회에서 선정하여 봉행을 전후한 1개월간 금기사항을 지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지도록 한다. 봉행자금은 매년 향리수호회에서 부담하며 낮에는 마을 회관에서 음복과 함께 망월동회를 열어 1년을 결산하고 새해의 사업을 의논한다. 아울러 민속놀이를 통한 마을민들의 유대강화도 도모한다.
◀동제축문▶
維歲次 己丑 正月 辛未朔 十五日 乙酉
冷泉마을 住民一同은 삼가 告하옵니다.
全能하신 堂山地神이시어
해가 바뀌어 燦然한 새 氣運이
天地四方에 가득하니
今年에도 마을의 모든 家庭이
壽福綱領하며 無事泰平하고
運數大通하며 萬事如意토록
諸惡一掃와 疾病退治하옵시고
土地作物과 飼育家畜에
風雨災害와 病蟲害를 막아
時和豊年을 점지하옵소서
民在於地 神在於天이라
乾坤共히 日就月將하여
成功繁榮하옵기를 간절히 祈願하오며
伏惟尊靈께 酒果脯를 陳設하고
謹以淸酌 올리오니 부디 歆饗하옵소서.
♣♣♣당산목(은행나무)♣♣♣
우리마을 477-8번지에 있는 당산목은 1850년경 마을 어른 이정발, 엄성철공이 심은 암수 한쌍의 은행나무이며 2000년10월에 울산광역시 북구청에서 노거수6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있다. 마을에서는 향리수호회에서 2007년 한가위에 이정발공의 현손인 이구락씨가 찬한 시 한수와 나무의 내역을 간단히 적은 표지석을 세웠으며 2008년에는 구청에서도 나란히 표지석을 세웠다. 이 당산목은 당산지신을 상징하는 神體의 의미가 있으며 선비마을을 뜻하는 의미도 있다. 해마다 암나무에는 은행이 많이 열려 풍성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동제 제물로도 이 은행이 반드시 쓰인다.
♣♣♣애향비(愛鄕碑)♣♣♣
지역개발의 여파로 마을이 변모해가고 마을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대대로 마을을 지키고 가꾸어 왔던 찬새미 갈밭 사람들의 정리를 다시 되살리고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하여 2008년 신축제당의 완공과 함께 애향비를 세워 2009년 정월대보름에 제막하였다. 비문은 마을의 이구락 선생이 찬하였으며 후면에는 제당 신축에 정성을 모아주신분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타임캡슐♣♣♣
2008년7월 신축되는 제당(망월당) 바닥에 타임캡슐을 묻기로 추진위원회에서 결의하고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하였다. 먼저 출향인사들을 포함한 마을민들 각 가정의 소원성취문과 지역유지들의 축하 메세지 그리고 마을의 각종자료 등을 수집 정리하여 2008년 12월10일 낙성식과 함께 망월당 바닥에 매설하였다. 모두의 안녕과 다복을 축원하고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소중한 자료들을 매립하였는데 먼 후일 이 목재제당이 수명을 다하는 날 다시 열리어 모두의 소망이 풍성한 결실로 다가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탕건바위♣♣♣
탕건바위는 기박령 초입의 마우나오션리조트 진입로 북쪽편 로변에 위치한 바위다. 모습이 꼭 갓 아래 받쳐쓰는 탕건을 닮았다하여 예부터 탕건바위로 불리어 왔다. 이 바위는 지역의 위치를 상징하는 이정표로, 또 어린 아이들이 소를 먹이며 온갖 놀이를 하던 놀이터로, 나뭇군들의 나뭇짐을 쉬어가던 쉼터로, 북망산천을 떠나는 망자가 이승과 이별의 술잔을 나누는 이별의 길목으로 항상 지역민들과 애환을 함께해 온 소중한 추억의 바위이다. 2007년 오토벨리로가 건설되면서 묻혀버릴 위기에 놓였으나 지역민들의 건의로 다시 원위치로 복원되었다. 2007년 8월15일에는 냉천한길회에서 주변을 정리하고 표지석을 세웠으며 그해부터 냉천한길회 주관으로 매년 8월15일 기박령 산신령과 먼저가신 지역의 선령들에게 고유제가 올려지고 있다. 표지석의 시는 초대 냉천한길회 이구락 회장이 찬했다.
◀탕건암 기원제축문▶
維歲次戊子七月癸酉朔十五日丁亥
冷泉한길회원 一同은
旗朴嶺 土地之神과 永眠하시는 마을先祖들께
酒果脯를 陳設하고 삼가 告하옵니다.
全能하신 神靈님과 欽慕하옵는 英靈님들이시어
節氣가 바뀌어 處暑白露가 다가오니
五穀百果가 다투어 여물고
滿山草木이 結實을 맺어갑니다.
올 가을에도 風雨災害와 病蟲害를 막아
時和豊年을 점지하옵시고
家運上昇과 運數大通으로
萬事如意하고 所願成就하며
神靈님들의 加護로 諸惡一掃하고
疾病退治하여 마을과 地域이
두루 無事泰平하고 健康長壽하며
和氣滿堂하기를 두손모아 비옵니다.
이에 吾等은 國慶日인 光復節을 맞아
神의 鬼物 宕巾巖前에 ?伏하여
삼가 술 한잔을 올리오니
부디 歆饗하옵소서.
♣♣♣동천강♣♣♣
동청강은 우리마을에서는 냉거랑으로 주로 불리워 온 강으로 수량이 비교적 적어 연중 마른 강이 대부분이다. 우리의 곡창인 오림이들과 갈밭들에 농사를 짓기 위하여서는 강물이 필수이나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다. 신천천(돌거랑)과 천곡천이 만나는 곳은 부엉디미로 물이 깊고 수량이 많아 여름철 어린이들의 물놀이터로 각광을 받았으나 지금은 삼성홈플러스 건물로 경관이 파괴되고 물의 오염으로 수질이 좋지않아 사용이 어렵다. 부엉디미 북쪽의 강바닥엔 옛날에 섬배기라는 섬이 있었고 그 윗쪽엔 삼배둠벙이라는 둠벙이 있어 물놀이와 천렵으로 아주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제방이 생기고 난 후로는 그 형체가 없어졌으며 강 바닥은 거의 마른 상태다. 오림이들과 갈밭들의 경계지점으로 천곡마을 진입로가 통과하는데 이 중간 지점에 깨똥나무지기라는 물웅덩이가 있었으며 여기도 많은 민물고기의 서식지였다. 요사이는 천곡마을 진입 교량아래에서 여름철에 주민들이 주로 물놀이와 휴식을 취하고는 있으나 양쪽 제방위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운동하는 전경을 빼면 옛날과 같은 낭만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을회관의 변천♣♣♣
◈1. 1973년 초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동민들이 솔선하여 희사해준 부지와 당시 신천리 205-1번지에 있던 동사(洞舍)를 매각하여 마련한 기금으로 신천리 203-2, 203-15번지 350평을 새로운 마을회관부지로 조성하였다.
◈2. 같은 해 새마을 우수부락 대통령 하사금과 마을주민들의 찬조로 철거되는 농소초등학교의 고목재를 낙찰 받아 건평 약40평의 목조 마을회관을 1773년5월에 완공하였다.
◈3. 1979년7월 같은 부지 내에 주민들과 기업체, 출향인사들의 협찬 그리고 울주군으로부터 시멘트40포대, 철근3톤을 지원받아 경로당과 구판장, 마을독서실을 준공하였다.
◈4.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정부지원으로 마을회관에 새마을 유아원(원장 손용호)을 설립하여 인근마을의 유아들을 보육해왔다.
◈5. 1995년 9월2일 마을주민들의 수차에 걸친 진정으로 울주군의 지원을 받아 낡은 목조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회관을 신축하였습니다.
◈6. 1998년11월 동민들의 협조로 마을회관에 농소2동 사무소를 개소하였다.
◈7. 2000년12월 주민들의 뜻을 모아 농소2동 사무소와 문화센터 건립부지로 마을회관부지를 울산광역시 북구청에 희사하였다.
◈8. 2001년 5월8일 울산광역시 북구청의 지원으로 신천리 481-10번지에 건평25평의 마을회관과 25평의 경로당을 착공하여 준공을 보게되었다. 이어 2003년 3층 약20평이 증축되었다.
♣♣♣역대 마을리장, 새마을지도자, 영농회장, 부녀회장♣♣♣
◈1.역대 리장-이상락 박용수 이종욱 황봉운 박두환 이수환(1956~1957) 이인환(1958~1959) 강갑술(1960~1961) 이수환(1961~1962) 이수현(1962~1963) 손수봉(1963~1964) 이석기(1964~1965) 차용출(1965~1966) 이수환(1966~1967) 황진수(1967~1968) 박준근(1968~1969) 이경락(1970~1973) 류상열(1974~1975) 이백우(1975~1978) 이경락(1979~1983) 류상열(1984~1986) 이무락(1987~1989) 류수열(1990~1991) 이경락(1992~1994) 이재락(1994~1994) 신주연(1995~1997) 이무락(1997~2002) 강용한(2003~2006) 이동수(2007~ )
◈2. 역대 새마을 지도자- 이백우(1970) 이석영(1979) 류춘열(1989) 신태연(1990) 이석영(1991) 강용한(1993) 이상길 김무근(1995) 이채용(1997)
◈3. 역대 영농회장-이백우((1971~1977) 고문우(1978~1981) 이재락(1982~1985) 강용한(1986~1993) 신주연(1994~1996) 강용한(1996~2002) 이무락(2003~ )
◈4. 역대 부녀회장-손용호(1970) 엄인출(1994) 이순필(1995) 유계출(1998) 김정례(2001) 김태옥(2004)
♣♣♣설날 새해단배식♣♣♣
2003년 부터 냉천한길회 주관으로 실시되고 있는 설날 새해단배식은 설날을 맞아 고향을 찾아오신 분들과 마을의 남녀노소 모두가 모여 단체로 새배를 드리고 덕담을 나누는 뜻깊은 행사이다. 설날 오후1시30분에 모두 모인 마을민들은 단배와 새해인사, 덕담, 건배, 다과회 등으로 매우 훈훈한 시간을 가진 후에 각자 처가댁으로 또 임지로 떠난다. 이미 많은 방송과 언론에서 취재와 보도가 된 이 행사는 지역사회로 점차로 전파되고 있다.
♣♣♣마을청년 단합대회 및 주민만남 한마당(내고향 잔치)♣♣♣
2002년8월15일부터 매년 실시되고 있는 이 행사는 마을 청년연합체인 한길회원들의 단합대회와 출향인사와 출가딸내 모두가 참여하는 주민 만남한마당 잔치입니다. 단체 식사와 주연을 겸한 잔치로 족구대회와 공연, 노래자랑, 신풀이 한마당 등 즐겁고 흥겨운 프로그램으로 운영되어 주민들의 참여가 아주 높고 옅어져 가는 이웃의 정리를 되살리는 확실한 계기가 되고 있어 이제는 연례행사로 자리를 잡은 주민화합잔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