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면 왕전리를 왕밭이라고도 부른다. 옛날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의 견훤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기 위해 황산벌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잠시잠시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그꿈에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지고 큰솥을 쓴채 물속으로 들어가자 닭이 울고 수만 집에서 방망이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상히 생각한 왕건은 지금의 부적면 부인리에 있던 무당에게 꿈해몽을 들으니 “거까래 세 개를 짊어진 것은 임금왕(王)자요, 큰솥을 쓰고 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왕관을 쓰고 용좌에 앉는다는것이며, 닭의 울음소리는 고고함으로 높은 것이요, 방망이 소리는 등극이 가까워졌다는 뜻이요.” 라고 해몽을 해주는 것이었다.
용기를 얻은 왕건은 진영으로 돌아와 진격명령을 내려 후백제군을 크게 물리치고 후삼국의 대업을 이루게 되었다. 그후 왕건은
이번 싸움의 승리는 꿈해몽을 해준 무당의 공이 크다고 생각하고 ‘부인’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밭을 상으로 주었다. 그래서 이곳은 왕이 상으로준 밭이라 하여「왕밭」또는「왕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장호가 왕전리에 소속된 유래
고려 태조 왕건이 꿈해몽을 해준 무당에게 밭을 상으로 떼어주기 위해 왔을 때는 밤이었다. 밤인지라 범위가 보이질 않아 밭을 나누어 주기가 어려웠다. 그때 밤이었기 때문에 등불을 들고 있었다. 「이 등불이 보이는 지역은 전부 부인에게 주어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호마을은 들판으로 장애물이 없어 불빛이 보이는 지역이라 왕밭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