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너는 흙이니
중국에도 두레마을이 있다. 연길시 의란진 연화촌 두레마을은 연길에서 승용차로 1시간 거리다. 연길에서 두레마을까지는 약 45km. 연변병원 동쪽 연길 커윈짠(客運立+占.버스터미널)에서는 매일 오후 2시에 고성촌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차를 타고 연길 북쪽 왕청시 방향으로 40분쯤 가면 의란진 소재지 구룡평이 나온다. 구룡평에서 연화촌까지는 13km. 다시 8km를 더 달리면 합수촌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 삼거리에서 다시 왼쪽으로 5km쯤 가면 연화촌 두레(土來)마을이다.
연화촌 두레마을은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이끌던 독립군 부대의 본영이 있던 자리다. 특히 연화촌 북쪽 끝자락은 1930년대 초 김일성 부대가 무장 항일투쟁을 벌이기 위한 왕우구항일유격구의 핵심근거지였다. 북쪽 산기슭엔 항일 독립군의 돌무지무덤을 비롯한 독립군의 체취가 남아 있다.
두레마을이 자리 잡은 개활지 양 편엔 긴 산이 뱀처럼 이어져 있다. 그 가운데로 조그만 하천이 흐른다. 2004년 장모인 소설가 박경리를 모시고 이곳을 다녀갔던 김지하 시인은 이곳을 “산곡간개활(山谷間開活)의 명당혈처(明堂血處)”라고 말하며 “크고, 새로운 운동의 근거지로서 훌륭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극찬했다.
연화촌 두레마을 뒷산을 넘어가면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고성촌이 나온다. 걸어서 1간 거리다. 이 마을은 일제 때 경남 하동군 평사리에서 만주로 집단이민을 간 <토지>의 주인공 서희와 길상이 살던 무대. 그러나 지금 이 마을에는 동포들이 한 명도 안 산다. 마을의 집 구조만이 동포들이 살았던 흔적을 대변해 줄 뿐이다.
두레마을은 단돈 50위안(한화 6천5백원)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된장찌개와 더불어 세 끼 식사가 제공되고, 통나무집 구들방에서 하루를 묵을 수 있는 곳이다.
겨울에는 숯가마를 이용한 찜질방도 운영한다. 또 물놀이도 가능하고 축구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운동장도 있다. 야외에서 장작불로 구워먹는 돼지고기 맛은 더욱 기가 막힌다.
한국과 달리 제대로 된 자연휴양림이 없는 연변에서 이 같은 시설을 찾기는 어렵다. 더욱이 50위안에 식사와 숙박이 해결되니 이 보다 더 편리할 수 없다.
연변 두레마을은 1997년 한국 두레마을 대표인 김진홍 목사가 연변과기대 김진경 총장의 주선으로 연길시정부와 50년 임대계약을 맺어 설립한 생태문화촌이다.
14명의 구성원들은 이스라엘의 키부츠와 같이 공동생활을 하며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140만평이 넘는 이곳에는 400여명이 숙식을 하며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연수회관을 비롯해 본부 사무실 및 식당, 캠프촌, 휴양시설, 문예창작기지 등이 있으며, 콩 가공 공장, 목재소, 가축사육장도 있다. 현재 전체 면적 중 30만평은 동포사회에 기증돼 민들레촌이라는 이름으로 동포들이 자체적으로 꾸려가고 있다.
매년 여름이 되면 연변을 비롯해 중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동포 작가들과 지식인들이 이곳에 모여 조선족자치주의 발전을 모색하는 심포지엄도 개최하고,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토론도 벌인다. 이 밖에도 초, 중, 고, 대학, 기업을 비롯한 많은 국내외 단체들이 이곳에서 캠프와 연수 행사를 가지기도 한다.
연변두레마을 입구 간판에는 성경 창세기 3장 19절에 나오는 ‘사람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때를 생각하라(人本是由土而生, 應想到歸土之時)’는 말씀이 쓰여 있다. 바쁜 도심의 일상에 찌들었다가 이곳에 오면 몸과 마음이 평안을 찾는다. 2005년 K기자 가족을 따라 아이들과 함께 이곳 통나무집에서 1박을 한 적이 있는데 하루살이 벌레가 너무 많아 잠을 설쳤다. 그만큼 이곳은 오염이 안 된 청정지대다.
연변 두레마을의 주요 생산품은 무공해 농산물. 이곳에서 생산되는 된장을 비롯한 꿀과 약초, 산나물은 최상의 품질이다. 특히 두레마을 된장은 전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명품이 되었다. 콩의 원산지는 만주 남부와 한반도라고 알려져 있다.
된장 이야기가 나온 참에 연변의 된장이야기를 해보자. 연변 동포들은 된장찌개를 그냥 장국이라 한다. 그런데 연변의 된장찌개 맛은 한국과 다르다. 하기야 한국에서도 집집마다 장맛이 다르긴 하다. 연변의 된장찌개 맛은 대체로 된장자체보다 간장맛이 강하다. 그 이유는 된장을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메주를 장독에 띄운 뒤 숙성이 되면 메주덩어리와 장을 따로 분리해 메주로는 된장을 만들고, 메주 즙은 간장으로 이용하지만 연변에서는 간장과 메주를 분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변 고유의 된장은 검은 빛깔을 띠고 있는데 비해 두레마을 된장의 색깔은 누르스름하다. 두레마을 된장은 한국식이다. 물을 어느 정도 넣고 끓이는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두레마을 된장이 담백한데 비해 연변 고유의 된장은 짭짤하다.
국물 맛을 우려내는 방법도 다르다. 한국에서는 보통 된장을 끓이기 전 멸치 또는 다시마를 넣거나 소고기 양지머리로 국물 맛을 내지만 연변의 장국에는 멸치와 다시마 같은 게 없다. 또 장국에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를 넣는 것도 다르다. 연변에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많이 먹기 때문에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격이 비슷하다.
두레마을에서도 된장을 판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가장 많이 사가지고 가는 것도 된장이다. 나도 처음엔 연길 칼마백화점에서 파는 비닐봉지에 든 연변 된장을 먹다가 두레 마을 된장으로 바꿔 먹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릴적 입맛을 따라가는 것은 인지상정인가보다.
연변 두레마을은 또 북한을 돕기 위한 전진기지로도 활용되고 있다. 두레마을측은 이곳에서 생산되는 된장을 비롯한 식량, 의류, 묘목, 씨감자를 북한에 보내고, 농장 지원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연변과 북한을 잇는 ‘생명평화의 숲 가꾸기 사업’을 통해 북한에 잣나무 묘목 보내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04년 10월 처음으로 잣나무 묘목 5만 그루를 북한에 지원했다.
두레마을은 동북아 녹색경제와 한민족 평화공동체 운동을 통해 그린르네상스를 꿈꾸는 기지다. 이 마을이 해체돼가는 중국 동포 농촌마을을 되살리는 모델이 되고, 황폐해져가는 북한의 민둥산을 되살리는 평화의 에코 폴리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남일보 박진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