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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최진규선생 포덕불망비 |
금수강산 정기받은 와룡산을 등에 업고 한려바다 바라보는 산고 수려한 이곳에 오만년이 영원토록 전해 갈 민족종교의 전당인 천도교 삼천포교구를 이전 신축 낙성하면서 보국안민 포덕천하 광제창생 지상천국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드높은 이상을 지닌 동학 천도교를 이 고장에 먼저 전해 심은 분이 항암 최진규 선생이시다.
선생은 학자이신 최학순의 장남으로 포덕 전 2년 10월 20일 경남 하동군 적량면 신촌리에서 태어나 약관 20세에 이 지방 궁지리에 이주하여 조선말기의 쇠운을 한탄하여 연죽(담뱃대)장사로 주류하시다가 본적을 경남 고성군 상리면 동산리에 두고, 전북 장수 지방에 이주하여 살던 김희숙씨의 소개로 장수군 고백리 김성진동덕의 포덕으로 포덕 33년 4월 15일 동학 천도교에 입교한 것이 이 고장에 천도교가 심어진 최초이다. 선생은 주복야행하는 지하활동으로 포덕을 전개하여 교세가 신장되었으며, 포덕 45년 갑진년에 이곳 교인 중에서 선생을 비록 김응두, 송영만, 제씨가 단발 흑의로 혁신 문화운동을 한 진보회원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포덕 51년 경술국치에 통분해 오던 후암 장태영선생이 포덕 52년 천도교에 입교하여 전교실을 자택에 설치하고 처음으로 궁을기를 게양하니 당시 뜻을 같이한 정태옥, 김재현, 박치모, 김응두, 장두용, 제씨 등이 계시며, 기미년 3.1독립운동시에는 후암 장태영선생이 상경하여 천도교 3세교조 의암 손병희 선생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매를 받아 버선목에 숨겨와 삼천포, 사천지방의 독립운동의 선구역할을 하였으며, 포덕78년에 독립운동을 획책한다는 이유로 천도교 당시 이 지방 지도자 최봉권, 최현순, 김경진, 장주학, 하석주, 최영준, 손기복, 제씨 등이 왜경에 구속되어 갖은 고문을 당하였으며 교세가 신장되면서 포덕 106년 8월 1일을 기하여 삼천포, 사천교구로 분리되었다. 그간 삼천포교구는 교인들의 수용에 교당이 낡고 비좁아 동덕들과 유지들의 성금으로 교당을 신축 낙성하면서 선생의 높으신 덕을 추앙하여 이 한덩이의 편석에 후학들의 뜻을 다 새길 수 있으랴, 글이 짧고 말이 모자라나 선생의 공덕을 후세에 전하고자 이 비를 세우다.
포덕 132년 4월 14일
[역대 삼천포 교구장] 최진규, 김응두, 장태영, 김응욱, 장태영, 장두용, 전덕조, 박치모, 강기수, 최봉권, 최영준, 장주학, 최영윤, 최창락, 최영윤 [역대 사 천 교구장] 최영준, 송인구 하명덕, 문병채, 황경상, 김은수
삼천포 사천 동덕일동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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