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주제에 두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명리학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명리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하는 방법적 문제입니다. 두 가지 문제 중에서 명리학의 정체성에 대한 부분은 다음 기회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뤄 보기로 하고 이 지면에서는 명리학을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이고 실전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대해 역학을 공부하는 학인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이 방법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므로 절대적 방법이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으며 그저 조금이라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할 뿐입니다.
1. 명리는 궁리다.
대부분 명리를 처음 공부하는 분들은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외우기를 강요당합니다. 갖가지 공식들, 수많은 신살들 등등 이러한 외우는 것들 때문에 공부를 포기하는 분들도 꽤 많은 듯합니다. 아마 지금 명리를 어느 정도 하셨다는 분들도 이렇게 외워서 하는 공부에 익숙해져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외워서 하는 공부가 처음에는 빠르게 느껴지나 나중에는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한 마디로 처음 배울 때나 몇 년이 지나도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처음 공부할 때 사주를 써 놓으면 다 보일 것처럼 자신만만했는데 갈수록 나아지기보다 오히려 오리무중이 되어갑니다. 명리에서 외울 것은 24절기와 60갑자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원리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공부는 죽은 공부입니다. 외우는 공부로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 틀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오직 스스로 궁리하는 방법뿐입니다.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하는 것이 궁리의 기본입니다. ‘왜 그러한가?’, ‘그러한 이치가 무엇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원리, 이치, 기본을 항상 궁리하고 또 궁리해야만 응용력이 생기게 되고 하나를 들어 만 가지를 통할 수 있게 됩니다.
역학의 기본이 음양오행이지만 다른 어떠한 응용역(應用易)보다 음양오행에 충실한 것이 명리학입니다. 그러므로 음양과 오행에 대한 끊임없는 궁리가 명리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되도록 명리학 서적에 속해 있는 음양오행보다 음양오행 연구를 전문으로 한 책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유학적 입장의 태극, 이기, 심성, 음양오행에 대한 서적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음양이 뭐지』, 『오행이 뭘까』, 『음양오행으로 가는 길』 전창선, 어윤형 지금, 세기
설명이 필요 없는 책입니다. 젊은 한의사들이 지은 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음양오행에 대한 설명이 쉽고 재미있으며 자세합니다.
『조선유학의 개념들』 한국사상연구회, 예문서원
태극, 이기, 음양오행을 유학적 시각에서 포괄적이면서도 세밀하게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우주변화의 원리』 한동석, 대원출판
꽤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꼭 정독해야 할 책입니다.
2. 중심을 잡아라!
모든 공부가 다 그렇듯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시간과 공력만 소비할 뿐, 뜻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중심이란 원리이며 기본이며 체(體)라 할 수 있습니다. 중심을 잡게 되면 그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이해되고 응용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방법에서 중심을 잡는 것은 용(用)에 얽매이지 말고 그 본래의 모습인 체(體)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어떤 얼굴의 우는 것만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이나 수염을 기른 모습을 보고 과연 그 사람인지 바로 알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의 진면목은 체(體)가 되고 희노애락에 따라 변화하는 얼굴은 용(用)이 되겠지요. 용은 체를 벗어나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목(木)은 나무다”라고 인식하게 되면 목은 나무로 고정됩니다. 이것은 나무라는 형(形)만을 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무는 목이라는 상(象)에 의해 만들어진 형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목의 상을 이해하면 큰 산도 목일 수 있고, 작은 돌맹이도 목일 수 있고, 세숫물에서도 목의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망망대해 속에서도 목의 기운을 찾을 수 있겠지요.
응용역(應用易)은 상(象)과 수(數)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응용역이라고 합니다. 명리는 사주라는 상(象)을 기준으로 하고, 사주는 육십갑자라는 상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고, 이 육십갑자는 음양과 오행에 의해 자신의 상을 형상화합니다. 형을 보고 상을 유추하고 찾아가는 것을 ‘격물치지(格物致知)’라 합니다. ‘격치’는 곧 ‘과학적 방법’입니다.
상을 이해하면 형은 자연스럽게 밝혀지게 됩니다. 형의 중심을 알게 되면 상의 원리가 확연해집니다.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연(因緣)에 따라야겠지만 명리 공부에서 중심으로 삼을 만한 책은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적천수천미』 - 억부가 중심이 되는 관법 – 변(變)
되도록 원서를 보시기 바랍니다. 경도 선생의 원문과 유백온 선생의 주와 임철초 선생의 소를 구분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자평진전』 - 격국이 중심이 되는 관법 – 위(位)
심효첨 선생의 원문에 서락오 선생이 평주를 달았는데 원문과 평주의 시각 차이가 있는 것을 인지하고 구분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난간망』 - 조후가 중심이 되는 관법 – 시(時)
난간망은 저자가 불분명하나 이미 『삼명통회』에 그 형식이 보이고 있습니다. 『궁통보감』, 『조화원약』, 『여씨용신사연』등 많은 명칭으로 불립니다. 이 난간망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명리학의 꽃인 물상론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연해자평』, 『명리정종』, 『삼명통회』 등의 책들은 그 시대나 이전의 명리이론을 모아놓은 것이라 내용의 일관성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종류의 책(적천수천미, 자평진전, 난간망)은 일관된 관법으로 세부적이고 정밀하게 명을 논하고 있기 때문에 명리공부의 중심에 놓을만합니다.
3. 표본을 만들어라.
명리공부는 되도록 현실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아무리 근사하고 화려한 이론이라고 실전에서 활용할 수 없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상이 중요합니다. 옛날에는 사주를 구하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하여 조금만 노력한다면 하루에도 얼마든지 많은 사주를 쉽게 수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명조들 중에서는 그 사주에 대한 상세한 이력과 그 이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기 때문에 정확한 임상자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되도록 유명인사의 정확한 명조를 구하여 그 삶의 이력과 대조하면서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되도록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주변 인물들을 장기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미래나 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명조를 임상하는 것보다 이력이 확실하거나 앞으로의 인생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명조를 깊이 연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이렇게 공부하다 보면 처음 볼 때와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지나서 볼 때 그 명을 관찰하는 방법과 느낌 모든 것이 새롭고 더욱 심화되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그러면서 자신의 관법에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4. 글로 써서 정리하라.
책을 통해서 배우든지 강의를 통해서 배우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글로 써서 정리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강의를 들어도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면 그것은 강의한 사람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수많은 지식이나 방법, 이론들을 내 것으로 소화시키는 방법으로 글로 써서 정리하는 것만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오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을 습득하여 머릿속에는 가득하지만 막상 그것을 글로 표현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그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습득된 이론이나 방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고 정확한 통변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꼭 글로 써서 정리하는 습관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주 토론하시기 바랍니다. 토론을 많이 하면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통변실력도 자연스럽게 향상되며 새로운 관법을 흡수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5. 마무리
명리는 다른 응용역과 달리 ‘사주’라는 네 기둥만을 이용해서 통변을 하게 되니 처음 공부할 때는 단순하여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그 단순한 코드를 갖고 응용해야 하므로 배우기는 쉬워도 활용하기는 어려운 것이 명리학입니다. 한마디로 웃으며 들어왔다가 울면서도 나가는 길을 찾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만치 않은 지구력에 사물을 관찰하고 궁리하는 탐구력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중심을 잘 잡고 조금씩 내공을 쌓아간다면 뜻을 이루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등대같은 선생님이 계시기에 묵묵히 그 뒤를 따르는것만으로도 길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