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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8/ 9. 7.
HOLY BIBLE King James Version[성경 KJV: 성경 제임스으왕역] 1611판
(전자 문서 & 이미지)
http://dewey.library.upenn.edu/sceti/printedbooksNew/index.cfm?TextID=kjbible&PagePosition
HOLY BIBLE King James Version[KJV] 1611판 사진 복사본을 수고하신 분들의 사이트에서 보면서, 얼마나 많은 기도와 수고로 성경 KJV가 번역되었는지 감탄하고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옵서 사용하신 영적으로도 믿음이 강한 분들이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분들의 해박한 지식과 정말 세밀하고 주의 깊은 성경에 대한 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진이나 설명에 있어서 정말 얼마나 많은 영적 수고를 하였는지 놀랍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마음을 쏟으면 얼마나 완벽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대언자[대변자: Prophet]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하게 반응하였으며, 또 아들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스님을 많은 분들이 부정하고 죽였지만, 성경 학자들이 얼마나 세심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기 위해서 마음을 썼는지, 성경 KJV 진영에 알려져 있습니다. 한글 흠정역과 한글 킹제임스역 뒤에 기술이 되어 있는 것을 알 것입니다.
정말 성경 KJV 번역자들이 얼마나 많은 바른 성경들을 참고하였으며, 또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참고로 하였는지, 또 얼마나 많은 성경 구절을 대조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옵서 완전하게 번역하도록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수고를 이용하셨는지 보입니다. 정말 성경을 완전하게 번역하기 위해서 그들이 같이 올린 자료나 그림 등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고 정확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 본문이 완전하게 보존되었다는 것은 정말 그들의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마음과 성경에 대한 믿음의 수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들의 성경에 대한 수고는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두 분도 아니고 약 50 명의 분들이 서로 마음을 맞추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역할을 나누고, 또 함께 모이거나, 돌아가면서 성경을 완전하게 번역한 것은 사람들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왕이 직접 나서서 성경 번역을 주장하고 도운 것은 여러 주장이 난무하는 나라에서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한 자료들은 넘쳐나게 이미 각 사이트마다 올라와 있으니, 누구나 마음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들은 몇몇 사람도 마음을 모으지 못해서 서로 분열하고, 또 서로 갈라져서 서로 판단하고 또 서로 비난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로 깨닫는 교리 차이로 좀처럼 합쳐지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놀랍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일류대학이라고 하는 서울 대학교, 고려 대학교, 연세 대학교 같은 그 당시 영국의 일류 대학의 학자이면서, 성경 박사이면서, 또 믿음의 성도라는 점에서 정말 대단한 것을 봅니다. 물론 하나님께옵서 시대나 믿음을 통해서 그렇게 이끄셨지만, 그 당시 번역자 분들이 마음을 모은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 KJV에 대한 논쟁이 또한 심한데, 다른 성경과의 논쟁은 고사하고 성경 KJV진영에도 또한 싸움이 많다는 것입니다. 1611년 판만이 하나님께옵서 보존하신 성경이라는 분들도 있고, 1655년판에 순수한 성도 분들이 외경을 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은 것이 기준이라는 분들도 있고, 성경 KJV의 내용을 기준으로 삼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렵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1611판이 나오고 한 번도 교정이 안 된 것은 아닙니다. 많은 교정 본이 나왔습니다. 오자나 탈자의 교정외에도 대문자, 소문자의 교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단어의 교정이 있습니다. 또 철자의 변천 과정에 따른 많은 교정이 있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내용이 수정이 아니더라도 이들은 성경 KJV를 믿지 않는 분들의 공격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대문자, 소문자 구분은 정말 어려운 판단입니다. 또한 일부 철자의 현대식 전환에서 나오는 철자의 교정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리의 모국어도 아닌 남의 나라의 고어 변천 과정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611판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1611판의 내용을 믿는 것이지, 1611판의 인쇄본의 글자가 완전히 실수도 없이 인쇄되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또한 외경을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믿지 않습니다. 다만, 그분들이 부록으로 올린 것을 무시는 않고 참고 자료로서는 인정합니다. 번역한 분들도 중요하지만, 성경 KJV를 지켜오신 성도 분들도 중요합니다. 물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성경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교리는 바뀐 경우가 많고 차이가 나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한글 흠정역 뒤에나 한글 킹제임스역 뒤에 부록에 나와 있고, 많은 번역서들을 인용해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여러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보고 있는 영어 KJV 영어 내용은 거의 1769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1611판과 언어 변천과정에서 나온 문법이나 철자의 차이외에 대소문자나 철자의 변화가 일부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평소에도 대문자 소문자 차이로 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많은 공부와 하나님께 대한 기도가 있어야할 것입니다. 저는 1611판을 기준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 인쇄상의 실수는 인정하고 그 내용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철자나 문법적인 변화는 인정하고 따라야할 것입니다. 무조건 1611판만 완전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외경도 인정하고, 오자나 탈자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인쇄도 하나님께옵서 완전하게 주관하셔서 완전하다라고 하는 것으로서 지나친 1611년판에 대한 아집일 수 있다고 봅니다. 성경 KJV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그 기준판에 대한 논쟁도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성경 KJV의 내용이지, 그 글자, 철자, 콤마, 오자, 탈자 등 마져도 1611판 만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성경 KJV를 믿는 것이 아니라 1611판을 믿는 것일 것입니다. 물론 그 기준은 1611년 판이 되어야 할 것이며, 단지 오자, 탈자나 언어의 변화에서 생기는 철자의 변화 등을 교정하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i 와 j의 변화와 차이, u와 v의 차이, s와 f의 구분 등이며, 그 외에 복수로 나타낼 때 반복되는 언어의 차이 등은 내용과는 상관 없는 언어 변화의 반영인 것입니다. 물론 고딕체에서 로마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발음 상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존함과 관련된 I와 J의 변화과정에서는 많은 공부가 있어야할 것입니다. j의 발음은 i의 발음과 달리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자음에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Hebrew 낭독 성경과 Greek낭독 성경을 통해서 참고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Jesus님의 존함을 Iesus로 하여서 '이에수스님'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Jerusalem을 Herbrew로 들어보면 '이에루살라임', '이에루살렝', '예루살렘'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Juda'도 이우다, 또는 '예후다', '예우다'로 들리기도 합니다. 그리이스어도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나라마다 원래 발음과 다른데 모두 잘못되었다고 지나치게 몰아가는 것은 위험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방인 국가는 모두 잘못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나라도 JESUS님의 존함을 예수님, 예수스님으로 하는 등 우리나라 기존 번역에 따른 발음과 영어에 의한 발음, 원어에 따른 변화 등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보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마음이 주님을 닮고 말이나 표현에서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 지식이 훌륭한 분들도 마음이 높아지면 모두 실족하는 것을 역사적으로 봅니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그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낮은 마음에만 주님의 마음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남을 정죄하거나 비난할 때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판단도 조심해야 하지만, 정죄하거나 모욕하거나 조롱하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한글 흠정역에서 성경 KJV가 교정된 내용을 부록에서 보여주는 것을 보면,
1. this thing → this thing also: 1638
2. shalt have remained → ye shall have remained: 1762
3. Achzib, nor Helbath, nor of Aphik → of Achzib, nor of Helbath, nor of Aphik: 1762
4. requite good → requite me good: 1629
5. this book of the Covenant → the book of this covenant: 1629
6. chief rulers → chief ruler: 1629
7. And Parbar → At Parbar: 1638
8. For this cause → And for this cause: 1638
9. For the King had appointed → for so the king had appointed: 1629
10. Seek good → seek God: 1617
11. The cormorant → But the cormorant: 1629
12. returned → turned: 1769
13. a fiery furnace → a burning fiery furnace: 1638
14. The crowned → The crowned: 1629
15. thy right doeth → thy right hand doeth: 1613
16. the wyes side → the way side: 1743
17. which was a Jew → which was a Jewess: 1629
18. the city → the city of the Damascenes: 1629
19. now and ever → both now and ever: 1638
20. which was of our farther's → which was our fathers 등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 오자나 탈자 등을 교정하였다고 합니다. 철자 수정이라든지 대문자 소문자의 교정이 많았습니다. 이 대문자와 소문자의 구분은 1611년 판과 그 이후의 1769까지의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은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역본과 1611년 판에는 변화가 많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복음 전파라는 분의 사이트에서 참고로 하길 권유합니다. http://blog.naver.com/botomm의 성경 KJV 1611년 판만을 믿음의 기준으로 삼는 분의 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다소 독선적인 표현이 있으므로, 신중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기에 앞서 바른 곳으로 인도하고, 자신이 더욱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할 것 같습니다. 말씀만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자칫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찾는 이들을 막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지식보다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경 KJV를 찾으면서, 저 자신을 통해서 깨닫고 또한 앞 선 분들을 통해서도 깨닫습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성도 분들이 교정하는 과정에서 교정본마다 차이가 있어 오늘날 혼동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 KJV진영도 나누어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들은 문맥에 더 신경을 써야하고, 역사적으로 성도 분들의 마음에서 일하신 성령님의 인도하심 등으로 1611판에서의 교정을 조심스럽게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와 다르다고 너무 정죄하거나, 마귀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자칫 자신도 마귀의 올무에 걸릴 수 있는 높은 판단하는 마음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위의 성경 KJV 1611판 사진판은 성경 KJV를 믿는 분들은 누구나 겸손한 마음으로 참고해서 배우고, 더욱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분들의 성경에 대한 그러한 수고와 마음과 비교한다면 감히 아무 입도 열지 못하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우리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면서 함부로 판단자의 위치에 수없이 서 있구나 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성경 KJV원문을 다 해석해고 깨닫고 비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성경 번역 본과 수 많은 앞 선 분들의 글이나 믿음으로 배워야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한 하나님, 한 성경에 대한 믿음으로 믿음의 기준을 잡아야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리나 지식으로 인한 논쟁이 되어 서로 마음을 상하게 해서 분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 KJV를 믿는 분들이 위의 사이트에서 성경의 기준을 잡고,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며 공부해야 한다고 봅니다. 성경이 얼마나 소중하며, 얼마나 바른 성경이 중요한지 우리는 수 많은 사이틀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 없는 많은 사이트에서 자기들의 믿음을 알리고 전하며 남들을 바른 길로 이끌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 성경 하지만, 정작 바른 성경에 대한 마음의 갈급함으로 목말라하시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카톨릭 계통의 수 많은 사이트에서도 전도를 하고 있고, 그들이 전하다가 죽은 수 많은 카톨릭 신자들을 순교라고 하며, 수 많은 성지라고 하는 우상들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정말 무서운 영적 싸움인 것입니다. 정작 하나님의 이름으로 수 많은 진짜 하나님의 자녀들을 죽인 조직도 성경을 얘기하고 하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른 성경을 믿는다는 성경 KJV진영도 수없이 많은 악성 교리가 들어와서 어느것에 기준을 잡아야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카톨릭의 교리들과 거의 같은 교리들을 잡고 맞지 않은 곳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심지어는 조금만 다르면, 마귀에게 속았다고 하고, 마귀의 종들이라고 저주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사도 Peter[페테르]의 교훈을 통해서, 누구든지 나라는 존재가 강해지면 마귀에게 농락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슬람도 마귀를 저주하고, 세상 사람들도 마귀를 저주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마귀에게 속아있는 것을 모릅니다. 마귀를 좋게 이야기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마귀는 나라는 존재로 다가옴으로서 마귀 짓을 하면서도 마귀를 저주하는 것입니다. 정말 마귀에게 속는다고 남을 저주하는 그 마음에 마귀가 틈을 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우리는 겸손해야 하면, 무엇보다 성도 들에게게 말과 표현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육신의 마음은 언제나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일을 막는 것을 수 많은 사이트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저도 또한 지나고 보니 많은 곳에서 마음이 높았었다는 것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지식을 쌓기 이전에 늘 낮은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고, 말과 표현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특히 컴퓨터로 정보를 나누는 현실에서는 말보다 글이나 표현에 있어서 조심하고 또 주의해서 낮은 마음으로 성경만 높여야 할 것입니다. 높은 마음으로 남을 판단하는 그 마음에는 반드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 선 분들을 통해서 배우며, 한 하나님, 한 성경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좀 더 낮은 마음이 되기를 하나님께 간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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