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문제 클래식 음악 공연 감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학교폭력과 관련한 기사들이 연일 넘쳐나고 있습니다. 학생들 사이의 폭력문제는 실상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계속 우려해온 일이었지만 소중한 학생들이 자살에까지 이르는 극단적 결심을 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사회적 관심을 이끌어낸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설마하고 방치했거나 머뭇거리고 대비를 서두르지 못한 탓이 크겠지요. 제 큰 딸이 중학생이고 초등학생도 둘이나 둔 아버지의 입장에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클래식 공연 프로그램을 계속 해오다보니 특히 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클래식 공연을 개최할 때마다 개최의 가장 큰 이유와 명분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정서 함양을 듭니다. 클래식 음악 공연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정서를 순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학교 내의 폭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클래식 공연을 자주 감상하게 해보자고 제안한다면 무척이나 한가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겠습니다. 클래식 공연 감상을 통해 학교에서의 폭력 문제를 줄여볼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인 근거와 구체적 확증 자료를 통해 입증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아직은 추정을 통해 제안을 해보고 점차 구체화시켜보려 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을 포함한 교육 정책 입안자들이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을 내놓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근절 대책이라고 하지만 사실 강력한 처벌 법규를 만들어내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입니다. 상담 전화를 117로 일원화한다는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그것이 해결책이 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적어도 제 주변에서는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성적 지상주의와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부정적인 견해도 큽니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이 성적과 입시의 경쟁을 벗어나는 사회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학생들의 폭력성을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근본적 해결, 근절 등의 실현 불가능한 언어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조금이라도 완화시켜줄 방안을 찾아 실천해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예술과 문화는 사회적으로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냅니다.
대물림 되는 가난으로 유발된 엄청난 청소년 범죄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빈곤층 청소년들을 위한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운영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베네주엘라의 엘 시스테마 운동은 현재의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줍니다. 영화로도 소개가 되었고 많은 매체에서 다루었기 때문에 새삼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엘 시스테마 운동의 성공에서 보듯이 클래식 음악은 청소년들을 매우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줍니다.
우리 사회의 여건에 맞는 창조적 적용이 필요합니다. 엘 시스테마 운동이 빈곤층의 청소년들에게 직업적 비전을 위해 클래식 음악 연주가로서의 교육을 시도한 것처럼 우리 청소년들에게 연주가의 길을 제시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나 썩 적절해보이지 않습니다. 많은 음악인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의 청소년들을 위해 연주 교육 프로그램을 시도하고 있으나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 공급되고 있는 연주자들도 사회에서 소화를 해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지금과 같은 시스템의 단순한 적용은 무책임한 연주자 과잉 공급을 불러올 뿐입니다.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연주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보다 지속적인 감상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 효과적이고 절실합니다. 엘 시스테마 운동의 성공이 단순한 직업 훈련의 성공이 아니라 베네주엘라 주민들에게 클래식 음악과 가까이하게 하는데 성공하면서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즈음 학생들에게 감상 교육은 그다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편입니다. 체험 위주의 교육 방식이 대세를 이룬 탓입니다. 대부분의 예술교육 진흥정책도 감상 기회를 확대하는 것보다 단순 체험 위주의 교육성과를 더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적인 체험을 강조하다보니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연주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연주와 작품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습성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을 야기합니다.
감상 교육의 가치에 대해서 심각하게 따져보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엘 시스테마 운동이 재즈, 락 밴드, 팝 연주자, 뮤지컬 스타를 길러내는 운동이 아니라는 점을 곱씹어봐야 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즉각적이지 않지만 사회 저변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공감할 필요가 있는데 사실 이것이 쉽지 않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가치에 대해 대부분의 정책 입안자들이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들조차도 클래식 음악의 내재된 가치에 대해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가치와 감상 교육의 가치에 대해 사회적으로 공감대를 이루고 우리 청소년들에게 클래식 음악 감상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들이 활발하게 펼쳐져 학교 내의 폭력적 문화양태를 해소시켜가기를 기대합니다.
클래식 음악의 효과에 대해 검증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 학생들이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일 년에 많아야 한두 번 정도 감상할 기회가 있을까 말까 한 상황에서 클래식 음악이 정서 순화에 영향을 주는지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이 청소년들의 정서 순화에 영향을 주는지 안주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영향을 미치는데 무의미한 횟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상 교육의 유의미한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대략 1개월에 2~3회 정도의 횟수로 크고 작은 음악회를 지속적으로 감상해보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1년에 한 두 번의 음악회를 감상하는 것으로는 사막에 나무 몇 그루 심어놓고 녹지로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최대한으로 양보한다고 해도 1년에 10회 이상은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의미있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음악회를 감상할 때는 가급적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감상해보기도 하고, 다른 집단과 섞여서 감상해보기도 하고, 학생들끼리만 모여서 감상해보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클래식 음악회를 통해 청소년들은 타인에 관한 배려, 인내와 절제, 열정과 감동을 체험하며 변화할 것입니다. 미래 사회를 이끄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창의력을 키우는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 예산들은 소모성 예산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을 위한 투자비용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고려해볼 만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하여 제안의 내용을 다듬어 정부와 교육계에 제안을 해보려고 합니다. 머릿속에 맴돌던 주제들을 이제 처음 풀어본 것이어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혹시라도 이와 관련해 좋은 아이디어와 자료, 정보를 가지고 계시면 적극적인 도움을 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아름다운오케스트라 홈페이지와, 카페 클래식114, 다음과 네이버 블로그 등으로 통해 제안의 내용을 키우고 다듬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