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께
요사이 한글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커지고 전문가들 사이에 토의가 많아집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아마 지진이 잦다가 화산이 폭발하듯 한글에 큰 변화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이 기회에 우리들 한글을 남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힘과 마음을 합하여 큰일을 이루어 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생각해 보니 나라가 망하더라도 민족의 혼맥은 살려 놔야겠다는 일념으로 한힌샘 선생이 별 규범 없이 사용하던 우리의 어문을 정리하여 한글을 만들어 낸지 꼭 100년이 되었군요. 한힌샘의 심중에 그 한글의 사용자는 우리 민족뿐이었을 것이며, 누가 불쌍한 우리 백성들에게 한글을 살갑게 배워주랴 싶어 필경 배우기 쉽고 쓰기 쉽게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의외로 일제가 강점 초기 유화정책을 쓰느라고 한힌샘의 한글을 거의 그대로 받아드려 학교 교육을 통해 온 국민에게 보급시켜 주었던 것은 불행 중 천만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힌샘의 한글은 정말 큰일을 해 냈습니다. 선생의 염원대로 혼맥을 살려 독립을 찾았고 나아가서는 세계에서 문맹률이 제일 낮은 나라, 최고의 IT강국, G20회의를 주최하는 나라로 발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봅니다. 결국 우리는 한힌샘이 걱정하던 시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시대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한류는 우리 스스로 놀랄 정도로 세계를 물들이며,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우리말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고 있습니다. 이제 이 거대한 문화활동을 담는 우리 한글도 그 용량을 키워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우선 영어와 중국어를 포용하고 매개역할을 넘어 대행해 주는 역할을 맡아야겠으며 더 나아가서는 컴퓨터의 내부 S/W로 들어가 모바일 시장을 우리 손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훈민정음의 제 3기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이 이미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제 투성이의 알파벳이 하고 있는 역할을 보면 저절로 용기가 나는 것입니다.
여기에 소위 일부언론이 잘 못 표현했지만 중국의 한글공정도 간과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요는 중국이 자국내 5대 법정 언어인 우리말(그들은 조선어문이라 한답니다)에 관한 필요한 사항을 표준화 하되 남북한의 표준을 참작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한글을 중국에 공식적으로 상륙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660년을 기다린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들이 남북한의 표준을 참작한다지만 내심으로는 자국의 5대 소수민족 언어와의 상통을 원할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가 미리 그 기능을 포용하여 표준을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한글 상륙작전에 유리할 것입니다. 이 역시 세종대왕의 가르침만 따르면 될 것입니다. 훈민정음은 원래부터 중국어를 겨냥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나치다 할 정도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 봅니다.
다수의 국민이 바란다면 어떤 일이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명백하게 좋아 보이는 일도 여론에 밀려 못하는 일이 허다한가 하면 잘못 된 여론이지만 무시하지 못해 울며 겨자 먹듯이 도입하는 정책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여론만 옳게 잘 이끌면 한글정책도 제대로 발전 될 것이며 그 여론은 다름아닌 우리들이 이끌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제가 이 일에 대해 왈과왈부할 입장은 아지만 몇 가지 제안함을 용서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동의하신다면 스스로 행해 나갈 것이요 부족하다면 보태주실 것이요 틀렸다면 바로잡아 주십시오.
첫째, 목표를 정하고 우선 그 목표를 달성하십시다.
우리의 목표는 나라의 명운이 흔들렸던 여건에서 만들어졌던 한글을 이제 우리가 세계 문화를 주도해 나갈 수 있도록 발전시키자는데 국민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는 지금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단 이 목표에 다다르면 그래서 정부가 방침을 정하면 그 때가서 거론 할 수 있으며 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은 목표 달성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 때가서 방법을 찾는 방법을 정하고 그 방법에 따르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피터지는 논쟁과 암투가 일어나겠지만 이는 당연한 일이요 오히려 바람직한 일일 것입니다. 독재가 맘대로 정하는 것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다만 이 목표도 달성하기 전에 세부 사항을 가지고 미리 말을 꺼내 논쟁을 하게 되면 한글의 발전을 막으려는 사람들에게 빌미를 주는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개인적 의견을 내세워 분열을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한글의 발전을 반대하겠느냐고 반문 하실는지 모르지만 그런 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둘째, 논쟁이 필요하여 토론을 하게 되면 토론의 예의를 지켰으면 합니다.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의 감정을 돋울 수 있고 이는 곧 분열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토론하는 방법을 잘 안 배워주는 모양입니다. (요사이 제가 강의를 하는데 토론을 하려 해도 학생들이 아예 입을 열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으레 교수가 결론을 내리고 맙니다. 이렇게 되어 학생도 교수도 모두 토론의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자기 생각이 옳은 것처럼 느낍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 의견이 다를 것은 명백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모두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받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내 생각이 틀렸을지 모른다는 것도 수긍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해가 전제가 된다면 남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의견만 내세운다든가 의견이 다르다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가 없겠지요. 제가 하는 이 말 자체도 기분 나쁘게 들릴 가능성이 많아 사실상 하지 말아야 하는 줄 압니다만 한번만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은 짧아야 한다는데 오늘 흉 많이 잡혔습니다. 이 점도 용서 바랍니다.
다시는 이렇게 긴 글 안 쓸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 국운이 펼쳐 뻗어 나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모두 잘 될 것입니다.
다 같이 훈민정음 제3기를 준비하십시다.
안녕히 계십시오.
2010년 10월 27일 신부용 드림 (KAIST 문화과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