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
1.행복하게 삽시다!
(*괴로움의 원인)
부처님은 괴로움의 원인을 발견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모든 것은 조건에 의지하여 생겨납니다. 괴로움을 없애버리려면 먼저 그 원인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원인이 제거되면 어떠한 결과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의 원인이 갈애(渴愛, 愛着;attachment)임을 발견하셨습니다. 즉 '탕하'는 모든 형태의 욕망을 의미합니다.
(*잘못된 견해)
'탕하'는 괴로움이 원인으로 '탕하'가 있을 때 그곳은 '두카'(苦,괴로움;dukkha)가 있습니다. '탕하'를 없앤 사람은 '괴로움'을 없앤 사람입니다. '탕하'도 원인에 의지하여 생기므로 원인을 제거하면 '탕하가 생기지 않습니다. '탕하'는 정신적 조건으로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는 과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탕하'의 원인은 '잘못된 견해(邪見)임을 발견하셨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
잘못된 견해는 "영혼, 자아, 나, 너"등의 인격이나 개체에 대한 잘못된 견해인 '유신견(有身見;sakka-ya ditthi)' 또는 '아견(我見;atta dihthi)이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부처님은 '정신'(名;na-ma)과 '육체'(色;ru-pa)의 자연스런 흐름에 대한 무지(無知;moha<癡>, 무명;avijja-)가 영혼이나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의 원인임을 지적하시고, 이과정의 본질을 '자각'하거나 바르게 이해(正見;samma- ditthi)하여 '무지(無知)를 없애게 될 때,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緣起法;paticcasamuppa-da dhamma)을 알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을 간략하게 다시 말하자면 '무지는 원인이며, 잘못된 견해(유신견, 아견)는 그 결과이며, 잘못된 견해는 원인이며, 갈애는 그 결과이며, 갈애는 원인이며, 괴로움은 그 결과입니다.
(*사라지는 괴로움)
우리는 정신과 육체의 과정을 바르게 이해를 하면 무지가 사라지고, 무지가 제거되면 영혼, 자아, 사람, 존재에 대한 잘못된 견해가 없어지고, 이러한 잘못된 견해가 제거되면 갈애도 생기지 아니하고, 갈애가 없어지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모든 괴로움이 존재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괴로움의 소멸'(滅聖諦;nirodha sacca)을 이룬 것입니다.
'괴로움의 소멸'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면밀하게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이 부처님께서 하신 '위빠사나'(vipassan-a)입니다.
1)반드시 지키고 익혀야 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반드시 익혀야할 '세 가지'(三學;tisso sikkha-)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도덕적인 행위'(戒si-la)로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곧 재가자는 5계 또는 8계를, 상가는 비구계나 별해탈(別解脫;pati-mokkha)를 지켜야 합니다. 수행기간 중에 지키는 계행은 말과 행위를 청정케 합니다.
수행기간 중 최소한 8계를 지킴으로써 도덕적 행위의 정화(戒淸淨;si-la visuddhi)를 의미합니다. 수행자가 수행의 향상을 이루고자 한다면 먼저 반드시 계행을 지켜야만 합니다. 특히 8계에서 세 번째 항복인 '불사음'(不邪淫)은 수행기간 중에는 '불음행'(不淫行)이 됩니다.
도덕적 행위가 청정해 졌을 때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그 마음은 안정되고 따라서 '마음의 집중'(定;sama-dhi)을 얻게 되며, 그로 인하여 '꿰뚫어보는 지혜'(慧;panna-)가 생겨나게 됩니다.
2)위빠사나의 어원.
위빠사나(vipassana-)는 두 말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하나의 법(dhamma)을 가르치는 말입니다. '위'(vi)라는 말은 몸과 마음의 세 가지 특성인 ①모든 것이 항상 하지 않는다는 무상(無常;anicca)②'나'라는 존재와 영혼에 대한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anatta)③불만족과 괴로움의 연속인 고(苦;dukkha)를 말합니다.
'빠사나'(passana-)라는 말은 '바른 이해' 또는 '깊은 마음 집중을 통한 깨달음' 또는 '마음과 몸의 세가지 특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말합니다.
3)사마타와 위파사나의 차이점.
부처님의 근본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사마타(止;samatha)와 위빠사나'의 차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1>사마타(止;samatha)
먼저 사마타(마음의 고요;止)란 ‘마음집중’ ‘평온’ ‘고요함’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수행대상에 깊이 집중이 되었을 때, 마음은 평온해지고 고요하게 됩니다. 사마타 수행의 목적은 하나의 대상에 ‘깊은 마음집중’(心一境性;citta ekaggata-)을 얻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사마타 수행의 결과는 ‘안지정’(安止定;appana-sama-dhi,jha-na) 또는 ‘근접정(近接定;upaca-ra-sama-dhi)과 같은 깊은 마음집중(三昧, 定)을 얻는 것입니다.
마음이 수행의 대상에 깊이 집중이 되었을 때, 욕정, 탐욕, 분노, 자만, 무지 등과 같은 번뇌들은 대상에 몰입해 있는 마음에서 멀리 떨어지게 됩니다. 사마타 수행의 결과는 안지정(安止定) 또는 근접정(近接定)에 의해 경험되는 어느 정도의 행복감입니다. 그러므로 사마타 수행으로는 정신적, 육체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올바르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사마타 수행에서는 선정에 들어 있는 동안만 마음이 정화가 되며, 선정에 들어 있지 않을 때는 번뇌가 다시 공격해 들어옵니다.
2>위빠사나(慧;vipassna-)
위빠사나 수행에서 그 목적은 정신과 육체의 과정을 그 참된 본질에서 올바르게 이해를 하여 괴로움의 소멸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이는 마음을 집중하여 마음과 몸에 대한 지속적이며 끊임없는 마음 챙김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수행의 대상에는 행복감, 분노, 슬픔, 고통스런 감각 등등 어떤 정신적, 육체적 과정도 모두 수행의 대상이 됩니다.
예컨대 우리가 발을 들어서 놓을 때 우리는 발의 모양이 아닌 동작을 알아차리고, 이 동작의 자연스런 움직임을 알아차릴 때 마음도 또한 움직이는 동작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더욱 정진하는 힘이 깊어지면져서 마음 챙김이 더욱 깊고 강해지면 정신적, 육체적 모든 과정을 자각하는 꿰뚫어 보는 지혜는 더욱 밝아집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단계들을 체험하게 되고 마침내는 정신적, 육체적 현상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無常;anicca), 무아(無我;anatta), 고(苦;dukkha)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의 목적과 결과는 그 방법들이 다르듯 서로 다릅니다.
4)네 가지 요소(四大)에 대한 마음 챙김.
수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모든 것 하나하나와, 정신적, 육체적 모든 것에 대하여 끊임없이 마음을 챙겨야 합니다. 특히 배(腹部)의 움직임에 대하여는 아주 주도면밀하게 관찰을 하고 마음을 챙겨야합니다. 배(腹部)의 움직임에 마음의 움직임을 집중시켜 수행을 하는 것은 ‘대념처경(大念處經;Maha-satipattha-na Sutta)에 따른 것입니다.
이 경에는 부처님께서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말씀과 마음 챙김을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네 가지 뿐만 아니라 모든 정신적 육체적인 현상에도 마음 챙김을 해야만 합니다.
①땅의 요소(地大, 地界;pathava dha-tu): 실제적인 땅이 아니라, 그것은 땅의 요소의 참된 본질을 가르치는 말로 ‘딱딱하고 부드러움’ 등의 개별적인 독특한 특성에 주어진 명칭입니다.
②물의 요소(水大, 水界;apo dha-tu): 실제적인 물이 아니라 개별적인 물의 참된 성품의 본질로 ‘유동성과 팽창성’에 주어진 독특한 특성을 말합니다.
③불의 요소(火大, 火界;tejo dha-tu): 실제적인 불이 아니라 개별적인 불의 참된 성품의 본질로 ‘뜨거움과 차가움’에 주어진 독특한 특성을 말합니다.
④바람의 요소(風大, 風界;vayo dha-tu): 실제적인 바람이 아니라 개별적인 바람의 참된 성품의 본질로 ‘움직임, 동작, 떨림, 지탱해주는 힘’을 말합니다. 이것을 올바르게 자각을 하고 있으면 네 가지 요소에 대한 올바른 마음 챙김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정신적, 육체적 현상에서도 있는 그대로 관찰을 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수행자가 처음에 편안하게 앉아있을 때는 어느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여 관찰을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하시 대장로’께서는 수행자에게 배(腹部)의 움직임을 관찰함과 동시에 수행을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