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마틸드의 목걸이
양 지 연
“마틸드! 내 건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 프랑밖에 나가지 않는…….”
학창 시절 읽었던 모파상의 <목걸이>에서 이 대목의 반전은 짜릿했다. 소설이니까 이건 사실이 아니니까 주인공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최대한 극적으로 상상해 보곤 했다.
이번 여름까지 난 ‘마틸드의 목걸이’를 그저 그녀의 허영심 정도로 여겼다. 왜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답답했고, 그녀가 선택한 남루한 인생을 동정해 마지 않았다. 가난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그녀의 삶을 빚으로 저당 잡혀 송두리째 추락시킬 만큼 말 못할 일인가? 목걸이를 빌릴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친구라면 잃어버린 마틸드의 사정 또한 이해해 주지 않았을까?
그런데 마틸드는 말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사람은 이처럼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정작 당사자만큼은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목걸이>에서 ‘마틸드의 목걸이’가 우리 삶 속에서 비유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나만의 문제점이라는 말에 공감을 한다. 우리는 누구나 남의 잘못은 쉽게 보지만 나의 잘못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목걸이>에서 마틸드의 어리석음을 통해 나 또한 그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나의 문제점을 찾아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곧 나만의 마틸드의 목걸이를 찾는 것이 아닐까?
남들은 알지만 정작 나만 모르는 나의 문제점, 내가 죽어도 못할 것 같은 일이 바로 그것이다. 나에게 있는 마틸드의 목걸이는 무엇일까? 진실과 마주하기가 두려워진다.
하지만 9월 초입 독서논술지도사 강의실에서 만난 이인환 선생님은 항상 하는 것만 하면 항상 얻는 것만 얻는다고 하셨다. 새로운 것을 얻으려면 새로운 일을 하라고, 죽어도 못할 것 같은 일을 하라고 하셨다.
모파상을 읽은 중1 아들에게 ‘엄마의 ‘마틸드의 목걸이’는 무엇이니?’하고 물었다. 처음엔 ‘엄마의 잔소리요’ 하더니 ‘작은 부분에까지 신경 쓴다’ 하다가 이내 ‘엄만 그런 거 별로 없어요’ 한다.
“음 그렇구나. 이번엔 더 내면적인 것 있지. 그러니까 생활과 관련 있는 것이나 엄마로서 말고 한 인간으로서 양지연이라는 사람을 보고 말해 줘 볼래?”
그랬더니 이렇게 말해 주었다.
“엄마는 챙겨 주지 못한 부분에 대해 많이 아쉬워해요. 지난 일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린다고 할까요. 후회 같기도 하고…….”
맞다. 난 들키면 큰일 나는 일을 저지른 아이처럼 가슴 언저리가 뜨끔뜨끔했다. 난 나를 들키기가 싫었다.
나는 제일 큰아이로 태어났다. 내 나이 일곱 살이던가 여덟 살 때. 갓난 막내까지 고만고만한 네 딸을 키우느라 교직원인 아빠 월급만으로는 살기가 빠듯해서였지 싶다. 엄마는 집안일 말고도 가방 공장에서 일감을 가져다가 수작업으로 무언가를 해서는 다시 공장에 납품하는 부업을 하셨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넷째를 낳고 몸조리도 변변하게 하지 못하고서 엄마는 더 많은 일감을 가져 오셔야 했다. 그래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게 되셨다. 볕이 뜨거운 한여름에도 내린 눈이 꽁꽁 얼어 길 미끄러운 한겨울에도 엄마는 고물 리어카에 산더미 같은 가방을 싣고 다니셨다.
이런 기억들이 왜 마틸드의 목걸이를 들여다 보는 지금 떠올랐을까? 한 번도 동생들이나 친구나 엄마나 아빠나 누구와도 이 얘길 해 본 적이 없다. 최면술사가 끄집어내 준 무의식처럼 꿈에서 본 것 같이 흐릿하고 정말 있었던 일이었나 싶을 만큼 낯설고 남의 일 같은 일이다. 딱 한 번 엄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때 리어카 끌고 언덕배기 올라가는데 좀 무거워야지. 마침 지연이가 보이길래 좀 밀어 달랬더니 얘가 친구들이랑 노느라 나를 못 봤나 봐.”
친구들에게 리어카 끄는 엄마를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런 초라한 사람이 내 엄마라는 게 창피해서 나는 엄마를 못 본 척 도망쳤다. 그리고 엄마에게 너무 미안해서 난 말 잘 듣는 착한 아이 노릇을 했다. 마음 속으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엄마에게 미안해서 엄마가 자랑할 만한 착한 큰딸이 되려고 애썼다. 피아노가 있는 친구 집에 가거나 예쁜 드레스를 입고 생일 케이크를 자르는 친구를 위해 박수를 칠 때, 어디선가 얻어 입은 구멍 난 옷의 꿰맨 자국이 역력한 허리춤을 가리느라 신경 쓰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아. 공부는 내가 더 잘하잖아. 그림도 더 잘 그리고. 책도 더 많이 읽고. 선생님도 날 더 좋아하셔. 그러니까 괜찮아.’
우리 집에도 피아노 있다, 나도 이런 드레스 있다, 이런 거짓말하게 될까 봐 난 남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이 더 편했다. 나를 들키기 싫어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이기가 힘들어서 나는 내가 아닌 척했다. 더 씩씩한 척, 더 적극적인 척, 더 과감한 척했다. 공부 잘하면서 친절하다고……. 친구들은 나를 착하고 얘기를 잘 들어 준다며 따랐다. 그 버릇 덕분에 중학교 때까지 응원단장, 반장, 회장, 학생회장까지 도맡아 했다.
하지만 감출 수 없는 것 두 가지가 덧니와 사랑이라고 했던가. 한 가지가 더 있다. 가난……. 물질의 빈곤함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항상 부족함과 갈증을 느꼈다. 자존심이었을까? 한 번도 부모님에게 옷 투정을 하진 않았다. 색깔은 분홍으로 예뻤지만 더 이상 내게 맞는 사이즈의 겨울 옷이 집에 없었기에 가을부터 추운 겨울 내내 안감 없는 그 바바리 코트를 입고 학교에 다녔다. 교실마다 배급을 타 온 조개탄과 갈탄 장작 한 양동이로 불을 지피던 무쇠 난로의 열기는 오후까지 가지 못했다. 턱은 덜덜 떨리는데 하나도 안 추운 척 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하지만 여자 친구들은 겨울 방학 며칠 전 나를 보면서 삼삼오오 수근대기 시작했고, 아침에 학교 가기가 두려웠던 4학년 그 해 겨울, 하루는 담임선생님이 나를 다른 건물의 6학년 교실로 먼 심부름을 보내셨다. 한참 만에 교실로 돌아왔는데 웬일인지 그 시간 이후 아이들은 더 이상 분홍 바바리를 입은 내 뒤에서 수근대지 않았다.
그 이듬해 서울에서 수원으로 우린 이사를 했고 난 전학을 했기에 담임선생님이 그 날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셨는지 모른다. 꾹꾹 눌러 쓴 내 일기에 빨간 펜으로 긴 댓글을 남겨 주셨던 선생님……. 따뜻한 기억이다.
긴 여행 끝에 거짓말처럼 독서논술지도사 강의 시간에 나는 마틸드의 목걸이로 최면에 걸렸고 깨어났다. 내 안의 마틸드의 목걸이는 글을 쓰는 것, 그래서 나를 보이는 것이란다. 이인환 선생님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글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쓰는 비밀일기가 아니라 발표를 전제로 하는 글이라면 가급적 쓰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다. 자칫하면 그 글 때문에 상처받는 이가 생길 것이고, 그것 때문에 오히려 내가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맞다. 더욱이 쓸수록 나 자신에게 생채기를 내는데 어떻게 글로 쓸 수 있을까. 일기에나 적어 볼까. 어릴 적 그랬듯이.
글을 쓴다는 건 나 자신이 발가벗고 런 웨이에서 워킹을 하는 것 같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완전무결한 모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걷는 것과 같다. 완벽하고 싶기에 난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나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거다. 보여지는 내 모습에 자신이 있을 때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를 보이는 게 힘들어서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과장할 뿐이었다. 자존심, 벌거벗은 나를 보이지 않기 위해 담담한 미소로 무장할 뿐이다.
끝까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은 이렇게 섬세한 되돌아보기와 한탄으로 남아 있다. 다 보여 줄 수 있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문학은 허구라지만 난 글은 작가의 진실된 허구라고 생각한다. 상상 속에 생각 속에 스며든 직간접 경험이 글이 되는 거라 생각했다. 나를 빼고서는 온전히 거짓 없이 말할 수 없기에 난 글을 쓸 수 없었다.
이제 가짜든 진짜든 나는 나의 목걸이를 당당히 걸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며 써 봐야겠다. 살아 봐야겠다. 이게 나의 진짜 목걸이니까. 아프겠지만 알의 껍데기를 깨뜨리면 새는 깨어나니까……. 날아갈 것이다.
오늘 따라 <목걸이>의 주인공인 마틸드가 더욱 연민스럽게 다가온다. 친구에게 목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결코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고 좀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녀의 인생은 좀 더 풍요롭고 여유롭지 않았을까?
첫댓글 긴글이지만 쉬지않고 재밌게 읽었어요 감동입니다~^^
우리는 또 이렇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한 편의 글이 주는 소통과 힐링의 효과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파이팅이고요.
두 분 저의 첫 독자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힐링의 시간 저도 감사드립니다~
짝꿍언니~~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겨우 숙제 하나 완성요.
와 감사해요~ 숙제 완성 축하하구요~^^
뭔가..진한 감동이 밀려오네요..^^
감사해요~^^
함께 계속 나누길 원해요~
와 정말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써야하는데 맘이. 무겁네요 ㅋ ㅋ ㅋ
민정샘 글 잘 읽었어요~
저도 써야 하는데 생각만 복잡하고... 정리가 아직 안되는 거 있죠?^^
글을 읽으며 잘 쓰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마틸다의 목걸이를 찾았는데 이렇게 긴글이아니라 짧은 한줄이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