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좁은길=세칭 동방교,
그 동방교를 추억하는 사람들 환영합니다.
'여호와 이래 노광공' 을 추억하는 사람들 환영합니다.
그 둘째아들(次男) '아브넬 노영구' 를 추억하는 사람들 환영합니다.
기독교대한 개혁장로회를 추억하는 사람들 환영합니다.
죽은 노영구의 영정앞에 삼백배를 올리고
그를 '선교사님'이라 부르고 깍듯이 모시는
예수교 장로회 '합동개혁' 교단에 속한 '성민'들 환영합니다.
삼년안에 불심판으로 이 세상은 끝장난다는 이단사설 공갈협박에
부모형제 떠나 무단가출 빈집초월하여 껌팔고 행상하던 연단선님들,
밥하고 빨래하고 대기처지키며 청소하고 이곳저곳 끌려다녀 노동하고
농장에서 논밭갈고 목장에서 소똥치우며 억척스레 일하던 대기자들,
촉수낮은 형광등 불빛아래 가발만들고 구슬꿰던 수도사들,
전국 지교회에서 지성 실천 복종 순교하던 충성스런 손자 성민들,
전도사 목사하던 사람들, 순회하던 사람들, 지금도 하고 있는 사람들,
'주간기독교'를 만들고 '청해' 잡지를 만들던 사람들,
그 열렬했던 후일담이 궁금한 사람들 모두 환영합니다.
종교적 정감과 자애, 철학적 허무,
그리고 신비적 체험을 간직했던 종교의 귀재(鬼才)들이
흐르는 세월과 함께 어떻게 서서히
사이비 이단종교집단의 교주로 전락해 갔는가...
인간이 왜 그토록 하나님이 되고 싶었을까,
그리고 왜 그토록 하나님 노릇을 하고 싶었을까...
참으로 의문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 누가 종교를 아편이라 했던가...
끊을 수 없는 마약같은 해괴한 시절은 지나갔으되
이제는 서로 안부도 묻고 자료도 올리고 소식도 나누어 봅시다.
첫댓글 가입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가입했습니다
슬픈 시절을 공유하여 서로의 위로자가 되고싶습니다
잘 찾아 오셨습니다. 환영합니다.
슬픈 시절... 그렇죠, 참 푸르디 푸르도록 슬픈 시절이었지요.
부모형제도 떠나고 친구도 학업도 팽개쳤던 슬픈 시절...
이제는 서로가 치유의 위로자가 되어야겠지요.
저도 동감 입니다.
70년대 중반쯤 에 대기처 있을때 사람들은 인정 많고 순진한 착한 분들 많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어떤모습으로 변해졌을까
궁금해지네요 모두다 자기가 원하는데로 잘되셨으면 좋곘읍니다.
지금쯤 머리는 반백으로 변했을 나의 시절인연
커피향 이라도 마주보며 맡고싶읍니다
좋은 기억만 가지려 노력하고있어요
이단에 휘말렸던것도
모두가 하나님 뜻이었다
생각하면서 지금도 하나님만 의지하여
살고있습니다
좁은길이후에
세상교회의 썪어가는 부패성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집에서 예배드리고 있어요....
오죽하면 면죄부를 팔아 돈을 챙기고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났겠습니까, 종교에 재물이 모이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세월과 함께 부패해서 똥파리가 날아들고 인간교주를 창조주,심판주로 신격화하는 이단, 구원을 헌금과 연계시키고 말세와 불심판으로 협박하는 사이비가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요...
김성수 목사님 말씀이 많이 와 닿더군요
김성수목사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아~~~
댓글을 이제 확인했습니다
유튜브에
김성수 목사님 검색하시면
그분 설교 정말 눈물 납니다
그리고
김명현교수의 창조과학
정말 탄복합니다
저희 남편이 과학자인데
절대 신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인정 했어요....
많이 알려주셔요
하늘천님♥♥♥
녜... 김성수목사란분이 계시네요. 동영상설교가 무척 격정적이네요.
2013년, 50세의 아까운 나이에 우울증,공황장애로 인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도 나오네요.
안타깝습니다.
김명현교수의 창조과학도 흥미진진하네요.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타샤님도 세칭동방교에 휘말렸다가 올바른 길을 찾게되어 정말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이단사이비종교집단에 빠져있는 이땅의 모든 영혼들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네
하늘천님
저보다 많은세월을 잃어버리신분들을 뵈오니
분노와 서러운 눈물이 흐릅니다
참으로 분통 터질일입니다
분통 터질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천지 분간을 못하고 악한 영에 사로잡힌 영혼들, 이단 사이비 종교집단에 포로가 된 영혼들은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빠져 나오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아편쟁이가 스스로 아편을 끊기가 거의 불가능한것처럼... 술취한 사람이 절대로 자기는 술 안 취했다고 하는것처럼 기가 찬 일이죠...
맞아요~~~~ㅠㅠ
너무 슬퍼요.....
한번뿐인 하나님의 시험대위에서.....
기가차고
억장이 무너질 일이죠
근데
그당시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순교할 생각까지....
으윽~~~~~~~!!!!!
가입인사 올립니다. 반갑습니다.
이제야 인사 올립니다. 반갑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글, 저의 추억들인것 같아 차근차근 보렵니다.
하늘천님, 그리고 백향목님, 저 멋진 칼날같은 바람님... 용기가 부럽습니다. 진실의 힘을 믿습니다... 아멘...
많은 세월이 흘러 갔지만
글들을 대하니 새록 새록
기억이 납니다. ^^-
저도 옛 생각 참 많이 납니다.
녜... 미라보리님, 어느시절 성민이신지... 시간이 제법 지난듯 하오나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땅지님! 반갑습니다. 온갖 세상조화의 이치가 파묻혀 있는 천자문에서 닉네임을 따 오셨나요. 엄청 반갑습니다.
카페지기 하늘천님과도 조화롭습니다. ㅎㅎ....
땅지님... 반갑습니다. 닉네임도 멋지구요...
이런까페가 있는지 이제 알았네요..
반갑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되니 이런 카페도 생겼네요. 옛날 같으면 신문 방송이 아니면 정보를 접할 수 없었는데
정보화세상이라 이단사이비 종교집단들의 치부도 숨을 자리가 없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맘마미아님... 본 카페는 용기있는자들의 고백의 장으로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글쓰기가 가슴이 아파서... 늦게 인사 드립니다.
잡목 우거졌던 언덕배기 철대문집, 저 거기 있었거든요. 옛날 생각하면 눈물납니다. 엄마 아빠 떠나서..
반갑습니다. 향림님... 혹시 흑석동 아니신가요?
예, 명수대에 수원장이 무슨 인연인가 땅을 치고 통곡해도 시원치 않아....
@향림 맞아요 처음엔 수원장이라고 불렀었지요. 저희 어머니와 14살이던 제가 처음으로 그 집에 와서 지냈습니다.
중대정문옆에서 군고구마 낱담배를 파시던 어머니가 참 안타까웠습니다. 사상문제로 불행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셨지요. 저는 유복자로 태어났구요. 학교도 못다니게 하신 어머니셨지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픔니다. 이런 이단으로 인한 불행이 없어야 하는데, 지식사회 정보화시대인데도 아직도 요원하지요. 참 어머니는 향년90세로 4년전에 운명하셨습니다. 시신은 아주대병원에 기증을 하시구요. 정말 명수대의 수원장이 무슨 인연인지,,,,,,,. 잠시 그때의 추억에 잠겼네요. 안녕히 계십시오
@사모하는 영 녜... 명수대에 수원장이 무슨 인연인가... 왜색짙은 성가라는 노래중에 나오는 한 구절이죠.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언덕배기 골목에 있었던 수원장, 지금은 세월이 너무 흘러 찾을수가 없네요. 중앙대앞 명수대에 있었던 향림정은 수 년 전 함 찾아가봤는데 그대로 있습디다. 녹쓴 철대문도 그대로 있고 음산한 잡목들은 지금도 우거져 있는데 관리를 안하는지 무슨 폐가처럼 을씨년스럽게 방치되어 있고 넓었던 마당은 반쯤 끊어서 팔아먹었는지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고... 세월의 흔적이 켜켜히 쌓여져 있었는데 그 음침했던 땅굴은 아직 잘 있는지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었네요. 어디 사진도 한 장 찍어 왔는데 찾게되면 함 올릴게요
안녕하세요 저 어제 가입했습니다, 지나간세월 참 그렇지요 한때 충성한다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그냥 뒷방 늙은이네요 그렇지만 아직 저는 욕하고 싶지는 않네요 수언정을 거쳐 향림정, 또는 시흥 농장까지 농장에서는 입산장로님과 누디아 장로님 등 같이 고생많이 했지요
청지기님 반갑습니다.
회원가입 하셨는데 제가 한참 늦게 댓글을 보게 되었네요.
누구신지 모르지만 짐작컨데 연세도 그만하시고 어째 동지같은 연민이 들기도 합니다.
그 흔한 한국의 이단사이비 종교집단에서 젊은날 철모르게 헤메이던 허망했던 시절의 추억같은 연민이...
수원정, 향림정, 시흥농장, 입산장로, 루디아장로... 모두 주마등같이 스쳐가네요...
디두모장로는 생각 안나시는가요... 향림정 대기자로 있으면서 흑석동 중앙대 정문앞에서 학생들에게 고구마 구워팔고 낱담배를 팔아서 지성(헌금)바치던 할머니 장로... 대학생들이 돈이 없어 갑채로 담배를 사서 피우지 못하고 낱개비로 담배를 사서 피우던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중앙대 정문앞에 행상을 차려놓고 그 낱담배를 팔던 나이많은 할머니 디두모장로... 연세로 보아 지금쯤은 아마 이승을 떠났겠네요... 사상8교회의 고니아(이단의 추억 #64 ‘삼손 김종학’ 편에 등장)처럼 천국의 제일 좋은 자리에 가 계시려나...
알고말고요. 제 어머님이지요. 향년90세의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당감동에서 제가 중1때 올라와 흑석동에 처음 자리를 잡으셨지요. 저는 60년대 중반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그곳을 나와서 고학을 하며 참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참 무지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가끔씩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어린 마음에도 참 속이 많이 상하곤 했지요. 하늘천님이 누구신지 무척 궁금합니다. 님의 글을 참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모하는 영 녜... 디두모장로의 아드님께서 본 카페를 발견하셨군요. 반갑습니다. 흑석동에서 상도동 올라가는 언덕빼기 세칭 동방교 대기처 ‘수원장’에서 대기자로 계셨던 디두모장로, 당시 연세는 50여세 전후, 지금같으면 할머니 축에 들지도 못하는 연세였지요. 군고구마, 뻔데기, 낱담배등을 다라이에 이고 언덕길을 사뿐사뿐 다니시며 중앙대 정문앞에 난전을 벌여놓고 장사해서 동방교에 지성(헌금)바치던 충직(?)했던 여자장로, 수원장 뒤편에 토끼도 몇 마리 키우시고 어물시장에서 상인들이 버리던 갈치 대가리, 꽁지등을 수거해와서 손질해서 반찬도 만들고 젓갈도 담구시던 분,
@사모하는 영 자그마한 체구에 또록또록한 눈매, 사진상의 유관순열사를 닮았던 분, 그래서 노광공 교주가 유관순의 영으로 왔다고 칭찬했던 분, 그 아드님을 이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니 엄청 감회가 새롭습니다. 세칭 동방교에 충성했던 그 미망의 시절이 새삼 파노라마가 되네요... 그간의 정황이 어떠하셨는지, 요사이 근황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참, 디두모장로는 당감동 10교회 출신이군요... 그건 몰랐습니다.
@사모하는 영 참, 그때 아드님이 일본 있다는 말씀을 들은것 같은데 혹시 그분이신지요? 아니면 그냥 핑계로 일본있다고 둘러 대셨는지... 당시 가정을 버려두고 빈집초월(무단가출)해서 동방교의 대기처로 들어갔던 많은 신도들이 있었지요. 사랑하는 남편도 자식도 팽개치고 무엇에 홀린듯이 말입니다. 공부도 팽개치고 부모형제를 떠나서 군입대 기피까지 해 가면서 동방교에 충성했던 저도 마찬가지이구요... 지금 생각하면 그저 말문이 막힙니다.
@하늘천 예 그러니까 정능에서 고3때 외가댁에 있다가 친척들의 권유로 밀항을 했지요. 부친의 사상문제를 제대로 알고나니 희망이라는 것이 도무지 없다고 느끼고 있을 즈음에 마침 일본의 이모님도 배를 준비해주시고 하여 미련없이 떠났는데 거기서도 어머니의 권유로 관계를 확실히 못 끊고 한동안 관계를 가졌지요. 주간기독교 신문을 일본의 교포교회에 돌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미움받기도 하구요. 그래도 교토교회 목사님이 끝까지 저를 밀어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15년의 세월이 흐른다음 한국에 돌아와서 82년도에 곧바로 장신대에 들어갔고 안양에서결혼 그리고 신대원졸업후 안양에서 개척하여 29년동안 목회를 하고 2년전에 은퇴하였습니다.
@사모하는 영 글들을 읽다가 정말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군요. 그 양학식씨 있지않습니까 그분에게 당시 대나무 피리로 많이 맞았습니다. 도망나오다가 잡혀들어가서는 허벅지를 맞을때 왜 그리 아프던지,,,.당시에 니고데모라는 당감동출신 형이 있었는데 그 분이 피리를 어디서 구입해서는 가방 비누 장사하고 밤에 한강대교를 걸어서 흙석동으로 올때 또는 용산에 갈때 그 피리를 불면서 다니다가 밤중에 경찰에게 검문을 당한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피리를 양학식씨가 가지고 있다가 무슨 일만 있으면 그걸로 패는데 정말 아직 사춘기때여서인지 어머니가 거기 계셔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사모하는 영 당시 대니고데모, 소니고데모, 사무엘이라는 형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그나마 친구가 되어주고 소년기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해주었습니다. 사람좋은 대니고데모는 먹는일에 조예가 깊어 장사해서는 맛잇는 것은 다 사먹고 자랑을 하는통에 부러워도 했지요. 매를 맞아도 같이 맞는 통에 좀 견딜만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은퇴후 지금은 자폐아동과 근무력증 환자를 위한 활동보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벌써 71입니다. 하늘천님 그리고 스피노자 님도 한번 만나서 식사라도 하십시다.
@사모하는 영 녜... 감사합니다. 아들이 일본에 있다는 말씀이 사실이었군요. 어머님은 그 후 동방교 대기처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와서 여생을 마치셨는지요. 저도 동방교를 탈출한 후로는 소식을 접한일이 없어서 옛일들이 여러가지로 궁금합니다. 모두 좋은 분들이었는데 무엇에 씌었는지 한심한 세월들 보냈지요. 장신대를 나오셨으니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시고 목회의 길로 들어서서 보람된 삶을 영위하셨네요. 엉터리 사기행각 이단사이비 마약같은 종교, 세칭 동방교의 내력과 현상을 체험적 바탕으로 좀 분석해 주시는것도 후세를 위한 귀감이 될것 같습니다. 저도 언제 함 대면의 기회를 갖고 싶습니다...
디두모장로님의 아드님! 반갑습니다 부산 당감동 출신이네요! 세월이 강같이 흘러 어느듯 머리에 백설이 내려 앉았읍니다. 저는 스피노자라는 이름으로 동방교에서 격은 사실을 지금 17번째로 '고백과 회상'이란 제목의 글을 올려놓았습니다! 요즘도 동방교의 뿌리는 그대로 살아서 예수교장로회 무슨무슨교회라는 간판을 달고 움직이고 있으며 충남 금산 골짜기에 일백수십억 공사비를 투입하여 번듯한 수양관과 예배당을 지어놓고 전국 각 지방의 군소 동방교 신도들을 모두 모아서 집회를 열며 세력을 확장시키려고 암약하고 있읍니다! 인간 노광공을 두번째 오신 메시야 심판주로 믿고 따랐던 지난 세월이 너무 허망합니다. !!
스피노자님의 '고백과 회상' 후속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 잘 읽고 있습니다. 필치가 힘이 실려 있어서 생생하게 공감하면서 "맞아" "그랬었지" 하면서 읽어내려갔습니다.
시대가 어려워 많이 힘들었던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하는 곳이었지요. 감사합니다.
세상 살다보니 어찌 디두모장로님 소식을 다 듣게 되네요. 아드님의 소식도 감사합니다. 난관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해 주셔서 저도 기쁨니다. 중앙대 정문앞을 지날때마다 참 마음이 짠 했는데 애환이 많은 분이셨군요. 통 가정사는 이야기를 안하셔서 잘 몰랐고 묻는것도 어려웠는데 훌륭하신 아들을 두셨군요. 가정으로 잘 돌아가셔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종아리를 걷어올리고 순회자에게 초달맞던 모습이 눈에 서~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