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늘 어머니의 모습으로 반겨 줄 것이라 생각한다.
경남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소야가 고향으로
각처 도시에 살고 있는 형님 동생들의 대부분은
“나이 들면 고향에 가 살고 싶다”는 말을 불쑥불쑥 내뱉을 것이란 생각이다.
젊은 날에는 더 높은 곳, 고층 아파트에 살기를 바라지만
나이가 들어갈루록 낮은 곳,
마당 있는 집을 소망하다 끝내 죽어 땅속을 안식처로 삼는다.
나도 예순 넘어, 지금도 고향에 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도시보다 각박한 고향의 냄새 소식을 듣고
아파트 숲속 도시에서 고사리를 키우며 고향을 생각한다.
먹고 팔기 위한 농사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그냥 괭이질 삽질하며 땀 흘리는 시간이 즐겁다.
고사리 밭을 팔아 고향에 땅을 좀 마련하고 싶지만, 머뭇거리고 있다.
그동안, 젊은 날 바다건너 남의 나라 땅을 쓸고 다니며 싹튼 생각이다.
“나이 들면 고향땅에 가리다.”
나는 문화인류학을 전공 공부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타국생활에서 쓴 글(소설)을 서울의 한 대학 문화인류학 전공학생에게 특강을 오래전에 한 경험이 있다.
지금 고향에서 사는,
또 객지에서 살고 있는 형님 동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이야기로 썰을 풀고 싶다.
이제는 고향 소야 이야기를 쓰고 싶다.
지금 살고 있는 소야 사람,
또 소야가 고향인 사람들의 도시에서의 삶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새장터 큰소나무가 태풍에 아작 났지만
한그루의 나무를 심고 싶다.
언젠가 귀향으로 살고 싶은 내 고향 거창군 신원면 와룡리 소야를 위하여!
월여산 백계제 월백농원은
오미자, 헛개나무,
꿀, 여름 고랭지 배추, 사과 등을 생산하는 농장으로
자연의 맛과 향기,
특히 힐링을 더불어 나누는 6차원 농원 입니다!
월여산(月如山)은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 있는 높이 862m로
합천호를 내려다보며
탑골(고려시대 절터)을 지나 할미산성(작은 황매산-고려시대 봉화대)과 황매산, 멀리 지리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특히 백계제의 백계샘물을 마신 월여 할배가
삼봉산 바위(사진-19금이라 여기서 다 밝힐 수 없어^^)가 되어 월여 할멈이
보름 밤 외롭게 밝은 달의 계수나무(白桂)를 보며 빌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월여산이란 이름은 마고할멈 박랑의 외동딸,
백옥같이 하얀 피부를 가진 월여가
용이 사는 연못 속에서 자주 목욕하는 것을
몰래 바라보던 옥황상제의 아들이 짝사랑으로
눈물을 흘리며 사모했다는데서 비롯된 것이라 합니다.
해서 전에는 나라에 기흉이 들거나
가뭄이 들면 인근 주민들이 모두 산 정상에 모여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는 기우제 태동 전설이 있습니다.
월여산은 조선 태종때 무학대사가
금학포란의 명당터가 숨겨져 있는
명산이라고 칭송하였으며,
저녁무렵 달그림자가
정상끝부분에 걸쳐진다고 해서 월영봉이라 하였습니다.
옛날 이 산에 올라 달맞이를 했다 하여
월영산(月迎山)이라 하던 것을 월여산이라 바뀌었고
봉우리가 3개있어 삼봉산(三峰山)이라고도 합니다.
백계(白桂)는
월여산자락으로
소야마을에서 합천군 대병면을 가는,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백번 반복
해야 넘는다는 ‘백기재’라 부르기도 합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백계샘 주변에 나병 환자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았으나
완치된 분들이 모두 도시로 떠났습니다.
현재는 소야마을 사람들이 생산한 특용작물이
전국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월백농원의
오미자, 헛개나무, 여름 고랭지 배추는
인위적 성장촉진제가 아닌
햇살과 바람과, 밤과 낮의 기온,
월여 할멈의 천지창조 전설과
월여산 백계수로 빚은
몸과 마음을 위한
야생 신선약초라 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