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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의지하심으로 개척 교회라는 한계,
그 높은 담을 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개척교회라는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만이 그 한계를 극복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교회 부흥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나쁜 습관의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게임 중독의 담, 게으르고
나태한 나쁜 습관의 담을 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한계를 극복하고,
담을 뛰어 넘는 2010년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건 탓 환경 탓 경제 탓하며 좌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받은 사명이 너무나 귀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포기하며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도 야베스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이처럼 귀하기에 우리는 믿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믿음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아래 글중에서)
“존귀(尊貴)한 자(者)”
설교 이 환기 목사
(본문,역대상 4장 9-10절 )
경기도 분당에 새 에덴 교회가 있습니다.
소강석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 목사님 서재에 불이 났습니다.
교회에 불이 나자 목사님은 소화기를 들고 서재에 들어가셨습니다.
성도들이 만류했지만 목사님은 위험을 무릎 쓰고 들어가셨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시는 마음과 서재에 있는 책과 같은
목회 자료들을 포기하실 수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소방차가 출동을 해서 다행히 큰 피해가 없이 불은 커졌습니다.
불은 커졌지만 목사님은 하나님의 교회에 불이 난 것이
자신의 부덕함 때문인 것 같기도 해서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불로 소실 된 자료들과 피해로 말미암아 염려하고 안타까워할 때
성도님들이 이렇게 목사님을 위로 하셨다고 합니다.
“목사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목사님만 안전하시다면 교회는 불타도 괜찮습니다.
목사님만 계시면 교회는 다시 지으면 됩니다.”
그 목사님께는 성도들의 이와 같은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요?
성도들이 목사님을 그만큼 존경하고, 사랑하고,
존귀히 여기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성도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존귀히 여기는
목사님은 참 행복한 목사님이십니다.
그 목사님은 성도님들에게 왜 이토록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일까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도들의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만족을 얻게 될 때 사람은 최고의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인간의 근본적인 영적인 욕구를 채워주셔서
참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목사님이 어찌 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교회 예배를 인터넷을 통해서 가끔 볼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 말씀에 감격하여 눈물 흘리는 성도님들이 참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어쩌면 성도들의 갈급한 심령을 만족케 하셔서
존귀하게 여김을 받으실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은 인물이 잘 난 것도 아닙니다.
키도 적습니다.
공부를 많이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을 통해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의 간증을 들어보면 자라온 환경도 순탄치를 못했습니다.
전남 어느 시골에서 자라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무척 완고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 목사님이 교회를 나가는 것을 반대하셨습니다.
그래도 목사님은 교회 나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참다못하신 아버지가 최후통첩을 해옵니다.
“너 교회 다는 것을 포기할래? 집을 나갈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교회를 선택하고,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0대 때 집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집을 나온 목사님은 어렵게 고학을 해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자라온 환경이 불우했던 시골 소년을 별로 잘 난 것도 없는 시골 소년을
그가 끝까지 붙잡은 믿음 하나가
그가 간절하게 의지했던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를 많은 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게 하는
큰 인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인물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태어난 배경이 낮고 천한 사람들이 오직 믿음 하나로
존귀하게 된 경우가 참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큰 인물들 가운데는 특별한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모두 그 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허물 많은 죄인들이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2장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귀족들이 아니었고,
문벌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평범 이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조각하여 파는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노예의 아들이었습니다.
다윗은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양치기 소년이었습니다.
오직 믿음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이처럼 밑바닥 인생들을
그처럼 크고 존귀한 인물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야베스라는 이름이 등장을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두 가지의 상반된 정보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야베스는 모든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하십니다.
역대상 1~4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등장을 합니다.
모두 이스라엘 역사를 거쳐 간 사람들입니다.
그 숫자가 수백 명이 됩니다. 헤아려 보지는 않았지만
약 사백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소개할 “낳고 죽었다”고 아주 간단하게 소개를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을 소개하다가 오늘 본문에서 야베스를 소개할 때에는
특별히 강조해서 소개를 합니다.
그는 모든 형제보다 존귀한 자였다고 말입니다.
야베스가 존귀히 여김을 받았다는 것은 그 인격과 삶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야베스는 그 삶을 통해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유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에는 야베스와 같이 유익을 주는 사람이 귀했다는 뜻도 되는 것입니다.
어느 사회라도 이런 사람은 귀하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야베스도 존귀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신분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자라온 환경 또한 열악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증거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야베스에 대해서 또 하나의 정보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야베스라는 이름에 담겨져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를 낳은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라는 뜻입니다.
야베스는 그 어미가 원치 않는 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서도 전혀 기뻐하지 않습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갓 태어난 야베스를 향하여
“자식이 원수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하고 푸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베스가 태어난 것에 대해서 적잖게 실망하고 있는 눈치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축복과 기대 속에서 태어나지만
야베스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그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자조적인 의미를 지닌
“내가 수고로인 낳았다”는 야베스로 짓겠습니까?
모든 부모들은 자녀가 잘 되고 축복 받기를 바라는 기대를 가지고 이름을 짓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이름에도 부모의 큰 기대가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보통 이름이 아닙니다. 다울 이는 구약의 다윗과
신약의 바울에서 한 자씩 따온 이름입니다.
엄청난 이름입니다. 그리고 정음 이는 훈민정음이 아닙니다.
정금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제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런데 왜 야베스의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
내가 수고로인 낳았다”는 뜻으로 지었을까요?
학자들은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난산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아주 힘들고 낳았다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생명까지 잃을 뻔 했던 것은
아닌지 상상해보게 됩니다.
옛날에는 그런 일들이 더러 있었다는 것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잘 아십니다.
또 하나는 야베스의 가장이 무척 가난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가난한 집에 이미 많은 형제가 있었고,
그 형제들을 건사하기도 힘이 드는 환경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 가운데서 태어난 또 한 생명은 반가울 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어머니는 그 아들을 끼울 부담 때문에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고 이름 지어준 것이라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후자일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난산이라고 할지라도 아들을 낳으면
그 기쁨에 해산의 고통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베스의 어머니가 힘들게 낳은 아들이라고 하면
더욱 귀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또한 더욱 큰 기대가 담긴 이름을 져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생각해 볼 때 야베스의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준 것은
가정환경이 갓 태어난 아들을 건사하기도 벅찰 만큼
어려웠던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어머니만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야베스는 유복자일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환영받지도 못하고, 축복받지도 못한 체
가난한 환경 가운데서 태어난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있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사랑하고 의지했던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믿음으로 어려운 환경을 이겼습니다.
믿음은 환경을 이기게 합니다. 믿음으로 환경을
극복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다윗은 시편 18편 29절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담을 넘었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 한계에 부딪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가로막힌 높은 담장 안에 갇혀 눈물지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 앞에 가로막힌 높은 담을 넘게 하시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심으로 개척 교회라는 한계, 그 높은 담을 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개척교회라는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만이 그 한계를 극복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꿈에 그리던 교회 부흥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나쁜 습관의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게임 중독의 담, 게으르고
나태한 나쁜 습관의 담을 넘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한계를 극복하고,
담을 뛰어 넘는 2010년 새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여건 탓 환경 탓 경제 탓하며 좌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기에는 받은 사명이 너무나 귀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포기하며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야베스가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도 야베스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이처럼 귀하기에
우리는 믿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믿음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 유혹 때문에 믿음을 버리면 안 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분만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존귀하게 될 것입니다.
환경을 극복할 뿐만이 아니라 정말로 멋진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를 존귀하고 보배롭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소유한 사람은 질그릇에 보배를 가졌다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은 그 값이 진주보다 더 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화려함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극복케 하는 믿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믿음으로 야베스와 같이 존귀하게 여김을 받은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의뢰하고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기도가 믿음의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야베스의 믿음은 기도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야베스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큰일을 감당했고, 성공한 후에도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야베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하고 유익한 일을 하며, 그 큰일을 했음에도 교만하지 않고,
그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았기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베스의 기도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복에 복을 달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복은 평안한 상태,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는 만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복은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행복한 것입니다.
기독교 전통이 깊은 나라에서는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축복기도를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배시간이 늦어도 목사님들의 축도만은 꼭 받으려고 한답니다.
어느 목사님이 월남 전쟁 때 군목으로 가셔서 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 축도를 하려고 손을 드실 때
어디선가 미군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고개를 숙이더랍니다.
그 이유를 물은즉 자신들의 목사님이 출타 중이라 축도를 받을 수 없어서
목사님께 축복기도를 받으려고 왔다고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귀하게 여기고 복 받기를 사모하고,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도
하나님의 복을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야베스는 이미 이처럼 부족함이 없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복에 복을 주시도록 구하고 있습니다.
야베스가 구한 지경을 넓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크게 쓰임 받기를 사모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크게 쓰임 받는 것이 복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능력을 구하는 사람의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지경을 넓혀 달라고 구한 야베스는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보시면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 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능력에 맞는 일이 아니라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말씀의 능력과 말씀의 지혜를 구하고, 학생들은 지혜와 총명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준비가 될 때 하나님은 그 능력에 맞는 일을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야베스는 유혹으로부터 지켜줄 것을 구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성공한 후에는 유혹이 옵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고 태평하고 한가할 때 넘어집니다.
사람이 고생 끝에 성공을 하면 안일해지기가 쉽고, 교만하기가 쉽니다.
마귀가 그 기회를 타서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을 지키기가 어렵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죽도록 고생 한 후에 이룬 성공을 지키지 못하고 무너진 분들을 더러 목격할 수 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본문에서 야베스는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끝까지 겸손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죄가 관영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기도입니다.
죄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야베스에게는 복에 대한 사모함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베스는 하나님을 의지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야베스의 중심을 보시고 야베스가 구한 것을 응답해 주셨습니다.
야베스는 오직 믿음으로, 오직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선하고 유익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존귀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자가 존귀한 사람입니다.
그 능력으로 선하고 유익한 일을 하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믿음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셔서 그 능력을 의지하여 선한 일을 하시는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존귀한 저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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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하나님의 역사 하심이 이루어 지실 것을 나는 믿습니다.
기도와 간구가 계속이어 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