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를 만날 때 우리는 옛 사람이 겪은 구법의 난을 알아야 합니다!
자고이래로 제불보살 조사대덕께서는 법을 구하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자기를 기꺼이 희생하지 않은 사람이 한분도 안 계십니다.
현장玄奘 대사께서는 그 시절 인도에 가서 법을 구함에 있어 자기의 신명을 돌보고 자기의 안위를 돌보며 누리는 것을 희생 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고생을 하며 생활할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도보로 가셨습니다! 중국에서 인도까지 가는데 3년이 걸렸습니다. 그것은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가운데 큰 사막을 지나가야했고 밀림을 통과하여야 했습니다. 그 산은 물론 높은 산으로 대만의 원시림인 아리산阿里山에 비해 몇 배나 높은지 모릅니다. 이차대전 시절 비행기도 날아서 아리산을 넘을 수 없었고 산 중턱을 둘러서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발심하여 인도에 경을 얻으려고 간 사람은 백여 명에 이르렀으나 다시 돌아온 사람은 몇 사람에 불과하였습니다. 모두 중도에 어려움을 만나 생명을 잃었습니다. 누구든 이런 위험을 알고서 발심하여 법을 위해 희생하셨습니다.
본생경에서 강설한 여러 보살들이 겪은 것과 같은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들에게 이런 정신이 있습니까? 조금씩 더 괴로움을 받아들이며 기꺼이 실천할 수 없다면 행할 수 있겠습니까? 성취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법보와 경전을 만날 때 옛 사람이 겪은 구법의 난을 알아야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한 마디 한 게송을 위해 온 몸을 버린 이런 고사故事를 여러분들은 모두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법보와 경전을 낭비 훼손하고 아끼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비록 오늘날 인쇄술이 이렇게 발달하였을지라도 우리들은 경전을 왜 중시해야 합니까? 옛날 사람들은 경전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오늘날 쉽게 얻을 수 있을지라도 경전을 중시하고 종전에 사람이 법을 구하는 어려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능엄경』의 경우 반랄밀제般剌蜜帝 법사께서 팔뚝을 잘라서 그곳에 경전을 숨기고 가져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곳 그때 세관은 이 경을 가지고 나가는 것을 불허했기 때문입니다. 『능엄경』은 국가의 국보로 그것을 가지고 다른 지방으로 가지고 가는 것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는 남몰래 이 같은 방법으로 중국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렇게 옛 사람이 고심해서 법보와 경전을 얻었으니, 오늘날 우리들이 법보와 경전을 어찌 중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공법사, 관세음보살 보문품 강기(출간 예정)
첫댓글 "우리는 법보와 경전을 만날 때 옛 사람이 겪은 구법의 난을 알아야 합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맞습니다. 옛 분들은 법보를 구하러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셨는데 요즘은 너무나 귀한 법보를 쉽게 접하니 큰 복인줄 모르는 듯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구법의 난을 겪고서도 대원력으로 법을 전하여 주신 삼장법사님,역경법사님,정토종 등 각 종파 조사님들께 감사을 절 올립니다.나무아미타불.
거룩하고 위대하신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망서 거사님의 쉼없는 刻苦의 번역불사에 존경과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