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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 1-18절은 요한복음의 머리말(prologue)에 해당합니다. 1절에 “말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말씀”은 그리스어로 “로고스”입니다.
요한복음 1장 1-18절은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1)
그리스 철학도 “로고스”라는 말을 사용하나,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로고스”(logos)는 “우주 법칙”이며 “이성”을 뜻하는 반면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말씀하시면서 말씀 자체이신 인격체를 뜻합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그리스 철학과 아무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로고스와 관련된 것은 그리스 철학이 아닌 구약성경입니다.
요한복음이 구약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구약성경의 영향을 입증하는데 요한복음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성경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이해하기 때문입니다(시 33:6).
1. 그 말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처음(beginning)에 그 말씀께서 계셨으며 그 말씀께서 그 하나님을 향하여(with)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이가(He) 처음에 그 하나님을 향하여(with) 계셨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편 33편 6절에 “하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였는데 이것을 다시 능동태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을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보내셔서 그들을 고치십니다(시 107:20).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고치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체로 보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격체이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처음에 그 말씀(the Word)께서 계셨습니다(was).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with) 계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고 하는데, ‘말씀 하나님’이라고 하겠습니다. ‘말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이 ‘말씀 하나님’에 의해 하늘이 만들어졌습니다(시 33:6).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보내심으로써 사람들을 치료하신다는 말씀도 일차적으로는 그의 말씀을 수단으로 사람들을 치료하신다는 뜻이겠지만 인격체이신 그의 말씀을 보내신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인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치료하셨습니다.
2. 그 말씀 하나님을 통하여 모든 것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요한복음 1장 3-5절에 “모든 것들이 그를 통하여 만들어졌고, 그의 없이는 만들어진 바가 하나도 만들어지지 아니하였으며.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그 사람들의 그 빛이었고. 그 빛이 어둠에 빛나고, 그 어둠이 깨닫지 못한지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것들이 그를 통하여(through)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이 창조의 중보자(Mediator)였다는 뜻입니다(요 1:3).2)
그 없이는(without) 아무 것도 만들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말씀께서는 만들어진 모든 것들이 만들어진 것에 다 관여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생명복음”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생명”이 많이 나오는데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요 1:4).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이신 예수님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며 빛의 근원이 되신 분이십니다.3)
우리 앞에 생명과 사망이 있는데 우리는 생명을 선택하여야만 합니다. 사람은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생명 안에 선택하여야만 합니다(신 30:20). 생명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좁은 대문을 통하여 들어가야만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적은 숫자입니다(마 7:14).
그 빛이 그 어둠 안에 빛나고 그 어둠이 깨닫지 못하였습니다(요 1:5). 그 말씀 안에 있은 그 생명이 어둠 안에 빛나고 어둠이 깨닫지 못합니다. 그 어둠은 그 빛, 즉 그 말씀 안에 있은 그 생명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어둠”은 “빛”의 부재입니다. 첫째 창조에서 하나님께서 “빛이 있어라”라고 명령하셨던 순간까지는 암흑이 깊음의 표면 위에 있었습니다(창 1:2-3).4)
요한복음에서 “어둠”은 빛이 없는 빛의 부재일뿐만 아니라 악입니다. “빛”은 창조만이 아니라 구원과 결부된 계시입니다. “빛”은 창조의 빛인 동시에 구원의 빛일 수도 있습니다. 어둠이 그 빛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5)
그 빛이 어둠에 빛났으며 그 어둠이 깨닫지(comprehend) 못하였으며 또한 그 빛이 어둠에 빛났으며 그 어둠이 그 빛을 붙잡지 못하였습니다.
3. 그 말씀 하나님에 대하여 세례 요한이 증언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6-8절에 “하나님에서 파견된 자가 생겨났고 ‘요한’이라. 이가 증언 안으로 왔으니 그 빛에 관하여 증언하기 위해서니 모든 자들이 그를 통하여(through) 믿기 위해서라(might). 저 사람은 그 빛이 아니었으나 그 빛에 관하여 증언하기 위해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파견된 자가 있었으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왔고(came)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파견된 자였습니다(요 1:6).
요한에 대해서는 루카복음 1장과 마태복음과 마카복음에도 나옵니다. 요한은 스가랴와 엘리자베스 부부에서부터 태어난 아들입니다(룩 1:13). 천사가 태어나는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부르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요한은 죄들의 용서를 위하여 회개의 세례를 전도하였습니다(막 1:4). 저 날에 세례를 베푸는 자 요한은 그 황야 안에 전도하였습니다(마 3:1).
하나님께서 요한을 파견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요한은 증언을 위하여 왔으니 그 빛에 관하여 증언하였기 위해서입니다. 요한은 그 빛이 아니었으나 그 빛에 관하여 증언하였기 위해서였습니다.
4.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식들에 권리를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9-13절에 “모든 사람을 비추는 그 진짜의 빛이 있었고.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를 통해 생겨났고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신의 것들 안으로 왔고 자신의 자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그를 받은(received) 자들, 곧 그의 이름 안으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식들(children)을 되었기에 권리(right)를 주셨으니. 피들(blood)에서 아니고 육체의 뜻에서 아니고 남자의 뜻에서도 아니나, 그들은 하나님에서 낳음을 받은 바들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말씀과 같은 빛으로써 자기를 계시하셨지만 하나님을 궁극적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진짜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 세상은 그 빛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요 1:10). 그 세상은 그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음에도 그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것들 안에 왔고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요 1:11). 그가 자신의 것들에 오셨고 자신의 백성이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
그를 받은(received) 자들, 곧 그 이름 안으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식들(children)을 되었기에 권리(right)를 주셨으니. 피들(blood)에서 아니고 육체의 뜻에서 아니고 남자의 뜻에서도 아니나, 그들은 하나님에서 낳음을 받은 바들입니다(요 1:12-13).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척하고 더 나아가 박해합니다.
그런데 그를 받는 자들, 그의 이름 안으로 믿는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이 “새로운 출생”은 “하나님에서”입니다.6)
“받다”(람바노)와 “믿다”(피스튜오)는 다른 말이나, 이 구절에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에 확신을 갖기 위해서, 내가 진짜의 빛이신 예수님을 받았는지를 점검하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식들이 되게 권리를 주셨습니다(요 1:12). 그를 받은 (received) 자는 하나님의 자식들에 권리를 받았습니다(take). 예수님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 안으로 믿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의 이름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식들에 권리를 이미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를 믿은 신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식들이 된 것입니다. 내가 참으로 예수님의 이름 안으로 믿는다면 나는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아버지여”라고 부를 수 있는 권리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자식이 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당연한 권리입니다. 하나님의 자식들에 되는 권리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1)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취하는(take)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나의 왕과 나의 주로 취하는(take)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나의 구원자와 나의 중보자로 취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나의 하나님으로 손에 잡는(take)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희생 제물을 취하였던 것은 그 제물을 대속 제물로 믿었던 믿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 크리스트를 대속 제물로 취하여야 합니다. 믿음에 그의 피를 취하여야 합니다.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나의 신랑과 나의 남편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남편과 아내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의 결혼제도는 예수님과 교회의 결혼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은 말씀이신 예수 크리스트를 취하여야 합니다(요 1:12). 예수 크리스트를 우리의 손에 붙잡고 놓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2)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받는(receive)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받고, 기뻐하며 맞이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값없이 주는 것을 뜻합니다. 그 사람이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값없이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은혜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입니다.
특별히 교훈을 받는다는 것은 교훈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에 행위가 따르게 됩니다(잠 8:10). 그냥 허울 좋은 이론이 아니며, 삶에서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잠 24:32, 렘 2:30, 습 3:2).
예수 크리스트를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때에 참으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마지막에 그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3)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의뢰하는(trust) 것입니다.
“의뢰(依賴)”라는 한자어는 “의지(依支)하고 힘입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지”는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지탱하여 주고 버팀목이 된다고 믿고서 그 대상에게 기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이름 안으로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예수”라는 이름이 나의 구원에 도움이 되고 힘이 되고 지탱하여 주는 버팀목이 된다는 사실을 신용하여 그 이름 안으로 기대는 것입니다.
그 이름 안으로 믿는다는 의미는 그가 길러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에스더의 사촌오빠는 마치 에스더를 자기의 딸처럼 길렀습니다(에 2:7). 여기 “기르다”라고 번역한 말과 “믿다”라는 말이 같습니다.
크리스트께서는 지탱하시고 지지하시고 원조하여 주십니다(support). 그를 길러 주시고 양육(養育)하여 주시는 분으로 믿고 기대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길러 주시고 양육하여 주십니다(마 6:26-30).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우리를 길러 주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카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카인은 하나님을 떠난 후에 성을 쌓았습니다. 카인이 왜 성을 쌓았겠습니까? 카인이 자기 동생을 죽이고 하나님을 떠났는데 다른 사람이 자기를 만나면 자기를 죽일까봐 자기 자신을 보호할 성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을 쌓고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오직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을 쌓았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사라갈 때에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돈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의 아버지 야곱을 돕고 떠받치고 붙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필요품을 장만하여 공급하여 주겠고 지급하겠다고(supply) 하였습니다. 부양하고 기른다는 것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창 45:9-11).
다윗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라’고 시를 지었습니다. “목자(牧者)”는 양을 기르는 자입니다. 좋은 목자는 자기의 양들을 풀이 많은 들판으로 데려가고 시냇물로 데려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기르시는 나의 목자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양육자”가 되시며 하나님께서 “나의 공급자”십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니 내가 부족함 없습니다. 내가 충분합니다(Enough).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들을 통하여서 엘리야에게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과부를 통하여서도 엘리야에게 공급하여 주셨습니다(왕상 17: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광야의 40년 동안 공급하셨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하나님께 던지면 그가 부양하십니다(느 9:21, 시 55:22).
4)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 안으로(in) 들어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그를 받은 자들, 그 이름 안으로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식들을 되었기에 권리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이 예수 안에(in) 있게 된 것은 그 안으로(into) 믿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트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이 안전한 산성 안으로 들어가면 산성에 의하여 안전하게 보호됩니다. 예수님의 이름 안으로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식들이 됩니다.
크리스트를 받는다는 것은 그가 내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뜻합니다. 크리스트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시고 나는 크리스트 안으로 들어가므로, 그가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앞에 걷고(왕하 20:3), 크리스트 안에 행(行)하여야 합니다. 그를 받는 것은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행동(行動)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크리스트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와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에녹은 300년간을 하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창 5:22). 크리스천들은 크리스트 안에 행하며, 그와 함께 행하며, 그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신자들은 크리스트 안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크리스트 안에 있고 그 안에 있는 상태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5) 믿음은 예수 크리스트를 알고 예수님께서 아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3절에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고백할 것이니, ‘결코 내가 너희를 알지 아니하였으니, 그 불법을 일하는 너희여, 너희는 나에서부터 떠나가라’라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내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께서 나를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식이 되는 권리를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 하나님이시며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으로, 하나님이십니다(요 1:1-2).
세상은 그를 통하여 생겨났고, 그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합니다(요 1:9). 그가 세상에 오셨고, 많은 사람이 그를 받아들이지 아니합니다(요 1:11).
그러나 그를 받은(received) 자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식들(children)이 되는 권리를 받게 됩니다(요 1:12).
그를 믿고 사람은 하나님의 자식이 되는 권리를 받았음을 알아야 하며 내가 예수님을 믿으니 이미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식으로서의 특권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믿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식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믿는 자는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대담하게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식이 되는 권리를 받았기에 하나님의 자식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대담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1) Andreas J.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BECNT 성경주석, 신지철·전광규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41.
2) G. R. Beasley-Murray, 『요한복음』, WBC 성경주석 36, 이덕신 역 (서울: 솔로몬, 2001), 135.
3) Köstenberger, 『BECNT 요한복음』, 55.
4) D. A.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박문재 옮김 (서울: 솔로몬, 2017), 205.
5)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206.
6) Carson, 『요한복음』, PNTC 주석, 216-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