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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6장 2~5절에 “너는 이집트로 내려가지 않도록 하라, 내가 너에게 말할 땅에 너는 머무르라. 너는 이 땅에 거류하라(sojourn),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고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니(bless) 이는 너와 너의 씨(seed)에 내가 모든 이 땅을 줄 것이기 때문이며 내가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맹세를 내가 일어나게 하였으며. 내가 너의 씨를 하늘의 별들과 같이 많게 하고 너의 씨에 이 땅들을 주고 너의 씨 안에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아브라함이 나의 음성을 들었고(obeyed) 나의 책무와 계명들과 법규들과 율법들을 지켰음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율법(law)”(토라)은 “가르치다”(야라)로부터 나온 말입니다. “율법(律法)”이라는 한자는 “법 율(律)”과 “법 법(法)”이 연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법이 “율법”인 것입니다(창 26:5).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책무와 계명들과 법규들과 율법들을 지켰으므로 그 땅의 모든 민족이 그의 씨 안에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창 26:4-5).
그 땅의 모든 민족(nation)이 이삭의 씨 안에(by) 복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야훼의 음성에(voice) 들었으며 그의 책무와 계명들과 법규들과 율법들을 지킨 결과입니다(창 26:4-5). 그가 하나님의 율법들을 지켰으므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율법들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지킨 하나님의 율법은 모세의 율법과 다른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은 아브라함부터 몇백 년 이후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지켰던 야훼의 율법(명령)들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지켰던 야훼의 명령은 야훼께서 보이시는 땅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훼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게 된 것입니다(창 12:1-2). 그러므로 모든 가족이 아브라함 안에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창 12:3). 그 땅의 모든 민족이 이삭의 씨 안에서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창 26:4).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서 그의 독자를 저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기로 맹세하셨습니다(창 22:16-17). 그 땅의 모든 민족이 그의 씨(seed) 안에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했기 때문입니다(창 22:18).
아브라함이 지킨 율법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복종하며 산 삶입니다. 아브라함이 야훼의 음성에 복종하는 삶을 산 것이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실 것을 작정하신 까닭에(창 18:18),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음성에 복종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복종이 곧 하나님의 율법들을 지킨 것입니다(창 26:5).
1.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4장 12절에 “그들을 가르치게 내가 기록한 그 돌의 판들과 그 율법과 그 계명을 내가 너에게 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율법과 출애굽기 이하에 나오는 율법은 약간 다른데, 율법이 기록되었고 문서로 만들어진 것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할 말을 모세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출 4:12).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이 행할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십니다(출 4:15). 그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가르치게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출 24:12).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이 “율법”입니다.
레위기에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와 화목제의 율법이 기록되었고,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법령들과 법률들과 율법들입니다(레 26:46).
레위기에는 제사에 대해 기록되었습니다. 제사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번제를 드리는 법, 소제를 드리는 법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제단 위에 올리고 완전히 불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素祭)”는 무슨 제사냐?
소제가 희다는 뜻입니다. 쌀, 보리 등의 곡식을 빻아서 가루를 만들면 밀가루 색깔이 희잖습니까? 이것들을 제사를 “소제”라고 번역한 것인데, “곡물 제사” 정도로 번역할 수도 있겠습니다.
“속죄제(贖罪祭)”는 죄를 위해서 속바치는 제사를 속죄제라고 합니다. “속건제(贖愆祭)”는 허물을 위해서 속바치는 제사를 속죄제라고 합니다. “화목제”는 제사를 바침으로써 하나님과의 화목을 얻으려는 제사입니다.
신명기 4장 8절에 “내가 너희의 앞에 오늘날에 주는 모든 이 율법처럼 올바른 법령들과 법률들이 있는 큰 민족이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율법이 민족들의 법보다 더 큰 것이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반영하니 그 율법도 공의롭습니다.1)
민족들의 법하고 비교하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율법이 더 큽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세상의 법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의 법령들과 법률들은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법의 제정자가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정치가들이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국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입법 예고가 올라와 있습니다.
국민은 법조문을 읽어보고 그것이 타당하지 않을 때 반대해야 하는데, 국민은 먹고살기 바쁜데 사이트 들어가 일일이 살피지 못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은 그들에 유익하게 법을 막 맘대로 고치고 있는 것입니다. 좌파들이 ‘차별금지법’, 이런 법을 만들고자 합니다.
차별을 금지한다는데 법 이름은 좋죠! 하지만 그 내용은 안 좋습니다. 악마의 사람들은 악마를 닮아서 다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진짜로 차별을 금지하려고 만들고자 하는 법이 아니며 그 법으로 인해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들이 차별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다수의 정상적 사람이 소수의 비정상적 사람 때문에 차별되는 것입니다.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들어보셨습니까? 낚시한다는 Fishing의 “F” 철자를 “Ph”로 바꾼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고도의 술책을 이용해서 사람을 낚는 것을 말하는데 “전기통신금융사기”로 번역할 수 있지만 “보이스피싱”이 더 익숙합니다.
“당신 아들이 지금 교통사고 나서 지금 응급실에 입원하여야만 하는데 계좌로 천만 원을 보내주어야만 치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부모들 이성적으로 생각할 시간 없어서 천만 원 사기당해서 없어집니다.
이런 보이스피싱 예방의 핑계로 자기 돈인데 계좌 제한을 받게 되어서 한꺼번에 100만 원 이상 못 뽑게 만듭니다.
겉으로 내거는 이유는 좋지만 내 돈 내 마음대로 못 뽑는다는 것이니, 악인들이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다 이런 식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인터넷으로 디지털 돈으로 사고팔고 가능하므로 현금을 없애자, 충분히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결국 내 돈 빼앗깁니다.
국가에서 ‘계좌에 들어 있는 돈 사용하려면 말 잘 들어야 해’라고 하며 국가 정책에 따르지 않으면 계좌를 막아서 내 돈 내가 못 쓰는 것입니다.
코로나 백신 맞아야 하는데 ‘맞기 싫은 사람 안 맞아도 돼’라고 하면서 ‘의무 아니야 자유야’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유가 아닙니다. 백신을 안 맞으면 계좌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내 돈 내가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2년 전은 백신이 위험함을 몰라서 맞았으나 지금은 위험한 것 압니다. 백신 안 맞으면 계좌 사용이 막히면 위험한 사실을 알아도 맞게 됩니다. 모든 경제생활이 막혀 당장 굶어 죽을 수 있거든요. 그것이 자유입니까? 자유가 아닙니다. 맞을 수밖에 없게 했는데 어떻게 자유입니까? 강제지.
악한 사람들이 세상을 이런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악법들을 만듭니다. 그들이 내거는 표어는 좋을지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국가가 국민의 경제력을 빼앗고 통제하기 위해 이런 법들을 세웁니다. 이러한 말을 하면 팩트체크(fact-checking)로 사실 여부를 검증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팩트체크가 사실이 아니라 거짓말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와이 산불이 우리 일반 대중매체를 통한 뉴스에는 어떻게 나옵니다. ‘전깃줄이 나뭇잎이 부딪혀 거기서 불이 뻔적해서 거기서부터 불이 나서 하와이의 마우이섬(Māui)을 태워 버렸다.’
이런 말이 우리가 TV를 통해 흔히 보고 접하게 되는 뉴스 보도입니다. 그렇게 불이 났으면 그 불 난 것과 연기 보고 사람들이 다 대피했어야죠! 그런데 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난 까닭에 사람들이 피하지 못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바닷가에 뛰어들어서 산 사람들은 운이 좋은 것이고 집이 불타고 차가 불타고 집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불타 없어졌습니다. 그것 왜 그렇습니까?
소수의 주장에 따르면, 레이저 불을 쏘는 무기로 다 불태운 것입니다. 정확하게 확인된 바가 없어서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충분히 심정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무기로 불을 쏘아 불 지르고 그것을 자연재해로 핑계할 수 있는데, 소수의 주장에 따른다면 나쁜 사람들이 일부러 불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왜 불을 낸 것입니까?
하와이가 관광도시잖습니까? 마우이에 원래 원주민이 살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원주민들에게 땅 팔라고 했으나, 원주민들이 팔지 않았습니다.
악인들이 신도시를 건설해 엄청난 돈을 벌기 위해 땅을 사기 원했으나 원주민은 그 땅 판 돈을 가지고 신도시에 자기 집을 살지 못할 뿐 아니라 조상 대대로 살아온 그 고향 땅을 돈 때문에 팔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안 파니까 돈 많은 나쁜 자들이 불을 내려 다 태우고 잿더미를 만들고 다 잃고 거지가 된 사람들에게 굶어 죽기 싫으면 그 땅 팔라는 것입니다.
악인들을 그 땅들을 다 빼앗기 위해 이런 악한 짓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악인들이 세상에 우리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 짓을 행했느냐? 백신도 그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백신에 수없이 많은 악한 나쁜 재료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흑연” 아시죠? 샤프심 까만색을 무엇으로 만드냐 흑연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흑연에다가 양성자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을 쏜다면 어떻습니까? 흑연에다가 양성자를 쏘면 자석에 붙는 변형된 물질이 생기는 것입니다. 원래 자연에 있던 것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눈썹연필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핀”(graphene)이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것도 사람이 만든 것인데 연필심 흑연이잖습니까? 스카치테이프에 붙였다 떼면 테이프에 묻는데, 묻어 나온 흑연을 다시 스카치테이프에 붙였다 떼면 테이프에 묻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가 보면 마지막에는 분자 단위의 두께가 됩니다.
이러한 과정으로 얻게 되는 그래핀은 번거로울 뿐 아니라 양도 적은데 2009년에는 구리 포일(foil) 위에 그래핀을 합성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래핀을 원하는 모양으로 대량 생산하는 토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들이 이런 그래핀을 생리 식염수에 분산 함유시킨 것인데, 표어는 바이러스의 치료제라는 이유지만 악인들은 거짓말쟁이들입니다. 어쨌든, 악인(惡人)들이 만드는 법은 악법(惡法)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처럼 올바른 법령들과 법률들은 없습니다.2)
신명기 27장 26절에 “이 율법의 말씀들을 세우지 않는 자는 저주받고, 모든 그 백성은 ‘아멘’이라고 말할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은 가르친다는 동사에서 나온 명사니, “가르침”을 의미합니다.3)
율법의 말씀들을 세우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 자입니다(신 27:26). 정의들을 지키면 모든 병과 모든 질병을 빗나가게 만드십니다(신 7:15).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이 율법의 말씀을 하기에 지키지 아니하는 때는. 야훼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그의 자손의 재앙들을 기이하게 하실 것이니 재앙들이 확실하게 되고 질병들이 확실하게 될 것입니다(신 28:58-59). 율법 책에 쓰이지 않은 것도 파괴될 때까지 오르게 하십니다(신 28:61).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같이 그렇게 문자대로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의 입에 있게 하여야 합니다(출 13:9).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하겠습니다(출 16:28, 신 17:19, 30:9). 복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창 26:4-5).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들을 기록하기에 끝내게 되었습니다(신 31:24). 이 율법의 책을 언약의 궤의 곁으로부터 둡니다(신 31:26).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자손에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쳤는데(신 33: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갈 그 좋은 길을 배우게 하셨습니다(왕상 8:36). 제사장은 하나님을 경외할 것인지 그 백성에 가르쳤습니다(왕하 17:28).
“율법”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내용입니다(출 4:12, 레 10:11). 레위 지파가 율법을 이스라엘에 가르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신 33:10). 제사장들이 율법을 이스라엘에 가르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대하 15:3).
2. 하나님의 율법은 그것처럼 행하기 위해 지켜야 합니다.
여호수아 1장 6~7절에 “강하고 용기 있어라(courageous), 내가 줄 것을 맹세한 땅을 너는 이 백성을 상속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 오직 나의 종 모세가 너를 명령한 모든 그 율법 같이 행하기에 지키기에, 강하고 대단히 용기 있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하다”라는 단어(하자크)는 “강화하다”, “붙잡는다”를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강하게 하신 것에 사용된 용어며(출 4:21),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수 1:6).
“용기 있다(be strong)”라는 단어(아메츠)는 “굳세다”를 의미하며 앞에 “강하다”라는 단어(하자크)와는 다릅니다.
신 3:28, 31:6~7, 23, 수 1:6~7, 9, 18, 10:25에서 함께 쓰였습니다. “강하다”와 “굳세다”라는 두 용어는 뜻도 비슷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돋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 1:38). 여호수아에게 용기를 돋우어(encourage) 그를 굳세게 하여야 하였는데, 그가 그들에게 가나안의 땅을 상속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신 3:28).
강하고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모든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신 11:8). 우리는 강하고(Be strong) 용감하여야만(courageous) 합니다(신 31:6).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말씀하시기를 “강하고 용감하여라 너는 그들을 거기 들어가게 하고 내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하셨습니다(신 31:23, 수 1:6-9).
여호수아는 그에게 모세가 명령한 모든 율법 같이 행하기에 지키기에, 강하고 대단히 용기 있어야 하였습니다(수 1:7).
“용기 있다(be strong)”라는 단어(아메츠)는 6절과 9절에서는 “용기 있어라(courageous)”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율법을 지키는 것과 관련한 7절은 “용기 있어라”라고 명한 것이기보다는 율법을 행하기 위해 지키기 위해 “굳세어라”라고 명한 것일 것입니다.4)
여호수아 1장 7절 끝에 “너는 그것에서 좌우편에 빗나가지 말 것이라, 너의 갈 모두에 성공하기(be successful)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을 지키기가 여호수아의 성공하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수 1:7).5)
여호수아 1장 8절에 “이 율법 책이 너의 입에서 떠나지 말고 묵상하니 그것 안에 기록된 모두와 같이 행하기에 지키기 위해서니 이는 그때 너의 길을 번영하게 하고 성공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이 우리의 입에서 떠나지 않아야만 합니다. “묵상”은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숨은 뜻을 끌어내는 것을 뜻합니다.6)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동기를 부여해야만 합니다.7)
1)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129.
2) 김회권, 『신명기』, 한국장로교총회 창립 100주년 기념 표준주석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17), 104.
3) 장일선, 『신명기』,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00주년 기념 성서주석, 408.
4) David M. Howard, Jr., 『NAC 여호수아』, NAC 성경주석, 신윤수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101.
5) Howard, Jr., 『NAC 여호수아』, 102.
6) James Montgomery Boice, 『우리는 주님만 섬기리라』, 문원욱 옮김 (파주: 솔라피데출판사, 2015), 25-26.
7) Boice, 『우리는 주님만 섬기리라』,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