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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불의 아궁이(furnace) 안으로 던져질 방해물”이라는 제목으로 살피려 합니다. 이 세상에 방해물(stumbling block)이 있다는 것입니다.
“방해”는 길에 돌이 있어서 넘어지게 하거나 비틀거리게 하는 것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벽이 못 가게 막는다면 “방해물”이라고 합니다.
1. 천사들이 모든 방해물을 모아 불의 아궁이로 던집니다.
마태복음 13장 37~43절에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의 아들이나. 그 들판은 그 세상이나, 그 좋은 씨는, 이들은 그 왕국의 그 아들들이나, 가라지들(tares)은 그 악한 자(the evil one)의 아들들이나. 그 원수는 그 악마나, 추수는 시대의 완료나 거두는 자들은 천사들이니. 그 가라지들이 수확되고 불에 태워지듯이 시대의 완료에 이렇게 되리라. 그 사람의 아들이 그 천사들을 보내고, 그들이 그의 왕국에서부터 모든 방해물과 불법을 한 자들을 수집하겠고. 불의 아궁이 안으로 던지고 거기 울음과 이들의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 그 올바른 자들은 그 아버지의 그 왕국 안에 그 태양과 같이 비출 것이라 귀를 가지는 자는 들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4~30절에 “천국은 좋은 씨를 뿌린 사람에 비유되나. 사람들의 잠잘 때 그 원수가 가라지들을 곡물 중간에 덧뿌렸으나. 풀이 싹이 텄고 열매를 만든 때 그것이 보였고 가라지도 그러하나. 접근한(came) 그 집주인의 그 종들이 그에게 말하였기를 ‘밭에 좋은 씨를 뿌리셨고 가라지를 어디서 가집니까?’라고 하나. 그가 선언하였기를 ‘적의 있는 사람이 이것을 행하였노라’라고 하였으나 그 종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주워 모으기 바라시는 것입니까’라고 하나. 그가 선언하기를 ‘아니라, 그 곡물을 함께 뿌리째 뽑지 않기 위하여서라. 둘 다 그 추수까지 함께 자라게 함을 받기 위해서 너희는 버려두라 그리하면 그 추수의 시간 때에 내가 그 거두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가라지를 주워 모으고 태웠기 위해서 묶음 안으로 묶으나 그 곡물(穀物)을 나의 헛간 안으로 모으라고 하겠노라’라고 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라는 말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일인데,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는 “가라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지(tare)”(지자니온)는 마태복음 13장에만 나오는 말로 “볏과의 한해살이풀”이며, 영어로 “잡초”(weed)라고도 번역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하시는 재판관이십니다. 심판관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재판이 왜 이렇게 제때 빨리 곧 안 행해지는 것입니까? 악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하나님께서 정말 정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면 그 악한 사람들을 빨리 심판하셔서 벌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왜 악한 사람들이 벌 안 받고 잘 먹고 부자로 100년을 사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시면 악한 사람들을 벌하셔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을 벌하지 아니하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문제를 가라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정의의 하나님께서 계신다면 왜 악이 존재하게 버려두시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에 왔노라”라고 말씀하지 아니하셨습니까? 천국이 임한 것이라면, 왜 전쟁이 있고 정치적인 억압이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문제들을 예수님께서는 “가라지들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내용이 마태복음 13장 24절부터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자기 밭에다가 좋은 씨를 뿌렸습니다. 자기 밭에다가 곡식을 거두려는 목적으로 좋은 씨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잠자는 때 원수가 그 밭에다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 밭에는 두 종류의 씨가 뿌려진 것입니다.
그 밭에서 싹이 나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였는데 가라지도 보였습니다. 주인의 종들이 그에게 어떻게 가라지도 함께 자라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주인은 그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종들은 자신들이 주워 모으기를 바라는지 그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그가 선언하기를 ‘아니라, 그 곡물을 함께 뿌리째 뽑지 않기 위해서라. 둘 다 추수까지 함께 자라게 함을 받기 위하여서 너희는 버려두라 그리하면 그 추수의 시간 때에 내가 그 거두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가라지를 주워 모으고 태웠기 위해서 묶음 안으로 묶으나 그 곡물을 나의 헛간 안으로 모으라고 하겠노라’라고 합니다.
땅 밑에 보면 가라지 뿌리와 곡식 뿌리가 얽혀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뽑으면 같이 얽혀 있던 곡식 뿌리까지 같이 뽑히는데 집주인은 이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집주인은 나쁜 가라지가 곡식을 방해할지라도 버려두라고 말하였는데 이유는 곡식 한 뿌리도 집주인에게 소중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주인은 추수 때까지, 즉 끝날까지 “버려두라”라고 하였습니다.
추수 때는 이미 추수 때니까 곡식 뿌리가 뽑혀도 상관이 없을 때인데, 그때 가라지를 먼저 주워 모으고 불태웠기 위해서 묶음으로 묶을 것이나 그 곡물(穀物)을 집주인의 헛간 안으로 모을 것입니다.
추수의 시간 때, 곡물은 예수님의 헛간 안으로 모음을 받게 됩니다.1)
“헛간(barn)”(아포떼이케이)은 “문짝이 없는 광”을 의미하며 “광”은 “세간이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물건을 넣어 두는 곳”을 의미하는데 한국어 성경에는 “곳간(庫間)”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곳”이라는 말은 “곳집 고(庫)” 자며 “곳간으로 쓰려고 지은 집”입니다. “곳간”은 “물건을 간직해 두는 곳”을 뜻하며, “창고(倉庫)”라고도 합니다. “곡물”, 즉 “곡식”은 예수님의 “곳간” 안으로 모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둘의 운명이 밭에 있을 때는 같았잖습니까? 함께 섞여 살았잖습니까? 그런데 마지막 날에는 영원한 운명이 둘로 나누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아니한 부모님과 예수님을 믿는 나는 다른 장소로 가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아들들과 믿는 나는 다른 장소로 갑니다.
내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때 이후에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믿지 않는 가족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태워질 것입니다.
영원히 안 봐도 될 가족이면 그 가족에게 예수님을 안 전해도 됩니다. 그 가족이 영원히 지옥 불 안에 타도 괜찮다면 복음을 안 전해도 됩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가족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무정한 사람입니다.
자기 부모 자기 언니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정이 없는 사람이고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내 가족이 지옥에서 영원히 불타도 괜찮습니까?
100도 불에 손을 넣을 때 1초도 안 되어 ‘앗 뜨거워’ 하고 손을 뺍니다. 그런데 지옥은 어떻습니까? 1,000도도 넘습니다.
뜨거운 불에 손이 닿으면 1초도 안 되어 반사적으로 손을 떼잖습니까? 그런데 지옥은 1초 아니고 100년도 아니고 천년도 아니고 만년도 아니고 영원히 불탈 것인데 괜찮습니까?
여러분의 부모, 언니, 자녀가 지옥 불 속에서 영원히 불타도 괜찮다면 그들에게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가게 될 곳이 틀립니다. 가족들에게 미움받는 일이 싫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서는 함께 섞여 삽니다. 그러나 오는 저세상에서 두 부류의 사람은 결코 함께 살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들에 참여하기 싫어할 때 그의 왕국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그는 믿는 사람들에서 나누어져 지옥에서 영원히 불태워질 것입니다.2)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살기 싫어요. 그냥 내 마음대로 살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믿는 자들에서 나누어져 지옥에서 영원히 태워질 것입니다.
지금은 곡물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으나 그때는 나와 함께 살고 있던 사람과 나는 다른 장소로 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진짜 믿는 자와 믿는 것처럼 보이는 자는 다른 장소로 갑니다.
남편이 가는 곳에 아내가 못 가고 부모가 가는 장소에 자녀가 못 가고 믿음의 순종으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천국 안으로 모음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의 순종을 보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단지 예수님을 향하여 ‘주여, 주여’ 하고 부르기는 하는데 믿음의 순종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내가 가라지는 아닌지, 믿음의 순종이 있는지’ 점검해야 하며, 영원한 운명이 걸린 것인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을 것입니까? 이것은 돈이나 건강보다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돈 얼마 버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돈 많이 벌어 봤자 100년 못 갑니다. 건강해 봤자 100년 못 갑니다.
그 반면 내가 곡식인가 가라지인가는 영원한 운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우리는 항상 점검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내 삶에 믿음의 순종이 있는가?’ 이것을 늘 점검해 봐야 합니다.
곡식은 예수님의 곳간 안에 영원히 행복하고 안전하게 거하게 됩니다. 이와 정반대로 가라지는 지옥 안에 영원히 불타게 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에 빨간색 글씨로 기록된 것이 있습니다.
본문은 빨간색 글씨로 인쇄된 것인데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빨간색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지옥이 어디 있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데, 지옥이 있겠느냐?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빨간색으로 나온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고, 우리가 믿는 예수님께서 바로 이러한 지옥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 있겠습니까?
100도도 아니고 1000도도 넘는 뜨거운 불 속에서 불태워질 것입니다. 천년도 아니고 만년도 아니고, 영원히 지옥 안에서 견딜 자신 있습니까? 뜨거운 불에 손 닿으면 1초도 못 견디고 즉시 손 떼잖습니까?
예수님을 진짜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탈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이 예수님을 진실로 믿고 있는지 점검하여야 합니다.
이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전혀 없는 것입니다. 1,000도도 넘는 불 속에서 100년도 아니고 영원히 있을 자신 있습니까? 1초도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통을 영원히 겪으며 존재할 자신 있습니까?
하루도 물 안 마시면 죽겠는데 물 없는 지옥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까? 그러니 우리의 믿음의 순종을 점검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른 것으로 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믿음”이며 이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갑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는 없으며 천국에 못 들어가면 지옥에 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살지 아니하는 사람은 지옥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남편의 믿음으로, 부모님의 믿음으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3) 자신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믿음으로 못 들어갑니다.
믿음의 순종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 것이며, 믿음의 순종이 없어 지옥에 들어갔다가 지옥에서 나올 희망은 없습니다. 지옥에 가면 지옥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므로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는 곡식과 가라지가 비슷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둘 사이에는 확실한 차이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곡식과 가라지는 그 맺히는 열매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곡식에는 곡식의 열매가 열리고, 가라지에는 가라지의 열매가 열립니다. 진짜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사는 열매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게 될까요? 그 둘의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둘은 그 왕국의 아들들과 그 악한 자의 아들들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둘은 전적으로 다릅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곡식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익어가고 있는 열매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삶으로써 삶에 곡식의 열매가 익어가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결코 가짜들이나 모방품들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곳간으로 들여지는 일은 없습니다. 곡식은 모든 세대 중에서 나와 한 곳간 안에 모음을 받을 것입니다.4)
그때(Then) 그 군중들을 떠나신 그가 그 집 안으로 들어가셨으며, 그 제자들이 그에게 왔고 말하기를, “우리에게 그 들판(field)의 그 가라지들의 비유를 설명하여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마 13:36).
36~43절은 ‘‘가라지 비유의 설명’입니다.5) 비유는 그 무리를 위한 것이며, 해석은 그 제자들을 위한 것입니다.6)
무리도 이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제자들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비유를 설명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3장 37~43절에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의 아들이나. 그 들판은 그 세상이나, 그 좋은 씨는, 이들은 그 왕국의 그 아들들이나, 가라지들은 그 악한 자의 아들들이나. 그 원수는 그 악마나, 추수는 시대의 완료나 거두는 자들은 천사들이니. 그 가라지들이 수확되고 불에 태워지듯이 시대의 완료에 이렇게 되리라. 그 사람의 그 아들이 그 천사들을 보낼 것이고, 그들이 그의 왕국에서부터 모든 방해물과 불법을 한 자들을 수확하겠고. 불의 아궁이 안으로 던지고 거기 울음과 이들의 이를 갊이 있을 것이라. 그 올바른 자들은 그 아버지의 그 왕국 안에 그 태양과 같이 비출 것이라 귀를 가지는 자는 들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그 사람의 그 아들이므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크리스트께서 좋은 씨를 뿌리시는 그 들판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그 세상에 좋은 씨를 뿌리십니다(마 13:37-38).
그가 그의 세상 안에 뿌리시는 그 좋은 씨는 그 왕국의 아들들입니다. 가라지는 그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그 원수는 그 악마입니다(마 13:39).
집주인이 곡물을 추수하기 위하여 좋은 씨를 그의 들판에 뿌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잠자는 때 원수가 가라지들을 그 중간에 덧뿌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하늘의 왕국의 아들들을 그의 세상 안에 뿌리셨습니다. 그런데 악마가 비밀스럽게 와서 가라지들을 그 중간에 덧뿌린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천국의 아들들과 악마의 아들들이 함께 섞여서 삽니다.
그 악마가 그의 아들들을 그 왕국의 아들들 중간에다가 덧뿌렸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그 왕국의 아들들과 그 악마의 아들들이 존재합니다.
들에 곡물과 가라지들이 함께 자라는데 그 가라지들을 내버려 둡니다. 가라지들을 뽑다가 옆에 있는 곡물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은 곡물을 가라지들과 함께 뽑지 않으려고 그냥 내버려 둡니다. 그 가라지들에 대한 처분은 그 추수의 시간이 올 때까지 미뤄 둔 것이며, 비록 그 가라지들이 그 곡물의 영양분을 빼앗고 곡물에 피해를 줄지라도 그 가라지들을 뽑다가 그 곡물을 함께 뽑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은 곡물이 하나도 실수로 뽑히지 않게 가라지들을 그냥 둡니다. 이 세상에 악인들이 많은데 하나님께서 그냥 두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악인처럼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회개하고 천국에 갈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악인처럼 보인다고 뽑는다면 그 사람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일을 원하지 않으셔서 악인을 그냥 두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죄 가운데에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오래 살게 하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칼뱅이나 박윤선과 같은 선배들은 “들판”을 “교회”에 적용하였습니다. “들판”은 “세상”이지만, “교회”에 적용하는 것도 올바르다고 판단됩니다. 그 이유는 이 땅 위의 교회는 이 세상 안에 포함돼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1학년 수학 시간에 배우는 집합 관계에 대해 생각하여 봅시다! “세상”은 사람들이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지구의 모든 공간을 말합니다. 이 공간 안에 교회도 “세상 > 교회”라는 집합 관계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가라지들이 교회 안에도 있다는 그들의 적용은 정확한 것입니다.
“들판을 세상이라고 하셨기에 들판은 교회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이러한 수학의 집합 논리로 생각하지 아니한 불찰로 생각됩니다. 지상의 교회는 세상 속에 위치하여 있습니다(마 5:13-14).
지상의 교회는 완전하지 못하여 그 가운데 가라지들이 섞여 있습니다. 곡물과 가라지가 비슷하게 보이듯, 성도와 위선자는 비슷하게 보입니다. 사람은 위선자이면서도 자기 자신도 위선자인 것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매주 교회 다니는데 내가 왜 가라지냐 나 곡식이다’ 착각하며 삽니다. 순복음 교회의 조용기라는 사람이 학생 때에 엄청나게 몸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흰옷을 입고 머리가 긴 사람이 환상 중에 나타났답니다.
‘내가 병을 고쳐 줄 테니까 나의 종이 되어 살라’라고 그가 말했다는데 그러고 나서 조용기가 병이 낫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만난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만난 존재는 예수님이 아니었습니다.
악마도 빛의 천사로 그 자신을 가장한다고 기록되었는데(고후 11:14), 악마가 빛의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미혹하니까 속아 넘어가게 됩니다.
조용기는 50년이 넘도록 순복음 교회에서 목사 직업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이제 지옥에서 자신이 만났던 존재가 예수님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그러나 지옥에서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너무 늦은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을 때 복 받고 잘살고 건강해진다는 번영의 복음은 미국 타락한 은사주의 부흥사들이 말하는 번영의 복음은 가짜 복음이며, 이런 ‘번영의 복음’을 ‘순복음’이라며 50년이 넘게 전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난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인지’를 점검하여야만 하고 ‘내 삶에 믿음의 순종의 열매가 맺히고 있는지’를 점검하여야만 합니다.
‘가라지인데 곡식인 줄로 착각하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를 자기 자신을 늘 점검하여 보아야만 합니다.
풀이 싹이 텄고 열매를 만든 때 곡물인지 가라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참 크리스천과 거짓 크리스천도 처음에 매우 비슷하게 보입니다. 처음에는 모두 연약하여 모두에게 열매다운 열매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곡물은 땀을 흘리고 수고하여야 자라나 가라지는 그냥 둬도 자랍니다. 가라지들은 곡물에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하여 곡물에 큰 피해를 줍니다. 그러나 교회에 가라지들이 있다고 해서 그 가라지들을 뽑으면 안 되는데 그것들을 뽑다 그 옆에 있는 그 곡물까지 함께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가라지와 비슷한 아직 덜 자란 곡물을 함께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는 그냥 놔둬도 자라듯이 사람의 죄성도 그냥 놔둬도 자랍니다. 반면 곡식이 자라기 위해 수고가 필요하듯이 믿음의 열매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순종을 위해 힘써야, 믿음의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가라지들이 태워지듯이 시대의 완료에 이렇게 될 것입니다(마 13:40). 그 악한 자의 아들들은 거두어져서 불에 태워질 것입니다.
13장 40절에 이르러 ‘곡물과 가라지 비유의 중심’ 논지가 나옵니다.7)
예수님께서는 그의 천사들을 보내실 것이고, 그들이 그 왕국부터 모든 방해물과 불법을 한 자를 모읍니다(마 13:41).
심판 때 사람들은 버림받은 자들과 구원받은 자들로 나누어집니다.8)
천사들이 예수님의 왕국에서 모든 방해물을 모을 것입니다(마 13:41). 모든 방해물은 거두어져서 불타는 아궁이로 던져질 것입니다(마 13:42).
올바른 자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왕국 안에서 태양처럼 비출 것입니다. 귀를 가지는 자는 들어야 합니다(마 13:43).
가라지처럼 방해물로 살아가다가 불타는 아궁이로 던져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자들이 되어서 믿음의 순종으로 열매를 맺는 복된 자들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우시기를 소망합니다.
1) C. H. Spurgeon, 『마태복음Ⅱ』, 스펄전 설교전집, 서문강 역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13), 11.
2) Spurgeon, 『마태복음Ⅱ』, 스펄전 설교전집, 12.
3) Spurgeon, 『마태복음Ⅱ』, 스펄전 설교전집, 13.
4) Spurgeon, 『마태복음Ⅱ』, 스펄전 설교전집, 14-16.
5) Donald A. Hagner, 『마태복음 1-13』, WBC 성경주석 33상, 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1999), 637.
6) R. T. France, 『NICNT 마태복음』, NICNT 성경주석, 권대영·황의무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9), 633.
7) Hagner, 『마태복음 1-13』, WBC 성경주석, 640.
8) France, 『NICNT 마태복음』, 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