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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져스
잊을 수 없는 한라산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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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가 너무 잘 되어 있었다. 드러누워 잠을 청해도 될 만큼 깨끗하고 아름답게 단장되어 있어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나온 가족들도 눈에 띄었다. 어릴적부터 한라산의 정기를 받은 아이들은 크면서 역경과 고난을 마주하더라도 결코 굴하지 않고 잘 극복하며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만큼 산은 인간의 심신을 단련시키고 내공을 쌓게 하여 어려움을 헤쳐 나아가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얼마나 평화롭고 축복받은 모습인가. 젊은 부부가 어린 아이들을 손 잡고 도심의 쇼핑센터나 시끄러운 오락장 대신에 함께 한라산의 영실 등산로를 오른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흐뭇한 일이다. 2세의 교육은 부모세대가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솔선수범과 함께 뒹굴고 부딪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슭에서 봤을 때 멀리 산 중턱에 있는 웅장하고 진귀한 모양의 암벽이 진을 치고 있는 그 위쪽으로 우리 일행이 올라 가게 될 것이라고는 처음에는 생각도 못했다. 동화속의 달나라 별나라처럼 그곳은 근접 할 수는 없고 멀리서 보면서 상상의 나래만 펼칠 수 있는 신비한 나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해맑은 날씨와 꽃길처럼 잘 정비된 산책로가 흰구름이 드리운 한라산의 투명한 가을 하늘과 더불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듯 했다.
둘째날은 등산을 하지 말고 바닷가 둘레길이나 걷자고 했던 일행의 입에서 먼저 연거푸 탄성이 솥아져 나왔다. “와 저런 모습도 있구나” “저쪽 산허리를 봐라. 너무 멋있는 풍경이네” “와 오기를 참 잘했네” 캐논 브랜드의 커다란 특수 카메라를 들고 온 후배가 사진작가 처럼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한라산의 비경에 취해 여기저기 셔트를 누르기에 바빴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기암괴석이 이렇게 멋질 수 있는가” “아마 모르긴 해도 용암의 분출이 아니었다면 형성 될 수 없는 신비스러운 자연의 모습이구나” 누가 묻지 않아도 중얼거리며 정신없이 산을 오르다가 영실기암과 병풍바위가 점점 크고 또렷하게 보이는 위치까지 우리 일행이 올라가면서 우린 모두 압도당하고 말았다.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이 내일도 그럴것이며 헤어져도 필요 할 때 다시 만날 수 있을것이라고 편하게 생각했던 것이 때로는 두 번 다시 조우(遭遇)의 기회가 없는 이별이 되기도 한다.
1983년 미국에서 개봉된 핵전쟁을 다룬 영화 '그 날 이후'(The Day After)를 연상하면 조금은 상상이 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