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의 작품세계》
〇 풍부한 감성과 깊은 사유(思惟), 오랜 문학적 숙성 과정을 거쳐 빚어낸 별치 같은 수필 작품들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풍부한 감성으로 빚어내는 수준 높은 수필 작품들을 많이 써왔으며 이로 인해 이름난 문학상까지 수상함으로서 수필 문단의 주목을 받아 온 수필가 박혜숙.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우선 작품 곳곳에서 늘 맑고 청정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유(思惟)가 느껴지며 뛰어난 문학적 필치도 감지된다. 이와 함께 그는 우주만물과 세상의 온갖 사물들, 그리고 자신과 이웃의 삶이나 생활 행태 등을 작가다운 예리한 시선으로 끊임없이 살피며 인간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참된 삶의 진리를 터득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성찰하고자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더욱이 그는 이 시대의 어둠과 혼탁 속에서도 이에 휩쓸리지 않고 마치 어두운 동굴 속을 비추어 주는 환한 등불처럼 늘 깨어 있는 작가로서 인간의 가식과 허욕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있으며 이를 문학적으로 재조명하고 승화시켜 자신의 문학에 적극적으로 투영시키고 있다.
「가을 해바라기」는 작가가 어느 화장품 회사에 견학을 갔다가 얻어 온 봉숭아와 해바라기, 맨드라미 등의 꽃씨들을 자신의 집 화단에 심은 후 이들을 정성껏 키우며 관찰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뛰어난 언어 구사력과 섬세한 필치를 통해 그려낸 수필 작품이다. 특히 작은 생명들에 대한 애정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화장품 회사에 견학을 갔다가 얻어 온 봉숭아와 해바라기, 맨드라미 등의 꽃씨들만 화단에 심었는데, 뜻밖에도 자신이 꽃씨를 뿌리지도 않은 나팔꽃과 채송화도 함께 화단에서 자라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면서 그 꽃들의 끈질기고도 강인한 생명력과 삶을 위한 치열한 투쟁에 감동하여 차마 그 꽃들을 뽑아내지 못한 채 유심히 지켜본다.
이와 함께 작가는 자신이 화장품 회사에서 얻어 와 심은 해바라기가 위로만 계속 자랄 뿐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을 보면서 몹시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좀 더디기는 했지만 마침내 노랗고 탐스러운 꽃들을 하나 둘 씩 피워내는 해바라기의 모습을 보고는 안도하는 마음도 갖는다.
사실 세상의 모든 꽃들, 특히 자연 속에서 스스로 자라는 꽃들을 그 아름다운 꽃들을 피울 때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의 투쟁을 벌이며 자란다. 어느 꽃 하나라도 결코 그냥 피어난 꽃이란 없는 것이다.
땅 속이나 바위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며 뿌리를 뻗고, 이를 가로막는 돌이나 바위 같은 온갖 장애물들과 싸우는 꽃나무들도 있으며 모진 바람과 추위, 혹은 눈이나 비바람과도 싸우며 끊임없이 인내하고 버티며 자라는 꽃나무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기필코 살아남아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그토록 치열하게 투쟁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꽃나무들은 자신의 순간순간의 힘을 다 모아 온갖 시련들을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의 꽃들을 피워낸 것인데, 이러한 꽃들의 모습을 자신의 화단에서 발견한 작가는 그 벅찬 감동을 이 수필 작품에 담아 꽃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새해에 뜨는 새 태양」은 병신년 새해를 맞이하여 동해의 일출(日出)을 보며 소망도 빌기 위해 「소월 문학회」 문우(文友)들과 함께 찾았던 강릉 경포대(鏡浦臺) 해변에서의 일출 행사를 보고, 느끼고, 체득한 것들을 정제된 언어들로 차분히 그려낸 수필 작품이다.
특히 작가는 수평선을 박차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새해의 첫 일출을 보면서 새 희망에 부풀어 가슴이 요동치고, 자신도 모르게 활기와 새로운 삶의 의욕이 넘쳐났음을 이야기하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비춰 주며 생기와 희망을 가득 불어넣어 주는 태양에 대한 고마움도 표시한다.
사실 태양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비춘다. 어느 누구도 결코 외면하지 않는 것이 바로 태양인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태양은 어느 마을도 그냥 비켜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 역시 태양은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빛을 비추어 준다는 뜻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이 행사를 주관한 주최 측에서 미리 준비한 오색 풍선 백 개에 문우들 각자의 소망이나 소원을 적어 넣고 수소를 가득 채워 넣은 후 바닷가에서 하늘 높이 날려 보내는 이벤트에 참석했을 때 느꼈던 감동과 설레는 마음도 가식 없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큰 공감을 선사한다.
「천렵(川獵)」에서 작가는 죽마고우(竹馬故友)인 초등학교 동창 30여명과 더불어 관광버스를 타고 모처럼 찾아간 고향 인근의 강가에서 모두들 즐겁게 어울려 천렵도 하고, 천렵하여 잡은 물고기들로 만든 음식도 서로 나누며 하루를 유쾌하게 보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아울러 이 때 있었던 여러 가지 에피소드와 옛친구들의 끈끈한 우정,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들의 마음 등도 이야기해준다.
천렵은 우리 민족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즐겨온 놀이이자 일종의 친목 모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歲時風俗)이 잘 묘사되어 있는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월령을 보면 천렵을 할 때의 풍경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 있다.
앞내에 물이 주니 쳔렵을 하여 보세
해 길고 잔풍(殘風)하니 오늘 놀이 잘되겠다
벽계수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수기(數器)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
반석에 노구 걸고 솟구쳐 끓여내니
팔진미 오후청(五候鯖)인들 이 맛과 바꿀소냐.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강가나 개울가에서 가까운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천렵을 하고, 이 때 잡은 물고기들을 커다란 돌 위에 걸어 넣은 큼지막한 솥에 넣은 다음 고추장을 비롯해서 파와 마늘, 풋고추, 애호박 따위의 양념들을 듬뿍 넣고 끓인 즉석 매운탕을 먹으며 하루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은 노래다.
사람들이 강가나 냇가에 둘러앉아 땀을 뻘뻘 흘려 가며 먹는 이 음식의 맛도 기가 막히지만 흥취와 멋까지 더해져 더욱 좋은 모습인데, 이 수필 작품에서도 이러한 천렵 풍경이 멋지게 그려져 있다.
「보랏빛 향기」에서 작가는 보라색을 무척 좋아하는 자신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면서 보랏빛 크레용이 없어 자기가 입고 있던 보랏빛 치마를 그릴 수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다. 그러다가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언니가 사서 보내 주었다는 서른여섯 가지의 다양한 색깔의 크레파스를 쓰는 친구에게 사탕 두 개를 주고 보랏빛 크레파스를 겨우 얻어 ᄊᅠᆻ던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려준다.
이와 함께 이른 봄이 되면 고귀하고도 우아하게 탐스러운 꽃망울들을 활짝 터뜨리는 보랏빛의 자목련(紫木蓮)과 그런 꽃그늘 밑에 누워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를 흥얼거리던 처녀 시절의 추억, 그리고 해마다 5월이 되면 보랏빛 향기를 뿜어내는 라일락에 대한 진한 애정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이토록 보랏빛을 좋아하며 늘 생활 속에서 보랏빛과 더불어 호흡하며 살아가는 작가의 보랏빛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너무도 잘 드러나 보이는 수필작품이라 하겠다.
「유년의 퍼즐」은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지워지지 않고 가슴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어린 시절의 순박하고도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쓴 수필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나에게 서정성이, 낭만적인 여유와 푸근함이 묻어나는 원천은 고향 산골에 유년의 뜰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 그의 수필 작품 전반에서 서정적 정취와 낭만적인 여유와 푸근함, 순수함과 소박함 등이 넘쳐나는 것도 작가의 이러한 「유년의 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저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가 쓴 《어린 왕자》를 보면,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어린 왕자가 절망의 땅 사막에서 별을 바라보며 꿈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별을 바라보며 아프고 슬픈 마음을 달래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에서 자신이 살던 별을 떠올리며 꿈과 희망의 빛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데 별은 어둠 속에서의 빛이며 꿈과 희망, 가능성 같은 것들을 상징한다. 또한 밤의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오히려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밝게 빛나는 별이란 존재는, 상징적으로 우리들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어둠과 절망에서도 빛이 되어 주는 한 줄기 꿈과 희망을 뜻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꿈과 희망을 눈앞에 보이는 구체적 형상으로 보여 주는 것이 곧 별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품고 용기를 내어 살아왔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은 꽃을 닮듯이, 별을 바라보는 사람은 별을 닮는다」는 말도 있다.
그러데 수필가 박혜숙은 하늘 높이 떠서 총총히 빛나고 있는 별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꿈과 희망을 잃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이러한 삶이 반영된 희망찬 수필 작품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도 꿈과 희망의 빛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가 오랜 문학적 숙성 과정을 거쳐 애써 빚어낸 수필 작품들은 어쩌면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도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첫댓글 보랏빛 향기에 취해
삶이 우아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