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부루스 (1959) 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 안정애 노래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 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기적소리 슬피 우는 눈물의 플렛트홈
무정하게 떠나가는 대전 발 영시 오십분
영원히 변치 말자 맹서했건만
눈물로 헤어지는 쓰라린 심정
아~ 보슬비에 젖어우는 목포행 완행열차
이거 당시 크게 불려졌었는데, 노래에 흐르는 이별의 애틋한 슬픔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 아닌
가 생각된다.
소설이나 영화나 보면 희극보다는 비극적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강한 호소력으로 다가오질 않던가.
헌데 이 노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전발 영시 오십분'이란 노랫말이다.
어쩌면 이 대목 하나가 이 노래를 살린 생명력이 아닐는지?
그때 대전역에 목포행 0시 50분 열차가 진짜 있었느냐는 말들이 많았었는데, 아마 사실이라고 했던가?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대전발 영시 오십분'은 가히 백만불짜리 튀는 아이디어였음에 틀림없어 보인
다.
이 노래 찾다 보니 대전역에 이 노래의 노래비가 있다고 하는데 거기 당연히 있어야 할 가수(안정애)의
이름이 빠져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 노래를 후에 다시 부른 가수(조용필)도 함께 올려달라는 안정애
본인의 주장 때문이라고 하는데, 주최측도 물론 그걸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노래 처음 나왔을 때 그 폭발적 인기는 동 시대를 살아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고 당시
조용필은 이름도 없을 때가 아니었던가.
이 노래를 탄생시키고 빛낸 사람은 저 위 '대전발 영시 오십분'의 작사자 최치수와 저런 애절한 '비가'를
오선지에 무심의 경지에서 그려낸 김부해, 그리고 저 흐느적대는 부르스풍에 타고난 기질을 한껏 발휘한
안정애--- 이 세 사람이 당연히 맞는 게 아니랴. 해서 노래비에 이들 삼인의 이름이 각인되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과거 유명한 노래를 다시 불러(리바이벌) 유행시킨 사례는 우리 가요사에 얼마든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노래비에 그들 이름을 다 같이 올릴 필요가 있을까?
노래비 내용도 하나의 '역사'이며 사실을 정확히 기록해야만 한다.
그리고 양보도 지나치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안정애님이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그 노래비가 지역 사정으로 철거되었다고 하는데 마땅한 장소에 하루 속히 대전의 상징인 본 노
래비 재건립이 이루어지길, 필자는 강화도 사람이지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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