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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순 동화]
아차산의 유래
탁! 탁! 탁!
집을 나온 고양이가 떡갈나무 밑동을 두드렸다. 떡갈나무 아래에 있는 쥐구멍 앞에서
속삭이듯 물었다.
“산쥐야, 너 아차산 유래에 대해 아는 거 없니?”
그러나 쥐구멍 속 산쥐는 꼼짝도 않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배가 고파서 그러는 거 아냐. 정말 궁금해서 그래. 내가 비록 집을 나온 고양이지만
이제 여기에서 살아야 하니까, 아차산의 유래라도 알아야 체면이 바로서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거든.”
집을 나온 고양이는 앞발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쥐구멍을 바라다보았다.
‘저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며칠을 나를 먹겠다고 숨어서 노렸을 거야. 다시는
그이처럼 당하지 않을 거야.’
쥐구멍 속 산쥐는 앞니를 꽉 물었다.
“난 집을 나온 고양이라, 아직 야생에 익숙하지도 못하고 또 마트의 음식에
길들여져서 너한테 별 관심이 없어. 그냥 아차산에 대해 알고 싶을 뿐이야.”
고양이는 아주 점잖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집을 나온 고양이 좋아하네. 귀찮다고 아무데나 똥 싸고, 목욕도 하기 싫다고
옷장에 숨고, 아무나 할퀴어서 쫓겨났거나 아님 버려졌으면서! 흥!’
쥐구멍 속 산쥐가 콧방귀를 뀌었다.
“산쥐야, 너희는 아차산에서도 손꼽히는 산쥐의 명가라고, 큰 바위 얼굴
아저씨가 사는 고구려 대장간마을까지 소문이 났던 걸.”
집을 나온 고양이는 떡갈나무에 앞발을 올리고 칭찬을 했다.
‘이제 달랑 혼자 사는데, 아차산 산쥐의 명가가 무슨 소용이야.
칭찬에 절대 속지 말아야지. 다 날 먹겠다는 수작이고 꼼수야. 그날
그이처럼 경솔하게 행동했다간! 악!’
쥐구멍 속 산쥐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자신의
불룩한 배를 감싸며 겨우 참아냈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떡갈나무 아래 쥐구멍을 찾아왔다.
‘친구를 얻으려면 삼고초려를 해야 한다니까, 참고 또 참고 또 설득을 해야지!’
집을 나온 고양이는 떡갈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향해 ‘야옹!’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애원하듯 말했다.
쥐구멍 속 산쥐는 바짝 긴장했다.
“그 안에 있는 거 알아. 넌 멋진 산쥐야. 난 믿어. 외로운 친구를 못 본 척 하지 않는
마음도 넓고 예쁜 산쥐라고. 그러니까 밖으로 나와서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해줘!”
하지만 쥐구멍 속 산쥐는 못 들은 척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집을 나온 고양이는 떡갈나무 밑동 아래 쥐구멍을 찾아왔다.
“내가 널 해칠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해! 누구라도 같은 생각일 거야.
집을 나온 고양이로서 다짐하건데, 다른 고양이나 올빼미나 족제비나
뱀처럼 널 해치는 일은 없을 거야. 난 지금 외로워 친구가 필요하거든.”
‘뭐, 친구가 필요하다고!’
쥐구멍 속 산쥐는 친구라는 말에 귀를 토끼처럼 쫑긋 세웠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사탕발림이야! 꼼수라고! 속으면 안 돼!’
쥐구멍 속 산쥐는 앞니를 다시 꽉 물었다.
“제발 뭐라고 말 좀 해주면 좋겠는데.”
집을 나온 고양이는 앞발 사이에 얼굴을 묻고 쥐구멍 속 산쥐가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쥐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건 무거운 침묵뿐이었다.
떡갈나무 아래에도 어둠이 찾아왔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아차산 아래 마을의
불빛을 바라다보았다. 당장이라도 저 불빛 속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때늦은
후회뿐으로 이젠 돌아갈 용기도 염치도 없다.
‘날 참 예뻐해 주셨는데.’
집을 나온 고양이는 주인에게 사랑받던 시절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떡갈나무 나뭇잎 소리만 살랑댈 뿐 사방이 조용해지자, 쥐구멍 속 산쥐가
조심 또 조심하며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잠들어 있었다.
‘다른 고양이들처럼 산 아래 마을로 먹이를 구하러 가지 않고 잠을 자면 어떡해.
내가 더 불안하잖아. 너무 배고프면 보이는 게 없어 사나워질 텐데.’
산쥐는 집을 나온 고양이를 한참 바라다보았다.
‘정말 진심일까?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게. 하지만 옛날부터 고양이와
우린 원수잖아! 고양이에게 내 사랑 그이를 잃었어. 안 돼! 우린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어! 뱃속 아이들까지도 위험해!’
쥐구멍 속 산쥐는 불룩한 배를 가만가만 어루만졌다. 그런데 앞니가
자꾸 간질거렸다. 당장이라도 쥐구멍 속을 뛰쳐나가 떡갈나무 밑동을 갉고 싶었다.
하지만 뒷구멍으로 몰래 빠져나가고 싶진 않았다.
새날이 밝았다. 집을 나온 고양이가 잠자던 그 모양으로 눈만 떴다.
쥐구멍 속 쥐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집을 나온 고양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자, 산쥐는 재빨리 구멍 속으로 숨었다.
집을 나온 고양이가 몇 걸음 뒤로 물러서 앉았다.
얼마 후 다시 산쥐가 쥐구멍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한참 서로를 바라다보았다.
그러다 산쥐는 뒷걸음쳐 쥐구멍 속으로 들어 가버렸다.
‘내 마음이 왜 이러지! 이러면 안 돼! 쑥쑥 자라나는 앞니 때문일 거야! 아니야!
나도 친구가 필요할지 몰라! 왜? 하필이면 고양이지? 다른 산쥐도 많은데.’
산쥐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짧고 빳빳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다짐했다.
‘그래, 한번 시험해보는 거야.’
산쥐는 다시 쥐구멍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정말 친구가 되고 싶니?”
집을 나온 고양이는 반가움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산쥐가
재빨리 쥐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아차 싶었다.
“산쥐야, 정말 미안해. 너무 반가워서 그랬어!”
“내가 그럴 줄 알았다니까!”
산쥐는 집을 나온 고양이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산쥐의 가슴은 예전처럼 콩닥거리지 않았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떡갈나무 밑동에 머리를 몇 번 박았다.
그리고 쥐구멍에서 멀리 떨어져 앞발을 가슴 아래 숨겼다.
한참 후 산쥐가 다시 쥐구멍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정말 나랑 친구가 되고 싶어?”
집을 나온 고양이는 산쥐 모르게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그래,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어!”
“그 말을 어떻게 믿어?”
“그럼, 증인이라도 세울까?”
“그럴만한 친구라도 있어?”
“저 아래 긴고랑천에 두 눈 바위 얼굴 친구나 아니면 아차산 둘레길에 무릎을
의자처럼 내어주는 소나무 친구가 있긴 해.”
산쥐가 조금 경계심을 풀며 말했다.
“친구가 되는데, 증인까지 세울 건 없고 네 앞발 발톱 말이야.”
집을 나온 고양이는 얼굴이 땅에 닿도록 가슴에 숨긴 앞발을 더 깊이 밀어 넣었다.
“내 발톱 절대 너한테 안 쓴다니까!”
“그럼, 숨긴 네 앞발 발톱, 저기 바위에 부러뜨려 봐. 그러면 네 진심을 믿을 게.”
“뭐, 다른 걸로 하면 안 될까?”
“싫으면 관 둬!
집을 나온 고양이가 벌렁 누워 네 발을 하늘로 들고 산쥐에게 물었다.
“다 부러뜨려?”
“아니 하나만!”
산쥐는 다시 쥐구멍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집을 나온 고양이는 어떻게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결심한 듯 중얼거렸다.
‘그래, 마지막으로 한번 보기나 하자!’
집을 나온 고양이는 아차산 아래 마을을 향해 뛰었다.
“너, 무서운 거지! 그래서 도망치는 거지!”
쥐구멍에서 나온 산쥐가 소리쳤지만 집을 나온 고양이는 더 빠르게 뛰었다.
마을버스 2번 종점을 지나쳐 더 달렸다. 그리고 24시 가게를 지나 오른쪽
담장 앞에 멈춰 섰다. 수거 표지가 붙은 거울 앞이었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앞발을 들고 귀여운 모양을 해보았다.
‘그때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 예쁘다! 예뻐! 이젠 됐어!’
집을 나온 고양이는 다시 아차산 그 떡갈나무 아래를 향해 뛰었다.
헉, 헉, 야옹! 야옹!
떡갈나무 아래에 도착한 집을 나온 고양이는 숨을 몰아쉬며 쥐구멍을
한참 바라다보다 바위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오른쪽 앞발로
바위를 할퀴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쥐구멍에서 나온 산쥐가 초초하게 바라다보고 있었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옛 집주인의 어린 딸을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질투였어! 바보처럼 나만 예쁨 받고 싶어 했으니!’
집을 나온 고양이는 막 걸음마를 시작한 주인집 여자아이의 얼굴을 할퀸
그때가 떠올라 괴로웠다. 그래서 더 세게 바위를 할퀴었다.
‘사랑은 나눈다고 작아지는 게 아닌데!’
집을 나온 고양이의 오른쪽 발톱이 빠지려는지 피기 흐르기 시작했다.
‘제발 얼굴에 흉터가 생기지 말아야할 텐데. 아이야, 날 용서해줘!’
집을 나온 고양이는 있는 힘을 다해 오른쪽 앞발로 바위를 내리쳤다.
그리고 얼마 후, 악! 야옹!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오른쪽 앞발톱 세 개가 빠졌고 그 자리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산쥐는 눈물을 글썽인 채 쥐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절뚝거리며 떡갈나무 아래를 벗어나
고구려 3보루를 향해 올라갔다. 앞발의 통증만큼이나 아차산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야호, 야옹!
집을 나온 고양이는 295.7 미터 아차산 정상에서 한강을 바라다보고 웃었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통증이란 때론 봄바람처럼 시원하다는 걸 알았다. 기뻤다.
집을 나온 고양이는 등산객들이 보든 말든 한강을 향해 소리쳤다.
“나한테도 친구가 생겼다!”
아차산 메아리도 기쁜지 한강 물결 위를 금방 달려갔다 오더니 산쥐에게 달려갔다.
“멋진 친구가 생겼다!!!”
아차산에 봄비가 내렸다.
집을 나온 고양이와 산쥐는 아주 큰 우산 같은 떡갈나무 아래서 친구가 되었다.
산쥐가 집을 나온 고양이의 원래 이름을 알고 놀려댔다.
“야, 이쁜이가 뭐냐. 촌스럽게!”
집을 나온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고 산쥐에게 다가왔다.
“이 정도면 예쁘잖아! 새 이름 지을까? 평강공주는 어때?”
“야, 이제 넌 그 공주란 말 잊어야해. 그리고 중화수술 당해놓고 무슨 공주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내가 아차산 명가의 쥐라고 네 입으로 말했잖아!”
“소문도 참 빠르지. 괜히 아차산 아래 어린이대공원엘 서성대다 그만!”
“이젠 잊어야지, 어떡해!”
산쥐는 아가들이 뛰노는 불룩한 배를 만지며 집을 나온 고양이를 위로했다.
집을 나온 고양이가 아차산 아래 먼 마을을 바라다보았다.
“집을 나온 고양아, 그러지 말고 네 이름 이렇게 지으면 어떨까?”
“뭐라고?”
“집을 나온! 어때?”
“야, 쫓겨 나온이 낫겠다.”
하하하하하하!
“좋아! 난 ‘집을 나온’ 이고 그럼 넌?”
“네가 지어줘야지!”
“당장 생각이 나질 않는데.”
“그럼, 내가 지을 게. 아차 산쥐! 어때?”
“아차! 아차 산쥐! 좋아!”
호호호호!!!
봄비도 그치고 아차산 가득 햇살이 퍼졌다.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숲에서 나와 오붓하게 아차산 둘레길을 걸었다.
아차 산쥐가 절뚝거리는 집을 나온 고양이를 보고 말했다.
“너, 아차산의 유래가 궁금하다고 했지?”
“사실은 친구가 되고 싶어서 그랬었지.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엄청 궁금해. 어서 말해줘.”
아차 산쥐가 봄바람에 코를 벌름거리며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한테 ‘아차 산쥐’라는 이름이 왜 어울리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정말?”
“아차산 유래에 관한 여러 이야기 중 이 설화는 말이야, 조선 명종 때 이야기야.”
집을 나온이 귀를 쫑긋 세웠다.
“참 너도 눈치를 챘겠지만, 이 불룩한 배 말이야.”
“그래서 네가 나를 더 경계했다는 걸 알아.”
아차 산쥐가 문제를 냈다.
“내 뱃속 아가가 몇이게?”
이때 집을 나온이 꼬리를 곧추세웠다.
“놀랐어?
“뭔가 예감이 안 좋아서!”
집을 나온이 몸을 웅크리고 꼬리를 감았다.
“무서워?”
“그런 이야기일 것만 같아서!”
집을 나온이 등을 구부리고 털을 곤두세우며 귀를 눕혔다.
“화났어?”
“아니! 누군가 이야기 속에서 화를 낼 것만 같아서.”
집을 나온 고양이가 수염을 매만졌다. 아차 산쥐가 슬쩍 눈을 흘기며 다시 물었다.
“내 뱃속에 아가가 몇이게?”
“그럼, 넌 알아?”
“내가 왜 몰라!”
“그럼, 네 아가가 몇인데?”
“내가 물어 봤잖아!”
“잘 모르겠지만, 여섯 아닐까, 맞지?”
“그러지 말고 네가 복술가라고 생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봐.”
“내가 점치는 사람?”
“그래, 너도 아가 낳아 봤잖아. 내 배를 보면 몰라?”
집을 나온은 아차 산쥐의 불록한 배를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다가
지난해 가을에 떨어진 졸참나무 도토리 몇 알을 주워 땅바닥에 던졌다. 그리고 소리쳤다.
“장담하건데, 네 아가는 여섯!”
“만약에 틀리면?”
“서로 즐거워 한 놀이인데?”
아차 산쥐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무슨 벌?”
집을 나온이 눈이 동그래졌다.
“칼을 받아야지!”
“에이, 친구끼리 너무 한다! 농담이지?”
아차 산쥐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여튼 틀리면 무슨 벌이든 받는다고 약속해?”
집을 나온은 아차 산쥐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집을 나온이와 아차 산쥐는 무릎을 의자처럼 내어주는 소나무 친구 앞에서
손가락을 걸어 맹세를 했다.
“맹세도 했으니까, 아차산 유래에 대해 말해줘. 응?”
집을 나온이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듯 서둘러 말했다. 그러자 아차 산쥐가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선 명종 때 복술가 홍계관이 자기 생명에 대해서 점을 쳤데.”
“그래서?”
“어느 날 뜻밖의 재앙이나 사고로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다고 나왔데.”
“그럼 어떡해?”
“살아날 길을 찾아보았겠지.”
“살아날 방법이 있었어?”
“그럼, 방법이 있었지.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앉던 용상 아래에
숨어 있으면 살 수 있다는 거야.”
“임금님이 허락했어?”
“응! 홍계관은 임금님의 승낙을 받고 용상 아래 숨었지. 그때 쥐 한 마리가 지나갔어.”
“쥐! 그럼, 아차산 유래와 쥐가 관계가 있는 거네?”
“그렇지!”
쥐라는 말에 집을 나온이의 입이 바짝 말랐다. 아차 산쥐는
목에 힘을 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왕은 홍계관에게 몇 마리의 쥐가 지나갔는지 점을 쳐보라고 명령했지!”
“한 마리잖아?”
“아니야. 홍계관은 임금님께 세 마리라고 말씀드렸어.”
“한 마리가 지나갔는데, 어떻게 세 마리야?”
“맞아, 너도 임금님처럼 홍계관의 거짓말에 화가 나지?”
“그럼, 감히 임금님께!”
“임금님은 너무 화가 나서 홍계관 목을 베라고 명령했지.”
“형장으로 끌려갔겠네?”
“홍계관은 형장에 도착해서 급히 점을 쳤지.”
“혹시 살아날 방법이 있나하고?”
“한 시간 정도만 버티면 살수 있다는 점괘가 나왔어. 그래서 홍계관은
형리에게 집행을 늦춰달라고 애원했지!”
“형리가 기다려줬어?”
“기다려줬는데, 말이야!”
아! 아차 산쥐가 갑자기 신음 소리를 내며 비틀거렸다.
집을 나온이는 당황했지만 재빠르게 아차 산쥐를 부축했다.
한참 후에야 아차 산쥐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때 말이야, 우리 조상님이 돌아가셨어!”
“왜?”
“홍계관이 형장으로 끌려간 후, 임금님은 무언가 잘못된 것만 같아
신하들에게 용상 앞을 지나간 쥐를 잡아오라고 명령했지!”
“그 쥐가 잡혔어?”
아차 산쥐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잡힌 쥐의 배를 갈랐지”
“끔찍해!”
“그 쥐는 두 마리의 새끼를 배고 있었어.”
“그럼, 세 마리가 맞네!”
“왕은 홍계관의 신기한 점술에 놀라 급히 신하를 형장으로 보냈지.”
“참형을 중지시키려고?”
“맞아. 그런데 말이야, 형리는 멀리서 급하게 말을 타고 오는 신하를 보고 겁을 먹었어.”
“왜?”
“신하가 손을 흔들어 참형 집행을 중지하라는 걸 말이야.”
“참형 집행을 빨리하라는 신호로 오해한 거지?”
“맞아. 형리는 곧바로 홍계관의 목을 베고 말았지.”
“형이 집행된 곳이 이곳이었어?”
“그래. 경복궁에서 가까운 이곳이었지. 신하는 왕에게 돌아가
참형 집행 사실을 보고하자 아차! 늦었구나! 하며 안타까워 하셨대.
그 후로 사람들은 형장이 있던 이곳을 아차 고개라 했고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거야!”
“참 슬프네!”
집을 나온이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집안 이야기라 너무 가슴 아파! 하지만 아차산의 이름이 이미 있은 후,
산 이름과 연관하여 홍계관의 일화를 끌어 들인 이야기라는 말도 있어.”
“그럼, 다행이고. 참, 아차 산쥐야, 다른 유래 이야기도 있지?”
“있지!”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아차산 둘레길과 조계종 직할 사찰인
기원정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만나는 사거리에서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아차 산쥐야, 아차산 둘레길을 더 가다가 영화사에서 올라오는
길을 따라 고구려정 쪽으로 올라갈까?”
“오늘은 이 해맞이광장길로 올라가자.”
“좋아!”
집 나온이와 아차 산쥐가 데크계단을 오르니, 길 오른쪽에 먼지를 터는 기계가 있다.
“사람들 말이야. 아차산 소나무 솔향기까지 다 털어내고 가는 건 아니겠지?”
“그럼! 솔향기는 마음에 담아 가지고 갈 거야. 저기 좀 봐!”
누군가가 소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받쳐놓았다. 그리고 지지대를
중심으로 작은 돌멩이들이 모여 둥근 탑이 만들어졌다.
“우리도 돌멩이 하나씩 놓자!”
“좋아, 소나무가 오래오래 쓰러지지 않고 잘살도록!”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 따뜻한 것 같아!”
아차 산쥐는 집을 나온 고양이를 바라다보며 웃었다.
“특히나 아차산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 따뜻하고 아름다울 거야!”
“왜?”
“우리가 아차산에 사니까!”
“뭐라구! 우리들이 아차산에 사니까? 하긴, 그런 자부심이 있어야 아차산에 살 수 있지!”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잠시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자, 가자!”
“조금 올라가면 아차산 마법사 바위 얼굴이 있는 거 알지?”
“너무 무섭게 생겼어!”
아차 산쥐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언제나 옆으로 누워 있는 마법사 바위 얼굴이지만, 우리가 보지 못해서 그렇지,
진짜 마법사가 되어 아차산 구석구석을 날아다닌다는 거야.”
집을 나온 고양이도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럼, 아차산 소나무 가지를 타고 날아다닐까?”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살금살금 걸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님 까마귀가 되어 날아다니는지도 몰라!”
“쉿! 저기!”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산쥐는 마법사 바위 얼굴 앞에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마법사 바위 얼굴 왼쪽 눈이 살짝 움직이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마법사 바위 얼굴님, 늘 아차산과 우리들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빨라가자! 왠지 으스스 해!”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팥배나무가 있는 아차산 중턱까지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다.
“헉, 숨차다!”
바위에 앉은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물어볼 것을 그랬어?”
집을 나온 고양이가 아차 산쥐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마법사 바위 얼굴님께?”
“응!”
“너, 혹시 그거 물어보려고?”
아차 산쥐가 자신의 불룩한 배를 매만졌다.
“응!”
“난 또 싱겁긴. 자 쉬었으니 어서 해맞이광장으로 가자!”
집을 나온 고양이는 아쉽다는 듯, 몇 번이나 뒤를 바라다보며
아차 산쥐 뒤를 따라갔다. 아차 산쥐는 자신의 뱃속 아가의 수를 맞추지 못해서
친구를 잃으면 어떡할까, 걱정하는 친구의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마!”
“내가 맞출 수 있을까?”
“넌 똑똑하니까! 그건 그렇고 내가 하나 더 아차산 유래에 대해 이야기 해줄게.”
“그래, 걱정이 있을 땐 이야기가 최고니까!”
집을 나온 고양이는 아차 산쥐의 긴 꼬리를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하며
최대한 바싹 따라붙어 걸었다.
“고구려 온달장군 알지?”
“응. 그 집에 살 때 이름을 들어본 것 같아. 바보 온달장군.”
“북쪽의 나라, 고구려의 장수왕은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려고
남진 정책을 폈지. 그래서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했어.”
“그래서?”
“고구려 영양왕 때야. 편강왕(평원왕) 공주의 남편인 온달장군이
신라에게 빼앗긴 이 지역을 비롯해 죽령 이북의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군 하고 싸웠지.”
“혹시 이곳 아차산성에서 전사했어?”
“맞아. 신라군의 화살에 맞았어.”
“그럼, 시신을 고구려로 옮겨갔겠네?”
“고구려 군사들이 장군의 시신을 옮기려고 했는데, 시신을 넣은 관이 꿈쩍도 않는 거야.”
“왜? 평강공주를 못 보고 죽어서? 아니면 장군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죽어서?”
“하여튼 온달장군의 관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으로부터
평강공주가 이곳 아차산성으로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더니!”
“어떻게?”
“죽고 시는 게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
“그랬더니 관이 움직여?”
“응. 그래서 돌아가 장례를 치룰 수 있었대.”
“신기하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은 ‘아차! 온달 장군이 이곳에서 그만 죽고 말았구나.’
라는 의미로 이곳을 아차산이라 불렀다고 해.”
“슬픈 이야기다!”
“근데, 역사적 사실은 아니래.”
“그럼?”
“온달 장군이 전사한 이야기와 평강공주가 와서 달래어 돌아갔다는 것은
역사 기록으로 삼국사기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그 장소는 아차산이 아니라
훨씬 남쪽인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것이 현재로선 설득력이 있다고 해.”
“그렇구나.”
집을 나온 고양이가 아차산 하늘을 오래 바라다보았다.
“보이니?”
“고구려 하늘?”
“오래 바라다보면 보일 것도 같아.”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얼마 남지 않은 해맞이광장을 향해 걸었다.
“저, 아차 산쥐야! 넌 날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
“난 오래 너랑 좋은 친구하고 싶은데.”
“너 또 그 얘기지?”
“못 맞출까봐, 자꾸만 걱정이 돼서!”
“조금 전에도 내가 그랬잖아. 너무 걱정 말라고.”
“그래도! 내가 못 맞추면 나랑 정말 절교할 거야?”
“방법이 없는 건 아냐!”
“뭐라고?”
순간 집을 나온 고양이의 눈이 더 동그래졌다.
“만약에 내가 네 아가수를 못 맞춰도 오래오래 친구가 될 방법이 있다는 거지? 그게 뭔데?”
“나의 말이 되는 거야!”
“말?”
“말이 돼서 나도 태워주고 우리 아가들도 태워주고.”
집을 나온 고양이가 실망한 듯 머뭇거렸다.
“싫어?”
“아니, 싫다는 게 아니고.”
“그럼, 체면 때문에 그래?”
“그게, 저어.”
아차 산쥐가 짧은 앞발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그럼 절교하는 거지. 뭐!”
“절교는 안 돼!”
“그럼 선택해!”
집을 나온 고양이는 한참이나 앞발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가 고개를 들며 다짐하듯 말했다.
“좋아! 내가 만약 틀리면, 만약이야. 틀리면 평생 네 말이 될게!”
“좋아!”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기쁜 마음으로 해맞이 광장에 올랐다.
“이곳이 서울의 제일 동쪽 산인 아차산의 해맞이명소야!”
“와, 저 아래 한강!”
집을 나온 고양이가 사뿐 하늘로 뛰어 올랐다.
“예전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했어.
그 밖에도 아끼산, 아키산, 에께산, 엑끼산 등으로 부르기도 했지.”
“참 이름도 많네.”
“경기도 양주조에 보면 화양사가 악계산에 있다고 쓰여있지. 저 아래에 있는
사찰 영화사를 말하는 거야.”
“역시 아차산 명가 산쥐네라 그런지 아는 것도 많아!”
“뭐라고!”
하하하하!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는 배꼽을 잡고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저기가 아차산성이지?”
“요기가 고구려정 정자고?”
“저기가 어린이대공원!”
“저어기가 남산서울타워!”
“강 건너 저 것은 123층 우리나라 최고층 빌딩!”
“산 능선 따라선 고구려시대 보루들이 있고.”
“아차산 멋쟁이 소나무도 많고!”
“하여튼 난 아차산이 좋아!”
“나도 아차산이 정말 좋아. 우리 여러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자. 혹시 알아.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
그리고 그 친구들 이야기가 아차산의 전설이 될지!”
야옹! 찍찍!
집을 나온 고양이와 아차 산쥐가 손을 잡고 아차산 능선을 걸었다.
보루마다 경계를 서고 있는 고구려 병사들을 보며 늠름하게 걷는데,
아차산 소나무 속살에서 동그라미를 그리고 놀던 아차산 메아리가
뛰쳐나와 엄지를 척! 내밀며 웃었다.
-동화집 [긴고랑 두 눈 바위 얼굴 아차돌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