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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1. 법회가 열린 인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부처님께서 대비구 천이백오십인과 함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식사때가 되자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가시어, 탁발하실 적에 차례로 비시옵고 본처로 돌아오시어 식사를 마치신뒤, 의발을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2. 수보리의 질문-발심한 보살은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그 때 대중 가운데 수보리 장로가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며 합장하고, 공손히 부처님께 여쭤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보살들을 잘 호념하시며, 보살들에게 잘 부촉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이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냈다면 어떻게 머물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다 그렇다. 수보리여.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보살들을 잘 호념하며, 보살들에게 잘 부촉한다. 자세히 들으라 그대에게 설하리라. 선남자.선여인이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냈거던 이렇게 머물며 , 이렇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예 세존이시여”라고 하며 수보리는 즐거이 듣고자 하였다.
[3. 항복기심하는 다섯가지 행- 가치확립, 발원, 유념작선, 통찰, 공적]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이렇게 하여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하나니,
이른바 난생․ 태생․ 습생․ 화생과 형상있는것․ 형상없는것․ 생각있는것․ 생각없는것․ 생각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 아닌 온갖 중생들을 내가 모두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들도록 이끌겠다고 발원하라
그래서 한량없고 끝없는 중생을 한결같이 다 열반으로 이끌면서도/ 실제로는 열반으로 이끌림을 받는 중생은 아무도 없다고 통찰하라.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나다관념․너나관념․중생관념․영혼관념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4. 경계에 대한 관념을 비우고 능동적으로 원을 유념하며 작선하라]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어떠한 경계에도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해야 한다. 이른바 보이는 것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소리․냄새․맛.감촉․추상적인 것에도 머무르지 않고 보시해야 한다. /수보리여, 보살은 이와 같이 보시하되 어떠한 형태의 관념에도 머물지 않아야 한다.
만일 보살이 어떠한 형태의 관념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동쪽 허공을 생각으로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남서북방과 사유, 상하 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보살의 무주상보시 복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수보리여 보살은 반드시 가르친대로 머물러야 한다.”
[5. 보여진 모습 그 너머를 통찰하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몸 형상을 보고서 여래를 보았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몸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 형상은 곧 관념으로 몸 형상을 실체화하지만 몸 형상이라는 실체는 없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모든 것이 다 허공속의 흔적이다.
만일 그 형상에서 번개같은 흔적과 허공을 동시에 본다면
그것이 곧 ‘존재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6. 통찰을 바탕한 믿음의 힘은 일체관념에서 공적하게 한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와같은 말씀을 듣고 진실한 믿음을 내는 중생들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여래가 열반에 든 지 오백년 뒤에도 계를 받아 지니고 복을 닦는자가 있어서, 이와 같은 말씀에 능히 신심을 내어 이를 진실한 것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한부처님이나 두부처님이나. 서너다섯 부처님에게만 선근을 심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한량없는 천만 부처님께 온갖 선근을 심었으므로, 이 말씀을 듣는 즉시 한순간에 청정한 믿음을 낸다.
수보리여, 여래는 이 중생들은 이와 같이 한량없는 복덕의 얻음을 다 알고 다 본다. 왜냐 하면 이 중생들은 나다관념,너나관념,중생관념,영혼관념이 전혀 없으며 법이라는 관념도 없고 법아니라는 관념도 없기 때문이다.
어찌한 까닭인가? 이 중생들이 마음에 어떤 관념이라도 취한다면, 곧 나다에 집착하게 되며 ,너나에 집착 ,중생에 집착 ,영혼에 집착하게 된다. 또한 법이라는 관념을 취하더라도 곧 나다에 집착, 너나에 집착, 중생에 집착, 영혼에 집착하게 되며, 법아니라는 관념을 취하더라도 곧 나다에 집착, 너나에 집착 ,중생에 집착 ,영혼에 집착하게 되기 때문이다.
[6-2. 법이다 법아니다의 관념을 취하지 않아야 부처님의 제자다]
그러므로 법이라는 관념도 취하지 않아야 하고 법아니라는 관념도 취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뜻에서 여래가 항상 “너희 비구들은 나의 설법을 뗏목과 같은 줄 알아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법’도 당연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아닌 것’은 말할 것이 있겠는가
[7. 참된 수행자는 깨달음 대한 관념과 가르침에 대한 관념에서
공적하다.]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여래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었는가? 여래가 설법한 것이 있는가?“
수보리가 대답했다.
“제가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로는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이라 이름할 만한 ‘고정된 그 무엇’도 없습니다. 또한 여래께서 설법하신 ‘고정된 가르침’도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래가 설법하신 것은 다 취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법도 아니고, 법아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유를 말씀드리면, 일체 성현들은 다 인위조작이 없는 법을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한 차별이 있게 됩니다.
[8-1. 가장 높은 바른 깨달음은‘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
때문에 가능하다.]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얻는 복덕이 얼마나 많겠는가?”
“아주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곧 관념으로 복덕을 실체화하지만 복덕이라는 실체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래께서는 복덕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복덕이 많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사구게만이라도, 받아지니고 남을 위하여 설명해주면, 그 복덕이 앞에 말한 보시보다 수승하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일체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들의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의 가르침이 다 이 경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8-2 부처의 가르침에 실체가 없음을 통찰하라]
수보리여, 이른바 부처의 가르침이란 것도 곧 관념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고정화 하지만 고정된 부처의 가르침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다.“
[9. 과위에 대한 바른통찰로 과위관념에서 공적하기에 성스러운 수행자다]
“수보리여, 수다원이 능히 ‘내가 수다원과를 얻었다’하는 생각을 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은 성인의 경지에 들었음을 이름한 말이지만 실은 들어간 바가 없어서 형상이나 소리, 냄새, 맛, 감촉, 추상적인것에 들어가지 않기에 이름하여 수다원이라 하였을 따름입니다.”
“수보리여, 사다함이 능히 ‘내가 사다함과를 얻었다’ 하는 생각을 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사다함은 한 번 갔다 옴을 이름한 말이지만 실은 가고 온다는 생각이 없기에 이름하여 사다함이라 하였을 따름입니다.”
“수보리여, 아나함이 능히 ‘내가 아나함과를 얻었다’ 하는 생각을 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아나함은 오지 않음을 이름한 말이지만 실은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없기에 이름하여 아나함이라 하였을 따름입니다.”
“수보리여. 아라한이 능히 ‘내가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 하는 생각을 내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제로 아라한이라 할 만한 고정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이 ‘내가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라고 생각하면 이는 곧 나다에 집착이 생긴 것이고 ,너나에 집착 ,중생에 집착 ,영혼에 집착이 생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다툼이 없는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서 제일이라 말씀하셨으니, 이는 욕심을 떠난 아라한 중에 제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저는 ‘나는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나는 아라한의 경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 세존께서는 곧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겠지만, “수보리가 실로 아란나행을 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수보리는 아란나행을 즐기는 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1. 얻을 것이 없음을 통찰해 수기얻음에 대한 관념에서 공적하라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여래가 옛날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뭔가 얻은 것이 있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연등부처님 처소에서 진실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10-2 불국토 장엄을 통찰해 장엄관념에서 공적한 자가 진정한 보살이다.]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다고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관념으로 장엄을 고정화하지만 고정된 장엄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엄을 고정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장엄이라 할 뿐입니다.
[10-3. 청정한 마음을 낸다는 것은 공적한 상태에서 능동적으로 선업을 짓겠다는 것 ]
“그러므로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청정한 마음을 내야한다. 보이는 것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서도 안 되고, 소리. 냄새. 맛. 감촉. 추상적인 것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서도 안 되며,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10-4. 큰몸 없음을 통찰해 큰몸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비유컨데 만일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왕만 하다면,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그 몸을 크다고 하겠는가?“
“몹시 큽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실체로서 몸이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큰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1.‘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의 공덕은 한량이 없다]
“수보리여,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처럼 그렇게 많은 갠지스강이 있다면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그 모든 갠지스강들의 모래알이 많겠는가?”
“아주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강들의 수만 하여도 오히려 셀 수 없이 많겠거늘 하물며 그 모래알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읍니까!”
“수보리여, 내 이제 진실한 말로 그대에게 말한다.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저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수 만큼의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에 쓴다면 그 얻을 복이 많겠는가?” “몹시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내지 사구게 만이라도, 받아지녀서 남을 위하여 설명해주면, 그 복덕이 앞에 말한 복덕보다 수승하다.”
[12.‘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을 실천하는 곳이 불국토이다.]
“또한 수보리여. 이 경 또는 사구게 만이라도 설해지는 곳마다 어디든지 일체 세간의 천신, 인간, 아수라가 다 마땅히 부처님의 탑과 같이 공양한다는 것을 알라. 하물며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능히 수지독송함에 더 말할 나위 있겠는가. 수보리여 반드시 알라. 이 사람은 가장 높고 제일가는 희유한 법을 성취할 것이다. 만일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곧 부처님과 존경받는 제자가 있는 것과 같다.“
[13-1.‘통찰공적 유념작선’이 가르침이 진정한 반야바라밀이다.]
그 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을 마땅히 무엇이라 이름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은 금강반야바라밀이라 이름 하며, 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마땅히 받들어지녀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여, 여래가 말한 반야바라밀은 곧 관념으로 반야바라밀을 고정화하지만 고정된 반야바라밀이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반야바라밀을 고정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반야바라밀이라 할 뿐이다.
[13-2. 여래가 설한 법이 없음을 통찰하라 .]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여래가 설법한 것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법한 것이 없습니다.”
[13-3. 세계와 티끌의 실체없음을 통찰해 크고작음의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모든 티끌을 많다고 하겠는가?“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이 모든 티끌을 여래는 실체로서 티끌은 없다고 말하나니 다만 티끌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티끌이라 할 뿐이요, 여래가 말하는 세계 또한 그것이 실체로서 세계는 없다. 다만 세계를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세계라고 할 뿐이다.
[13-4. 신체적특징으로써 여래를 볼 수 없음을 통찰하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서른두가지 신체적특징으로 여래를 볼 수 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서른두가지 신체적특징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서른두가지 신체적특징은 곧 관념으로 신체적특징을 실체화하지만 신체적특징이라는 실체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체적특징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서른두가지 신체적특징이라 할 뿐입니다.”
[13-5. 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의 공덕은 수승하다.]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갠지스강의 모래 수와 같은 목숨을 바쳐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또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 사구게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남을 위하여 설명해주면, 그 복덕이 더 많다.”
[14-1.‘통찰공적 유념작선’이 가르침은 참됨에 대한 관념이 생겨나
게 한다]
이 때 수보리가 이 경 설하심을 듣고, 그 뜻을 깊이 이해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희유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몹시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제가 옛적으로부터 내려오면서 얻은 혜안으로는 일찍이 이와같은 가르침은 듣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음이 청정해지면 바로 참됨의 관념이 생겨나리니 이 사람은 마땅히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것임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참됨의 관념이라는 것은 곧 관념으로 참됨관념을 고정화하지만 고정된 참됨관념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까닭에 여래께서는 참됨관념을 고정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참됨관념이라 이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4-2. 일체관념을 비우고 고요한 자가 제불세존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기는 족히 어려울 것이 없으나, 미래 오백년 뒤에도 어떤 중생이 이 경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지닌다면, 이 사람은 제일로 희유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다관념도 없고, 너나관념도 없고 중생관념도 없고, 영혼관념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나다관념이 생겨나면 바로즉시 그 관념을 없애버리고, 너나관념. 중생관념. 영혼관념이 생겨나도 바로즉시 그 관념을 없애버리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하느냐 하면 일체 모든 관념을 다 여읜 이를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14-3.‘비우고 고요해짐’이것이 제불세존이 설하는 제일바라밀이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옳다 그렇다.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래지도 않고 겁내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희유한 사람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수보리여, 왜냐하면 여래가 말한 제일바라밀이란 곧 관념으로 제일 바라밀을 고정화하지만 고정된 제일바라밀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제일바라밀을 고정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제일바라밀이라 할 뿐이다.
[14-4. 관념을 비우고 고요해짐이 참다운 인욕바라밀이다.]
수보리여, 인욕바라밀도 여래는 고정된 인욕바라밀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여.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몸을 베이고 끊김을 당하여도, 나는 그때에 나다관념이 없었고, 너나관념도 없었고, 중생관념도 없었고, 영혼관념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마디마디 사지를 찢기고 끊길 그때에, 나에게 나다관념.너나관념.중생관념.영혼관념이 있었다면, 당연히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냈을 것이다.
또 과거 오백년 동안 인욕선인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니, 그 세상에도 나다관념이 없었고 너나관념도 없었고 중생관념도 없었고 영혼관념도 없었다.
[14-5. 관념을 비우고 고요한 마음으로 중생이익을 위해 유념작선하라.]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관념을 여의고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한다, 반드시 보이는 것에 머물지 않고서 마음을 내야하고, 소리,냄새,맛,감촉,추상적인 것에도 머물지 않고서 마음을 내야한다. 반드시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만일 이같이 머무르면 머무름 아님이 된다. 그러므로 여래가 말하기를, ‘보살은 보이는 것에 마음이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고 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보시한다. 여래가 말한 일체의 모든 관념도 곧 실체로서의 관념이 아니며, 일체 중생 또한 곧 실체로서의 중생이 아니다.
수보리여, 여래는 참된 말을 하는 이요, 진실한 말을 하는 이며, 있는 그대로 말하는 이요, 거짓된 말을 하지 않는 이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이다.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바 법인 이 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경계에 머문 마음으로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어둠속에 들어가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고, 보살이 어떤 경계에도 머물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햇빛이 밝게 비칠 적에 밝은 눈으로 온갖 물체를 보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장차 오는 세상에서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면, 곧 여래는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에 대하여 다 알며 이사람을 다 본다, 모두가 한량없는 공덕을 남김없이 성취하게 될 것이다.
[15-1.‘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을 듣고 비방하지 않고
믿기만 하여도 그 공덕은 아주 크다.]
수보리여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몸으로써 보시하고, 낮에 다시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며, 다시 저녁 때에도 또한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와 같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무량 백천억겁 동안을 몸으로써 보시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이 경의 말씀을 듣고 비방하지 않고 믿는다면, 그 복이 앞의 것보다 수승할진대, 하물며 이 경을 베껴쓰고 받아지니고 읽고외워서 남을 위하여 설명해 준다면 그 복은 얼마나 크겠는가! 수보리여, 한 마디로 말하면 이 경에는 생각할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고 끝이 없는 공덕이 있다.
[15-2.‘통찰공적 유념작선’이 가르침을 수용하는 자 진정한 대장부다]
여래가 대승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한 것이며, 최상승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한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능히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외워서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설명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을 모두 알고 있으며 이 사람을 모두 보고 있는데, 모두가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끝이 없으며 생각할 수 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곧 여래의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소승법을 즐기는 자라면 나다견해, 너나견해, 중생견해, 영혼견해에 집착하여 능히 이 경을 듣고 받아들이거나 읽고 외우지 못하며, 남을 위해 설명하여 주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15-3.‘통찰공적 유념작선’이 가르침이 있는 곳이 참다운 불국토다.]
수보리여. 어떤 곳이든 이 경이 있으면 일체 세간의 천신과 인간과 아수라 등이 반드시 공양을 한다. 이 경이 있는 곳은 곧 부처님의 탑이 있는 곳임을 마땅히 알라. 모두가 당연히 공경하고 예배하며 에워싸고 가지가지 꽃과 향을 그곳에 뿌릴 것이다.“
[16-1. 통찰공적 유념작선을 가르쳐 수모를 받더라도 그로인해 오히려 업
장을 벗고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또 수보리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설명하는데 오히려 남에게 경시와 천대를 받는다면, 이 사람은 지난 세상에 지은 죄업으로 악도(惡道)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생에 남의 경시와 천대를 받는 탓으로 전생의 죄업이 모두 소멸하고 반드시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16-2. ‘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을 신해하는 것이 수억의 부처
님을 시봉하는 것보다 수승하다]
수보리여, 내가 과거 무량아승지겁을 생각하니, 연등불을 뵈옵기 그 이전에도 팔백사천 나유타의 여러 부처님을 만나, 모두 다 공양하고 받들어 섬기어 헛되이 지냄이 없었다.
다시 또 어떤 사람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능히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는 공덕은, 내가 전에 모든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의 일도 미치지 못하며, 어떠한 산술적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한다.
[16-3.‘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을 들으면 하근 중생들은 마음이
산란하게 된다]
수보리여,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앞으로 오는 말세에,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워서 얻게 될 공덕을 자세히 말한다면, 어떤 사람은 듣고 곧 마음이 산란하여 의심하며 믿지 않을 것이다. 수보리여, 마땅히 알라. 이 경은 뜻도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과보 또한 헤아릴 수 없다.“
[17-1.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의 실체없음을 통찰해 자아관념에서 공적하
라.]
그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냈다면 마땅히 어떻게 머무르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을 냈거던 마땅히 이렇게 마음을 내야한다.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을 열반으로 이끌겠다’고 발원하라. 그래서 일체중생을 열반으로 이끌면서도 실제로는 열반으로 이끌림을 받는 중생은 아무도 없다고 통찰하라.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여, 만약 보살이 나다관념. 너나관념, 중생관념, 영혼관념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수보리여, 그것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에 나아가는 자라고 할 실체로서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17-2. 깨달음을 얻게할 법이 없음을 통찰해 법이라는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연등부처님 처소에 여래에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할 고정된 법이 있었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설하신 뜻을 이해하기로는, 연등부처님 처소에 여래에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할 고정된 법은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옳다 그렇다. 수보리여, 여래에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할 고정된 법은 진실로 없었다. 수보리여. 만약 여래에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할 고정된 법이 있었다면, 연등부처님께서 내게 , ‘그대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부처를 이루리라고 수기를 주시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게 할 고정된 법이 진실로 없었기 때문에 연등부처님께서 내게 그대는 내세에 반드시 석가모니라 이름하는 부처를 이루리라고 수기 하셨다.
[17-3. 여래의 진정한 의미]
어째서 그러한가? 여래라 함은 흔적을 품은 허공처럼 존재그대로 늘 그러하다는 의미하기 때문이다.
[17-4. 법이라는 관념을 비웠기에 일체법이 불법이다.]
만일 어떤 사람은 ‘여래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하지만 ,수보리여, 부처가 얻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는 실체로서 법은 진실로 없다.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 그 안에는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다.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이 모두다 불법이라고 말한다.
수보리야, 내가 말한 일체법이라는 것도 곧 관념으로 일체법을 실체화하지만 일체법이라는 실체는 없다. 다만 일체법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일체법이라 할 뿐이다.
수보리여, 비유하자면, 사람의 몸이 아주 큰 것과도 같다“
수보리가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신 사람의 몸이 아주 크다는 것도 실은 큰 몸이라는 실체가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큰몸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큰 몸이라 합니다.“
[17-5. 보살의 실체없음을 통찰해 보살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보살도 이와 같다. 만약 보살이 ‘내가 마땅히 무량 중생을 열반으로 이끌고 있다’ 고 지어서 말을 한다면, 이는 곧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다.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여, 보살이라 할 만한 실체로서의 존재가 진실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 법에는 나다라고 할 것도 없고, 너나, 중생, 영혼이라고 할 것도 없다‘고 말한다.
[17-6. 불국토 장엄의 관념을 가지면 진정한 보살이 아니다.]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하고 있다’고 지어서 말을 한다면, 이는 보살이라 이름할 수 없다. 어찌한 까닭인가? 여래가 말하는 불국토 장엄은 곧 관념으로 장엄을 고정화하지만 고정된 장엄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장엄을 고정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장엄이라 할 뿐이다.
[17-7. 존재하는 모든것에 실체없음를 확신하는자를 일러 보살이라 한다]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아와 법이 없음을 통달한 자면, 여래는 이 사람을 참된 보살이라 부른다
[18-1. 여래는 오안이 있다.]
수보리여, 여래가 육안(肉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육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여래가 천안(天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여래가 혜안(慧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혜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여래가 법안(法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법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여래가 불안(佛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불안이 있습니다.”
[18-2. 여래는 오안으로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지만
마음이라는 실체가 따로없음을 통찰한다]
“수보리여, 갠지스강에 있는 저 모래를 여래가 말한 적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그 모래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저 갠지스강에 있는 모래알 수 만큼 갠지스강들이 또 있어서, 이 모든 강들에 있는 모래알 수 만큼의 부처님 세계가 있다면 얼마나 많다고 생각하는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저 국토 가운데 있는 중생의 가지가지 마음을 여래가 다 안다. 어찌한 까닭인가? 여래가 말한 마음은 곧 관념으로 마음을 실체화하지만 마음이라는 실체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마음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마음이라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지나간 마음도 찾을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찾을 수 없으며, 미래의 마음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 복덕의 실체없음을 통찰해 복덕에 대한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면, 이 사람이 이 인연으로 얻는 복이 많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이 인연으로 아주 많은 복을 얻겠습니다.”
“수보리여, 만약 복덕이라고 하는 실체가 따로이 있다고 한다면 여래는 결코 복덕 얻음이 많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덕의 실체가 없는 까닭에 여래는 복덕 얻음이 많다고 말한 것이다”
[20-1. 색신구족의 실체없음을 통찰해 색신구족에 대한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색신이 원만하게 갖췄다고 해서 여래라고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색신이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해서 여래라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색신의 구족함은 곧 관념으로 색신의 구족함을 실체화하지만 색신의 구족함이라는 실체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색신의 구족함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색신의 구족함이라 할 뿐입니다.“
[20-2. 상호구족의 실체없음을 통찰해 상호구족에 대한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모든 상호가 원만하게 갖췄다고 해서 여래라 볼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상호가 원만하게 갖추었다고 해서 여래라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모든 상호의 구족함은 관념으로 상호의 구족함을 실체화하지만 상호의 구족함이라는 실체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상호의 구족함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모든 상호의 구족함이라 할 뿐입니다.
[21-1. 여래에 의해 설해진 법이 있다는 관념을 비워라]
“수보리여, 여래가 스스로 [‘나에 의해서 설해진 법이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이 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아니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에 의해서 설해진 법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는 곧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 되며, 내가 말한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설해진 법은 곧 관념으로 설해진 법이라고 실체화하지만 설해질 만한 실체로서의 법은 없다. 다만 설해진 법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설해진 법이라 할 뿐이다.“
[21-2. 통찰공적하고 유념작선하라는 법문을 듣고 믿음을 내는자는 이미
중생이 아니다.]
그때 혜명(慧命)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자못 어떤 중생이 미래세에 이 법이 설하여지는 것을 듣고 믿는 마음을 내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저들은 중생이 아니요, 중생이 아닌 것도 아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수보리여, ‘중생이 중생이다’라고 하지만 여래가 말한 중생은 곧 관념으로 중생을 실체화하지만 중생이라는 실체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용측면에서 이름해야하니 중생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중생이라 한다.
[22.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 할 어떤 것도 없음을 통찰하라]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쭤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얻으신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란 것은 얻은 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옳다 그렇다 수보리여, 내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음에 있어서 아주 작은 어떤 것도 얻음이 없다. 다만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 한다.
[23-1.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은 고정된 관념없이 선법을 닦음으로
이뤄진다.]
“또 수보리여,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다만 이를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이라 한다. 나다관념도 없고 너나관념도 없고 중생관념도 없고 영혼관념도 없이 일체 선법을 닦으면 곧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23-2. 고정된 선법이 없음을 통찰해 선법에 대한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이른바 선법이라는 것도 곧 관념으로 선법을 고정화하지만 고정된 선법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여래는 말한다 다만 선법을 고정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선법이라 할 뿐이다.
[24. 유위의 복덕은 ‘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과 비교할 수 없다.]
“수보리여, 만일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산들의 왕 수미산만큼의 칠보 무더기를 가지고 어떤 사람이 보시에 쓰더라도,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이나 내지 그 사구게 등을 받아지니고 읽고외워서 남을 위해 설명한다면, 앞의 복덕으로는 백분의 일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백천만억분의 일 내지 어떤 산술적 비유로도 능히 미치지 못한다.
[25. 여래가 해탈케 한 중생이 있다는 관념을 세운다면 그것은 집착일 뿐이다.]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그대는 여래가 ‘나는 마땅히 중생을 제도했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수보리여, 이같은 생각을 지어서는 안된다. 어찌한 까닭인가? 여래가 제도한 중생은 진실로 없기 때문이다. 만일 여래가 제도할 자로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여래가 나가 있고. 너나가 있고, 중생이 있고, 영혼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다.
수보리여, 여래가 말한 여래가 말한 ‘있는나’는 곧 관념으로 ‘있는나’를 실체화하지만 ‘있는나’라는 실체는 없다. 하지만, 범부들은 관념으로 ‘있는나’를 실체화해서 그 관념을 집착한다.
수보리여, 범부라고 했지만, 여래는 범부라는 실체가 따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작용측면에서 범부라고 이름한다고 말한다.
[26, 모양을 떠나 연기로써 여래를 보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서른두가지 신체적 특징으로써 여래라고 이미지화해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예 그렇습니다. 서른 두가지 신체적 특징으로써 여래라고 이미지화해 상상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보리여, 만일 그대 말대로 서른 두가지 신체적 특징으로 여래라고 이미지화해 상상할 수 있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고 해야 될 것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뜻을 헤아리면, 마땅히 서른 두가지 신체적 특징으로써 여래라고 이미지화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때에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만일 형상으로 나를 보려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으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니, 결단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27. 실체없음을 통찰하라고 해서 단멸을 말한다는 소견을 가지지 말라.]
“수보리여, 그대가 만일 ‘여래가 원만상을 갖추지 않더라도,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는 얻는다.’라고 생각한다면, 수보리여, 이와 같은 생각은 짓지 말라. ‘여래가 원만상을 갖추지 않더라도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는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수보리여, 그대가 만일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겠다고 마음을 낸 자는 모든 것의 단멸을 말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을 짓지 말라.
어찌한 까닭인가? 가장 높고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일으킨 자는 모든 것에서 단멸의 모습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8. 모든존재의 실체없음을 통찰해 인욕을 성취하는 것이 수승한 공덕]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만큼의 세계에 가득찬 칠보로써 보시한다고 하자, 또 어떤 사람이 있어 모든 존재가 무아임을 알아 인욕을 성취하게 되면, 이 보살은 앞의 보살이 얻은 공덕보다 수승하다.
어찌한 까닭인가? 수보리여, 모든 보살들은 복덕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 어찌하여 보살은 복덕을 받지 않습니까?”
“수보리여, 보살은 자기가 지은 공덕을 마땅히 탐내거나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덕을 받지 않는다고 말한다.
[29. 행주좌와라는 관념에서 공적해야 여래가 보인다]
“수보리여,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는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어찌한 까닭이냐?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것도 없으며, 어디론가 가는 것도 없다. 그래서 여래라 이름하는 것이다.”
[30-1. 티끌없음을 통찰해 티끌에 대한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선남자, 선여인이 삼천대천세계를 힘껏 뿌셔 티끌로 만든다면 그 티끌들이 많은가?”
“정말 많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어찌한 까닭인가 하면, 만일 이 티끌들이 진실로 있는 것이라면 부처님께서 티끌들이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티끌들이란 곧 관념으로 티끌을 실체화하지만 실체로서 티끌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티끌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이름하니 티끌들이라 할 뿐입니다.
[30-2. 삼천대천세계란 티끌이 한덩어리로 뭉쳐진 것이라는 관념을 세우지 말라.]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말씀하시는 삼천대천세계도 곧 관념으로 삼천대천세계를 실체화하지만 실체로서 따로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닙니다. 다만 세계를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세계라 부를 뿐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한덩어리로 뭉쳐진 것이겠지만, 여래께서는 한덩어리로 뭉쳐진 것조차도 곧 실체로서 한덩어리로 뭉쳐진 것이 따로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다만 한덩어리로 뭉쳐진 것을 실체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 한덩어리로 뭉쳐진 것이라 이름한다고 설하셨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여, 한덩어리로 뭉쳐진 것은 곧 이야기 할 수 없는 것인데도, 다만 범부인 사람들이 관념으로 한덩어리로 뭉쳐진 것을 실체화해서 탐착한다.”
[31-1. 견해의 실체없음을 통찰해 견해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그대생각은 어떠한가?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이 나다견해. 너나견해. 중생견해. 영혼견해에 대하여 설하셨다’고 한다면 수보리여, 이 사람은 내가 말한 뜻을 이해한 것인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이 사람은 여래께서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찌한 까닭인가 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나다견해, 너나견해. 중생견해. 영혼견해는 곧 나다견해, 너나견해. 중생견해. 영혼견해라는 고정된 뭐가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작용측면에서 나다견해, 너나견해. 중생견해. 영혼견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
[31-2. 일체존재를 이와같이 통찰해 존재에 대한 관념에서 공적하라]
“수보리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이루겠다고 마음을 낸자는 모든 존재에 대하여 마땅히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믿고, 이해해서 존재관념을 내지 않아야 한다.
수보리여, 존재관념이라는 것도 여래는 곧 관념으로 존재관념을 고정화하지만 고정된 존재관념이 따로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존재관념을 고정화하는 그 관념을 비우고 작용측면에서 존재관념이라 이름하는 것 뿐이다.“
[32-1. 통찰공적 유념작선 이 가르침의 공덕은 수승하다.]
“수보리여, 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 무량아승지세계에 가득한 칠보를 가지고 보시에 썼더라도, 만일 보살심을 일으킨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이 경 내지 그 사구게라도 받아지니며 읽고외워서 남을 위하여 설명해 준다면, 이 복이 앞에 말한 보시보다 수승하다”
[32-2.모든 행위의 시작은 통찰공적으로부터 ]
‘그렇다면 남을 위해 어떻게 설명해 줄 것인가?“
“ 설명해 준다는 관념을 취하지 말고, 동하지 않고 여여하게 설명하라”
“ 어찌한 까닭이냐?
일체 함이 있는 모든 법은
꿈과 환상, 물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또한 번개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니,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신, 인간과 아수라등이 부처님의 말씀하심을 듣고, 모두 크게 환희하여,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믿고, 받아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