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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토리텔링 작가회 원문보기 글쓴이: 작가
알 스토리텔링
(요한 3:1~15절)
1.알에서 태어난 사람(1~5절)
나는 알입니다.
오리 알, 타조 알, 거북 알과 같이 조류와 파충류가 낳은 것을 알이라 합니다.
겉과 속을 말할 때도 속을 알이라 하고 알차다 합니다.
나는 ‘알짜다.’ ‘쭉정이가 아니고 알짜다.’ 할 때 긍지를 느낍니다.
나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김해시 김수로 왕릉 안에 있습니다.
나는 농구공만한 여섯 개의 돌로 되어 있는데 6가야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내가 처음 만들어 졌을 때는 김해시에 있는 구지봉 가운데 세워졌습니다.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소문이 나서 구지봉에다 알을 상징하는 조형물로 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가락국기라는 옛 문헌의 기록을 잘 몰라서 생긴 일이었습니다.
한국 고대에는 박혁거세와 주몽과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과연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 난 사람일까요?
알에서 사람이 태어날 수 있습니까?
아니에요.
말도 되지 않는 말 좀 하지 마세요.
사람이 어떻게 알에서 태어납니까?
어머니 자궁 속의 난자를 알이라고 표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람이 조류의 알에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잘 못 기록 했거나 신화적 표현인가요?
잘못 기록한 것도 신화적으로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가락국기는 최선을 다하여 사실 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알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가락국기의 표현을 읽고 황당해하는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 드리기 위하여 알인 내가 당시의 되어 진 일을 직접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때가 서기42년 음력 3월 3일입니다.
지금 여러분과는 2천년의 시간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인 사도 도마(Thomas)가 인도를 거쳐 바다의 실크로드를 따라 땅 끝 나라인 한국 에 왔습니다.
김해의 아도간 집에서 예배시간에 다음과 같이 설교를 하였습니다.
‘사람에게는 동물과 다르게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이 거듭나서 구원 받고 천국가야 합니다.
영혼이 거듭나려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나니(요3:16)
예수님을 영접합시다.
영접 기도를 따라하세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회개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오셔서 주인이 되어 주시고 왕이 되어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예수 믿고 성령님을 마음에 영접하면 거듭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이 태어난 것이 알과 같다면 사람이 거듭난 것은 알에서 부화하여 새가 된 것과 같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사도 도마의 설교가 끝났습니다.
사도 도마는 어떻게 한국에 왔을까요?
사도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인도를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인도에서 한국까지 오는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도 쿠로시오 해류가 낙동강 하구인 김해와 연결되어 있어서 1년에 한 차례 이상씩 인도와 한국 간에 여객선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사도 도마는 같은 시대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정기 여객선을 타고 가다가 파선한 배에는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곡물도 싣고 다닌 큰 배였습니다.
김해는 국제 항구였습니다.
지금은 김해평야가 된 옛날 김해만은 바다였으며 군함으로 쓸 수 있는 배가 당시 500여척이나 되었습니다.
사도 도마는 예수님이 땅 끝까지 가라고 하신 명령을 명심하고 땅 끝 나라인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 도마는 이미 인도에서 군다포러스 왕의 왕궁을 지은 경력이 있었습니다.
사도 도마는 왕궁을 지을 수 있는 건축가였기 때문에 어디가나 환영을 받았습니다.
사도 도마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기도의 능력도 위력적이었습니다.
김해에 도착하여서도 김해지역 9명의 추장 가운데 제일 으뜸인 아도간 집에 큰 집을 지었습니다.
지금 내가 알 여섯 개의 돌 모양을 하고 있는 이 장소가 바로 아도간 집 그 장소입니다.
서양식으로 지은 큰 집을 구경하러 온 사람도 많았고 사도 도마를 보러 온 구경꾼도 있었습니다.
차츰 전도가 되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예배 모임이 생겼습니다.
사도 도마의 복음 전하는 방법은 상징적인 물건을 보여주는 방법이었습니다.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가 질문한 것과 꼭 같은 질문이 어느 곳에서나 있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다니요?
두 번 태어난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다 자란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 갔다가 나온단 말입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때 사도 도마는 알을 보여주며 설명합니다.
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난다는 설명을 할 때에도 물을 보여 주며 설명 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3월 3일 날 예배의 광고 시간에 새로 온 사람을 소개하였습니다.
북방 기마민족에서 온 한 무리의 사람들 가운데서 한 청년이 나왔습니다.
키가 2m 정도 되는 서양인 얼굴을 한 청년이었습니다. 스키타이 왕자였습니다.
중국의 소호 김천씨가 모여 사는 마을에 있다가 왔습니다.
한국 말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 날 그 청년은 세례(침례)를 받고 오후에 왕이 될 것을 선포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침례)받는 곳을 온탕이라 하였으며 아직 이른 봄이어서 따뜻한 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그 때는 세례(침례)를 한자어로 계욕(稧浴)이라 하였습니다.
그 스키타이 청년과 5명은 물로 세례(침례)를 받았습니다.
오후 시간에 구지봉에서 ‘모이세요 모이세요.’ 라고 여러 사람이 소리 질러 부르면 모두 모여 달라고 광고하였습니다.
당시는 시계도 없었고 방송시설도 없었습니다.
오후 시간에 구지봉에서 여러 사람이 큰 소리로 불러서 김해지역 9명의 추장과 2~3백 명이 모였습니다.
9명의 추장을 구간(九干)이라 하였습니다.
스키타이 청년은 몸을 가마 안에 숨기고 통역이 말하였습니다.
‘거기 계시는 분들은 누구입니까?’
구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구간들과 이 지역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가마 안에서 말하고 통역이 질문하였습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구간들이 대답하기를 ‘구지봉입니다.’
드디어 스키타이 청년은 왕이 될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통역이 스키타이 청년의 말을 받아서 선포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나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이곳에 내려가 나라를 새로이 정하고 임금이 되라.’ 하였습니다.
스키타이 청년은 하나님께서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스키타이 청년은 왕자이었는데 한반도에 나라를 세우려 왔을 때 고구려, 신라, 백제가 이미 건국 되어 있었고 남은 땅은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의 땅이었습니다.
가야라는 나라는 12일 후인 음력 3월 15일 부활절 날 세우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구간과 주민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스키타이 청년은 이어서 한 가지 부탁을 하였습니다.
역시 통역이 말하였습니다.
‘구지봉에 교회 예배당을 신축하면서 찬송가를 부르십시오.
찬송가는 영대왕가(迎大王歌)로 대왕을 맞이하는 노래입니다.
찬송가를 부르면서 이제 한 바탕 뛰어 놀아 보세요.’하였습니다.
구하소서 구하소서 구원하여 주소서.
머리되신 성령이여 나타 나시옵소서.
만약에 주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적군에게 태워지고 포로 되어 갑니다.(1)
지옥 불에 태워지고 마귀 밥이 됩니다.(2)
(龜何 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구간과 주민들이 열심히 찬송가를 부를 때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신 것처럼 은혜가 넘쳐 났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의 모습이 한국의 구지봉에서도 나타났습니다.
모두 기뻐서 팔짝 팔짝 뛰면서 춤추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때 큰 나무 밑으로 붉은 끈에 매달린 붉은 보자기가 내려왔습니다.
당시는 원시림이라서 나무의 높이가 매우 높았습니다.
공중에서 밑에까지 드리워지자 끈을 풀고 붉은 보자기를 펼쳤습니다.
금 상자가 나왔습니다.
금 상자를 열자 해처럼 동그란 농구공만한 황금 알 여섯 개가 나왔습니다.
황금은 곧 돈이었습니다.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모두들 처음 보는 큰 황금 알을 보고 놀라며 기뻐하였습니다.
스키타이 청년이 엄청난 재산을 가져온 왕자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키타이 청년은 무엇 때문에 황금 알을 주민들에게 보여 주었을까요?
거듭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상징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상징성이 있었습니다.
구간과 주민은 인사를 나누고 폐회하였습니다.
황금 알 6개는 아도간의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밤은 고요하였고 밤의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여러 사람이 아도간 집에 다시 모였습니다.
이때 황금 알 6개는 모두 6명의 사람으로 변하였다고 가락국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의 오해가 많아서 알인 내가 해명하겠습니다.
황금 알에서 사람이 나올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될 수는 없습니다.
황금 알은 황금 알일 뿐입니다.
스키타이 왕자가 가져와서 나라를 세울 자금으로 내 놓은 것입니다.
가락국기를 기록한 사람은 스키타이 청년을 보지 못하여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6명의 청년은 모두 중국 소호 김천씨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라 한국말을 못하고 얼굴도 서양인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에게 나타나지 않고 가마 안에 있었던 것입니다.
어제 3월 3일 세례 받고 왕이 될 것을 선포한 사람입니다.
하루 지나고 어떻게 사람이 황금 알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나요?
가락국기에서 알에서 나왔다고 말하는 것은 스키타이 청년들이 모두 거듭 났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절 날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려고 부활절 계란을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듭 났다는 것을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 상징적 표현을 한 것입니다.
가락국기의 내용을 자세히 묵상하여 보면 그 청년들이 영적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얼굴이 어린 아이처럼 심히 거룩하였다.’하였는데 이 가락국기의 표현은 예수님이 거듭남을 말씀 하실 때와 같은 말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3)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말이나 얼굴에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함이 드러납니다.
스키타이 청년 중 첫 번째로 거듭난 은혜가 나타난 사람을 수로(首露)라 하였습니다.
금(金)수로였는데 김수로왕이 되었습니다.
수로왕은 이전의 이름은 모두 버리고 세례명을 이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렇게 거듭난 것을 알로 표현한데 따른 오해가 있어서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났다고 소문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오해가 있어도 김수로왕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스키타이의 기마민족은 하나님을 ‘알’이라고 불렀습니다.
김수로왕이 알에서 태어났다 하는 말은 김수로왕이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는 말로도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오해는 대왕을 맞이하는 영대왕가 입니다.
가사를 기록한 사람이 오해의 소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한자로 기록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기록한 사람이 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정도도 한문 글로 잘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려 놓은 것 같습니다.
대왕을 맞이하는 노래가 구지가로 되었습니다.
한자로 적다보니 글자 수가 줄었습니다.
모두 17자입니다.
가사를 기록한 것을 주민들에게 전하였습니다.
당시 주민은 7만 5천명이었습니다.
영대왕가 한자 가사를 보고 어린이들은 구지가 동요로 불렀습니다.
(龜何 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 밀어라.
만약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
어린이들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거북이가 목을 움츠려 들이고 있을 때 아이들이 부르는 천진 난만한 동요입니다.
영대왕가 가사를 보고 어른들은 위협을 느꼈습니다.
(龜何 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아 거북아
거북이 같이 느리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목을 집어 넣고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무능한 너희들아!
목을 내밀어라. 칼로 목을 자르는 것은 내 손 안에 있다.
만약 목을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라도 먹을 수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처럼 겁부터 먹었습니다.
영대왕가를 협박조의 노래로 받아들였습니다.
같은 한자 표현인데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영대왕가를 성령을 마음에 모셔 들이는 영접 기도와 같은 거룩한 찬송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영대왕가를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구지가 동요로 받아들였습니다.
영대왕가를 협박 받는 노래로 받아들였습니다.
해석이나 받아들이는 것이 다양 하였습니다.
나와 다른 해석을 잘못 된 해석으로 판단 할 수는 없습니다.
2.알아서 부는 바람(6~8절)
알속에서 생명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알속에 있는 아기 새는 외부의 세상을 모릅니다.
그러나 알 속에서 어미 새의 소리를 듣기는 합니다.
알 속에 있는 기러기에게 사람이 특정 소리를 들려 주어서 진짜 어머니로 착각 하게 하고 알을 깨고 나온 새들의 어머니 노릇하며 그 새를 데리고 비행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새에게 알과 새의 상태가 있다면 사람에게는 육과 영의 상태가 있습니다.
사람은 알 속에 있는 새와 같이 육을 가지고 태어나서 살아 갑니다.
육으로 나서 육으로 죽는 사람은 알속의 새와 같습니다.
알속의 새와 같이 그 이상을 모릅니다.
육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의 넓은 세계를 모릅니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하나님의 나라를 알 수 없습니다.
거듭난 사람만이 영의 세계를 알 수 있습니다.
알속에 있는 새는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거듭 난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또 거듭나는 것을 무슨 놀라운 기적처럼 생각합니다.
거듭나는 것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있는 기적이 아닙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거듭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는 것처럼 사람도 육으로 태어났다가 영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연한 것입니다.
알들이 어떻게 거듭나나요?
겨울철에 가만히 있던 알들이 봄바람이 불어오면 알을 깨고 나와서 나비가 됩니다.
육으로 있던 사람도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봄바람과 성령의 바람은 따뜻한 바람입니다.
나비가 되어 봄바람을 타고 날아보지 못한 알이나 애벌레가 어찌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까?
거듭나서 넓은 세계로 가는 것은 자신이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찾아옵니다.
봄바람은 때가 되면 알아서 찾아옵니다.
신약성경의 헬라어에서는 성령을 푸뉴마라 하고 바람도 푸뉴마라 합니다.
성령과 바람은 같은 단어이며 하는 일이나 모습도 비슷합니다.
바람과 성령은 눈으로 볼 수 없는 투명체이지만 실체가 있어서 느낄 수는 있습니다.
바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바람이 부는 것을 압니다.
또한 뺨에와 닿는 바람을 느낌으로 압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 울리는 바람 소리를 듣습니다.
성령님도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 죄를 드러내어 회개시키기도 하고 마음 문을 열고 영접하게도 합니다.
성령님은 각가지 은사를 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게도 하십니다.
성령님은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은근하게도 오시지만 불처럼 화끈하게도 역사하십니다.
이는 마치 전기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전기를 체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기장판, 전기 불, 전기밥솥, 컴퓨터, 스마트 폰의 충전등 전기의 용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하고 많습니다.
그렇다고 성령님을 전기처럼 내가 마음대로 끌어 쓸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의 바람은 스스로 알아서 불어 줍니다.
임의대로 불기 때문에 능동적이요 성령님이 주도하십니다.
알아서 불어 주시는 성령님의 바람은 고마운 바람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이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한국 고대 기독교 시대에는 기독교의 모습을 성령님께서 알아서 도와주시는 바람으로 적절하게 표현하였습니다.
바람 풍(風) 흐를 류(流)자를 써서 풍류라 하였습니다.
헬라어에서 푸뉴마가 바람과 성령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푸뉴를 풍류로 음역 하였습니다.
풍류도는 한국의 고대기독교입니다.
삼국사기 진흥왕 조에 풍류도에 대한 글이 나옵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풍류도의 내용은 하나님을 섬기는 천신도(天神道)입니다. 풍류도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천인합일(天人合一)입니다.
이 내용을 성경 말씀으로 대신하여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 풍류도를 가장 잘 믿은 사람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이었습니다.
김유신은 15살 때 화랑이 되었으며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화랑도는 기독교의 풍류도의 신앙을 가졌습니다.
김유신은 삼국통일을 위하여 기도 하였습니다.
김유신은 여동생을 김춘추에게 시집 보냈습니다.
김춘추와 그의 아들 법민은 신라의 왕이 되었습니다.
김유신의 기독교적 신앙은 당나라 황실에까지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김춘추는 왕이 되기 전 서기 648년 당나라에 들렸다가 당태종 황제로부터 신구약 성경책을 받아왔습니다.
당태종은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을까요?
당태종 황제는 현무문에서 형과 동생을 죽이고 왕이 되었습니다.
당태종의 가문은 도교 집안인데 어머니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당태종은 죄의식에서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당태종 이세민은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서기 635년 기독교인 경교(景敎)가 장안에 들어왔습니다. 당태종은 자신이 지은 무거운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복음을 경교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당태종은 주님을 영접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미국의 링컨대통령 만큼이나 믿음이 좋았습니다.
당태종은 신구약 성경을 번역하여 보급하였고 이후 200년 동안 당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되게 하였습니다.
당태종은 무력을 쓰는 무사 출신이었지만 변하여 ‘정관의 치’라는 세계 최고의 문치(文治)를 펼쳤습니다.
당나라 시대에 중국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기 때문에 중국 베이징 올림픽의 목표도 성당시대(盛唐時代) 즉 당나라의 찬란한 문화를 다시 꽃 피우자는 것이었습니다.
김수로왕 때 시작된 가야의 기독교는 가야 후손인 김유신 에게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당나라의 기독교는 가야의 후손인 김유신의 풍류도와 연합하여 나당 연합군을 결성하였습니다.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이기고 한반도를 통일하였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삼국통일의 주역이었습니다.
삼국의 통일은 기독교적인 바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신라가 통일하였지만 통일의 주역은 가야 기독교 후예였습니다.
경산시에는 김유신 장군 화랑 훈련장이 남아 있습니다.
3.알고집이(9~15절)
알고집이가 되기 바랍니다.
한국 사람의 학부모는 학교 다녀온 자녀에게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니’라고 질문합니다.
산만한 학생은 배우지도 못하고 집에 돌아옵니다.
유대인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질문했니’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질문을 통하여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알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천재가 많습니다.
유대인들의 천재교육을 쉐마라고 하는데 쉐마 천재교육에서는 질문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질문을 많이 하는 사람을 한국 사람들은 ‘알고집이’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인가 알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니고데모는 알고집이였습니다.
예수님께 거듭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계속 질문합니다.
실제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니고데모는 알 속의 새와 같습니다.
알 바깥세상 일을 말하면 할수록 더욱 궁금해집니다.
밤에 찾아와서 밤 깊도록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이 나는 본 것을 말하고 지금 체험하고 있는 넓은 세상을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하여도 믿지 못하고 계속 질문합니다.
육에 갇힌 니고데모는 믿지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귀로 들어서 이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답답하여 땅에 있는 일들을 비유로 삼아 쉽게 설명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해 주어도 니고데모는 믿지 못합니다.
한번만 경험하면 다 알 것을 말로 들어서는 수없이 들어도 알기 힘듭니다.
천국의 일은 지식이나 학벌로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고급 관리로 뛰어난 학문과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천국의 체험에 관한 일은 알 속에서 세상일을 듣는 수준입니다.
특히 영적인 세계는 체험 없이는 알 수 없는 신비한 세계입니다.
알고집이인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계속해서 대답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니고데모가 구약성경을 잘 알고 있으니 복음을 구약성경 으로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
언제 때의 내용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다가 모세를 따라 홍해를 지나 광야에 나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시대 이야기입니다.
홍해가 갈라진 감격도 얼마가지 않아서 식어졌습니다.
광야에 나오니 먹는 것도 마실 물도 시원치 않았습니다.
먼 길을 돌아 가야하는 것도 싫어졌습니다.
모두들 모세에 대한 원망이 생겼습니다.
원망은 전염성이 강한 영적 바이러스입니다.
모세를 죽이겠다고 하는 사람도 생기고 다시 이집트로 돌 아 가자는 불평 섞인 말이 나왔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그냥 두었다가는 믿음이 바닥날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독이 바짝 오른 불 뱀을 보내어 불평하는 사람들이 물리기만 하면 죽도록 하였습니다.
불 뱀에 물려 즉사하는 사람도 있고 죽어가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이렇게 되자 불평하던 사람들이 모세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여 살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치료의 방법을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냥 살려 주지 않으시고 구리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리 뱀이 달린 장대 위를 쳐다보는 사람만 살게 하였습니다.
믿음이 없어 쳐다보지 않으면 죽습니다.
한번만 힐끗 쳐다봐도 살 수 있으나 목이 곧고 교만한 사람은 그냥 죽습니다.
구리 뱀은 장차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 된 인간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구리 뱀이 되셨습니다.
뱀은 옛 뱀이며 사탄이라고 하는 마귀입니다.
구리 뱀은 죄로 저주 받을 인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저주를 다 담당하셨습니다.
마귀의 종노릇한 인간이 달려 죽어야 할 십자가에 예수님이 대신 달려 죽으셨습니다.
죄와 저주로 지옥 갈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영생을 얻어 천국 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을 때 마귀의 자식이 영생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생은 사람의 육체가 죽어서 영혼이 천국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 땅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면서 사는 거룩한 생활입니다.
장대에 달린 구리 뱀처럼 되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 얻는 것은 마귀에 대한 예수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하와)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마귀)도 여자의 후손(예수)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예수)은 네(마귀)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은 마귀를 이기신 것이며 구약시대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남자의 후손이지만 예수님만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신 여인의 후손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담과 하와가 뱀에 속아서 죄인 된 인류를 십자가에서 저주 받고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갚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복음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천국가십시오.
대한민국은 복 받은 나라입니다.
어디 가나 교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 받은 자를 통하여 역사를 이끌고 가십니다.
한국의 역사에는 옛 뱀인 마귀와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마귀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우리 한국 역사 한 토막을 소개하겠습니다.
사도 도마가 복음을 들고 한반도에 들어와서 가야국이 기독교 국가로 세워지게 할 때 한반도는 이미 고구려, 신라, 백제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런 분열을 틈타서 마귀는 한반도에서 분열과 거역이 일어나게 하였습니다.
서기 400년에는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마귀는 한반도를 전쟁터로 만들었습니다.
가야국은 연맹국가였기 때문에 군대를 모으기 힘들었습니다.
가야국은 5백여년 동안 기독교 국가로 내려왔기 때문에 전쟁에 약했습니다.
마지막 구형왕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죽었습니다.
전쟁을 택하지 않고 자신의 희생을 택하였습니다.
자신의 왕비와 왕자 세 명을 신라에 편입 시키고 자신은 지리산 깊은 곳에서 죽었습니다.
자신의 무덤을 스키타이식 돌무덤으로 만들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스키타이 왕자로 와서 가야국을 건국한 김수로왕을 생각한 것입니다.
구형왕이 가야가 신라에 송두리째 먹히도록 한 장면을 비유하면 약 두꺼비가 큰 뱀에게 자진하여 먹힌 것과 같습니다.
약 두꺼비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약을 가지고 있지만 두꺼비를 먹거나 공격하는 적에게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약 두꺼비는 자신이 한 알의 밀알처럼 죽어서 자식을 살립니다.
약 두꺼비가 알을 낳을 때쯤에는 큰 뱀 앞에 가서 먹힙니다.
먹히는 것이 전략입니다.
큰 뱀은 약 두꺼비의 독에 죽게 되고 약 두꺼비의 알은 죽은 뱀의 몸체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한 마리의 어미 약 두꺼비는 죽었지만 30배, 60배, 100배의 숫자로 불어납니다.
가야의 마지막 구형왕은 뱀에 먹힌 약 두꺼비였습니다.
가야의 기독교는 신라에 흡수 되었습니다.
가야의 마지막 구형왕의 아들인 김무력은 손자 김유신을 신라의 장군이 되게 하였습니다.
가야 왕실로 내려온 기독교 신앙이 김유신에게 이어졌습니다.
김유신은 기독교인 풍류도를 따라 성령 받은 화랑이었습니다.
풍류도의 화랑이 한반도의 옛 뱀을 죽였습니다.
약 두꺼비를 먹은 뱀은 약 두꺼비의 약이 독이 되어 죽었습니다.
신라, 고구려, 백제를 휘감고 있던 분열과 전쟁을 일으킨 옛 뱀이 죽으면서 삼국이 통일되었습니다.
마침내 한반도는 통일 국가가 되었습니다.
가야와 신라 시대에 있었던 한국 고대기독교를 지금 21세기에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시대에는 유교, 불교, 선교의 유불선이 한국에 있었습니다.
이중 선교에서 고대 기독교의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중국의 도교는 한국에서 선교라 하였는데 도교 안에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서기 635년 중국에 들어온 기독교를 경교라 하였습니다.
성경이 한자로 번역될 때 도교 색채의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도교가 기독교를 포함하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당태종 황제도 도교를 믿고 있다가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는 기독교인 경교가 있었고 신라에서 당나라에 유학 갔다가 오는 사람은 기독교를 받아서 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불교 유교와 혼합되었습니다.
불교에 유교와 기독교가 포함 되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지나오면서 선교 즉 기독교는 토속 종교로 변질 되었습니다.
현재의 한국 선교는 21세기 우리의 기독교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변질 된 옛 기독교 흔적인 선교를 현대의 기독교가 받아 들이지 않기를 권합니다.
한국 고대에 기독교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안 받아 들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박물관에만 두고 보는 것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 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한국 고대 기독교 역사를 연구하고 발굴하는 일은 열심히 하여야 합니다.
한국 고대 기독교가 쇠퇴하고 변질 되었던 잘못을 거울 삼아 현재 우리의 기독교가 후대까지 변질 되거나 쇠퇴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이 연구를 할 때는 복음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는 성경말씀과 소통하게 하는 성령님과 함께 하여야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구에는 끊임 없이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그 바람처럼 성령님의 바람도 끊임 없이 알아서 불고 있습니다.
글쓴이: 스토리텔링 작가 조국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