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에 태어남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하나님의 치밀하고도 섬세한 계획에 의한 것이다. 심지어 육신의 부모는 혹 나를 갖기 원치 않았을 수도 있고, 원하지 않은 임신이 된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마저도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그의 계획으로 품고 계신 것이다. 이사야에 'I am your Creator. You were in my care even before you were born.'이라는 말씀 뿐만 아니라 여러 구절에 그것을 보여 주신다. 이렇듯 우리 한 생명, 생명이 하나님의 각별한 관심과 계획 안에서 이 세상에 등장한 존재이다. 그러니 귀하디 귀하다. 세속에서 살다보면 스스로를 모멸함으로 이끄는 유혹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무시 당하고 경홀히 여겨지는 경우가 흔하다. 하나님의 뜻과 관심 속에서 우리의 태어남이 계획되었다면 그러한 존재를 결코 모멸하거나 경히 여길 수는 없다.
어제는 '정인이의 죽음'으로 충격에 사로잡힌 하루였다. 더 이상 입으로, 언어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일이 벌어졌다. 명망이 있는 크리스천 대학을 나온 양부모에 의해서 수 개월간 상상하기조차 싫은 참혹한 폭행을 당했고 죽임을 당했다. 16개월 된 영아가 그렇게 당했다. 죽기 하루 전, 맥없이 앉아 있는 모습, 어린이 집 선생님에 안겨 겨우 우유 한 모금 먹는 모습이 담긴 CCTV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트라우마를 겪게 할 정도의 고통을 겪게 했다. 그 비극적인 소식을 접하던 시각에 아내가 유투브에서 크리스천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멘트만을 모은 동영상을 큰소리로 틀어 놓아 듣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높이 평가하고 감동할 장면이지만 그때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입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만 삶에서 실현은 커녕, 비상식적이고 공의를 역행하는 이들이 많이 드러난다는 생각이 장악하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언어가 하늘을 날으는 깃털처럼 너무 가볍게 여겨져 몸서리가 쳐졌다. 입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한다면, 그것에 얼마나 큰 책임이 따라야 하는 것인지 새롭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하심이라면, 우리 존재는 매우 귀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새 계명과 결을 같이 한다. 하지만 그 귀한 나와 타인을 위해 필요한 감수성이 너무 결핍하다. 역지사지의 긍휼함이 메말라 있다.
순전하게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랐다면 지식과 능력 등 어떤 조건과 관계 없이 하나님의 뜻에 다가갔을 터인데, 우리에겐 무언가 불손함이 있었던 듯하다. 경로를 이탈했기 때문이다. 겉으론 영적으로 풍성한 절제된 성도로 생활하지만 내재된 죄, 욕심 등 이 하나님과 나와의 사귐, 관계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 같다. 개인의 죄와 종교지도자의 그릇된 인도가 버무려져 우리는 가야할 길을 한참 벗어나 있는 듯하다. 우연히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닌 의미와 목적을 가진 존재임을 깊이 깨닫게 된다면 거기에 합당한 궤도로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