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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개벽신문 40호(2015년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두 눈으로 보았다고 다 본 것이 아니고
두 귀로 들었다고 다 들은 것이 아니다"
박용운| 명상활동가
동학이 제 삶에 들어온 것은 대학 때였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였죠. 그 때는 4·19나 5·18 기념집회를 어떤 형식으로든 했습니다. 일, 이학년 때는 불과 몇십 명이서 스크럼 짜고 대학 한 바퀴를 도는 게 전부였어요. 전단지만 살포해도 잡혀갈 정도로 감시가 심했으니까요. 스크럼 짜고 돌았던 고 몇십분 밖에 안 되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여지없이 학교 앞 술집으로 갔습니다. 독재정권을 향해 갖은 욕을 다해가면서 술을 부어라 마셔라 했습니다. 그러다 얼큰해지면 누군가 발동을 겁니다. 공주 ‘우금치’ 가자고(지금은 ‘우금티’라고 하지요). 제가 있는 대전에서 공주까지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당시, 꽤 먼 거리였습니다. 거리도 거리려니와 교통비가 없으니 못 가는 거지요. 주머니 톡톡 털어도 술값도 안 나오는 판국에 거기 갈 돈이 어디 있겠어요? 가고는 싶어도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으니 그냥 코만 빼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우금티를 들락날락 합니다. 열두 번도 더 갔다 옵니다. 잠시 그러고 있다 보면 누군가 술잔을 기울이자고 합니다. 그런데 고 막간 말예요, 열두 번도 더 갔다 온 시간말예요. 제가 무슨 생각 한 줄 알아요? 우금티는 우리의 이상향이다, 오아시스다, 하늘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우리 동료들도 그랬습니다. 비록 우금타는 동학혁명 당시 죽음, 실패의 고개였으나 제가 민주화 운동을 하던 1982년에는 우리 모두가 가야만 하고, 가고 싶어 하는 파라다이스였던 것입니다. 반상 제도라는 불평등한 질서를 허물고 만민이 평등한 태초의 우주 질서를 회복하려 했던 것, 그것이 바로 동학 아니었습니까? 또한 독재정권을 허물고 민주정권을 수립하려 했던 것, 즉 ‘의’를 높이 들어 올리려 했던 것, 그것이 바로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민주화 운동의 뿌리를 동학혁명에서 찾았습니다. 그래서 집회를 전후해 우금티를 가고 싶었던 겁니다. 뿌리를 찾아서. 설령 가지 못해도 애석해 하지 않았습니다. 술자리나 우금티나 다 같은 자리이니 설령 우금티 못가더라도 끝까지 코 빼고 있지 않아도 되었던 겁니다. 동학은 그렇게 저의 청년기와 함께 있었습니다.
약속 지키기를 생명보다 소중하게 여겨
저희 집은 어렸을 때 장사를 했어요. 근대화 연쇄점이라고 지금으로 말하면 마트였습니다. 많은 돈이 오갔습니다. 은행이라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을 때였으니까 사람들은 급전이 필요하면 저희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물건이 필요한데 당장 돈이 없으면 외상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나면 엄마 아빠는 항상 장부를 들여다보셨지요. 두꺼운 외상장부가 부모님의 재산 목록 일호였습니다. 그들은 주무시기 전에 주판알을 튕기거나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씨가 또 약속을 안 지키는구먼. 외상 값 갚겠다는 기한을 넘겼어. 몹쓸 사람이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시고 나면 엄마가 말씀하십니다.
“저 최 씨 아줌마도 마찬가지예요. 다시는 돈 꾸어주지 말아요.”
저는 이부자리 속에서 잠자리를 뒤척이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몹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제게 약이 되기도 했지만 독이 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약속을 지키는 것을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독이 되기도 했던 것은 사람을 내 식대로 판단하는 습(習)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 습은 가시덩굴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어떤 행위를 하면 항상 나만의 판단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판단을 진리인 것마냥 여겼습니다. 그리고는 세월이 흘러 나이 사십이 가까워졌을 때 저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접했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 철따라 부는 바람, 밤낮으로 뜨고 지는 해와 달, 별 모두 하늘님 아님이 없다. 시천주(侍天主)하라.’
해월 선생 말씀입니다. 이때 별안간 벼락이 내리치는 경험을 했습니다. 염원이란 게 비로소 생기더군요. 이 말씀대로 살아야지.
눈으로 보았다고 다 본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가수 임재범 씨가 ‘여러분’이라는 노래로 주가를 한창 올렸을 때입니다. 그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 출연을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뭔가 내부에서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가수 윤도현 씨가 그 상황에 대해서 한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잘 생각나지 않는데 여하튼 내용은 대략 이런 말이었습니다.
“두 눈으로 보았다고 다 본 것이 아니고, 두 귀로 들었다고 다 들은 것이 아니다.”
전 그 순간 그가 꽤 괜찮은 가수라고 생각했죠. 상황의 종결자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제가 유명인이 아니니까 제가 이 글에서 그를 언급했다고 해서 그의 음반이 더 팔리거나 그의 가치가 더 올라가는 것은 아니겠으나, 여하튼 그렇습니다(진중권 씨가 영화 <국제시장>을 언급하는 바람에 관객이 엄청 늘었다고 하더군요.).
‘가수 윤도현은 우리 안에 있는 하늘님을 볼 줄 아는 사람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과 함께 이야기를 하거나 일을 할 때, 두 눈으로 두 귀로 그의 모든 것을 보거나 들을 수는 없습니다. 놓치기도 하고, 못 보기도 합니다. 때로는 무지막지한 오해도 합니다. 저는 가능하면 제가 보는 것, 듣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새깁니다. 성공률은 십 퍼센트도 안 됩니다. 그러나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을 알고는 있습니다. 우리 모두 안에 있는 그 신성, 즉 ‘귀한 하늘님’에 집중하는 순간 성공률이 높아집니다. 0.1도 안 되는 시력으로, 중이염으로 인해 다친 비정상 고막을 가진 청력으로 보거나 들어 봐야 정상 판단이 아닐 것은 분명합니다. 오욕으로 색칠된 판단을 통해 상대방을 규정하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조용히 맘속으로 이렇게 되뇝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늘님 아닌 것이 없다.”
거울을 보는 것은 하늘님을 보는 일
명상 강의를 나가서 참석자들에게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귀한 천사입니다. 거울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귀한 하늘님과 대화를 해보세요.”
그러면 참석자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 안에 있는 귀한 하늘님을 만나게 됩니다. 동학혁명 때 태안 접주 중에 문장로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 며느리 중에 최장수라는 분이십니다. 그녀는 동학혁명 때 일본군에게 총살당한 문구석(문장로의 아드님) 도인의 부인이십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 자그마한 체구이신데도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분입니다. 이분은 평생 청수 잔을 들고 다니셨답니다. 언제 어디를 가든 청수 잔을 지니고 다니시면서 자신의 귀한 하늘님을 보았던 겁니다. 호주머니 안에 자신의 하늘님을 비추는 청수 잔이 있으니 함부로 말을 뱉거나 행동하실 수가 없으셨을 겁니다. 그러다 보니 얼마나 많은 수련을 하셨을는지요. 남자분들이야 그렇다 치고 오늘날 여성분들은 거의 거울을 지니고 다닙니다. 스마트폰에도 거울 앱이 깔려 있을 정도니까요. 저는 거울과 청수 잔을 같은 용도로 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청수 잔에 들어있는 물이나 거울이나 비추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을 비추나 몸을 비추나 마찬가지입니다. 맘과 몸은 하나입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은 내안의 귀한 하늘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호흡하는 것을 재미있어 합니다. 호흡은 제 안과 밖의 하늘님이 교류하는 시간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어디서나 숨을 쉽니다. 어찌 보면 이 방법이 나와 다른 이의 하늘님을 빛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호를 하면서 ‘내 숨(하늘님)이 빛이 되어 우주의 모든 생명체를 맑고 온화하게 비추기’를 바랍니다. 흡을 하면서 ‘우주 안의 맑고 찬란한 숨들(하늘님들)이 나의 하늘님을 비춘다.’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떠한 일로 누군가와 언쟁을 하면서 거칠어질 때 숨 한번 고요히 쉬다 보면 위기의 순간은 지나가기가 쉽습니다. 거친 내 자신입니다만 호흡만으로 위기의 순간을 극복할 때가 있습니다.
을미년입니다.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아니 한 단계 넘어서서 ‘귀하고 귀한 존재로 믿고 모시고 경외’하는 시간으로 채웠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야말로 성·경·신으로 너와 나 안에 있는 하늘님을 드러내는 경험들을 많이 했으면 합니다. 모든 존재는 너무 파래서 파란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가을 하늘처럼, 너무 맑고 귀해서 바라만 봐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그런 존재라고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나 경기도 의정부 화재 참사나 모두가 불가피했던 것이 아니라 인재(人災)라고 합니다. 참 가슴 터지도록 안타깝습니다. 올 한 해 모든 생명체가 귀한 존재로 대접 받기를 염원합니다.
이미지 박용운 님은... 대전 <충남 빛뜰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과 함께 명상하고, 떄론 명상 강연을 위해 각지로 길을 나서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