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모든 의료현장에 침뜸 활용 가능하게 할 것
근래 들어 세계 각국에서는 침구술에 대해 현대 의학의 다양한 검증 과정을 거쳐 그 효능을 입증하고, 진료에 적극 활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 현대의학계도 침구술에 진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과거 의사들은 침구를 전근대적인 유물로 간주하여 의료현장에서 배제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의사들은 침구의 효용성을 인정하고 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다. 침구를 배워서 활용하는 의사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한의사와 의사 사이에도 침구술을 둘러싼 고소와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사는 전통의술에 접근하는 것이 원천 봉쇄되어 있다. 현행 의료법 제27조 ①항에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의학을 전공한 의사에게 침구는 면허 이외의 의료 행위가 되어 침구술이 아무리 효과적인 치료법이라도 의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의술에 경계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 경계는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순전히 의료인들의 영역 다툼의 산물일 뿐이다.
21세기 한국에서 침구학이 현대적으로 계승되려면 현대적 의료와 전통적 의료 사이에 가로놓인 분단의 장벽도 걷어내야 한다. 한의사들이 현대적 의술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현대 의학을 전공한 의사들도 침구를 배우고 익혀 의료 현장에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침뜸의 역사를 살펴보면 침구가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한방의료행위에만 속한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된다.
우선 우리나라의 침구술은 폄석으로 주로 종기를 치료하는데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전통은 임언국의 치종비방에서 허임의 『침구경험방』 창종부분으로 이어진다. 종기가 많았던 조선에서 치종을 잘 하는 의원이 명의가 되었다. 치종은 침구인이 하는 행위에 속했다. 전통적으로 허임이 종기를 치료한 기록을 보면 종기를 째고 넓적다리에서 피고름이 거의 3∼4사발이나 뽑아내는 시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위는 현대 외과적 의료현장에서 하는 수술행위에 속한다.
『침구경험방』에서 종기에 대한 치료법을 보면 오늘날 현대의료의 외과에서 행해질 수밖에 없는 행위를 침의(鍼醫) 허임이 시술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폐옹(肺癰, 폐부에 발생하는 癰瘍) …<중략>… 즉시 날이 선 대침(大鍼)으로 아픈 가장자리를 찔러서 터뜨리는데 젖가슴 옆 겨드랑이 아래에서 앞쪽으로 갈비뼈 사이를 향해 찔러서 고름이 나오게 한 후 즉시 비벼 꼬은 종이를 끼워 넣고 꽂았다가 빼기를 날마다 행해서 구멍이 막히지 않게 한다. …<중략>…
음부의 종기 혹은 엉덩이의 종기[陰腫或臋腫] …<중략>… 모름지기 위험해지기 전에 침으로 수법을 사용해서 날이 선 대침으로 먼저 피부를 찌르고 점점 깊이 꽂아서 곪은 곳에 이르러 침봉이 쉽게 들어가 허공에 빠진 듯 하면 이미 곪은 데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 다음에 곧 침봉을 들어서 찢어 터뜨리고 침을 빼서 고름이 나오게 한다. 곪는 것이 이미 멈추었거든 즉시 비벼꼬은 종이를 침구멍에 집어넣어서 구멍이 막히지 않게 하고 날마다 빼었다가 꽂았다가 하여 진물이 나오게 한다. …<중략>…
이상 몇 가지 예에서도 보듯이 생사를 다투는 현장에서 침의(鍼醫) 허임이 한 행위는 오늘날 암과 같은 악성 종양을 수술하는 외과의사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침뜸을 한방에 속한다고 하고 현대의학의 접근을 봉쇄한다면 결코 허임 침구학의 현대적 계승은 어려워 보인다. 의사가 전통의학에 대한 이해를 높여 침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한의사도 현대의학과 현대적 의료장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적극적으로 결합해 의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은 『침구경험방』 발문에서 “세상이 공유하여 널리 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로 그 뜻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하다.
현대적 의료현장에서 의사가 침구를 활용할 수 없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서구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는 침구를 동양요법이라고 의사시험과목에 넣어 놓고 필수적으로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다. 중국에도 침구 전공 중의사와 중의 전공 중의사, 중서 결합의사, 서의사, 조리 의사(보조의사) 등으로 나누고 있지만 어느 경우든 침구 시술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 출산을 도와주는 조산원들까지도 침술을 이용하여 난산을 돕는다. 북한에서도 고려의사 신의사로 전공을 나누지만 모두 침구를 배워 의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의사와 한의사 사이에 업권을 둘러싸고 첨예한 집단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양한방 통합에 대한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통합과 개방의 시대에 전통의학과 현대의학 간에 쳐놓은 의료분야의 분단장벽은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부각될 의술은 침술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침술은 이미 미국이나 유럽에서 현대의학으로 검증된 의술이기 때문이다.
*** 사단법인 허임기념사업회(www.heoim.net) 대표이사 손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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