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성공회 서대구교회 이형호 이사야가 친구 '요한'의 수첩을 건네받아 1990년 12월 23일 성공회 서대구교회 회보에 실은 글입니다. 지금도 똑같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우리들의 청손년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젊은 날의 방황과 고민은 우스워 보일만큼 치열하고 진지합니다.
지금 성공회 서대구교회는 청소년 쉼터 '하우스필그림(순례자의집)'을 통해 지금의 청소년들과 신앙, 학교, 가정, 친구, 사랑, 직장 등 다양한 삶의 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청소년의 그때 고민이 지금 청소년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것 같아 방황일기(어느 청년의 수첩에서) 글을 나눕니다.
글이 조금 투박하고, 마음 속이 정돈되지 않은듯 합니다.
고민과 방황이 처음에는 우스워도 보였지만 그것도 날것의 청춘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함께 나눕니다.
첫째날, 대구에서 마산으로 막연히 떠나다.
하느님의 의중을 모르겠다.
부제님께도 어머니께도 용서를 빌며.
또 다른 나를 보고 어려움을 맛보리라.
'우선은 반점에 취직을 하자.'
둘째날, 비가 뭉텅 뭉텅 내린다.
오갈데 없는 모습으로 서있다.
객이라 고독을 곱씹고 있는듯하다.
양덕 중앙시장, 낯선 곳, 아무래도 낮선 곳, 객이 머물기엔 너무 낮선 곳이다.
삶의 모습은 어디에서나 같은 것.
지하 어물시장의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삶,
혼자 매몰되는 듯한 짙은 그리움 그리움.
커피 한잔의 진한 향기.
삶의 깊이와 여유를 나누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일자리를 구하려 발걸음을 재촉하다.
일자리 일자리를 찾자. 무면허, 무자격증, 무무무. 그래서 무취직이다.
지나는 발걸음 속에 속옷으로 스며드는 소나기가 삭막하고 애처로운 모습을 더 처량하게 한다.
유공자동차 서비스센터 급 충전원 구함, 세차장, 전기, 견습공 00명 구합니다.
이렇듯 삶에는 반드시 돈벌이가 필요한가 보다.
직업훈련소를 기웃거리다.
사람들의 티격태격하는 모습.
한 숙녀가 매서운 여러사람에게 에워사여 있다.
그들은 돈을 헤아리다만 때묻은 손으로 그 일에 길들여진 익숙한 모습을 하며 그녀에게 묻는다.
곧 소박한 누이같은 모습은 취직으로 눈이 먼 사람이 되었고, 주위는 음흉한 눈길을 보내는것 같다.
수천 수만리 그리움이 넘쳐 머나먼 다리를 놓아 집으로 돌아가고프다.
'어서 오십시오.'라는 회관의 등불 아래 문구가 지나치는 사람을 당기는 듯 하다.
두 사람의 젊디 젊은 종업원에게 심중 가득히 '일을 했으면 합니다.'라는 말이 입안 가득히 맴돌고 있다.
어머니 가슴에 사무치는 회한보다 눈물지을 당신의 모습이 더 아련하게 다가온다.
이렇께 떠나왔지만 보고픔에 눈물 지운다.
반점에 들어서, 취직을 거절당하다.
고아이고, 고아원에서 수녀님 밑에서 자랐노라고 한때나마 다니던 이름을 빌어 신자였노라고.
위에서 아래로 몸은 튼튼한지 경험을 묻는 모습에서 구역질이 돋는다.
이런 나의 저주받을 몸짓을 외면하고 싶다.
'사람이 있으니 조카집에서. 아니 아니 가세요. 잘 방이 없으니. 신분증이 없으면 안돼요.'
꽉막힌 두 개의 방에서는 이리저리 나뒹구는 걸레들이 어수선하다.
문득 들어선 방, 삶을 나누기에는 너무나 메마른 말이 오가는 그 자리 그 모습에 끼어들기엔 난 혼자였다.
아주머니가 아기를 달래는 모습에서, 견딜수 없이 어머니가 그립고 설움이 복받쳐 온다.
대수롭잖게 여기는 그네들의 왜소하고 서투른 모습에서 떠남의 글을 적어 두었다.
저 밑바닥으로 나뒹굴면 진정한 삶이 있으리라던 옛날 생각은 지금 내 한부분을 파먹는 흡혈귀리라.
세째날, 새벽의 스산함을 맞으며 길을 재촉하다.
밤새워 고민하던 계획은 현실로 다시금 돌아와 너무나 먼 거리임을 절실히 느낀다.
가벼운 짐을 챙겨 미안함 반 시원함 반으로 문을 연다.
창원, 진해를 향해서 떠나다.
눈에 익은 모습, 그리도 많은 시선과 마음이 닿던 곳이다.
매번 같은 생각을 했고, 반복과 반복이 낳은 곳인지 눈에 익숙하다.
하지만 휭하니 지나치기에 내딛는 발자국에 두려움이 묻어나는 듯. 내 발은 무겁기만 무겁기만하다.
길은 사람에게 무심히 다가오는 듯 하지만 나같은 객에게는 더없는 외로움의 인생항로 같기도 하다.
주저 않기엔 너무나 튼튼한 다리를 지녔고, 되돌아 가자니 떠나온 거리에서 다시 거둔다는게 모순인것 같다.
이미 엎질러진 도피 생활은 멈추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고 되돌아갈 수 없다.
미카엘 신부님을 뵈러 발걸음을 부산으로 돌린다.
하루 이틀 신발이 마를때까지 사람을 피해 있던 축 처진 어깨를 잠시 달래본다.
저 멀리 바닷가 항구 마을이라던가, 관광마을이라던가.
표지에는 낮설은 시선만이 오간다.
대천동. 대천동.
어디에도 시선이 멈춰지지 않는다.
우체국 직원에게 대천동을 묻기 위해 서성이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눈을 씻어봐도 그곳에는 필름가게 알로에 가게뿐이다.
그리도 많은 까치를 보며 서글픈 하루를 달래보려했건만 그것조차도 하느님께는 욕심으로 보였나보다.
-중략-
돌이킬 수 없는 발걸음이다.
하지만 빈털털이 빈객으로 역전에 서 있다.
1,650원 아니 2,040원. 어쩔 도리가 없는듯하다.
헌책 생각, 문득 길을 걷다 생각이 났다.
헌책 '뉴에이스' 2,500원의 가치가 이렇게 커다란 가치가 있을줄은 몰랐다.
또다시 거리를 배회한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힘겹고, 집에서의 변명이 어떨지 더욱 마음을 짓눌러 온다.
너무나 너무나 형용하지 못할 전율의 떨림이 가슴 밑바닥까지 닿을듯하다.
배가 고프다.
진해역에서.
하느님은 계시겠지.
모든 것을 잊으려했는데, 지난 시간이 더 또렷하게 골속골속이 스며든다.
이틀을 지났건만 이렇게 기나긴 여정을 밟아 온듯한 느낌은 힘겨움과 땀으로 얼룩진 진한 내음만으로도 알수 있을것 같다.
떠나기를 '돈이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모두를 대하리라.' 했건만.
모든 사람은 직업을 통해 자기 나름의 생활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배운다.
삶의 한 부분이며 살아있다는 확인이기도 하다.
천직이라 믿는 곳에 행복과 만족이 깃들어 있다면 더욱 더 걸맞는 조화를 이루리라.
직업 속에서의 만남을 소중하게 일구어 나가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도피를 통한 해답은 없구나.
낮선 곳, 외진 곳, 어느 곳에서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제 각각의 삶을 쫒아 하나같이 소중히 일궈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현실의 도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낮선 곳이 차가운 기운만 스며드는 곳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중략-
덩그러니 밤이 다가온다.
정적을 이따금씩 깨는 사람들의 애기가 오간다.
오는 곳 하나 낮설지 않은 곳이 없지만, 다시 오고싶은 마음은 소중한 경험이 담겨 있어서이다.
여기도 똑같은 사람들이고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어감이 참 좋다.
경상도 대구 사내보다 더 투박한듯 하기는 하다.
하나 둘 사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는 곧 사라져간다.
그 뒤를 따라 귀뚜라미가 가락에 맞추어 노래하는 듯도 하다.
스산한 진해역 앞이다.
위의 글은 나의 친구이자, 재수생이라는 멍에를 메고 있는 '요한'의 수첩에서 그대로 옮겨 적은 글이다. 평소에 보아왔던 그의 고민하고 사색하는 모습이 재수라는 비정상적인 사회적 위치 속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그가 무작정 떠나 겪은 2박 3일간의 짧은 경험은 그의 생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느껴지는 소외감으로부터 결코 추하지만은 않은 현실에 접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으로 그의 방황과 사색은 끝이 아니라 발전적인 방향으로 계속되리라 믿는다. 그가 수첩을 건네주면서 다음의 글을 전해주었다. -이형호 이사야-
'부끄럽다. 단 한순간의 나락된 젊음을 뵈주기에.
깨달음을 보기엔 너무나 얕은 수양과 고통이었다고 여기며,
시간을 두고 정리하기엔 너무나 어설픈 객기로밖엔 뵈지 않으니
이해 바람밖에는 없다.'
수첩에서 이외에도 짤막한 글을 몇 소개하며 다시 한번 청년기의 방황과 고뇌와 깨달음을 느껴본다. -이형호 이사야-
'술이 곧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자유를 내갈기에 한다.
세월의 흙으로 덮여질...
잊고져 밤에 바보가 되어야만 하고...
잊자.'
'하늘가엔 수십만의 별이 존재하듯이
여기에 수십만 갈래로 찢어지는 방황의 나락이 있고'
'별들이 존재하는 영원성에 못 이겨
한줌의 흙으로 채워질 육신의 허무함을 견뎌내기에
일백 여덟가지의 아쉬움만 남는다.'
'진정한 시작은 삶의 절망에서 찾으란다.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을 하고, 여인의 걸친 몇몇 옷가지를 들쳐내기에...
삶의 자연스런 모습으로 때론 썩어가는
육신의 배움으로 던진 한 부분을 감지한다.
요한과 이사야가 젊음과 고뇌를 함께 나누며 -이형호 이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