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씨(국새제작단장 민홍규 씨)가 왔을 때 아버진 거동도 잘 못했는데…"
이상헌 기자
민 씨(국새제작단장 민홍규 씨)가 왔을 때 아버진 거동도 잘 못했는데…
초대 국새를 제작했던 석불 정기호의 아들인 목전각예술가 목불 정민조. 부산일보DB
민 씨(국새제작단장 민홍규 씨)가 왔을 때 아버진 거동도 잘 못했는데…
초대 국새를 제작했던 석불 정기호의 아들인 목전각예술가 목불 정민조. 부산일보DB
'4대 국새' 제작단장인 민홍규(56) 씨는 1일 경찰에 출두해 "국새 제작 전통기술이 없다"라고 실토했다. 그는 초대 국새 제작자로 알려진 석불 정기호(1899~1989) 선생의 수제자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석불 선생의 아들인 목불 정민조(67) 씨는 "그가 아버지의 제자라는 말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딱 잘라 말했다. 울산에서 '고죽산방'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정민조 씨의 말을 들어봤다.
-민홍규 씨가 석불 정기호 선생의 제자라고 하는데?
△민 씨가 열한 살부터 20년을 배웠다고 소설을 써놨지만, 내가 아버지 작업장에서 처음 본 건 서른 살이 넘었을 때였어. 그때 한 번 왔다 가고 손꼽더라도 서너 번밖에 보지 못했다. 내가 없을 때 왔다갔다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실제 따지면 민홍규는 우리 아버지의 한참 손자뻘이라. 민 씨가 왔을 때는 아버지가 거동도 잘 못할 때인데.
'석불' 고 정기호의 아들 '목불' 정민조 씨 강력 반박
민 씨 1일 "국새 제작 전통기술 없다" 경찰서 실토
-민 씨가 옥새전각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옥새를 판 사람에게서 수학을 하면 그 맥을 이어 받는 건 사실이다. 그런 식으로 할 것 같으면 우리 집을 거쳐간 수십 명의 사람들이 다 옥새전각장이란 말이 된다.
-민 씨에게 옥새동학장이란 수료증을 발급해줬다는데?
△예술가 집에서 수료증이 나간다는 게 온당치 않다. 학교도 아니고 말이다. 아버지 말년에 민 씨가 아버지에게 배웠노라는 글을 살짝 받아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 집에서 배워 나간 사람들은 죄다 수료증을 받아야 할 판이다.
-목불이란 이름을 쓴 건 나무만 다뤄라는 뜻이라고 민 씨가 주장했는데?
△민 씨가 형님(목불 정민조)은 나무에 파고 자기는 쇠에 파는 것만 배웠다고 하더라. 그런데 아버지가 한집에 있으면서 너는 이것만 하고 나는 이것만 하라고 했겠나.
-세불이란 이름도 석불 선생이 지어줬다는데?
△자기(민홍규)가 그리 지어가지고 우리 아버지한테 세불이라고 글을 써 달라고 했던 거다. 그래서 석불 선생이 지어준 거라고 소문을 낸 거지.
부산 금정구 구서동에서 '우헌 전서각 연구실'을 운영하는 우헌 김남국(54) 씨는 석불 선생을 말년에 5~6년간 모셨던 제자이다. 그는 "작고하실 때까지 석불 선생님을 모셨는데 그 5~6년간 민홍규라는 이름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직계 아들과 손자가 있는데 어떻게 건너 뛰어 다른 사람이 수제자가 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며칠 동안 민홍규 씨와 몇 차례 전화 혹은 메시지를 통해 접촉을 시도했지만 결국 그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 씨는 "열대여섯 살에 집안 할아버지 소개로 석불 선생을 만났고, 정민조 씨는 석불 선생의 장자이지만 기술 전승은 내가 받았다. 석불 선생이 아들에게 목불이란 호를 지어준 것은 나무만 다뤄라는 뜻이었고, 나한테는 쇠를 다뤄라고 해서 호를 쇠불(한자로는 世佛로 바꿈)로 지어주셨다"라고 했다. 이상헌 기자 ttong@
'4대 국새' 제작단장인 민홍규(56) 씨는 1일 경찰에 출두해 "국새 제작 전통기술이 없다"라고 실토했다. 그는 초대 국새 제작자로 알려진 석불 정기호(1899~1989) 선생의 수제자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석불 선생의 아들인 목불 정민조(67) 씨는 "그가 아버지의 제자라는 말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딱 잘라 말했다. 울산에서 '고죽산방'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정민조 씨의 말을 들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