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정씨(延日鄭氏)와 영일정씨(迎日鄭氏)는 같다.
시조의 태어난 고향을 관향(貫鄕) 또는 본관(本貫)이라고 하며, 본관은 호적(戶籍)에 의해 계승 되는데,
우리 정씨의 본관인 연일과 영일의 지명이 수차 변경 되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시대의 명칭은 근오지현(斤烏支縣)또는 오량우현(烏浪友縣) 이다 신라 경덕왕 때는 임정현(臨汀縣)으로 불렀다.
* 고려 초기에는 연일현이라 칭 하였다.(고려사지리지)
*조선시대 고종33년 1895년 윤 5월1일에는 연일현을 영일군으로 명칭을 고치고, 이때 고종황제는 전국을 23부로
나누고 동래부 관활에 영일군을 두고 영일군수를 두었다.
* 1896년 8월4일 23부를 폐지 하고 전국을 13도로 나누고 경상북도 관할에 연일군의 이름으로 군을 두었다
* 1913년 12월 29일에(대정2년 일제시대)는 연일군, 홍해군, 청하군,장기군의 4개군을 합병하여 영일군으로 고쳤다
*19943월 법률 제 4774호로 영일군과 포항시를 통합하여 1995년 1월1일부터 포항시로 시행되고 있다
*상기와 같이 지역명칭이 수시로 변경되어 고려조와 조선조에는 연일과 영일이 혼용 되었다
조선시대 국조방목-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명단에도 본관이 연일과 영일로 혼재 되어 있다. 부자지간 또는 형제지간에도
각각 연일과 영일로 기재 있는 사례가 있다.
*현대 호적은(행정적 가족관계) 조선조 말 순종 3년에 (1909년) 민적법을 제정하고 1922년 조선호적령을 본격적으로
반포 실시함에 따라 호적을 다시 편재 하게 되는데, 고려조와 조선조에 연일과 영일을 동일시하며 혼용 했기 때문에
본관을 연일이나 영일로 제 각기 기재 하였다고 사료 된다
또 6.25사변으로 남하한 동종도 가호적 편재당시 본관을 연일 또는 영일로 신고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연일과 영일은 병존하고 있으며 오종(吾宗)의 단결을 위하여 모든 계파가 영일(迎日)로 단일화 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영일정씨 포은공파 종약원 사무실을 경유하여 법원에 제출 판결 받아 정리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