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역사, 부조리한 사회, 부조리한 인간을 노래하다.
소설을 읽기 전에
<부조리를 향해 쏴라>는 세계의 부조리와 체제의 부조리를 인정하고, 인간 삶의 의미 없음, 인간 열정의 덧없음을 받아들이고, 삶의 부조리와 죽음에로의 부조리가 역사를 끌어간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부조리한 삶이 없음은 곧 부조리한 사회가 없음을 의미하고, 부조리한 사회가 없음은 곧 부조리한 역사가 없음을 의미한다.
위와 같이 부조리함이 없다는 것은 곧 인간의 삶이 없음을 의미하고, 인간의 삶이 없음은 곧 인간의 역사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삶과 인간의 역사는 부조리라는 토대 위에서 태동하고 성장하고 명멸해 간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은 어느 순간부터 부조리한 삶에 대항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거부하고, 부조리한 역사에 반기를 든다.
세계 역사상 국가 원수가 내란(쿠테타)을 일으켜 독재정권을 유지한 사례는 적지 않다. 그 대표적 사례가 1799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일으킨 친위 쿠테타이다. 두 번째가 1972년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이 일으킨 내란이다. 세 번째가 1973년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일으킨 군부 쿠테타이다. 친위 쿠테타를 일으킨 이들은 권력을 공고히 하고, 독재정권을 강화하고, 집권을 연장시키는 데 성공한다.
네 번째 사례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자 군사 강국이면서 민주화의 첨단에 서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 21세기에 접어든 현금에 대한민국 대통령은 왜 친위 쿠테타를 일으켰고, 그것을 성공시키지 못한 채, 스스로 파멸의 늪으로 빠져들었는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치 않다. 친위 쿠테타를 일으킨 대통령의 사고체계와 감정을 부조리라는 토대 위에 놓고 분석해 보면 조금은 해석이 가능해진다.
부조리라는 것은 무엇인가? 부조리는 어떻게 해서 생겨나는가? 부조리라는 감정을 느낄 때는 어떤 순간인가? 세상이 불합리하고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부조리의 첫 번째 핵심 항목이다. 두 번째 항목은, 삶의 의미와 생의 목적을 찾으려는 노력과 세상이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고 혼돈스러운 상태 사이의 갈등이다.
세 번째 항목은, 어떤 위치에 있는 인간이든,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지만, 세상은 그 의미를 제공하지 않아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이다. 네 번째 항목은, 인간은 무언가를 열심히 창조하면서 의미를 추구하지만, 사회와 체제, 역사와 세계는 그 의미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이에 충돌 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안에 빠진다.
위의 세 번째 항목과 네 번째 항목이 대통령의 감정에 불안을 끌어들이고, 결국 자신 스스로 부조리한 인간이 되었다. 부조리한 인간이 된 대통령은 더욱더 부조리해지고, 더욱더 부조리해지다가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해 간다. 부조리에 빠진 인간은 종국적으로 부조리한 사회와 체제와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상실한다. 건전한 눈을 상실한 인간은, 자신이 부조리한 사회의 일방적 피해자가 되었다고 착각하게 되고, 결국 무모한 행동을 벌이게 된다.
<부조리를 향해 쏴라>의 주인공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그에게는 큰 이상도 없고, 강력한 포부도 없고, 삶에 대한 치열한 의지도 없다. 그런 주인공에게 부조리한 역사와 시대와 이념은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과 아픔과 고통을 안겨 준다. 그러나 주인공은 한국사회에 몰아닥친 크고 작은 사건과 충돌하면서 시대를 역류해 간다.
태초에 인간은 짐승을 피해 동굴로 숨어들었고, 동굴을 나와 초원으로 진출했다. 그 후 인간은 집단을 이루어 살았고, 결국 첨단화되고 과학화된 도시를 만들었다. 문명화된 도시에서 인간은 점점 더 부조리해지고 더욱더 부조리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주인공은 부조리한 사회에 동화되면서 점차 탐욕스런 인간으로 변해 간다.
주인공은 이기화 되고 물욕화 된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다음 깨닫는다. 즉 주인공은 부조리화된 첨단사회와 문명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자신이 가야할 곳이 어디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이 돌아가야 할 안식처, 즉 동굴은 그 어디에도 없다. 도시사회는 부조리로 가득 차 있고, 부조리는 도시사회를 숙주 삼아 더욱 부조리해진다.
괴물화한 부조리로부터의 탈출은 부조리로부터 도망치는 길밖에 없다. 결국 주인공은 부조리를 피해 다니다가 어느 순간 부조리 속으로 과감히 뛰어든다. 그러나 부조리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잔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부조리에 대항하는 자에게 가해지는 절망과 파멸이다. 주인공은 죽음이 눈앞에 닥친 다음 비로소 안식처인 동굴을 찾아낸다.
안식처로 여겼던 동굴은 놀랍게도 부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부조리의 모습을 한 동굴은 자기 자신이고 자아이고 내면이고 정체성이다. 주인공은 그 순간 깨닫는다. 희망과 행복, 절망과 슬픔 모두 부조리의 이중적 모습이고, 또 다른 자신의 내면이라고. 결국 주인공은 부조리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없다고 느끼고, 희망의 모습을 하고 있는 부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경 력
본명은 최인호(崔仁鎬)다. 경기도 여주시 명성황후탄강구리에서 태어났다. 199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비어 있는 방』 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등단 4년 후인 2002년 1억원고료 국제문학상에 장편소설 『문명 그 화려한 역설/ 원제, 에덴동산엔 사과나무가 없다』 가 당선되어 단편 및 장편소설의 역량을 모두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2002년∼2003년간 부산 국제신문에 『에덴동산엔 사과나무가 없다』를 연재했으며, 2006년∼2007년간 인천일보에 『누가 블루버드를 죽였나』를 연재해 소설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20살에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연인들』,『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 『백치』,『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 본격적인 문학수업에 들어갔다. 이때 카뮈, 카프카, 사르트르, 니체, 키에르케고르 등 실존주의 작가들에 깊이 심취했다. 이후 20대 후반까지 신춘문예에 매년 응모해 낙방을 거듭했으며, 삶의 체험과 경험 없이는 제대로 된 소설을 쓰기가 어렵다고 판단, 경찰에 투신했다.
1982∼1996년간 인천지방경찰청에서 근무했으며, 파출소장과 형사반장을 역임했다. 경찰 재직 중 6편의 시나리오를 썼으며, 중, 단편소설 10여 편을 써서 지역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이후 전문적으로 소설을 쓰기 위해 14년간 근무한 경찰에 사표를 냈고, 총 10편의 장편소설과 30여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장편소설 중 대표작은 『문명 그 화려한 역설』, 『도피와 회귀』, 『악마는 이렇게 말했다』, 『늑대의 사과』, 『신에겐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부조리를 향해 쏴라』 등이고, 단편집으로는 『돌고래의 신화』가 있다.
단편소설 중 「비어 있는 방」, 「안개 속에서 춤을 추다」, 「뒤로 가는 버스」, 「킬리만자로 카페」, 「장미와 칼날」, 「변증법적함수성」, 「그들 그리고」, 「캐멀비치로 가자」, 「화이트 크리스마스」, 「돌고래의 신화」 등을 문예지에 발표했다.
2020년 도서출판 글여울(대표 최효언, 딸)을 설립했으며, 그 직전인 2008∼2019년간 종로에서 <최인 소설교실> 개강 및 운영해 후학을 배출하는 한편, 미흡하던 소설적 역량을 키웠다. 2021년 이후 1년에 1편 이상의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총 7편의 소설을 출간했다. 현재 미발표 장편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으며, 인간의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 및 죽음에 대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장편 『죽음의 색깔』을 집필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