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천지인그룹 안지선 회장 |
글로벌시대의 큰손 국제금융 대부역할 한다. 천지인그룹 “16개국 네트워크시스템으로 국제사업 추진”한다. (天)을 설계하고 (地)를 개발하며 (人)을 사랑하는 천지인그룹,
천지인그룹 안지선(53)회장은 국제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사업을 추진하며 16개 국가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본사는 한국 소공동에 위치한다. 안 회장은 “지구상 모든 사업은 금융관계와는 분리 될 수 없는 경제논리를 가진다”따라서“국제금융 파이낸스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며 사업계획이 어려운 기업을 다女じ?지원해주면 몹시 고마워한다. 그럴 때 마다 보람이 느껴지며 한국 기업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는 현실을 확인하는 순간들이라고 한다.
안 회장은 지난해 6월 14일 남과 북, 해외 한민족 동포들이 함께 하는 ''6.15 민족통일 대축전''의 대회장을 맡았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개막된 이 축전은 3박4일 일정으로 펼쳐 졌으며 지난 2002년 금강산, 2004년 인천, 2005년 평양에 이어 2006년 4번째 치러지는 민간주도 남북공동 축전이다.
남북 당국 대표가 참가하기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이다. 남측과 북측 민간 및 당국 대표단, 해외 동포 등 400여명과 시민 등이 참석한 이 행사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안 회장의 숨은 열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또한 안 회장은 미국 월가의 큰손으로 숨겨진 인물이다. 본지와의 인터뷰를 수차례 거절하다 끈질긴 기자의 밀착 취재로 겨우 양해를 얻어 서울 조선호텔에서 본지 발행인(임채수)과 특별인터뷰를 하게 됐다.
안지선 회장은 국제금융을 사업을 모체로 하고 해외사업 부문에 미국, 영국, 스위스, 말레시아, 베트남, 중국 등 16개 국가에 파이낸스센타와 국내 사업은 천지인건설(주), 천지인그룹(주), (주)대산디엔씨, 한중법률사무소, 국제미디어센터 등 사업체를 관장하며 홍익인간 정신으로 하늘을 설계하고 땅을 개발하며 인간을 사랑하는 천지인 그룹을 이끌고 있다.
국제 파이낸스 안지선 회장은 세계무대를 뛰고 있다.
안 회장은 세계화을 위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대한 설명을 한다. 부동산 금융이랄 수 있는 프로젝트 파이낸스(project finance)에 대해 언급 한다. 국가도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과 자금이 뒤따라야 한다. 국가와 국가도 무한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선진국이 있는가 하면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있으며, 미개국도 많다.
세계는 250여개 국가로 나뉘어 있으며, 유엔에 가입한 나라만도 200개국이 넘는다. 강대국은 약소국 끼리 국경에서 전쟁을 일으키게 하여 강대국의 낙후된 군수물자를 팔아먹는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기술력, 자본력, 노동력 등의 인적 자원이 발달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간접 자본의 투입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60-70년까지는 사회간접 자본을 정부 차원에서 직접 투자하였으나, 80년대 이후는 경제 운영의 기조가 지역 간의 격차가 심해 졌다. 사람은 생각과 처신이 바르게 행동해야 하며, 일치된 사고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사회간접 자본의 투입이 줄어들자 교통체증으로 물류비 증가가 나타나며, 물류비는 생산 원가의 20%도 넘게 들고 있다.
|
다행인 것은 정보화산업의 발달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사회간접 자본의 투자는 GDP의 10%정도는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4~6%정도만이 80년대 이후 투자하고 있다.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는 1994년에는 민자유치 촉진법 및 동 시행령을 제정 공포했으며,1995년에는 민자유치 대상으로 수도권 신공항고속도로 사업과 동시에 12개 사회간접자본 시설사업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도권 신공항 사업은 영종도와 서울을 연결하는 40.2km 6-8차선 공사로, 공사구간에는 세계 최초의 4.4km의 복층구조 자정식 현수교인 연육교도 만들어냈다. 공사비만 2조원이 투입되었으며, 4천 억 원이 정부 보조였다. 프로젝트 파이낸스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여기에 부동산의 역할이 크다. 토지보상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이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기간이 길고, 장기간에 걸쳐 사업이 이루어지며, 자금이 막대하게 들었다. 따라서 사업 리스크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민자 유치을 위해서는 신뢰가 있어야 하며, 개발에 대한 투자 수익이 보장되어야 한다. 자금조달이 막혀서도 안 되며 꾸준한 자금조달이 있어야 한다.
|
중간에 자금줄이 막히면 소요기간이 길어지기도 하며 사업의 타당성도 다시 짜야 한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한책임(full-recourse)을 져야 하며 수입이나 추가부담이 제한되어야 한다. 사업은 그 사업 자체의 장래성에 의해 담보가 되며 가치가 된다.
project finance는 수에즈 운하의 개발 사업이 효시라 한다. 그런 후 1930년대 미국에서는 석유개발 유전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있었다. 석유개발은 자금이 많이 들고 미국에서는 곳곳에 유전개발이 이루어진다. 이때 개발업자는 자금력이 부족한 사람이 많으며 은행권은 석유 매장량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했다.
부동산이 있다면 부동산에 의한 담보로 개발 사업을 할 수 있다. 신용사회라 하지만 담보가 없는 신용으로 2002년 한국에는 신용불량자만 250만 명이나 된다. 그러한 관계로 반이라도 부동산에 의한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가장 현명한 방법 같아 기고해 보기로 마음먹고 국제 파이낸스 업을 하고 있다.
이런 금융기법은 70년대 석유파동 때 많이 이용 했으며 도로공사 댐 공사로 인한 발전소 개발과 공항건설 항만 등에 많이 적용했다. 그러나 많은 연구와 자본이 소요되므로 위험 부담도 그만큼 크다. 부동산을 담보로 한 금융기법을 사용한다면 개발 측에서나 자금을 댄 쪽에서나 서로 믿음이 더 생기리라 여겨진다.
산업경제 성장에 아시아 각국은 90년대 눈부신 발전을 하였으며 고도성장을 위한 투자처를 위해 사회간접 자본이 부족했다. 그 투자 처을 이용한 기법이 프로젝트 파이낸스에 의한 사회간접 자본의 금융이다. 이 사업을 위한 스폰서는 현금일수도 있으며 부동산을 담보로 한 은행권의 융자나 차관이 될 수도 있다.
프로젝트 파이낸스는 남의 돈에 의존한다. 장기적인 사업을 해야 하며 크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보장되어야 하며 위험부담이 많은 것을 극복해야하고 정부의 개입으로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국제적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며 자본력이 풍부하고 부동산에 의한 은행 담보로 사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국제적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부동산에 의한 프로젝트 파이낸스 기법도 가능하리라 여긴다.
|
국내 자본은 해외 수익성 사업에 투자하고, 해외 자본은 국내로 유치해 부족한 자금 마련을 위해 유치해야한다. 그러나 근래 수년간은 국내 기업이나 재력가들이 국내 투자를 꺼리고 있으며 해외 투자를 즐겨한다. 초기 투자는 실수와 실수를 남발하고 있다. 또한 정당한 방법에 의한 정당한 투자여야 하는데 많은 자금이 불법으로 해외로 유출입 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고 한다.
명동의 사채시장은 거대한 지하경제
명동 사채업자 K 모씨가 털어놓은 거대 사채시장의 비밀이야기를 들어보면‘큰손’ 4인방이 좌지우지, 전화 한 통이면 수천억 OK”하기도 하고 ‘큰손’은 조 단위 재산가는 3500억 돈 심부름정도 전직 대통령 가족 뒤 봐주고 측근과도 긴밀한 거래처이며‘큰손’과 일부 은행 지점장들‘공생(共生)’하기도 했다.
‘명동 사채시장’은 거대한 ‘지하경제’의 코어(Core)다. 수 백조 원대에 이르는 시중 유동자금의 흐름을 주도하는 어둠의 제왕이며, 한 번도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한국경제의 ‘음(陰)의 축’이다. 올해 초까지 현업에 종사해온 한 명동 사채업자가 사채시장의 실태를 털어놓았다. 그는 “명동 사채시장에서 지금도 비밀리에 정치자금 세탁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사채시장은 은행, 제2금융권 등 제도권 금융기관이 아니면서 금전 대여업이 이뤄지는 곳이다. 금융기관에 담보대출, 신용대출 을 받지 못할 처지가 된 개인이나 회사가 급전을 구하기 위해 주로 찾는다. 속칭 카드깡, 자동차 할부깡, 상품권깡 등 다양한 대출방식이 알려져 있으나 ‘정석’대로 부동산 담보를 제시해야 대출해주는 사채업소도 많다.
사채업소의 또 다른 주 종목은 기업어음, 양도성예금증서(CD), 채권, 비상장 주식과 현금을 교환해주는 사업이다. 특별한 경우에는 현금 거래 없이 수표를 수표로, CD를 채권으로 교환해주기도 한다. 이런 사업을 통해 사채시장은 자금 세탁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캐피탈’ ‘컨설팅’ ‘투자’ 등의 간판을 내 건 업소는 영락없는 사채업소다. 최근엔 사채업소가 대부업이 아닌 일반 사업을 겸업하는 경우도 많아 ‘상사’ ‘무역’ ‘개발’ 등의 회사명을 갖기도 한다.
여러 형태의 사채업소가 존재하지만 공통된 특성은 고리(高利)와 거액의 수수료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돈의 성격에 따라 은행 이자의 수배에서 수십 배까지 폭리를 취한다. 정부는 ‘대금업법’을 통과시켜 사채시장의 건전화를 유도했다.
사채업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이자수익을 얻지 못하도록 한 것. 그러나 사채업자들의 폭리는 여전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채업자가 감수해야 하는 ‘리스크(위험 부담)’ 가 크기 때문에 그들의 수익도 높아지는 것이고 이는 사채시장에서 그만큼 거래가 자주 이뤄지고 있다
명동 사채시장은 피라미드 구조를 보면 사채시장에 대한 공인된 통계가 없어 정확한 사실관계는 알 수 없지만 금융업계에 따르면 자금 수요가 많은 서울지역이 전국 사채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의 사채시장은 과거 은행 본점이 몰려 있던 명동을 중심으로 형성됐으며 종로지역이 부(副)상권으로 통했다. 현재 사채시장은 강북의 을지로, 퇴계로, 충무로, 강남의 강남역 주변, 테헤란벨리 등지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사채업자들 사이에선 여전히 명동이 사채업의 ‘메카’로 통하는 곳이다.
안지선 회장은 누구인가.
안지선 회장은 1953년 서울 태생, 아버지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다 장안동에서 농사를 짓는 대농의 갑부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 친구 분이 서울 명동 금융가(사채시장)에서 사업을 하는 사무실에서 심부름을 하기 시작하면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 이론과 실무를 배웠고 보다 중요 한 것은 국내는 물론 외국인 거물급들의 인맥을 모두 알고 지낸다는 것이 오늘에 안 회장 실력이다.
60년대부터 명동의 블랙머니(사채시장) 흐름을 잘 알고 있는 안씨는 70년대부터 비행기를 타고 미국과 유럽지역을 큰손들을 따라 다니며 국제금융을 알게 된다. 그러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가 끝나고 약간 움칠해진 블랙머니 시장을 떠나 몽상에 취해 하늘의 계시를 받게 된다.
안씨는 15시간의 장거리 비행기속에서 비몽사몽하게 들려오는 계시는 “너는 당장 하늘의 뜻이니 천지인의 철학에 따라 지구상 모든 인간을 위해 쓰임이 되도록 하라”는 명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깊은 산속 조용한 기도원에서 1,000일간 기도와 수양에 돌입하여 얻어진 이름이 지금의 ‘천지인그룹’이다.
천지인그룹은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대통령이 두 번 서울시장이 탄생된 유명한 명가의 사무실인 건물에 있다. 이번에 사무실 화장에 따라 서울시청 앞 소공동에 곧 개소식을 할 예정이다. 안 회장은 7남매 중 5번째로 23세에 결혼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천지인 그룹 안지선 회장은 한민족을 사랑한다.“
안 회장이 한민족을 사랑하게 된 것은 하늘이 준 명이라면서 한민족의 기원에서 뿌리부터 알아야 참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한민족은 인류 최초의 종족입니다.
현 학계에서는 한민족이 다른 종족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훗날 유전공학의 발전으로 만천하에 그 사실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날 것입니다.
한민족은 본디 칸 민족이라고 하여 칸은 칼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한민족은 지금의 경상도지방인 신나에서 비롯된 금 사람들로서 이들은 최초의 나라인 주신제국을 만들었다. 한민족은 수 천 년 전부터 한(반)도와 한(만)주에 살았던 유일한 황인종으로 최초로 개와 말을 함께 길들여온 기마민족이나 농경민족이었다.
한민족에 해당하는 오늘날의 민족은 현재의 한국인들과 일본인, 그리고 티벳인과 인디오, 그리고 몽골인과 터키인 등 세계 곳곳에 있다. 이들의 조상은 모두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며 우리 한민족은 세계 최초의 문명을 가진 민족이다. 그럼에도 현재 사학계에서는 이를 왜곡하여 한민족과 연관이 적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 된 것이다.
한민족을 증명하는 유전자적 그리고 과학적 증거는 바로 청반점이다. 이는 몽고반점이라는 이조용어로 왜곡되고 있으나 사실은 백두산 천지연에서 비롯된 것으로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발원지이며 혼의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민족을 백두민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청반점이 있는 민족은 우리의 후손이며 참고로 화하 족과 그 화하족의 가지인 화교들은 청반점이 없다.
대륙문명의 시원은 한반도이고 한반도에서 시작한 한민족은 세계로 배달하여 인류문명을 만들었다. 고인돌과 피라밋이 바로 그 증거이며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이 한반도에 있고 최고이자 최초의 피라밋에서 김치 청동검 한글 등이 출토된 것 또한 바로 그 물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민족 [韓民族] 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한반도와 그 북쪽에 연한 만주 일부에 살고 있는 종족으로 공통된 한국어를 사용하며 공동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민족으로 황색인종에 속하며 우랄-알타이어족인 원시 퉁구스의 한 갈래로 고대 중국에서는 동이라고 불렀던 일족이다.
한민족이 언제부터 만주와 한반도에 살았는지 그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으로부터 1만 년을 전후한 신석기시대부터 이 지역에 살고 있었음을 그들이 남긴 유적 ·유물에 의하여 알 수 있다. 정론(定論)은 없으나 한민족의 조상들은 일찍부터 인류의 발상지라고 일컬어지는 중앙아시아 지방으로부터 구석기시대를 전후하여 몽골과 만주지방에까지 이동해왔다고 여겨진다.
그들은 다시 새로운 신석기의 기술을 배우면서 만주지방으로부터 남하하여 반도에 들어와 살게 되었고 일부는 일찍이 일본으로 옮겨가서 일본민족의 일부를 이루게 되었다. 또 남해안지방에는 해류관계로 부분적으로 남방계통의 민족이 흘러들어와 혼합되었고, 황해를 건너 한족 계통도 들어왔을 것이다.
따라서 원시시대부터 황허강 유역의 문명이 주류가 되고 만주나 몽골의 북방계통의 것이 가미되었으며 남해안 지방은 일본의 기타큐슈와 서부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까닭에 그들과 같은 문화권을 이루고 있었다.
원시사회의 토기를 보면 이들은 만주와 시베리아로 연결되는 북방 아시아계통의 요소를 지닌 빗살무늬토기 계통과 화북과 만주 ·몽골계의 요소가 깃든 민무늬후육토기 계통과 화북계인 주도마연토기 계통의 세 갈래 길을 택하여 이주해왔다.
이들은 그 뒤 만주 북쪽과 동쪽 지방에서 부여를 건설하고 한반도 북부에 고구려 ·옥저 ·예 등의 고대 부족국가를 건설하였다. 이와 전후하여 한 갈래의 부족은 일찍이 남하하여 반도 남부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오랫동안 한강 이남에 살면서 별로 북방의 종족들과 접촉이 없는 가운데 대소의 씨족적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마한 ·진한 ·변한의 3한이 그것이었으며 이들은 총수 70여 개의 부락국가를 이루고 원시생활을 해왔다.
삼국지에 의하면 이들은 말과 풍습이 서로 다르다고 하였으므로 단일종족으로 볼 수는 없으며 또 그들의 이주 연대와 정착지도 틀린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나 풍습도 따로따로 별개의 방향으로 발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남쪽 해안에는 해양성 종족이 다분히 표류되어 와서 살게 됨으로써 여러 갈래의 군소국이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되나, 민족의 근간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들은 처음부터 마한 목지국의 진왕을 맹주로 하여 부속관계를 맺고 있었으므로 막연하나마 통일된 민족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은 이와 같은 경로를 거쳐 남과 북에 부족국가를 이룬 삼국시대를 거쳐서 7세기 중기에 이르러 민족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었다. 신라가 3국을 통일하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백제만을 완전히 통합시켰을 뿐 고구려는 그 일부 즉 남포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경계선 이남의 영토를 정복한 데 불과하며 신라는 고구려의 남쪽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그 유민들을 거느리게 된 데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여기에 통합되지 않은 고구려 민족의 대부분은 한민족과 분리된 만주족이 되었다.
이렇게 아픔을 많이 가진 민족은 한이 많아 한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워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 동족을 찾아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천지인의 사명이다.“ 라고 한다.
[임채수/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