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계기는 '등하교 차 태워주기'에서 내가 드디어 해방되었다는 사실. 둘째 아이 유치원 시절부터 시작해 12학년까지 무려 14년이다. 등하교 시킬 때는 몰랐는데, 막상 그 의무 혹은 과제에서 벗어나고 보니 기분이 묘했다(첫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는 좀 길다.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임).
생각해 보시라. 비가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그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사람을 묶는 사슬이다. 그 사슬에서 십수년 만에 풀려난 느낌이 어떻겠는가.
해방감에 들떠서, 그럼, 이제 얽매이는 하나에서는 확실하게 놓여났으니, 이참에 어디 하고 싶은 일 하나 찾아볼까? 하는 마음을 가졌더랬다. 물론 생업은 따로 있으나, 하나에서 벗어난 김에, 다른 하나에 나를 구속시키고 싶었던 거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 그게 뭘까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평소처럼 페이스북을 열었는데, 그날 따라 손가락이 못 따라갈 정도로 뭔가가 머리 앞 이마 쪽으로 확, 하고 쏟아지는 거다. 마치 뇌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도록 확~~. 말이다. 생각도 이렇게 쏟아지는 느낌을 실로 오랜만에 가졌다.
장문의 글을 30분도 안 걸려 금세 올렸다. 해방된 느낌으로 가벼이 쓰는 글은 역시 경쾌했다. 발목 쇠뭉치를 걷어내고 가볍고 간결하게 스탭을 밟는 기분이랄까, 뭐 그런... 이번에는, SNS에 거칠게 올리는 글 치고는 정성까지 조금 가미했다. 집중할 수 있어서 그랬다. 최소한 글 올리다가 아이 태워주러 튀어나갈 일은 없으니까.
정성을 들이면 표가 나게 마련. 평소보다 많은 이들이 읽었고 급기야 '좌표'가 찍히는 바람에 내 페북 활동 역사상 전무후무할 최다 '좋아요'(만개 넘게)를 받았다. 여기저기 보도되고, 인용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야 말았다. 정성이 뻗쳐서 그런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독자들의 욕구에 딱 들어맞는 '코드 포스팅'이었기 때문.
어라? 그럼, 앞으로는, 이왕이면 계속 성의있게 써볼까, 하는 생각이 언뜻. 동시에 토론토에서 한의사로 일하는 김제곤씨 생각이 퍼뜩.
김제곤 한의사는 토론토 마운트사이나이 병원 한방과에 근무하는 친구다. 마운트사이나이 병원이 어디 보통 병원인가. 뉴욕·런던·토론토 같은 대도시에 포진한 세계 최고, 최대를 자랑하는 병원. 그 병원에 설치된 한방과에서 진료한다는 사실은 뉴스다. 게다가 한국 사람으로서는 유일한데 말이지. 본인이 셀프 광고할 생각이 없으니, 시간이 지나도 알려지지 않은 채 그냥 그대로 가고 있는데, 한때 기자일로 밥벌이했던 나로서는 이 뉴스가 묻히는 것 자체를 안타까워 했었다. 널리 알려지지 않는다 하여 김제곤 한의사의 일이 달라질 건 없지만서도.
김제곤 한의사가 셀프 광고를 못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20년 가까운 진료 경험과 축적된 연구를 통해 그 좋은 건강보조 제품을 만들어놓고도, 자기 브랜로는 널리 알릴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흰색 용기(약병)에 넣어 미국과 캐나다의 건강보조식품 대기업에 공급하면, 그 회사들이 자기네 스티커 상표를 붙여 대량 판매한다는 사실을 나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곰과 왕서방의 관계나 마찬가지. 그러니 그것들이 한국에 들어갔다 한들 김제곤표가 아니라 대형회사 상표가 된 거고.
그래서 나도 자세 가다듬고 글로써 약을 파는 김에, 당신도 이 지면을 통해 당신을 한 번 팔아봐라, 알려라도 보자, 이렇게 제안하게 된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따로 작업할 일도 없고 하여, 구체적으로 대화한 지 한나절 만에 건강보조식품 광고를 블로그에 내걸 수 있었다. 난 열라 글 올리고.
말이 나온 김에, 김제곤 한의사를 다시 한번 소개한다. 나보다 세 살 아래지만 토론토에서 친구처럼 지낸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내가 만난 몇몇 한의사들은 거의 예외없이 인문학적인 소양이 풍부해서 말이 잘 통한다. 자고로 이민사회는 말벗 찾기가 참 어려운 동네이니, 개인적 인연은 더 말할 것 없겠다.
만나서 열라 수다 떨다 보니, 아, 맞다, 당신 한의사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허리가 아플 때마다 찾아가서 침을 맞았다. 그렇게 몇번 맞았더니 1년에 두세 번은 꼭 튀어나와 사람 돌게 만들던 디스크가 몇년 째 잠잠하다. 침 덕분인지, 운동 덕분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둘 모두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침 말고도, 감기약이나 살빼는 약(두 가지 모두 한약이다) 등등으로 도움을 참 많이도 받았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토피 같은 피부병에 좋은 걸 만들었고 효과를 봤다든가, 비염과 축농증, 분노조절 장애와 ADHD에 좋다는 제품을 만들고 효과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연 추출물로 보조제를 열심히 개발·제조해서 남 좋은 일만 시키느니, 잘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도 광고 한 번 해보자, 광고 붙이는 김에, 그러면 아예 잡지라고 해보자, 1인 언론시대가 도래했는데 '나홀로잡지'라고 하면 뭐 어때,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블로그와 페이스북에서 예전보다 정성을 들여, 글을 올릴 테니, 그대는 연구 개발하고 효능이 입증된 건강보조식품을 여기서 소개 공급하라,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갔다.
광고 전문가들이 아니니, 독자들 눈에는 광고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 양해해주시라. 우리는 잡지쟁이이고 한의사여서, 큰 회사처럼 세련되게, 소비자들에게 바로 믿음을 바로 줄 만한 근사한 광고는 만들지 못한다. 대신, 잡지쟁이로서는, 건강보조식품을 연구 개발하는 한의사로서는 최선을 다 한다.
구독료는 당연히 공짜다. 블로그나 카페에 방문해 주는 것이 오히려 고맙다. 방문하고 읽어주시는 김에 그 아래 붙어 있는 우리 김제곤 한의사의 '건강보조식품'에도 관심 한 번 기울여주십사 부탁드린다.
'나홀로잡지'에서는, 시작을 하는 처지인 만큼, 공급가를 가능한 최저가로 정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판매되는 가격(평균 $80 US달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60 캐나다달러로 하기로...
https://www.mountsinai.on.ca/
김제곤이라는 인물이 궁금할 것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에 한의대 붐이 일어난 것은 잘 알려진 사실.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한 인재들이 한의대로 몰려들어 화제가 되었다. 그 무렵, 김제곤씨는 거기서 한 발 더 나갔다. 1992년 마침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자, 그는 원류를 좇아 아예 중국으로 건너갔다. 수교 이후 제1호 중국 유학생이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직후였다.
중국 텐진중의약대 본과를 5년 만에 졸업하고 1998년 1월 캐나다 토론토로 바로 건너왔다. "침통 하나만 들고" 태평양을 건너와 일가를 이룬 셈.
인구 100만이 넘는 광역토론토 중국 커뮤니티, 인구 10만에 육박하는 한국 커뮤니티를 넘나들며 진료를 하다가, 김 한의사는 '마운트사이나이'라는 대형 종합병원 한방과에 픽업되었다. 김제곤을 픽업한 인물은 마운트사이나이 병원 한방과 책임자인 중국인 닥터 첸. 중국 한의사. 국비장학생으로 캐나다로 건너와 의대 대학원에서 유전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그가 중국인 한의사들이 선망하는 마운트사이나이 한방과에 김제곤씨를 뽑아올린 것. 미국과 캐나다의 대형 병원에 한방과가 설치된 것이 더러 있는데, 김제곤씨는 그곳에서 진료하는 유일한 한국인 한의사이다.
http://cafe.daum.net/drkimcanada/QXRC/3 토론토 마운트사이나이 병원은 왜 한방과를 설치했을까
다음은 김제곤 한의사의 홈페이지다. https://www.jacobkimacupuncture.com/
글이 길어져서 불안하다. 독자들이 지루해할까 봐. 서둘러 끝낸다.
사족 하나만. 이 지면에서는 주로 내가 글을 쓴다. 내용은 세상만사 모든 것. 잡다한 이야기를 담는 잡지니까. 김제곤 한의사도 틈틈이 '건강 칼럼'을 기고하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중에 김제곤씨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머리 나는 젤 바르고 제 머리 카락이 많이 났습니다. 이 제품도 천천히 제품화하려고 합니다. 시장이 워낙 커요." 나한테는 기쁜 소식이 아니지만 기쁜 소식으로 여길 분들이 아주 많은 모양이다. 시장이 크다고 하는 걸 보니.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린다.